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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과 <오마이뉴스>는 '지구가 아프다' 기획을 통해 환경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촌 곳곳의 모습을 알릴 계획입니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국제 환경사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는 인터뷰와 기획기사를 주제별로 준비했습니다. 우리 삶과 밀접한 지구적 환경문제 개선을 위해 독자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엄홍길 대장이 돌아왔다. 2007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한 그가 17좌에 도전한다. 17좌 원정 목표는 자연의 산이 아니라 사람의 산이다. 네팔의 오지에 16개 학교를 건립하겠다는 엄 대장의 17좌에는 16좌 완등을 허락해 준 히말라야에 대한 보은의 뜻이 담겨 있다. 따지고 보면 17좌 또한 자연의 산 히말라야가 선사한 보이지 않는 봉우리인 셈이다.

엄홍길 상임이사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히말라야 빙하가 녹고 있다고 우려했다.
▲ 엄홍길 휴먼재단 상임 이사 엄홍길 상임이사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히말라야 빙하가 녹고 있다고 우려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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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엄홍길. 산이 좋아서 산을 탔고 매번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산에 오르다 보니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에 도전하고 있었다. 16좌 완등에 성공하기까지 생사를 맡긴 채 히말라야에서 자신을 버리고 찾고 한 것이 20여 년. 불굴의 정신이 태어날 때부터 그의 편이었겠는가? 이 세상 누구도 이룬 적 없는 위대한 도전 앞에서 무려 20여 년간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했던 엄 대장에게 히말라야는 위대한 스승이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히말라야가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하는 엄 대장. 그를 허락했던 원초적 자연, 히말라야는 지구온난화로 변해가고 있었다. 기온 상승 속에서 빙하는 녹고 눈은 줄었으며 빙하홍수나 산사태 같은 자연재해의 위협은 커졌다. 엄 대장은 걱정스럽게 설산의 변화를 바라보고 섰다. 인간의 문명과 이기심이 빚어낸 결과이기에 눈 앞의 현실이 더 얄궂다. 인간들은 온실가스를 배출함으로써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히말라야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한겨울 눈대신 흙먼지가... 지구온난화는 재난 초래

엄 대장은 "빙하가 녹고 있는 것이 눈에 딱 보인다"고 했다. 빙하가 녹은 물이 고여 생성된 빙하호의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골짜기에 형성되어 있던 빙하가 녹으면서 보이지 않던 계곡의 산사면이 훤히 드러나기도 한다. 산사면으로부터 떨어져 내리는 돌과 흙, 먼지로 인해 빙하에 균열이 가고 더러워지는 등 얼음의 상태도 안 좋아졌다. 한 겨울 고도 3000~4000m. 예전에는 눈이 쌓여 있던 그 곳에 이제는 눈 대신 건조한 흙먼지가 껴 있다.

지구온난화는 재난을 초래한다. 산 꼭대기의 빙하가 너무 많이 녹아 빙하호가 터지면 빙하홍수가 일어나 마을을 삼킬 수 있다. 하류쪽 사람들도 빙하의 소실로 식수난에 시달리게 된다. 히말라야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들을 목도해 온 엄 대장은 홍수가 휩쓸고 간 직후 쑥대밭이 된 고산지대의 어떤 마을을 본 적이 있다. 생명에 갑작스런 위협을 당하고 집을 잃게 된 사람들의 사정이 딱했다.

그러나 이들이 인근에서 삶의 터전을 다시 마련하기 위해 소모해야 하는 것 역시 자연이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난이 인간을 위협하고 인간은 다시 살기 위해 산을 깎고 나무를 베는 등 자연을 파괴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 극심한 기상의 변화로 엄 대장도 이제는 봄에만 등반할 수 있게 되었다. 네팔 히말라야 등정에는 원래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의 시즌이 있었다.

엄홍길 상임이사가 히말라야 16좌 등정을 상징하는 그림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 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 엄홍길 상임이사가 히말라야 16좌 등정을 상징하는 그림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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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올라가서 채우고 내려오기.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엄 대장은 '나'를 비우고 올라가서 '자연이 주는 기쁨'을 채우고 내려오라고 권한다. 산을 탈 때 만큼은 마음을 비우고 산을 타고 있는 당면 과제에 집중하라는 것.

산에 오를 때 복잡한 생각으로 내 안이 꽉 차 있다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자연의 소리가 들릴 리 없다. '내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걷어냈을 때 비로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자세가 된 것이다. 그리고 교감은 자연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쉽고 깊어진다.

