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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영화로, 전주국제영화제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 풍경 포스터 장률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영화로, 전주국제영화제의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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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관조적이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 좀처럼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동티모르, 스리랑카, 베트남, 필리핀 등 9개국, 14명의 이방인이 꾼 꿈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영상에 담고 있는 장률 감독의 다큐 영화 <풍경>이 주는 인상이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풍경>은 자신만의 스타일과 깊고 명징한 작가주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장률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장률 감독은 첫 장편 <당시>(2004)로 밴쿠버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고, <망종>(2005)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 및 칸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면서 세계영화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몽골 올로케이션 영화 <경계>(2007)가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또 중국과 한국의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중경>(2009)까지, 발표하는 작품마다 특유의 작가주의적 시선으로 전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풍경에서 장률 감독은 다큐영화가 갖기 쉬운 태도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영화는 한 사람 한 사람 길게 잡히는 영상에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이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는 여운을 남긴다.

14명의 이방인들은 "당신이 한국에서 꾼 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마치 무장해제된 듯, 그동안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낸다. 그 이야기는 눈을 감고 꾼 꿈이지만, 현실과 맞닿아 있기도 한다.

출국을 앞두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어머니를 만났던 꿈을 이야기하는 동티모르 청년, 고향에서 사장과 직장 동료들의 방문을 받은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술만 마시면 개처럼 되어 정을 줄 수 없었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베트남 여성,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제주도를 여행하는 꿈을 꾼 방글라데시 아저씨.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덤덤하다. 현실을 원망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들떠 있지도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꾸었을 법한 꿈을 털어놓는 이방인들을 보면, 이게 사람 사는 풍경이구나 하고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풍경>을 통해 이방인에게 건네던 차가운 눈길을 거두고,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사회의 또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면 이 겨울, 당신도 따뜻한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기다림의 미학, 천천히의 아름다움 알려준 장률

첫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네아스트, 장률 감독
▲ 장률감독 첫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네아스트, 장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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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장 감독을 만났다. 아래는 '빨리빨리'를 멀리 하고, 기다려주는 미학, 상대방이 불편해 하는 것은 피하는 미덕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영화감독, 장률과의 인터뷰 내용 전문.

- 꿈을 이야기하면서 코리안 드림이 아닌, 잠에서 꾼 꿈에 대해 물은 이유가 있나요?
"질문하는 사람은 이런 질문 저런 질문을 많이 할 수 있어요. 어떤 꿈(dream)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 사람은 불편합니다. 그걸 알았어요. 그걸 알고, 그 사람들에게 내가 그런 질문할 권리가 있는가, 질문할 준비가 됐는가 생각해 봤어요. 한편 실제 눈을 감고 꾼 꿈 중에 기억나는 꿈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그 질문에 다 웃어요. 뭐하자는 건가 하고요.

그 질문 갖고 이용할 수도 없고, 어찌 보면 쓸모없어 보이고, 심각한 질문이 아니니까 질문 받는 사람들이 불편해 하지 않았어요. 내 영화가 고발영화가 아닌 만큼, 어찌하면 서로 다른 사람들로 꿈 속의 풍경이라도 공유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담았어요. 사실 꿈은 현실과 관계가 있습니다. 질문 받는 사람의 불편을 피하고, 서로 존중하고, 거리를 지키면서 소통의 방식으로 꿈 속의 풍경을 담아내자는 원칙을 세웠더니, 영화를 아주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어요."

- 꿈이 현실과 맞닿아 있다 했는데 어떤 모습인가요?
"제주도를 가고, 한국사장과 동료 직원들이 자기 고향에 관광을 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이 사람들이 진짜 한국에 오래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꿈 속에 고향만 나오는 게 아니라, 한국사장도 나오고, 성공한 모습도 나오죠. 그게 우리 현실인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들어있다고 봐요."

- 질문 자체가 평등한 꿈을 이야기하는데, 제목이 풍경인 이유는 뭔가요?
"1995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거리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외국인은 관광객이었어요. 그런데2000년이 지날 즈음해서, 점점 더 관광객 아닌 외국인이 눈에 띄어요. 특정한 지역에 가면 심지어 이주노동자 모습이 한국 사람보다 많이 보입니다. 이런 모습이 서울, 경기, 한국의 새로운 풍경처럼 보였어요. 그런 변화를 잘 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며 보는 풍경으로 보였어요. 그 사람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풍경들이 한국의 전체 풍경과 아직 어딘지 일체가 되지 않은 거리감이 있다고 할까요. 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담지 않는 풍경이 있다는 거죠."

- 전문 연기자가 아닌데도 참 자연스러워요. 심지어 뻣뻣하게 서 있어도 그런 느낌이 났어요. 찍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나요?
"아는 이주노동자들도 없고, 영화를 찍을 곳이 노동 장소니까, 외국인이 많이 있을 만한 곳을 무작정 갔어요. 가서 거절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질문을 딱 하나만 하겠다고 원칙을 정하고, 당신이 한국에서 꾼 꿈을 이야기해 달라 했더니 많이 수월해졌어요. 찍을 때, 한 사람 한 사람 다 동의하고 찍었어요. 찍는 사람, 사장, 주변사람까지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찍었어요. 찍으면서 전혀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어요. 그저 카메라를 두고, 거리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했더니, 오히려 빨리 찍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19일 동안 찍었어요. 수월하게."

