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2001년 가을, 많은 청춘들은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나온 대사에 가슴 아파했다. 자신의 마음과 같을 줄 알았던 상대의 마음이 이제는 그렇지 않음을 알게됐을 때, 사랑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직 갈피를 못 잡은 청춘들은 처음과 달리 변색된 상대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서 조용히 줄담배를 태웠다.

그래,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그렇게 변할 수도 있는 것이지.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의 서약은 그저 한마디 말에 그칠 수 있음을 몇 번이고 깨닫다 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사랑은 어쩌면 몽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의 미성숙함을 질책하며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던가.  

 영화 <머드> 포스터

영화 <머드> 포스터 ⓒ (주)프레인글로벌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그녀를 괴롭힌 한 사람을 총으로 쏴 살인을 한 남자. 자신의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 믿었기에, 인생의 붕괴까지 내건 헌신은 그의 삶에 남은 유일한 이유다. 이제 그는 살해의 위협을 받는다. 자신이 죽은 남자의 가족들이 끊임없이 그를 찾아다니며 복수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고향, 강 한가운데 있는 섬에 숨어들어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과의 탈출을 꿈꾼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한 남자가 있다.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에게는 상대를 막론하고 주먹을 날릴 줄 아는 남자. 사랑의 영원함을, 사랑의 충성에 맹세를 했으면 끝까지 지키는 것이 남자라고 생각하는 남자. 아직 14살에 불과한 그를 세상은 애라고 부르지만 자신의 신념에 대한 흔들림 없는 태도는 그 누구보다도 남자다운 남자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닮은꼴을 발견하고 유대를 느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친구 넥본과 함께 나무 위에 걸린 보트를 찾아 섬에 들어선 14살 엘리스는, 섬에 숨어들어 보트 위에서 생활하는 남자 머드를 만난다. 엘리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총을 들고 다니는 미심쩍은 인물임에도, 심지어는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임을 알게 돼도,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라는 머드의 말에 탈출 계획을 돕기로 한다. 친구 벡코와 함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머드가 사랑한 여인 주니퍼에게 쪽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머드에게 필요한 음식과 자재들을 구해주기도 한다.

두 사나이들의 소년적인 사랑은 우리가 이부자리에서 한번쯤 꿈꿔봤음직한 모험이라는 사춘기적 상상을 현실로 불러들인다. 나무 위에 걸려있는 보트라든가, 남들은 잘 모르는 섬, 강 맞은편에 살고 있는 미스터리한 노인의 정체, 소년다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어른들의 세상을 질주하는 모습들은 그런 판타지를 구현한 설정들이다.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한 장면 ⓒ (주)프레인글로벌


하지만 이 영화의 냉혹하면서도 매력적인 부분은 그러한 판타지적 요소들을 무척이나 덤덤하게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판타지적 영감을 불어넣기 위한 시도가 보이지 않으며, 감정 과잉을 불러일으킬 만한 음악이나 의도된 연출도 없다. '소년들의 모험'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친 감독의 선택은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현실'이라는 냉정한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

사랑은 변한다. 내가 믿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엘리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울부짖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이제는 끝임을 인정한 머드를 나무라고, 자신에게 입을 맞췄던 펄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돌이켜보면 소년의 울부짖음은 이해할만 하다. 사랑과 결혼은 생각했던 것처럼 결속이 단단하지 않으며, 그 변화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 살아온 환경, 인생의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음을, 자신의 부모의 이혼으로 잘 알고 있기에. 그럼에도 믿었던 신념이기에, 또 한 번의 처절한 좌절은 꾸중을 들어도, 어른에게 맞아도 동요하지 않던 14살 소년의 얼굴을 눈물로 일그러뜨렸다.

어쩌면 머드의 존재는 엘리스에게 현실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의 징표와 같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엘리스가 어렸을 때의 자신과 닮았다는 머드의 대사처럼, 머드와 엘리스의 만남은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내가 만나는 또 하나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나무 위에 걸려있는 보트가 실제로 강물 위에 뜨게 되었을 때, 우리의 이상이 현실 속에서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을 때, 이 미래의 나는 아주 오래전 사랑을 믿고 싶었던 나에게 찾아가 마지막 말을 전한다. 그것은 현재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자, 과거의 나를 치유하고 보듬는 말이다.

머드와의 만남과 그로 인한 사건들은 14살 엘리스에게 일종의 성장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어긋나버린 현실에서,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떻게 사랑이 그럴 수 있니', 숱한 밤을 밝히고 나면, 사랑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 다음에 찾아올 사랑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전과 같은 실수와 아쉬움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한 번의 좌절은 다음을 위한 도약이 된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14살 엘리스는 결국 이혼한 부모 사이를 오가면서 아버지와 사랑한다는 말을 나누고, 자신을 외면했던 여자에게 덤덤한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성숙해진 인격체로 발돋움한 것이리라.

영화 머드 칸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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