"생명의 젖줄인 자연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항상 환경친화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산악왕 엄 대장이 전하는 자연 사랑 메시지는 산을 벗어난 곳으로 뻗어가고 있다. 자기중심적으로 돈 많이 버는 것에만 집착하면 안 되는 세상 속으로.

아래는 지난 11월 말 이뤄진 엄 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딱 봐도 히말라야 빙하가 달라졌다"

- 남미 여정을 마치고 얼마 전 귀국하셨는데요, 남미에서는 무얼 하셨나요?
"9월부터 11월까지 75일 동안 안데스 산맥 8000m의 여정이었습니다. 생명의 땅 에콰도르 적도에서 출발해 태양의 땅 페루를 거쳐 볼리비아의 아타카마 사막을 지나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에 다다랐어요. 지난 20년 수직의 세계에만 도전해 왔던 저로서는 수평의 세계를 걸어보자는 것이었죠. 정점만 보면서 올라가던 수직의 세계에서는 올라갈수록 시야가 좁아지지만 수평의 세계에서는 갈수록 많은 것들이 보이더군요. 문명의 발자취와 더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돌아왔습니다."

-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를 완등하셨습니다. 주봉으로 인정받고 있는 14좌에 더해 8000m가 넘는 위성봉 2개를 더하신 거죠. 어떤 계기로 히말라야에 오르게 되신 건가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아요. 산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점점 빠져들게 되었죠. 정점은 끝이 아니라 늘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요. 매번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분이었어요. 국내 산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1985년 그 첫 발을 디뎠죠.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처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히말라야가 좋다는 마음으로 성공과 실패에 연연해하지 않았고 그렇게 10년 정도 지나니 '나도 14좌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목표 설정을 한 것은 1995년이었어요. 2000년 K2 정상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14좌 목표를 달성했으니 16년 걸린 셈이네요(이후 엄 대장은 2004년 카첸중가, 2007년 로체샤르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좌 완등을 기록했다 - 기자 말)." 

네팔 히말라야의 초롤파 호수는 빙하홍수의 위험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초롤파(Tsho Rolpa) 네팔 히말라야의 초롤파 호수는 빙하홍수의 위험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FoE EW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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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를 완등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히말라야에 오르게 되신 건가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아요. 산을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점점 빠져들게 되었죠. 정점은 끝이 아니라 늘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요. 매번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분이었어요. 국내 산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1985년 그 첫 발을 디뎠죠.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처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히말라야가 좋다는 마음으로 성공과 실패에 연연해하지 않았고 그렇게 10년 정도 지나니 '나도 14좌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목표 설정을 한 것은 1995년이었어요. 2000년 K2 정상에 오른 것을 마지막으로 목표를 달성했으니 16년 걸린 셈이네요(웃음)."

- 2005년 후배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향해 목숨 건 원정을 떠났던 대장님의 실화가 영화화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고 박무택 대원과 저는 8000m 원정을 4번이나 함께 한 형제 같은 관계였어요. 2004년도에 우리는 각각 서로 다른 원정길에 있었죠. 저는 15좌에 도전 중이었는데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니 박 대원의 팀이 정상에 다다랐다고 하더군요. 참 잘했다 생각했어요. 그러고 불과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박 대원의 설맹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눈에 반사되는 빛에 의해 망막이 손상되고 실명 상태가 되었다는 거예요. 8750m는 자신의 몸을 자기가 추스리기에도 무척 힘겨운 곳입니다. 팀에 있던 동료 후배들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죠. 결국 박 대원은 후배들을 먼저 내려 보내고 거기 매달린 채 기다렸어요.

다음날 새벽 셰르파와 부대장이 왔을 때 박 대원은 꽁꽁 언 채 숨만 쉬고 있는 상태였죠. 구조작업 중 하루가 저물어 셰르파는 다시 내려갔고 부대장은 하룻밤을 지새웠어요. 그러다 부대장도 결국 실종되고 말았죠. 정상에서 내려오던 후배도 실종되었고 박 대원은 시신이 된 채 8750m에 계속 매달려 있어야 했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2005년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이름) 휴먼원정대를 이끌고 박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시신을 운구해 내려왔고 박 대원을 비로소 돌무덤에 안장할 수 있었지요."

- 대장님께 히말라야는 어떤 의미입니까?
"히말라야는 제 삶에 있어서 위대한 스승이요, 어머니와 같은 존재입니다.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나침반이기도 하고요. 그곳에서 늘 깨달음을 얻어요." 

