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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칠순을 '고희(古稀)라 하여 '예로부터 드문 나이'라 했지만, 요즘은 웬만하면 칠순 이상을 산다. 우리에게 칠순은 가까이 있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처럼 우리의 '칠순 즈음에'가 어떨지를 돌아보게 하는 여성 이인숙 씨(70)를 지난  15일, 그녀의 일터 안성 D 목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녀가 17년전, 남편을 여의고 일구어온 일터 도림목재소다. 4남매를 건사하며 목재소를 일구어온 그녀. 지금은 그녀의 아들 내외가 업을 이어 목재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도 자식농사도 성공적으로 해낸 듯 보인다. 시와 감사가 충만한 그녀는 인생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 이인숙씨 그녀가 17년전, 남편을 여의고 일구어온 일터 도림목재소다. 4남매를 건사하며 목재소를 일구어온 그녀. 지금은 그녀의 아들 내외가 업을 이어 목재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도 자식농사도 성공적으로 해낸 듯 보인다. 시와 감사가 충만한 그녀는 인생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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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생이 보약'이라 말할 수 있어요"

그녀는 1945년 11월에 태어났다. 소위 해방둥이다. 6세가 되던 해에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국가적 재난으로 인해 찾아온 배고픔과 가난을 살아냈다. 그녀가 53세 되던 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는 4남매를 남겨 두고 남편은 운명을 달리 했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72년도에 시작한 목재소를 꾸려 가는 것 또한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

홀로 자녀를 건사하고, 목재소를 꾸린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무게인지 겪은 그녀만 안다. 겉으로 흘린 눈물보다 속으로 삼킨 눈물이 더 많아서인지 그녀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듯 맑아 보였다.

"고생은 보약이고 에너지더라고요. 손자병법에 보면 장군을 선발하는 8가지 자격조건 중 첫 번째 조건이 '고생해본 사람'입니다. 고생한 사람이 부하를 잘 다스리고 이해한다는 거죠."

"목재소 잘 된 건 순전히 이웃 덕분"

53세에 남편을 여의고 17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한 번도 혼자라는 생각,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이 "좀 더 있다 가지. 왜 그리 일찍 가누"라고 말하면 "우리 신랑 보려고 일찍 간다"며 너스레를 떤단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이다.

"목재소가 그런대로 잘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 가게를 찾아 준 이웃들 덕분이에요. 내가 잘해서 된 건 조금도 없더라고요. 그들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죠."

그런 맘을 고스란히 담아 목재소 사무실 공간을 주민들과 공유한다고 했다. 요즘 주민들이 소모임을 거기서 하곤 한다. 어제도 모임을 끝내고 갔다며 그녀가 웃었다.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흙과 같이 흙에 살고 싶다"는 걸 실천하고 있다. 수수, 강낭콩, 팥, 고구마 등의 농사를 짓는다. 그것들을 자녀와 주변 이웃들과 나눠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고 했다.

"이 시대에도 노인의 역할 분명히 있어"

"노인들 스스로 '내가 고생했으니 후손들로부터 받아야지'라며 바라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이 사회에 분명히 어른으로서 해야 될 역할이 있잖아요. 비올 때 우산역할, 햇볕 쨍쨍할 때 양산 역할을 하는 게 어른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요즘도 매주 금요일이면 그녀가 가는 곳이 있다. 바로 북한이주민 시설 '하나원'이다. 99년도부터 15년 째 봉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주로 탈북한 어르신들을 상대한다. 언제나 자신이 남편을 여읜 사람이라고 먼저 밝힌다. 탈북한 그녀들도 대부분이 그런 처지이기 때문이다.

'하나원'을 퇴소하는 날, 할머니들의 손을 붙잡고 "잘살아야 되요."라고 말하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는 그녀. 지금 그 말을 하면서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지금도 북한에서 굶고 고생하는 주민들을 생각하니 목이 멘다는 그녀. 고생해본 사람이 고생을 안다는 마음이지 싶다.

"요즘도 시를 보면 가슴 설레어요"

척박하게 살아온 그녀지만, 아직도 그녀는 소녀의 영혼을 지닌 듯 보였다. 99년도에 정채봉 시인의 시를 알게 되어 시의 기쁨을 누려온 그녀. 묘하게도 남편을 여읜 후, 사회봉사에 발을 들여 놓은 시점이다.

그녀는 좋아하는 시가 생기면 대부분 외운단다. 몇 몇 시들을 내 앞에서 외우면서 "멋있잖아요."를 연발한다. 때론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열아홉 소녀가 따로 없다.

"'물 아껴 쓰자, 종이컵 쓰지 말자, 환경을 보호하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 유난 떤다'고 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손자에게 물려 줄 세상을 좀 더 깨끗하게 하겠다는데 무슨 말이냐고 해요. 호호호"

"죽을 때 웃으려고 아침마다 웃는 연습해요"

"한 번 뿐인 내 생애를 정말 잘 살고 싶어요. 삶은 정말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더라고요. 천상병 시인이 말한 것처럼 '저 세상 가서 이세상이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는 삶을 살다 갈 겁니다."

그녀는 죽을 준비를 매일 한다고 했다. "죽을 때는 미소 지으며 가려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미소 짓는 연습을 해요."라는 그녀의 말은 감동을 넘어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했다.

고생을 했음에도 소녀의 감수성과 노인의 여유로움과 세상에 대한 감사가 같이 공존하는 그녀. 그 힘이 어디에서 왔을까. 가만히 보니 그녀는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이었다. 아하, 바로 그것이었다. 똑같은 고생을 해도 깨닫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문득 궁금해진다. 나의 칠순 즈음에는 어떤 모습일지.


태그:#칠순, #고희, #이인숙, #목재소,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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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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