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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수 없는 먼 곳에서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를 드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찰스 리(Charles Lee), 그는 나를 위해 늘 기도해 주는 사람이다.

20년 넘게 나에게 가장 많이 안부전화를 하고, 최근 내 손 전화에 가장 자주 문자를 보내는 이는 '찰스 리'라는 제자다. 그는 1979년 이대부고 1학년 3반 담임 반 학생이었다.

이즈음도 그는 한결같이 날씨가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비가 많이 온다고, 봄꽃이 만발하다고, 함박눈이 쏟아진다고, 안부전화를 하거나 건강 조심하라고 문자를 보낸다. 그뿐 아니라 해마다 연말이면 크리스마스카드를 잊지 않고 보낼뿐더러, 내 생일까지 번번이 기억하고 해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생일축하카드를 보내고 있다. 나는 20년 넘게 계속된 그의 진정성에 감동치 않을 수 없다.

사실 내가 그를 가르칠 때 그는 학업성적은 우수했지만 글씨가 악필이라고, 나는 그에게 글씨 쓰기 연습을 많이 하라고 자주 꾸중했다. 웬만한 학생이면 내 꾸중에 토라졌을 텐데 그는 오히려 구닥다리 훈장을 설득했다.

"선생님, 이제 곧 펜으로 글씨를 쓰기보다는 두드리는 세상이 올 겁니다."

그의 말대로 이즈음은 펜으로 종이에 글씨를 쓰기보다는 자판을 두드리는 세상이 왔다.

강원도 횡성 안흥 산골마을로 찾아온 찰스리(왼쪽) 제자와 함께(2005. 8. 25.)
 강원도 횡성 안흥 산골마을로 찾아온 찰스리(왼쪽) 제자와 함께(2005. 8. 25.)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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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를 좇다

그는 내가 담임한 이듬해인 1980년 12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랜데일 시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뉴욕 주립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에서 은행원으로, 회사원으로 근무하며 지내다가 1993년 귀국하여 모교로 찾아와 다시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결혼 후 미국 영주권을 반납하고 영주 귀국하여 정착했고, 지금은 국내 특수학교 교사로 지내고 있다. 그는 청년시절을 보낸 미국보다 자기가 태어난 모국이 더 좋다고, 남들이 선호하는 미국 영주권을 버리고 다시 모국으로 영주 귀국한 골수 한국인이다.

그는 다시 한국생활을 한 뒤부터 내 뒤를 그림자처럼 좇고 있다. 내가 서울 살 때는 물론,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 산골마을에 살 때도, 지금 살고 있는 원주 시내 아파트에도 여러 차례 다녀갔다.

그는 나와 동행하여 미 대륙을 횡단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여, 한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약 60일 정도 미주를 남쪽 코스로 서부에서 동부, 곧 LA를 출발하여 애리조나 주, 텍사스 주, 뉴올리언스 주, 플로리다 주,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지나 워싱턴 DC에 가기로 했다. 거기서 휴식 겸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약 일주일간 드나들며 한국전쟁 사진 리서치 기간을 가진 뒤 다시 북쪽 코스를 밟기로 했다.

곧 워싱턴 DC를 출발하여 필라델피아, 뉴욕, 보스턴, 나이아가라 폭포, 펜실베이니아 주, 미시간 주, 일리노이 주, 미네소타 주, 사우스다코타 주, 몬태나 주, 워싱턴 주, 캘리포니아 주를 거쳐 출발지 LA로 돌아와 인천 행 비행기를 타고 귀국키로 여정을 짰다.

그는 여태 운전면허증도 없는 골동품 훈장과 함께 그 힘든 미주 대륙을 혼자 운전하며 횡단하고자 미주지도에서 고속도로 나들목을 찾아가며 여러 날 고생하여 세부일정까지 깨알같이 세웠다. 하지만 끝내 피치 못할 내 사정으로 그 여행은 무기 연기하고 말았다. 내가 그에게 몹시 면목 없어 하자 그는 나와 여행하려는 부푼 꿈으로 그 무렵 우울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오히려 감사 인사를 하여 나는 또 한 번 그의 인품에 감동했다.

더치페이

그는 매우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는 한때 생업도 접고 아프리카 우간다로 날아가서 선교활동을 하는 등, 이즈음도 시간이 나는 대로 봉사생활에 열심이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종교에 개의치 않은 채 이제까지 원만한 사제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지구촌에서 사는 현대인은 피차 서로의 사상이나 종교를 존중하는 게 기본 예의일 것이다.

그는 인간관계가 몹시 깨끔한 편으로 특히 돈 셈이 매우 정확하다. 우리가 만나면 거의 더치페이로 셈하는데 그래서 사제관계가 오래 지속되는지 모르겠다.

그는 자기도 앞으로 작가가 되고 싶다고 나에게 많이 배우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그의 미국 이민생활 체험담을 많이 듣고 내 작품 속에 활용하고 있다. 나의 장편소설 <제비꽃>과 <어떤 약속>에서 주인공의 미국 이민생활은 그가 제공한 소재들을 많이 가다듬어 썼다.

그는 나와 만날 때마다 자기가 사서 읽은 신간을 전해 주거나 신문기사를 스크랩하여 봉투에 담아 나에게 전해 준다. 그는 수시로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묻고는 그때그때 집필에 필요할 만한 자료가 나오면 즉시 메일로 보내주고 있다. 내 서랍에는 그가 보내준 이런저런 스크랩 철로 한 곳이 꽉 찼다.

나는 이즈음 장차 그가 청출어람으로 스승을 뛰어넘는 큰 작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청출어람(靑出於藍), 곧 "쪽 풀에서 뽑아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함이니, 이는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나다'는 뜻이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으므로 나날이 발전해 왔다.

나는 이 밤, 그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저마다 소속한 분야에서 인류의 문명과 문화 발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기를 빌고 있다. 아마도 하늘은 나에게 나보다 나은 제자를 기르라는 소명(召命)을 내린 것 같다. 나의 남은 삶도 계속 훈장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태그:#제자,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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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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