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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영어 단어도 모르면 외화를 아무리 봐도 소용없어요. 어려워요."
"물론 어렵지.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

아들 아이가 CSI 외화 시리즈를 보고 있는 내게 하는 말이다.

어렵기만 했던 영어, 이제는 재미가 쏠쏠

올해 나의 목표는 '영어공부를 하겠다'였다.
 올해 나의 목표는 '영어공부를 하겠다'였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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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헝그리(I am hungry)와 아이 엠 게팅 헝그리(I am getting hungry)는 어떻게 다를까요?"
"네, 아이 엠 헝그리(I am hungry)는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이고 아이 엠 게팅 헝그리(I am getting hungry)는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네, 맞았어요. 게팅(getting)이 들어가면 뜻이 조금 달라져요."

학창 시절에는 그렇게 어려웠던 영어가 그때와는 달리 재미있다. 이해가 잘 돼서 그런 걸까? 학창시절 배웠던 영어 단어를 아직 잊지 않고 새록새록 기억해 낸다는 것 또한 신기하다. 하지만, 새로운 단어를 외운다는 것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한 달 전쯤 '올해는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됐다. 복지관의 프로그램 중에서 일 주일에 한 번 있는 '생활영어'를 등록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책을 사가지고 딸아이 집에 가던 날, 큰손자 우진이가 영어책을 보더니 "웬 영어책, 할머니가 산 거야? 그런데 영어는 왜 배우기 시작했어? 해외여행 가서 영어 잘하려고?"라며 물어본다.

"우진아, 너는 그 책이 어렵지 않지? 할머니가 가끔 해외여행 가잖아. 그럴 때마다 다음 여행 갈 때에는 영어를 좀 더 배워서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이번에는 단단히 결심하고 영어공부를 시작하려고. 우진이 생각은 어때?"
"잘 생각했어. 할머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열심히 해봐."

다시 시작한 영어공부, 처음에는 참 어려웠지요

우진이의 말대로 지난 호주여행 중에 그곳 현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몇 개의 아는 단어를 총출동해 소통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아쉬움이 많기도 했다. 그때 올케가 "형님 다음에는 우리 영어 좀 배워서 와요, 영어를 할 줄 알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꼭이에요!"라고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라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지난 해에는 집에 있던 여행 중 많이 쓰이고 있는 여행책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 책을 뒤척이다 보니 정말 거기에 있는 것만 알아도 여행 중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영어공부를 했지만,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꾸준하게 하게 되지도 않았다. 영어책을 꺼내기만 하면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맴돌고 앞에 있는 TV가 끊임없이 유혹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결심은 물거품이 됐고, 어느새 영어책 위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다 1월 초에 올케를 만났다. 올케는 "형님, 영어공부 하고 계시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러게…, 한다고 하는데 그게 꾸준하게 안 되네"라고 답해줬다.

"올케는 잘하고 있어?"
"저는 동네에서 영어를 배우러 다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어요. 일 주일에 두 번을 가는데 숙제도 영어로 해가야 하더군요. 만만치 않아요."

"그래, 나도 영어반에 등록을 해놓긴 했는데…. 어떨지 잘 모르겠다."
"제가 배우던 곳에는 필리핀에서 온 영어 선생님이 있었는데…. 거기도 원어민 선생님이 강의해요?"

"아직 개강 안 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

"엄마, 이 책은 또 뭐야?"... 아들이 야속했다

CSI 시리즈를 보던 내게 아들은 응원은커녕 야속한 반응을 보였다. 이미지는 CSI  라스베이거스 시즌14 중 한 장면.
 CSI 시리즈를 보던 내게 아들은 응원은커녕 야속한 반응을 보였다. 이미지는 CSI 라스베이거스 시즌14 중 한 장면.
ⓒ CBS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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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어반에 등록을 해놓고 그동안 가끔씩 보던 CSI 시리즈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꾸준히 시청했다. 언젠가 영어 공부를 하는데 영어 뉴스가 큰 도움이 됐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듣는 것이 익숙해지면 도움이 된단다.

그런데 꼭 영어공부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니 과학적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게 정말 재미있고, 놀랍기도 했다. 가끔은 '정말 저렇게 풀어갈 수 있을까?'라는 장면도 있었지만,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기만 했다. 그런데 전문용어가 많이 나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게 태반이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아들 아이는 "엄마, 요즘 한국 드라마는 아예 안 보세요?"라고 묻는다.

"응. 이거 보니깐 한국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너도 봐."

그러다 아들은 내 책상에 놓여 있는 <일상생활 영어회화> 책을 보더니 "엄마, 이 책은 또 뭐야?"라고 묻는다.

"엄마 영어 공부 시작했잖아."
"엄마 나이에 무슨 영어공부를 해? 해외여행 가서 써먹게?"
"응, 겸사겸사."
"그래서 외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구나. 그렇게 봐도 엄마 나이엔 안 돼."
"왜 안 돼? 여행 가서 외국사람 만나면 유창하게 말할 수 있을지."

나도 억지를 부려봤다.

"글쎄, 안 된다니깐. 엄마가 외화를 보면서 단어를 다 알아들어요?"
"아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아. 그래서 보지 말라는 거야? 그래도 그렇지, 너는 엄마한테 용기는 못 줄 망정 말을 그렇게 하니?"
"알았어. 알았어. 엄마 미안해. 열심히 하세요."

63세는 영어공부 하면 안 되나?

아들은 내가 정색하자 말끝을 흐리면서 도망가듯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 아들이 방에서 나오더니 내게 질문을 던진다.

"엄마, 아까 TV에서 '멀리가다'가 나오던데 영어로 말해보세요!"
"멀리 가다? 음…. 롱 웨이(long way)인가? 아니면 롱 어웨이(long away)인가? 정답이 있어?"
"엄마, 스스로 찾아보세요."

그래, 정답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때. 그렇게라도 말했으면 됐지. 그렇게 스스로 위로도 해봤다.

어쨌거나 난 아들이 했던 말이 생각나 지난 영어 공부 시간에 영어선생님께 물어봤다. "선생님! 단어를 잘 몰라도 외화를 보면 영어공부에 도움이 되나요?"라고. 그러자 선생님은 "그럼요, 되지요, 그런데 한 번 보면 소용없고요, 같은 것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봐야 도움이 될 수 있어요"라며 "처음에는 쉬운 동화부터 시작하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라고 답했다. 아들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나도 잘 안다. 아무리 열심히 외화를 보고 단어를 열심히 외우려고 해도 잘 안 된다는 것을.

내 나이 올해 63세. 63세는 영어 공부하면 안 되나? 내 나이가 어때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내 나이가 어때서' 응모 글입니다



태그:#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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