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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과 학생들이 교내에서 묵언피켓시위를 하고있다.
 한의학과 학생들이 교내에서 묵언피켓시위를 하고있다.
ⓒ 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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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대학생들의 기말고사 기간인 요즘, 경기도 성남의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학생 150여 명은 수업과 시험을 거부하고 투쟁 중이다. 학생들은 학교 측에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04년, 학교는 2013년까지 학교 인근에 부속한방병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학교측의 이런 약속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학교측은 지난 2009년에도 학생들과 학교 인근 부속한방병원 건립과 관련된 합의문을 작성했지만, 이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지난 2009년부터 인천 길병원 단지 내에 만들어진 부속한방병원을 사용하고 있지만, 학교와의 거리가 왕복 100km나 되고 시설도 열악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반발한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학생회는 지난 11월 22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뒤 지난 6일부터 시험과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본과 4학년 28명을 제외한 150명의 학생 중, 지금 학교를 다니는 148명 전원이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는 학교와 연결된 분당선 가천대역 앞에서 매일 침묵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또 13일부터는 학교 안팎에서 1인시위를 진행 중이다(관련기사 : 검은 마스크 쓴 가천대 한의대생... 그 이유는?).

지난 18일 성남 가천대학교 미래2관 한의학과 회의실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인 백승준(23·한의학과 10학번)씨를 만나 투쟁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2013년까지 세운다던 병원, 아직도 '알아보고 있다' 말뿐"

- 지금 하고 있는 시험 거부 및 피켓시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달라.
"가천대 한의학과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부속병원을 한 번도 갖춰본 적이 없다. 지금은 인천에 있는 길병원 단지 내의 부속병원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현 부속병원은 시설이 열악하고, 성남에 있는 학교와의 거리가 매우 멀다(왕복 100km). 학생들은 병원 건립을 기다리며 열악한 시설과 긴 거리의 왕래를 참아왔지만, 2013년 12월인 지금 약속한 건물 건립에 대해 학교 측은 아직까지도 '알아보고 있다'는 말뿐이다.

부속병원의 중요성은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갖게 될 한의학과 학생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대로 된 실습환경이 갖춰진 부속병원은 한의학과 학생들에게 최우선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지금 가천대 한의학과 학생들은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가천대 한의학과 학생회장 백승준씨(한의학과 2010학번, 23세)
 가천대 한의학과 학생회장 백승준씨(한의학과 2010학번, 23세)
ⓒ 백승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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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부속병원의 교육 여건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일단 학교와 병원 간의 거리가 왕복 100km라는 점이다. 실습을 위해 100km의 거리를 버스로 왕복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둘째는 한방 전문의 과목이 총 8개인데 현재 가천대 부속병원에는 4개 학과의 전문교수가 없는 실정이다. 또 학생들이 제대로 된 임상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각 과별 실제 입원 환자 수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난 11일 방문 당시 입원 환자 수는 5명뿐이었다. 임상교육을 받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다른 한의대와 비교했을 때, 병원, 병상, 교수, 진료 과, 실습 간 거리 등 모든 항목에서 가천대 한의대의 교육여건은 최하위 수준이다. 사실 지금 부속병원 건물은 (인천 길병원이 쓰던) 예전의 행정동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는 터라 시설 면에서 많이 열악하다. 환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도 없다. 변화가 시급하다."

- 2004년과 2009년에 이은 세 번째 투쟁으로 알고 있다. 알려진 것 외에도 학교 측에 합의안 이행을 촉구한 적이 있나.
"지금처럼 전면적으로 투쟁을 한 적은 없었지만 학과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공문은 보내왔다. 물론 당시 학교 측에서는 아직 2013년이 안 됐는데 왜 자꾸 그러냐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2009년에 다른 건물(국제어학원)에 부속병원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2013년이 돼서야 법적조항으로 인해 지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그에 대한 대안을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그저 알아보고 있다는 대답뿐이었다."

- 매일 이른 아침부터 학생들이 묵언피켓시위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는데, 걱정이 많겠다.
"날씨 때문에 걱정이다. 학우들이 고생이 많다. 날씨가 풀리는 날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묵언피켓시위는 12월 6일 비상총회에서 수업 거부, 시험 거부를 의결한 후 즉시 시행하였고, 12월 10일부터 검은 마스크를 쓰고 묵언피켓시위를 시작했다. 묵언시위를 한 것은 시험기간에 다른 학우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로 아침에 가천대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1인시위는 13일부터 소규모로 성남시청, 대교협, 교육부, 인천의 길병원부터 시작했다.