- 최근 지구 곳곳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도 예외가 아닌데요, 히말라야에서 직접 목격하신 게 있습니까?
"원초적인 자연을 가진 곳일수록 오염으로 인한 영향이 가시화 되는 법입니다. 히말라야는 기후 변화의 가장 일차적인 피해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눈에 딱 보이는 것이 빙하가 녹는 문제입니다. 1980년대에 비해 기온이 확실히 올랐어요. 한겨울인데 3000~4000m에서 영상 13도니까요. 원래 눈이 쌓여 있어야 하는데 눈 대신 건조한 흙먼지가 쌓여 있는 거죠. 식물도 사라져 가고 있고요.

빙하지대란 게 수천 년 동안 눈이 쌓이고 쌓여 형성된 거잖아요. 그런데 눈에 대한 공급이 줄어드니까 빙하 역시 줄어들고 있는 거에요. 빙하 녹는 것이 가속화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빙하는 골짜기에 형성되어 있거든요. 빙하가 녹으면 골짜기를 이루는 산사면이 드러나게 되고 거기서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요. 돌과 흙, 먼지 등이 아래쪽에 있는 얼음을 잠식해 들어가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세요. 낮시간 동안 가열된 돌들이 얼음 안에 섞여 있으니 해가 지고 난 뒤에도 얼음이 계속 녹을 수 있잖아요."

- 이런 변화가 등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원래 네팔에서 봄과 가을이 등정 시즌이었어요. 그런데 날씨 변화가 워낙 극심하다보니 가을에는 등반하기 힘들고 봄에만 등반할 수 있게 되었죠. 사람이 올라가는 길의 범위도 줄었고요. 빙하의 상태도 균열이 심하고 상태가 안 좋아졌어요."

- 네팔 고산지대에도 사람들이 살잖아요. 이들이 당하는 위협은 없습니까?
"빙하가 녹는 양이 많아졌고 거기에 산사태로 인한 돌과 흙도 포함되다 보니 계곡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10m를 넘지 않았던 계곡 폭이 커지면 15m 폭 되는 위치에 집 짓고 살던 사람들에겐 위협이 될 수밖에 없죠. 자다가 날벼락을 맞기도 하고 가옥이 파손되고 사람이 죽어요.

그런데 이렇게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평생 빙하 가까운 지역에 살던 산 사람들이 도시로 갈 수는 없겠죠. 그래서 이들은 좀 더 높은 곳으로 옮기고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산을 깎아요. 거의 모든 자재들을 현지 조달해야 하니까 자연암석을 깨고 나무를 베죠. 생태 파괴가 피해를 낳고 그것이 다시 생태 파괴로 악순환되는 거죠. 고산지대 사람들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에요. 빙하는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잖아요. 빙하가 녹는다는 건 궁극적으로 물줄기를 마르게 해 하류쪽 사람들도 가뭄과 식수난에 시달리게 될 거에요." 

"기후 재앙... 인간이 죄값을 치르는 것"

- 빙하 홍수 문제도 들어보셨겠네요?
"그럼요. 빙하호와 호수를 막고 있는 둑은 모두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빙하홍수란 이렇게 자연적으로 발생한 빙하호의 둑이 빙하가 녹는 물의 양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지는 것을 말해요. 홍수가 휩쓸고 간 뒤 파괴된 마을을 본 적이 있는데 계곡 전체가 초토화되어 있어 안타까웠어요. 히말라야 산자락에 언제 터질지 모를 호수들이 있다는 것은 핵폭탄이 숨어 있는 것과 같아요. 이 문제를 갖고 있는 국가들의 고민이 크리라 봅니다."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임자 호수. 빙하호가 점점 커지고 있다.
▲ 임자 초(Imja Tsho) 네팔 히말라야에 있는 임자 호수. 빙하호가 점점 커지고 있다.
ⓒ FoE EW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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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꼭대기 수해 현장을 목격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어요. 인간이 제아무리 잘났다 하지만 자연의 작은 변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태풍, 지진, 해일 등을 미리 감지하지도 못하고 속수무책 당하는 것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해요. 기후재앙은 앞으로 더 많이 발생할 것이고 파괴력도 더 커질 거에요. 인간이 죄값을 치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온실가스인데요, 네팔의 온실가스 배출은 미미하지만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배출국 세계 7위입니다. 어떻게 보세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산업화를 통해 성장을 거듭해 온 세계 경제강국들이 문제라고 봅니다. 사실 우리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요. 잘 살면 잘 살수록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 세상은 잘 살면 잘 살수록 더 개발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문명에 대한 사념이 커지다보니 이대로 성장을 멈추고 그냥 있는 걸로 잘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인간사회가 그럴 순 없겠죠(웃음)."

