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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감국의 싹이 올라왔습니다. 가을에 꽃을 피우지만 이른 봄부터 싹을 내고 오랜 준비끝에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 감국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감국의 싹이 올라왔습니다. 가을에 꽃을 피우지만 이른 봄부터 싹을 내고 오랜 준비끝에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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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어디쯤 왔을까? 이미 남도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데, 아직도 서울은 완연한 봄을 볼 수 없습니다. 봄은 완연하지 않지만, 여기저기서 봄을 맞아 초록의 생명들이 싹을 내고 있습니다. 피어난 봄의 흔적을 찾아보니 흔히들 '잡초'라고 불리는 것들이 먼저 피어나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흔히 잡초라고 불리는 쇠별꽃,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나 잡초라고 여겨지는 꽃입니다. 그러나 봄을 먼저 맞이하는 것은 이렇게 낮고 천한 잡초들입니다.
▲ 쇠별꽃 흔히 잡초라고 불리는 쇠별꽃,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피어나 잡초라고 여겨지는 꽃입니다. 그러나 봄을 먼저 맞이하는 것은 이렇게 낮고 천한 잡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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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체는 민중이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민중의 역사는 줄곧 외면당하지만 그래도 역사의 주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들꽃도 그러합니다. 예쁜 꽃들과 희귀한 꽃들과 저 깊은 산에 피어나는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는 소식은 뉴스가 되지만, 우리 주변에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꽃들이 더 먼저 피어나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습니다.

질겅이의 연한 새순, 그러나 저 연약한 새싹이 밟히고 도 밟혀도 질기게 생명을 이어갑니다. 생명의 신비, 생명의 거룩함을 여기서 봅니다.
▲ 질겅이 질겅이의 연한 새순, 그러나 저 연약한 새싹이 밟히고 도 밟혀도 질기게 생명을 이어갑니다. 생명의 신비, 생명의 거룩함을 여기서 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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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만난 것들은 이러합니다. 가을에 꽃을 피울 감국의 싹, 잡초라 불리는 쇠별꽃, 질기디 질긴 생명의 상징 질겅이, 구덕초라 불리는 민들레, 향이 좋은 냉이와 할미꽃과 화단에서 만난 몇몇 원예종들입니다.

봄은 이렇게 낮고 천한 것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불러오는 구나 싶습니다. 사람의 역사와 들풀의 역사가 그리 다르지 않구나 싶습니다.

봄을 불러오는 사람이 감내해야 할 아픔과 고난, 봄을 불러오는 들풀이 감내해야 할 아픔과 고난이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아홉가지 덕을 갖췄다하여 구덕초라고도 불리는 꽃, 이른 봄 연한 순과 뿌리는 봄나물로도 으뜸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다 주어도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 민들레 아홉가지 덕을 갖췄다하여 구덕초라고도 불리는 꽃, 이른 봄 연한 순과 뿌리는 봄나물로도 으뜸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다 주어도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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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연한 싹을 보자 군침이 돕니다. 저 이파리를 뜯어 먹으면 씁쓰름하니 입맛을 돌려줄 것 같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피어난 것인데 뜯어먹을 생각이나 하다니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다른 생명을 담보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음식이 되는 것들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겠지요. 인간은 자기 몸에 모실 음식들 조차도 너무 함부로 대합니다. 결국, 자신에게 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지요.

화단에 피어난 새순, 원예종 꽃의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 원예종 화단에 피어난 새순, 원예종 꽃의 이름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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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만 생기면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전가시킵니다. 살처분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식입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저는 착잡해 집니다. 어던 독재자가 나타나 인간도 신종플루에 걸리면 집단적으로 살처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미 인류의 역사에서 그런 일들은 있었습니다. 인간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하기도 했고, 고문도 다반사로 이어지고 있으며, 전쟁을 부추기며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당하게 하기도 합니다. 때론 인간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것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극도의 고통을 직접 몸으로 견뎌내야하는 이들은 늘 사회적인 약자들이요, 들풀로 치면 잡초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뒷동산은 아니지만, 자기가 뿌리를 내린 곳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꽃입니다. 할미꽃 피어나면 나른한 봄날일 것입니다.
▲ 할미꽃 뒷동산은 아니지만, 자기가 뿌리를 내린 곳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꽃입니다. 할미꽃 피어나면 나른한 봄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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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이 토실토실 하게 솜털을 입고 피어났습니다. 순식간에 올라온듯 하지만, 이제 꽃대가 올라오고 꽃 한송이가 피어나기 까지는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봅니다. 저렇게 피어났으니 반드시 꽃 피어나리라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저 꽃이 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꽃보다 뿌리나 이파리 향기가 더 좋은 냉이, 그가 먼저 꽃을 피웠습니다. 화사할 것도 없는 꽃이지만 대견스럽습니다.
▲ 황새냉이 꽃보다 뿌리나 이파리 향기가 더 좋은 냉이, 그가 먼저 꽃을 피웠습니다. 화사할 것도 없는 꽃이지만 대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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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국민을 위한다 뭐한다 입에 발린 소리를 너무 잘합니다. 그러나 그냥 가만히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시궁창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겉으로만 국민을 위하는 척, 나라를 사랑하는 척합니다.

오늘 아침엔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구사에 대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통일 대박'으로 재미를 보시더니만,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 볼모, 빚더미' 등등의 단어들을 마구 쏱아냈습니다. 갑자기 70년대 유신시대 반공웅변대회를 보는 것 같아 썸뜩했습니다.

나는 이런 언어말고, 그냥 지난 대선유세 때 했던 약속이나 잘 지켜주셨으면 좋겠고, 국가기관의 불법선거개입 사건에 대해 사과나 하셨으면 좋겠고, 전직 대통령이 그리한거라면 그에게 책임을 물었으면 좋겠고, 4대강 사업으로 아름다운 강을 망가뜨리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이들을 처벌하는 구체적인 원칙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넓은 이파리로 자라날 비비추, 그 처음은 이렇게 작습니다.
▲ 비비추 넓은 이파리로 자라날 비비추, 그 처음은 이렇게 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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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꽃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우리네 정치 이야기를 하니 기분이 별로입니다. 이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려면, 정치이야기를 하면서도 신나야 할 터인데 그렇질 못하니 답답합니다. 그렇다고 담쌓고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뭔가에서 위안을 받아야 하겠지요.

제게는 자연, 그 중에서도 들꽃, 들풀이 치료약입니다. 저렇게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자라나 꽃을 피운다는 것, 그 기적 앞에서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들을 잠시라도 내려놓는 것이지요.

이제 머지않아 돌돌말린 줄기를 내고 작은 보랏빛 꽃을 피워내겠지요. 이파리가 먼저 나와 꽃 피우기 좋은 완연한 봄날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 꽃마리 이제 머지않아 돌돌말린 줄기를 내고 작은 보랏빛 꽃을 피워내겠지요. 이파리가 먼저 나와 꽃 피우기 좋은 완연한 봄날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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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서울도 봄입니다. 여기저기 낮은 곳으로부터 초록생명이 기지개를 켜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봄이 자연의 봄으로만 끝나지 않고, 역사의 봄도 몰아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잡초, 낮은 곳에 사는 풀꽃. 그들을 닮은 사람들의 삶도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람 살만한 세상이겠지요.

덧붙이는 글 | 3월 11일(화), 서울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봄, #비비추, #냉이, #할미꽃,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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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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