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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함께 입장하는 모습.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함께 입장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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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박근혜 정부는 지역경제발전 대책으로 그린벨트 해제지역의 용도 제한 완화를 발표했다. 주거용으로만 활용이 가능했던 그린벨트 해제지역을 상업용으로 풀고 민간개발을 허용해, 상가와 공장을 짓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산지 규제도 완화해 공장이나 물류창고를 지을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아울러 원래 그린벨트 해제지역은 임대주택용지로만 활용할 수 있었지만 오는 6월 이후로는 6개월간 매각되지 않는 임대주택 건설용지를 분양주택 건설용지로 바꿀 수 있게 됐다. 이 정책도 주택의 공공성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집을 뺏어서 고가의 집을 살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주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이번 발표의 해당지역은 투자가 아닌 투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장 땅 주인과 개발회사는 많은 돈을 벌겠지만 이것이 국민경제에 생산적으로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근본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환경재앙을 걱정하는 지금 다시금 환경규제를 완화하고 대규모로 환경을 파괴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야당에서 정부의 이번 발표를 두고 6․4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난공약이라고 비판할 만하다.

박근혜 정부가 저성장경제의 해법을 투자활성화로 가닥을 잡은 것은 분명하다. 재벌과 외국자본, 부자와 대기업의 투자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다.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또 다시 가진 자들에게 규제철폐와 투자지원이라는 특혜를 선사하려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의 저성장경제는 전 세계적인 경향이다. 근시안적 해법으로 섣불리 접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업과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가계소비가 매우 위축되어 있는데다가 가계 빚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상황이다. 한마디로 서민들이 쓸 돈이 없다. 

정부는 내수를 진작시켜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소비주체인 서민들에게 돈이 없다면 소비는 살아나지 않을 것이고 내수를 통한 경제성장은 결국 말뿐이게 된다. 내수를 진작시키려면 투자가 곧장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중산층 이하의 국민들의 손에 현금이 쥐어져야 한다. 유효수요가 창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을 살펴보면 높은 실업률에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모조리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수요가 창출될 리가 없다. 가계수입이 점점 줄어들고 이마저도 안정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규제는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

강력한 고용안정 대책이 없다면 정부의 규제철폐를 통한 투자활성화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지금은 복지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 안정화를 통해 민생을 안정시켜 저성장경제의 장기화에 대비하면서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게 현명하다.

이번 발표에서 드러난 더욱 큰 문제는 정부의 무책임한 친자본적 특혜가 그린벨트 해제지역이나 산지에 대한 규제 완화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어떤 규제인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규제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프레임을 조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를 '암덩어리'로 표현한 것도 이런 의도가 숨어 있다. 보수언론이 연일 '규제철폐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쏟아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프레임은 결국 규제의 양에만 집착하는 오류를 낳는다. 규제는 모두 나쁜 것이고, 규제가 너무 많기 때문에 무조건 줄여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매우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규제철폐안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것이고 국민들이 미처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옥석을 가리고 이해관계를 저울질 해보기도 전에 일사천리로 일괄 처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규제철폐가 공공부문 민영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규제철폐와 공공부분의 민영화가 맞닿아 있다는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중앙일보>의 1월 24일자 사설에는 "정부는 조만간 의료와 교육,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 등 5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대폭 철폐하는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는 기대 섞인 글이 실렸다. 의료와 교육, 금융은 모두 공공부문에 해당된다.

규제완화와 공공부문 민영화의 연관성은 연일 계속되는 보수언론의 공무원 때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공무원들이 규제를 철폐하지 않아서,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필요 없는 규제를 자꾸 만들어서 경제성장이 멈추고 있다는 식의 관료 책임론이 그것이다. 역시 이 또한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논리이다.

규제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다면 규제철폐를 통해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다. 따라서 규제철폐의 방향도 민생을 안정시키고 대다수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들의 삶의 질을 후퇴시키고 고통을 가중시킬 공공부문 민영화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규제철폐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그:#박근혜 정부, #규제철폐, #그린벨트 규제완화, #산지 규제 완화, #지역경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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