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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6일 오전 9시 21분]

실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까지…. 2008년 1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울산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추모식 공개 사과가 있자 유족들은 2009년 10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를 하게 됐다.

이 승소가 있으면서 하급 사례들이 봇물 터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0년 말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되고 2년여가 지난 뒤 법무부는 "위원회 조사가 완벽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청도군 보도연맹 사건 등 일부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형평성 제기, 민간인 희생자 청도유족회

[실록 보도연맹/1990년 도서출판 삼화(三‘和)]의 저자, 안재(號) 박희춘 씨,
▲ 안재 박희춘 씨 [실록 보도연맹/1990년 도서출판 삼화(三‘和)]의 저자, 안재(號) 박희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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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 문제가 드러난다. 특히 1980년대 말부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책 <실록 보도연맹>(안재 박희춘 저서, 1990년 도서출판 삼화)을 펴내는 등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던 박희춘 선생이 중심이 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청도유족회(현 회장 강삼순 포함 131명)'의 경우, 2012년 6월 29일 서울고등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에 머물었다. 하지만, 당시 소의 진행에서 조사결정서를 받지 못한 미신청자 10여 명은 한 달이 지나 청구한 소송 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다. 물론, 동일 사례인 울산유족회 또한 앞서 이야기한 바대로 보상금을 받았다.

유족회 측을 따르면 그 이유는 '피고 대한민국 국방부 검찰단 송무부는 상고 이유에서 소멸시효와 경찰·군인의 위법행위에 대한 존부 등, 이해 대부분의 내용에 원고의 조직체 등 당시 상황의 점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지난해 8월에 대법원 박00 대법관에게 투척한 호소문
▲ 호소문 지난해 8월에 대법원 박00 대법관에게 투척한 호소문
ⓒ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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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유족회 측은 '2009년 4월 2일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대행 백의창 대령, 동 오춘화 사무관, 지원특별위원회 한계수 위원장이 참석해 고유축문을 비롯한 조사 조문을 했다'면서 '이중근 청도군수와 경상북도 정무부지사, 과거사위원회 상임회장, 범국민의 회장, 김동춘 교수, 노용석 교수, 전현수 교수, 이윤갑 교수를 비롯해 다섯 언론사 기자와 김산영 조사관 외 네 명, 일곱 명의 전국 각지 유족회장 등 370명의 유족이 참석해 위령제를 지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호소문을 지난해 8월에 투척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사건 판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필자가 지난해 10월 대법원에 문의해본 결과도 마찬가지다. 그저 "판결에는 우선 상소 건에 대한 최우선 판결 기준이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법에는 '정부가 피해자의 피해와 명예회복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있음에도 말이다.

소리 없는 희생 요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실록 보도연맹/1990년 도서출판 삼화(三‘和)] 표지
▲ 실록 보도연맹 [실록 보도연맹/1990년 도서출판 삼화(三‘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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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이 지난 세월에 600여 명에 달했던 청도군 보도연맹 희생자 가족은 이제 신고된 유족만 200여 명이다. 그중 과거사위원회에 접수해 조사결정서를 받은 사람의 수는 140여 명, 손해배상금 청구 유족은 이보다도 적은 131명이다. 세월만큼이나 유족들 대부분이 고령자들이기 때문에 신고 자수와 큰 차이를 보인다.

유족회 총무 담당 이진훈(청도군 풍각면⋅66)씨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들에겐 하루하루가 힘겨운 싸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대법원 판결이 지연되면서 오는 심적·육체적·물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많은 사람이 지금이야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실체를 안다지만, 오랜 세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향해 보도연맹 실체를 밝히기 위해 앞장서서 노력해온 전 박희춘 회장 또한 올해 연세(80)가 연세인만큼 힘든 여정을 이기지 못하고, 작년 회장직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지내는 중이다.


올해부터는 강삼순 회장이 유족회를 맡아 이어가고 있다. 희생자 유가족 대부분이 고령자들인 까닭에 언제 또 한 명의 유족이 사라질지 모른다. 게다가 유족들 모두 끝까지 이 소송을 승소하기까지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는 있지만, 지난날 사건으로 인한 생활수단 상실과 학업 기회 박탈 등으로 여유롭지 못한 형편이 사실이다. 이 조그만 시골에서 서울을 오가며 변호사 선임 비용 등 큰 비용을 투자하기가 참으로 벅찬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변하는 법원이 소리 없이 더 많은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1969년 8월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령으로 지금에서야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를 널리 알림으로서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주역들의 땀방울을 되새기고 역사적 흔적을 기념하며 발상지의 배경과 근거 새마을운동의 변천사를 널리 홍보하고 체험할 수 있는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군"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청도군.

하지만 정작 이곳 주민이자 민간인희생자(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청도유족회는 다시 암울했던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심정마냥 한맺힌 표정을 감출 수가 없다. 이들이 정부의 오랜 외면에 지치기 전에, 법원은 하루빨리 형평성에 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이들에게 보상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태그:#청도군 보도연맹 유족회, #청도군 유족회, #국민보도연맹, #대법원 형평성, #실록 보도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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