길병원에서 총장님과 마주칠 뻔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은 그래도 (학생들이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시위 장소를 넓게 생각하고 있다. 왕십리, 건대, 강남 등. 분당선 주변 지역과 인근 서울에는 최대한 많이 알리려고 한다. 1인시위 외에도 행진, 집회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보고 있다."

-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인원은 몇 명 정도 되나.
"한의학과가 예과 1, 2학년, 본과 1~4학년까지 있는데, 본과 4학년은 국가고시 준비로 빠져 있는 상태다. 총 5개 학년 중에서 약 3개 학년인 80여 명이 1인시위를 위해 밖으로 나가고, 나머지 70여 명은 교내에서 한다. 총 150여 명 정도가 된다."

150여 명이 수업·시험 거부... "등록 거부까지 생각"

왼쪽은 길병원 심장센터, 오른쪽은 가천대학교 부속 길한방병원
 왼쪽은 길병원 심장센터, 오른쪽은 가천대학교 부속 길한방병원
ⓒ 백승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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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 전에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다고 했다. 학교측 반응은 어땠나.
"투쟁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었다. 학생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한의학과발전위원회(아래 한발위) 위원장님 또는 총장님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다행히 투쟁에 돌입하기 직전에 부총장님과의 면담이 한 차례 이루어졌다. 면담에서 2004년에 한 약속을 지키고 약속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기다리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래서 전면전(?)을 하게 됐다.

올해 들어 공문을 다섯 번 정도 보냈는데 답변이 늦게 와 답답했다. 전화로 답변이 올 때도 있었고... 사실 전화로 답변이 왔던 게 투쟁의 계기가 됐다. 10월 1일쯤 기획처장님과 면담을 한 걸로 기억하는데, 그 뒤 기획처 직원으로부터 '그때 이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 바로 비대위를 결성하게 됐고, 투쟁을 시작했다."

- '한발위'를 통해 해결할 방법은 없나?
"한발위는 행정부총장, 기획처장, 건설본부장과 한의학과 학장, 병원장, 전 학장, 학생복지처장까지 7명의 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없다. 지금 한발위에 대해 학생들은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17일 또 한발위가 열렸는데, 결과에 매우 실망했다.

한발위가 끝난 후,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회의록을 줬다. '2014년 3월까지 교육인증평가에 부합하는 부속병원에 대한 계획안을 쓴다'와 '2015년 말까지는 완공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2015년에 교육인증평가를 하니 그때까지 지어주겠다'는 학교 측의 주장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회의였다. 10년을 기다려온 학생들에게 2년을 다시 기다리라는 건가? 물론 교수님들이 난처해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래도 학생들의 입장을 더 헤아려주셨으면 한다. 17일에는 학부모님도 1인시위를 했다."

한의학과 학생이 교대역 부근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한의학과 학생이 교대역 부근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백승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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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에는 학교 측에서 합의문을 써줬는데, 그때는 학생 측의 기자회견 직전에 합의문을 써줬다고 들었다. 그 정황이 궁금하다.
"그때 60여 일 정도 투쟁했던 걸로 알고 있다. 유급을 불사한 것이다. 교육부로부터 공문도 오고, 삭발식도 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별 반응이 없으니깐 결국 마지막으로 공중파 기자들을 다 모으고 기자회견을 하려던 찰나에 합의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때 합의문의 내용이 '2013년까지 학교 인근에 부속병원의 건립을 완공한다'였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유명무실해졌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법적 효력을 갖춘 문서나 총장님의 직인이 들어간 확인서 또는 합의문을 원한다."

- 이제 곧 방학이다. 투쟁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그게 가장 걱정이긴 하다. 방학 전까지는 최대한 노력해보고, 방학에는 어떻게 할지 학생들과 조율해볼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결정된 바가 없다. 물론 전면전을 지속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의지가 그만큼 있다면 같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학 이후, 아마도 내년까지는 지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피해를 신입생과 후배들에게 물려줘선 안 된다. 만약 2월까지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등록거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나, 분명히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다. 그렇게까지 되는 것은 정말 원하지 않는다. 신입생들은 무슨 죄인가?"

덧붙이는 글 | 신영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합의문,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부속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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