- 대한민국 정부나 기업의 역할은 뭘까요?
"인간은 생명의 젖줄인 자연의 소중함을 잊어선 안됩니다. 우리를 먹이고 살리는 자연의 고마움을 늘 상기하면서 환경친화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자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한편 나를 중심으로 돈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연과 인간의 밀접성을 고려해 가며 사업을 했으면 해요."

- 히말라야 16좌 다음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엄홍길휴먼재단이 저의 17좌입니다. 네팔의 오지에 16개 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이고요. 지금으로선 이것이 저의 최종 목표이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요. 학교 건립은 제가 신들의 영역에서 무사하도록 허락한 히말라야에 대한 되갚음입니다. 지금까지 4개 학교가 준공되었고 내년 3월 2개가 준공될 것이며 내년 후반에 2개 학교가 공사에 들어갑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17좌에 꼭 오르고 싶어요. 앞으로 5년에서 8년 정도 걸리리라 예상합니다.

- 산악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자연을 접할 때는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과 교감할 수 있고 우리는 더더욱 겸손해질 수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때 자연에 대한 훼손도 적고 인간의 산행도 안전해집니다. 잊지 마세요."

"정상에 섰을 때 행복? 아닙니다"
- 슬하에 자녀분들이 어떻게 되시나요?
"1남1녀를 두고 있어요. 딸은 고등학교 1학년이고 아들은 중학교 2학년입니다."

- 듣기로 사모님께서 산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던데요(웃음)?
"집사람이 등산을 좋아하지 않아요. 애들도 특별한 선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산을 잘 타긴 해서 피는 못 속인다는 얘길 듣곤 합니다. 애들을 히말라야에 두세 번 데려간 적도 있고요.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 히말라야에서 고산증도 없이 너무 잘 먹고 잘 걷더라구요."

- 한국에도 산악인들이 많은데요, 유행처럼 번지는 고가의 등산 복장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어떤 스포츠든 그에 맞는 복장을 해야 한다고 봐요. 양복을 입고 운동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가격 차이는 소재와 기능성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아요. 원단을 수입에 의존해서 비싼 측면도 있고요. 산이라는 것이 항상 날씨가 변합니다. 소재와 기능성의 차이는 결정적일 때 비로소 드러나고요. 그 차이가 생명을 지켜주기도 하지요."

- 뒷동산 오르는데 히말라야 복장만 지양하면 될 것 같네요(웃음). 산에 오를 때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산을 사랑하는 마음에 집중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물이 새로워 보이거든요. 운동을 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정작 주변의 나무, 바위, 새소리 등을 놓치죠. 자연과 교감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러면 등산을 한 뒤에도 성취감을 갖기 어려워요. 순리에 따라 산을 오른다는 자세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 대신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하고요. 그래야 자연이 허락합니다."

- 제일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나요?
"행복은 정상에 섰을 때 찾아오지 않습니다. 정상은 진정한 성공이라고 볼 수 없죠. 내려가다 사고를 많이 당하거든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점에서 유지를 하는 것이 늘 어려운 거에요. 첫출발 했던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차 한 잔 할 때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 제일 화나거나 슬펐을 때가 있었다면요?
"일이 안 풀릴 때죠. 하지만 다 마음먹기에 달린 일입니다. 화를 내봤자 기력만 소모되지 달라질 게 없거든요. 그래도 사람인지라 그걸 잊을 때가 있어요. 문제가 터지면 아차 싶은 것이 정도를 넘어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욕심을 내거나 내 스타일에만 맞추려고 했던 게 보이는 거지요. 그리고 동료를 잃었을 때, 제일 슬픕니다. 제일 부끄럽기도 합니다. 잘 했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 평생 자연의 산에 도전해 오셨던 대장님께서 사람의 산에 도전하고 계십니다. 자연의 산과 사람의 산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람의 산은 인간세계를 뜻하죠. 자연의 산과 사람의 산 모두 힘들지만 자연의 산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덜합니다. 성패에 연연해하지 않고 내가 마음먹은 대로 눈앞의 문제해결을 위해 집중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산에서는 스트레스조차 정직하고 맑고 단순해서 정신세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반면 사람의 산에는 복합적인 스트레스가 있지요. 엄홍길휴먼재단은 사람들의 기부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데 일이 만만치 않네요."

- 체력은 괜찮으세요?
"아주 좋습니다. 순발력은 떨어졌지만 등반에서는 중장기적 지구력도 중요하거든요. 젊은 친구들에 뒤처지지 않아요(웃음)."

-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하셨던 적이 있나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산을 아주 좋아했거든요."



태그:#히말라야,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빙하, #엄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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