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약처럼 보이지만 사실 옥수수차. 티백 하나로 매일 8잔씩 마시면 맨 마지막 잔은 투명한 물색이 되곤 했다.
 사약처럼 보이지만 사실 옥수수차. 티백 하나로 매일 8잔씩 마시면 맨 마지막 잔은 투명한 물색이 되곤 했다.
ⓒ 하선정

관련사진보기


2014년 1월 21일, <오마이뉴스> 편집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정씨, 혹시 새해 목표 같은 거 세워둔 거 있나?"
"아 뭐 항상 그렇듯 다이어트가 새해 목표죠. 여자는 1년 365일 다이어트를 하니까요."

난 새해마다 항상 다이어트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물론 그 말이 무색하게 항상 실패로 끝나곤 했지만.

"그러면 새해가 되기 전에 그 목표 한번 체험해보는 거 어때? 내일부터 당장 시작해봐요~."

그렇게 얼떨결에 일주일간의 다이어트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내 키는 158cm, 내가 원하는 몸무게는 47kg이다(지금 내 몸무게가 얼마인지는 차마 밝힐 수 없다). 하지만 일주일 다이어트 체험의 목표는 몸무게를 얼마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살 안 찌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다.

1월 22일, 다이어트 첫날. 나를 살찌게 하는 생활 리듬을 깨뜨려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내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근로'. 대학생인 나는 방학을 맞아 교외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출근길엔 항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었다. 살이 빠질 턱이 있나. 당장 엘리베이터의 편안함을 버리기로 했다.

오전 8시 55분 부산 부전동 지하철역 개찰구. 9시까지 출근이라 마음은 바쁜데 다이어트는 해야 했다. 가까운 엘리베이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외면하고 계단까지 뛰어갔다. 8시 58분, 무사히 출근에 성공했다. 생각보다 계단이 별로 멀지 않았다는 사실과 계단을 올라가는 게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는 것에 놀랐다. 왜 여태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녔는지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낮 12시. 점심시간이다. 도시락을 먹고 다시 자리에 앉는데 속이 이상했다. 제대로 소화가 안 돼서 더부룩해진 거다. 같이 먹는 사람들 속도에 맞추느라 말 한마디 안 하고 밥을 먹은 게 떠올랐다. 밥 양을 줄일 생각은 안 하고 무작정 빨리 먹으려고 대강 씹고 삼키니 소화가 될 리가 없지. '계단으로 다니기'에 이어 '밥 양 줄이기'도 실천하기로 했다.

오후 6시. 드디어 모든 근로가 끝나고 KT&G에서 하는 PPT클래스에 참여하러 갔다. 수요일마다 듣는 수업이다. 7시부터 수업이라 밥은 포기하기로 했다. 배는 고플지언정 마음만은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벌써부터 다이어트는 반 이상 성공한 듯한 느낌도 든다.

나를 두 번 죽인 '말하는 체중계'... "과식하지 마세요~"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체중계 위에...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체중계 위에...
ⓒ 위키커먼스

관련사진보기


오후 8시. 수업이 중반부로 접어들 때쯤 갑자기 수업 매니저가 들어오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오늘 뒤풀이가 있는데 저희가 치킨을 준비했어요.(치킨에 묘하게 악센트가 들어간 느낌이다) 아직 2주차 밖에 안 돼서 다들 어색하실 테고 다음 주부터는 조별로 활동하니까 이번 기회에 친해지시구요. 불참자는 지금 손 좀 들어주실래요?"

3초간의 정적 후 "그럼 다 참여하는 걸로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매니저는 사라져버렸다. 실소가 나왔다. 그 이유가 매우 타당했기에(!) 불참에 손을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 무려 1일차. '이대로 포기해야만 되는 걸까'라는 생각에, 남은 수업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오후 9시. 결국 나는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껌처럼 늘어붙어 버렸다. 그나마 내 자존심을 살려준 건 콜라였다. 처음에 누가 따라준 콜라 외에 내가 더 따라 마시지 않았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없이 유치해지는 내가 너무나도 싫지만, 이렇게라도 자기합리화를 안 하면 남은 6일을 버텨낼 수 없다.

1월 23일, 다이어트 둘째 날. 출근하고 보니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배탈 났을 때를 생각하니, 그때마다 기름진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맞다. 나 어제 치킨 먹었지. 다시는 치킨 안 먹겠다고 생각해도 이미 시작된 배탈은 배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렇게 종일 고생하고 집에 돌아오니 주문한 체중계가 도착해 있었다.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으니 몸무게가 좀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체중계에 올라섰다.

