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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걸을까

나는 지난여름, 같은 과 사람들과 함께 국토대장정을 기획하였다. 강원도 최북단에서부터 부산 해운대까지 520km남짓 되는 7번국도 위에서 있었던 18일 동안, 나는 '느림'의 여러 가지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이는 나의 삶을 꽤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다.

월급월만(越急越慢)

1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해운대에 도착했다.
▲ 2013.07.18 국토대장정 완주 1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해운대에 도착했다.
ⓒ 강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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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 입문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제가 노력한다면 얼마 만에 도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스승이 답했다. "한 삼 년쯤이면 되겠지." 성미가 급한 제자는 다시 물었다. "삼년은 너무 깁니다. 제가 불철주야 노력하겠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답했다. "그렇다면 삼십 년은 걸리겠구나." 제자는 어리둥절하여 "조금 전까지 삼 년이면 된다하셨는데 어찌하여 삼십 년이 걸린다 하십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도를 이루고 싶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답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삼백 년은 걸리겠구나."

위는 불교에서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이 이야기와 함께 전해지는 '월급월만'이라는 성어는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살면서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며, 어느 곳에서나 빠른 것은 좋은 것처럼 여겨진다. 속도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정작 서두르지 말아야 할 엉뚱한 곳에서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국토대장정을 통해 배운 '느긋함'은 '서두름'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국토대장정에서는 매일 하루 평균 30km의 거리를 걷는다.

시간으로 따지면 약 12~14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렇게 긴 시간을 걷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치기 마련이고 빨리 도착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걷는 동안에는 그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해서 빨리 도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은 느긋하게 갈 때나 서둘러서 갈 때나 같았다. 왜냐하면 후반부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져 쉬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고, 또한 지난날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에 근육에 무리가 오고 발에 피로가 쌓였기 때문에 다음날 일정에까지 무리를 주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국토대장정에 비유하고 싶다. 500km가 넘는 거리를 걸을 때 '빨리빨리'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 하루에 길면 14시간을 걸어야 하는 이 여정에서 서두르면 지치고 지치면 포기하게 된다. 다시 말해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어떠한 일을 끝마치기 위해서는 정해진 양의 시간이 요구된다. 그 일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시간도 투입하지 않은 채 '빨리 빨리'만 외친다면 그것은 '대충 대충'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페인의 한 속담이 떠오른다. Sin prisa, sin pausa. '서두르지 마라, 다만 멈추지 마라.'

느림의 美학

경포대 석양의 아름다움
▲ 2013.07.05 경포대의 석양 경포대 석양의 아름다움
ⓒ 강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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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에서 경주마들이 달리는 모습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말들은 눈이 옆에 달려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시선의 각도가 매우 넓고, 따라서 말들은 달리면서 주변의 대부분의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경마장에서는 말의 주변 시선을 가림으로써 자신의 말이 다른 말에 의해 놀라지 않고 앞만 보고 빨리 달릴 수 있도록 만든다. 이러한 말들처럼 보이지 않는 눈가리개는 우리들에게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역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목적지만을 향해 달리기 때문이다. 어느새 우리의 삶도 하나의 경주가 되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성공일까?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그러므로 1등이 성공은 아니다. 눈가리개를 하고 달리면 목적지에는 빨리 도착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변의 많은 것들을 놓친다. 7번 국도를 종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자동차로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다. 자동차로 7번 국도를 종주한다면 우리는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을지언정 그 나머지 것들은 놓칠 수 있다. 차창을 열면 빠른 속도에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며, 향기는 차안에서 풍기는 방향제 냄새뿐이다.

만약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간다면 어떨까? 자동차로 빠르게 지나가면서 미쳐 다 보지 못한 주변 풍경의 작은 부분까지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숲과 꽃의 향기를 느끼고, 새들과 풀벌레들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나는 이 사실을 직접 걸으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큼이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들이다. 또한 나는 부산에 도착하여 12시간 동안 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는데, 이는 비행기로 갈 경우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비행기로 제주도에 갔었다면, 배 갑판 위에서 밤하늘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별들을 나는 아마 보지 못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들은 목적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승자는 '1등'으로 도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도착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동안 인생의 무한 속도경쟁 속에서 우리 주변의 보다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느림은 아름답다.

같이 걸을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흐름에서 빠른 것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채택되었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도태되었으며, 빠른 것이 우성인자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살면서 종종 속도에 지쳐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고, 슬럼프가 오기도 한다. 나는 그런 것들이 너무 조급하게, 또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정면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들이 우리 곁에서 봐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치유되고 배울 수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인생시계를 언급했다. 인생시계란 대한민국 평균수명인 80세를 24시간의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나이가 현재 몇 시 몇 분인지 나타내는 시계인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하루 24시간은 1440분이고 이를 평균수명인 80으로 나눈다면 1년에 18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우리의 나이를 대입해서 계산해봤을 때, 예를 들어 이 글의 독자가 20세라고 가정한다면(18×20÷60) 이제 막 새벽 6시라는 계산이 나온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거나 막 하루를 준비할 시간인 새벽 6시가 바로 여러분의 인생시간이다. 새벽 6시부터 빠르게 달리는 당신은 지칠 수 있으며, 앞만 보고 달리는 당신은 옆에서 떠오르는 새벽 동의 아름다움을 놓칠지도 모른다.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같이 걸을까.


태그:#국토대장정,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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