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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시장의 물건. 펼쳐놓은 것만으로도 느낌이 있다.
 도둑시장의 물건. 펼쳐놓은 것만으로도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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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데기를 파는 도둑시장

오늘은 리스본을 떠나는 날. 떠나기 전 리스본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생각으로 28번 트램을 타러 갔다. 28번 트램은 유명 관광지를 두루 지나는 리스본의 명물이란다. 외관이 노란색으로 칠해진 구형 트램은 크기도 작고 내부가 나무로 되어 있어 과거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준다.

도둑시장 근처에 있는 상 빈센트 성당.
 도둑시장 근처에 있는 상 빈센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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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타고 첫 번째로 간 곳은 도둑시장이었다. 도둑시장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여행용 가방을 하나 사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나오면서 예쁘지 않느냐고 자랑을 한다. 그녀가 보여준 여행용 가방의 삽화가 앙증맞고 귀엽다.

나도 괜찮은 물건을 건질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하고 도둑시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둑시장이란 이름은 도둑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인가 했더니, 도둑들이 훔친 물건을 많이 처리했던 곳이라 해서 도둑시장이란다.

도둑시장의 다양한 물건들.
 도둑시장의 다양한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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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펼쳐진 물건들의 종류가 다양하다. 저걸 정말 팔려고 갖고 나왔을까 싶은 상태가 좋지 않은 물건들도 있었다. 낡은 수도꼭지와 녹슨 열쇠, 심지어는 조개껍데기까지. 산발 머리의 바비인형과 누구의 사진인지 알 수 없는 낡은 사진들도 보인다. 집에 굴러다니는 물건을 모조리 들고 나온 듯하다. 늘어선 좌판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다양한 물건 가운데 액세서리가 구미를 당긴다. 꼼꼼히 살펴보다 포르투갈에서 행운을 상징한다는 수탉 모양의 금속 귀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상인은 한 쌍에 5유로를 부른다. 옆에 있는 호리병 모양의 귀걸이까지 두 쌍을 살 테니 깎아 달라며 흥정을 했다.

상인의 말투에서 왠지 인도의 느낌이 나서 어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정말 인도 사람이란다. 작년에 인도를 갔었다고 하니 친구 가격으로 준다며 두 쌍에 6유로만 내란다. '득템'했다는 기쁨에 그 자리에서 착용했다. 딸은 깨끗하지도 않은 귀걸이를 세척도 하지 않고 바로 착용했다고, 병 걸리면 어떡하느냐고 성화다.

"너무 성급했나? 엄마는 면역력이 강해서 병균이 왔다 가도 도망갈 거야."

귀걸이가 마음에 들어서 딸의 성화쯤은 개의치 않았다.

도둑 조심하라는 경고. 전철역 안내문구에 이어 골목길 담벽 그림까지
 도둑 조심하라는 경고. 전철역 안내문구에 이어 골목길 담벽 그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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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파는 각양각색의 물건들은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딸은 여기서 예쁜 그릇과 가방과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겠다며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구경으로 끝냈다. 앞으로 여정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가능하면 짐을 늘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서 보이는 테주강가.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서 보이는 테주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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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시장 옆에 있는 산타 엥그라시아 성당. 판테옹 나쇼날이라고도 불린다.
 도둑시장 옆에 있는 산타 엥그라시아 성당. 판테옹 나쇼날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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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시장 옆으로는 테주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바람이 제법 세서 몸이 으슬으슬 추워진다.속이 비면 더 춥게 느껴지는 법이라 간단하게 요기를 할 요량으로 주변에 식당이 있는지 살폈다. 트램 정류장 근처에 작은 카페가 보인다.