- 영화를 보면, 감독님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화면을 상당히 길게 잡고 간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여운을 주기도 하지만, 지루한 감도 없지 않은데요.
"이번 영화는 그전 영화들보다 짧게 간 겁니다.(웃음) 화면을 길게 잡은 이유는 실제 현장에 가서 카메라를 담는 사람의 태도와 관계있습니다. 빨리빨리 하고 맘에 드는 장면을 잡아 내자고만 하면, 카메라 이쪽, 찍는 사람의 일인 것 같다는 태도입니다. 상대방을 기다려주는 태도를 가지면 '빨리빨리'라는 감정이 용납되지 않아요. 노동 장면이든 무엇을 하든 기다리자. 카메라를 움직이는 것도 기다리자는 일관성 있는 태도와 관련돼 있어요. 불편하지 않게."

""나도 상업영화 찍는다고 찍었는데 관객이 들지 않았어요"

- 일관성 있게 기다리면서 찍다 보면, 답답한 점도 있었을 텐데요?
"베트남 사람이 페인트 도색을 하는데, 방진마스크를 쓰지 않았어요. 촬영하는데 힘들고 부담될 정도였는데, 너무 건강에 나쁘니까 좀 쓰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거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요. 마스크가 있어도 안 쓰고 있었던 건데, 나중에 보면 마스크를 써요. 실제 우리 삶에서도 그래요. 다 그것을 주의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 사람이 없어요. 마스크를 쓰지 않는 피곤한 사람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기보다 주변에서 잘해 줬으면 좋겠어요. 노동의 한 모습, 작업현장의 위험이나 그 사람들 건강이 초점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풍경이라고 봐요."

- 어디서나 한국 사람은 초면에도 반말하고. 외국 사람은 말 높여요. 그런 걸 여과 없이 담은 이유가 있나요?
"찍을 때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의식을 하긴 했지만 그냥 담았어요. 이 사람들이 약자라고 함부로 한다 생각이 들다가도, 마트 사장 같은 경우를 보면 실제 잘해주더라고요. 그런데 한국말이 예민해서, 상대방이 복잡한 존대어로 말하면 잘 못 알아들을 수도 있고, 친하면 막 대하는 것도 있어요. 좋은 감정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의 없다고 볼 수도 있죠."

- 사진관 장면이 비교적 긴데 특별히 사진관을 영상에 담은 이유라도?
"사진관을 선택한 원인은 대림동에 있어요. 한국사람들, 사진관에 별로 가지 않습니다. 사진관이라는 공간, 한국사람들이 가끔 가는 공간은 감정이 흐르지 않아요. 반면에 외국인이 많이 가는 공간에는 옛날의 감정이 남아 있어요. 증명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가족사진도 찍죠. 사라지는 풍경에 감정도 흐르고, 남아 있어요."

- 촬영 중 어려움은 없었나요?
"크게 없었어요. 질문이 사람을 편하게 가게 했기 때문에 수월했어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통역을 붙이고,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 통역이 되지 않으면 한국말 못하더라도 찍고 나서, 나중에 확인하는 작업을 했어요. 인터뷰를 거절하면, 혹시 사진 찍는 건 괜찮겠냐고 물어보고, 좋다 하면 찍고, 뭔가를 할 때 설득은 하지 않았어요. 준비된 사람만 누구 하겠다 하면 찍고. 힘들게 사는데 왜 가서 귀찮게 해요."

- 감독님의 영화는 주로 마이너 이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도 상업영화를 찍는다고 찍었는데 관객이 들지 않았어요.(웃음) 중국에서 본 것, 안다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에요. 내가 삼성 같은 재벌 알 일도 없고, 비주류에 선 사람들을 많이 봐 왔어요. 나도 비주류 처지죠. 영화 찍는 일 외에 다른 거, 사회운동 몰라요. 그래도 영화 찍으면 영화 안에 나의 성향, 감정, 태도가 나오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그 정도가 나에게 훨씬 맞는 것 같아요."

- 영화를 통해 꼭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뭔가요?
"우리는 풍경을 유심히 보지 않습니다. 스쳐 지나가고, 무시도 하죠. 그러나 할 수 있다면 좀 유심히 봐 주기도 했으면 합니다. 보는 시선에도 온도가 있어서, 찬 눈길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다가가지 못해도 시선이라도 따뜻한 온도의 시선을, 그쪽 풍경을 바라보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거라고 해둘까요?"

덧붙이는 글 | 개봉일: 2013년 12월 12일
관람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관: CGV 압구정, 인디스페이스, 인디플러스, KU시네마테크, KU시네마트랩,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영화공간 주안, 대전아트시네마,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 부산영화의 전당, 부산국도가람예술관 등.



태그:#장률, #풍경, #다큐멘터리 영화, #이방인,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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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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