난 뭉크의 그림 <절규> 속 주인공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무리 오랫동안 체중관리를 손 놨다지만, 심해도 너무 심했다. 심지어 '말하는 체중계'이다 보니 나에게 "과식하지 마세요~"라는 충고까지 해서 나를 두 번 죽였다. 다시 한번 내가 이 다이어트 체험에 성공해야 할 계기가 생기고 있었다.

1월 24일, 다이어트 셋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피부가 좋아지기 시작한 거다. 다이어트 첫날부터 '하루에 물 8잔 마시기'를 실천했는데, 그 덕인 것 같다. 3일 만인데도 화장도 잘 먹고 피부가 건조하던 것도 덜해졌다. 내 노력에 몸이 반응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오늘도 다이어트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절친'의 생일이라 소소하게 생일파티를 해주기로 오래전에 약속해둔 거였다. 술 한잔 할까 했지만 다이어트의 가장 큰 적은 음주이기에, 간단한 음식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친구나 나나 한번 음식에 손을 대면 후식까지 챙겨먹어야 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결국 다이어트의 원점으로 돌아갈 만큼 과식을 하고야 말았다. 집까지 친구와 걸어가면서 함께 후회했다. '이미 먹었으니 내일 굶어서 되갚겠다'고 두 번째 자기합리화를 했다. 다이어트,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일주일 동안 '-1kg'... 그래도 다이어트는 계속된다

다이어트 첫날 내가 치킨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 난 치킨킬러다!
 다이어트 첫날 내가 치킨을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 난 치킨킬러다!
ⓒ 하선정

관련사진보기


1월 25일, 다이어트 넷째 날. 운동까지 해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건 격렬한 아이돌 춤과 '장하나 스트레칭'. 신나는 아이돌 가요에 맞춰서 몸을 가볍게 풀어주고 30분짜리 장하나 스트레칭 영상을 따라하며 땀을 뻘뻘 흘리니 지방이 제대로 타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좋아, 바로 이게 다이어트지. 1시간 정도 운동 후 샤워까지 마치니 이대로라면 여태까지 먹은 걸 갚아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운동을 하면서 좀 더 주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월 26일, 다이어트 다섯째 날. 어제 운동을 한 탓인지 몸이 찌뿌둥했지만 오전 8시에 눈이 떠졌다. 원래 오전 11시쯤 일어나서 '아점'(아침 겸 점심)을 해결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깬 탓에 방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원래 일요일 아점은 라면 같은 것으로 해결하지만 그래도 다이어트 중이니 좀 더 건강한 음식들을 먹어야 되지 않겠나. 기름은 최소화해서 달걀 프라이를 하고, 기름에 만두를 굽는 대신 전자레인지에 돌려 약간이나마 칼로리를 줄여봤다. 예상 외로 꽤 맛있어서 앞으로도 자주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안 했지만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해나가고 있었다.

1월 27일, 다이어트 여섯째 날. 확실히 첫날에 비해 입에 대는 음식도 달라졌고 좋은 버릇들이 자연스럽게 내 행동에 녹아들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동안 왜 말로만 했나 싶기도 했다. 일주일 체험이 끝나도 이대로 쭉 해나간다면 내가 원하던 체중에 도달하지 않을까 싶었다. 벌써 내일이면 이 다이어트 체험이 끝이다.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생각을 하니 더 큰 시련들이 잔뜩 몰려올 것 같아 잠깐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 같은 태도라면 충분히 극복해내리라 믿는다.

1월 28일, 다이어트 마지막 날. 말하는 체중계에 다시 한번 올라섰다. 저녁을 먹은 직후라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나의 노력의 결실이 보였으면 하는 기대도 컸다. 결과는 5일 전보다 -1kg. 생각보다 적은 수치에 아쉽기도 하고, 중간 중간 폭식했던 것에 비하면 후한 값이기도 하다. 한 달로 계산하면 -4kg이고 넉 달이면 -16kg이라 생각하니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는 듯하다. 비록 말하는 체중계는 오늘도 "과식하지 마세요~"라고 외치지만 기분 좋게 들렸다.

2014년이 새해가 밝은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매년 새해가 되면 무작정 여러 목표들을 나열해두고 하나도 못 지켰는데, 이제 하나를 지키더라도 제대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주일의 다이어트 체험을 통해 단기적인 목표인 '살 안 찌는 버릇 들이기'에 성공했다. 길거리 음식을 안 사먹겠다고 지갑을 집에 놔두고 나가 교통카드 충전을 못할 뻔한 일, 정말 배가 고파서 화장품 가게의 리무버가 음료수로 보인 일, 모두 잊지 못할 것이다. 1주일 동안의 힘은 1달을 이어가고 1년을 이어가는 충분한 시간임에 분명하다. 이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하선정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다이어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