포르투갈식 스프인 소파(sopa)가 1유로였다. 소파 2개와 크로아상을 주문했다. 우리나라 야채스프 같은 따끈한 소파가 추운 속을 데워주었다. 한국 돈 1500원으로 따뜻하고 맛있는 야채스프를 먹을 수 있다니.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테주강변에서 파두를 부르던 거리의 악사.
▲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의 가수 테주강변에서 파두를 부르던 거리의 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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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지만, 여유로운 리스본 사람들

트램길을 따라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갔다. 어디선가 은은한 기타 선율이 들려온다. 기타 소리를 따라가 보니 테주강가의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은발의 노인이 보인다. 날씨가 흐리고 보슬비가 내려서인지 관객은 우리뿐이었다.

동전 한 닢을 놓고 난간에 기대 서서 음악을 감상했다. 담배를 물고 그윽한 눈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엽서 속의 그림 같았다. 노인은 음악을 듣고 있는 우리를 보고 기분이 좋았는지 파두를 불러 주겠단다. 강가에서 듣는 파두. 여행지에서 나만을 위한 연주회가 열린 것 같아 흐뭇했다.

상 조르제성을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성으로 가는 골목길에 기념품 가게가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딸은 친구들에게 부칠 엽서를 사겠다고 가게를 둘러본다.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지금까지 본 중에 제일 저렴한 집이라며 어떤 엽서가 예쁜지 신중하게 고른다. 가게를 나와서 조르제성 앞까지 갔는데 다시 비가 온다. 바람도 심한데다 비까지 오니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진다.

성 밖에 있는 성벽 전망대만 올라갔다가 바로 내려왔다. 비를 피하면서 기념품이나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아까 엽서를 샀던 가게에 들렀더니 주인 할아버지가 노란색의 가이드 북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엽서를 사다가 손에 들었던 책을 놓고 온 모양이었다.

여행 일정의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책을 잃어 버릴 뻔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오브리가두(감사하다는 뜻의 포르투갈어)"를 연거푸 말하며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잃어버릴 뻔한 물건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 걸 보니 행운이 따르는 것 같다.

언덕이 많은 리스본. 빨래를 널어 놓은 풍경이 소박하다.
 언덕이 많은 리스본. 빨래를 널어 놓은 풍경이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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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타고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도시에는 곳곳에 광장이 있다. 한국에서 광장이라 하면 여의도 광장, 광화문 광장 등 유동인구가 매우 많은 곳에 큼직한 규모로 조성된 넓은 터를 떠올리게 되지만, 우리가 이번에 돌아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광장은 규모가 작았다. 그런데 코메르시우 광장은 이번 여행에서 본 가장 큰 광장이었다.

광장의 삼면에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큰 건물들이 둘러서 있다. 나머지 한 면은 테주강과 닿아 있다. 코메르시우(comercio)는 무역이란 뜻인데 테주강으로 물건을 싣고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왕과 접견을 한데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포르투갈이 부유했을 땐 아마 이 강에 쉼 없이 배가 드나들며 수많은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날랐으리라. 광장 주변의 노란색 건물과 잿빛 하늘, 테주강이 리스본 그리고 포르투갈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코메르시우 광장의 다양한 모습.
 코메르시우 광장의 다양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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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여인이 있다. 여인이 소리를 내니 비둘기들이 여인 주위로 모여든다. 여인을 비롯한 광장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한가로움과 느긋함이 느껴진다. 강가의 방파제에도 앉아서 각자 책을 읽거나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삶을 즐기는 듯한 여유 있는 리스본 사람들의 모습이 부럽다. 우리도 강가의 모래밭에 앉아 바쁜 여행 일정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여유를 즐겼다.

맛의 예술 에그타르트

이번에는 15번 트램을 타고 벨렘지구로 갔다. 에그타르트의 원조집이 이곳에 있다고 해서다. 정류장에 내려서니 크고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관람 시간이 끝난 후라 에그타르트집에만 갈 생각으로 왔는데 수도원의 웅장한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건물 아래서 비추는 조명에 수도원은 찬연하게 빛났다. 불빛에 비친 수도원은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수도원이 주는 무게감에 압도되었다고나 할까. 에그타르트집 찾는 건 잠시 미루고 건물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수도원은 더욱 거대해 보였다. 희고 커다란 건물은 그 장식까지 매우 화려했다. 특히 문 위에 새겨진 장식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수도원이라기에 수수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였다. 흰 건물은 낮에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겠지만, 밤에는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벨렘지구에 있는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야경.
 벨렘지구에 있는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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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감상은 이쯤 하고 에그타르트집으로 간다. 에그타르트는 파이 위에 달걀 크림을 넣어 만든 디저트이다. 에그타르트하면 마카오라길래 에그타르트의 원조가 마카오인 줄 알았더니 진짜 원조는 포르투갈이란다.

벨렘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에그타르트의 유래는 이렇다. 수도원 수녀들은 수녀복에 빳빳하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 계란 흰자만을 사용했다. 남은 노른자를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하던 끝에 만들게 된 것이 노른자를 주재료로 한 에그타르트였다. 그후 에그타르트 원조집은 수녀원에서 비법을 전수받아 벨렘지구의 명물이 되었단다.

가게 안에는 손님이 많았다. 진열장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인기메뉴인 에그타르트가 있었다. 접시 위에 에그타르트 세 개가 올려져 있었고 그 앞에 1.05유로라는 종이가 놓여 있었다. 딸이 몇 개를 살까 묻기에 두 개만 사라고 대답했다. 분위기를 느끼며 가게에 앉아 먹고 싶었지만, 저녁 때 세비야행 야간버스를 타야 했기에 포장을 해서 나왔다.

숙소로 가는 트램을 타자마자 바로 에그타르트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타르트는 바삭하게 부서지면서도 고소했고 커스터드 크림은 달지 않으면서도 푸딩처럼 부드러웠다. 에그타르트 한 개가 순식간에 입안에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딸, 하나 더 줘."
"두 개만 사서 이게 끝이에요."

두 세트를 샀으니 총 여섯 개를 산 줄 알았는데! 에그타르트 하나에 1.05유로인 것을 세 개에 한 세트가 1.05유로인 줄 착각한 것이었다. 아쉽다. 더 먹고 싶은데. 다시 사러 가고 싶었지만, 야간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계피가루와 설탕을 뿌려 먹는 에그타르트.
 계피가루와 설탕을 뿌려 먹는 에그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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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들어갔더니 푸짐한 파티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메인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어제 우리가 먹는 것을 보더니 삼겹살 생각이 났나 보다.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세비야행 버스를 타러 가야 하는 우리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이런 우리 처지를 알았는지 한국인 처자가 같이 먹자고 한다. 장 보는 것, 음식 만드는 것, 상 차리는 것도 돕지 못한 데다가 나중에 치우고 갈 시간도 없었기에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많이 차렸다며 꼭 먹고 가라고 붙잡는다.

염치불구하고 한쪽에 앉아서 먹었다. 삼겹살은 정말 맛있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허기만 채우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성의가 고마워서 10유로를 건넸다. 마음씨 착한 처자는 극구 사양했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이것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의 훈훈한 정이 느껴졌던 리스본을 뒤로 하고 스페인의 세비야행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 위로 해가 넘어가고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다.

유럽의 서남쪽 끝에서 대서양의 바람을 온전히 맞고 있는 나라. 스페인과 붙어 있으면서도 문화나 언어가 전혀 다른 나라. 대항해시대에 가장 큰 해상제국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유럽의 가난한 나라가 되어 버린 포르투갈. 화려하진 않아도 수수함이 묻어났고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덕에 마음이 편안했다. 다만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 여행지였다. 그래도 포르투갈이 지닌 매력을 안고 돌아간다. 언젠가 다시 오면 샅샅이 찾아보리라며.

덧붙이는 글 | 2014년 1월 7일부터 29일까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다녀온 모녀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몇차례에 걸쳐 실을 생각입니다.



태그:#리스본, #도둑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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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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