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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책을 받아본 필자는 출판사의 크나큰 실수를 목격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표지부터 큼지막하니 적혀있는 '내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주는 이질감에 "제대로 인쇄된 책으로 교환할까?"라는 생각을 누르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어색하기만 했던 '내한민국'이라는 단어가 익숙하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왔으며, 앞에 붙은 '스무살엔 몰랐던'이라는 글자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다.

'내한민국'의 의미에 대해서 작가는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의 역사를 수치스럽게 느끼는 것이 아닌 그 속에서 우리민족의 강점과 장점을 발견했고 내 나라를 다시 알게 되었기에 그 소중함을 제목에 담았다(한수진의 SBS 전망대, 2013년 8월 15일)"고 말했다.

'스무살엔 몰랐던'이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현실비판적 시각에 경도됐던 스무살엔 알 수 없었던 것을 이제 알게 됐기 때문(오마이뉴스, 2013년 6월 9일)"이라고 이야기 했다.

요약해보면, 20여년이 지난 40대의 작가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돌아보니, 숨기고 싶고 부정적인 인식으로 가득했던 20대 때 느낄 수 없었던 자긍심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내 나라를 더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을 제목에 담았다는 이야기다.

제목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이유는, 제목의 의미만 제대로 파악하더라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생각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용어가 '민족'이라는 개념과 분별없이 결합됐을 때 생길 수 있는 한계점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이를 해소할려는 적극적인 노력들이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 노력들이란, 구한말 한국을 경험한 서양인들의 기록을 통해 대한민국을 바라봤다는 점이다.

기자, 정치 관료, 학자, 화가 등의 여덟 명의 외국인을 선정('상호성'이라는 두 당사자간 교류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를 이용하여)하여 그들이 보았던 한국에 대해 가감없이 객관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들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배우 정진영이 말한 것처럼 "나 스스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정체성 성립의 가장 중요한 근거이겠으나 그 역시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단들이니,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그 자체로 내 생김새를 판가름하게 되는 중요 요소가 될 것이다(348쪽)".

저자가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중앙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대한 기억과 연구>와의 값진 만남을 바탕으로 2008년 12월 웁살라대학 역사학과 졸업논문으로 제출된 뒤, 내용을 첨가하고 좀 더 대중적인 양식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역사의 약자에게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일본에 침략당한 한국이 약자라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피해자가 명예를 회복해야 함도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역사적 약자인 우리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는지, 더 정확하게는 우리의 명예가 회복되야 한다는 근거와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반성과 설렘을 동반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앞 부분은 구한말 한국인들의 외형과 특성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찰을 이야기 하고 있다. 뒷 부분은 일제의 침략과 한국 통치모습에 대한 외국인들의 시선과 그 당시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왜곡되고 과소평가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스웨덴 기자인 아손 그렙스트는 1904년 12월 부산포에 첫발을 내딛었던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코레아인들은 신체가 잘 발달되었고, 태도는 자연스러우며 여유가 있었다. 똑바로 치켜 올린 얼굴은 거침없이 당당했다. 일본인의 특징인 벌벌 기는 비굴함과 과장된 예의 차리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35쪽)". 이는 상당히 의미있는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식민지 국민들은 위축되고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달리 태도가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었다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에 5년 넘게 체류했던 미국인 외교관 윌리엄 샌즈는 "한국인은 절망적이리만큼 학대받지 않는 한 남을 해치지 않기에 겁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의 용맹한 모습을 생각하면, 미국이나 프랑스 수병들은 그들이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83쪽)"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작가가 핵심적인 한국인의 특징으로 언급한 '착한 강인함'이다.

폴란드 태생의 러시아 민속학자인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는 "한국의 발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로 특권층과 관료제도(147쪽)"를 꼽았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층에 행태에 대한 민중들의 반응을 한국 근대 최초의 관립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를 역임한 적이 있는 조지 길모어(길모어는 이 책이 주목하는 8명의 외국인에는 속하지 않으나 한국에서 7년간 체류했다.)는 백성들이 무조건 복종만 한 것이 아니라 대중 집회 등을 통해 정부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쳤다(153쪽)고 바라봤다.

또한, 한국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따뜻한 시선을 견지했던 영국인 신문기자 프레드릭 매켄지는 어수선한 정세속에서 토론과 집회를 통해 민주주의 싹을 보였던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단체였던 '독립협회'의 해체를 구한말의 역사에서 가장 아쉬워했다(161쪽).

다음으로는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오인된 역사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을 살펴보자.

일본 근대성의 예찬자였던 세로셰프스키는 일본 개혁의 긍정성만을 이야기 했으나, 자신의 통역 안내자인 신문균을 만나고부터는 태도가 달라졌다. 일본이 한국에 유용한 개혁을 시도하고 국가경제를 정비했다는 세로셰프스키의 말에 신문균은 "그들은 겉으로만 우리를 만족시키려고 하고 있으며, 우리의 모습을 바꾸고 혼을 없애려고 합니다(204쪽)"라고 대답했다. 신문균을 통해 일본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 세로셰프스키는 그의 내면에 있는 '근대성'과 '식민성'의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인들과 깊이 교류한 서구인들은 한국에 대한 편견을 수정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212쪽).

샌즈와 매켄지는 한국에 대해서 상당히 유사한 인식을 했지만, 샌즈가 교류했던 한국인들은 지적이었지만 문명적인 개혁사업을 추종하는 피동적 인물들이었고, 매켄지가 관계를 맺었던 한국인들은 당시 서구 문명인과 동등한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었다(280쪽).

이러한 차이는 유럽식 제국주의는 반대했으나, 미국의 영향력 행사에 관심을 가졌던 샌즈와 마치 당시 한국인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고 고뇌한 것처럼 보이는 매켄지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정치가 조지 커즌 역시 한국을 여행하면서 한국인과 교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 말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태도를 작가는 "어떤 종족을 인식할 때 '개별자'를 무시하고 '집단'으로 보는 관찰을 피상적인 관찰(243쪽)"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인의 특성을 집단적 특징으로 한정지어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욕망을 실현하기 쉬운 구조로 만듦과 동시에 매켄지가 말한 것처럼 "일본은 세계 여타 민족들에게 한국이야말로 멸망한, 그리고 아무 쓸모도 없는 종족이라는 확신을 증대시키는 데에 그들의 힘을 쏟았다(298쪽)".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263쪽)을 나타내는 '오리엔탈리즘'이 오히려 동양의 일본이 같은 동양의 한국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이용되는 비극은 극소수이긴 하지만, 당시의 정세를 민감하면서도 올바른 객관성으로 바라봤던 매켄지를 비롯한 외국인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샌즈는 한국을 중립국으로 만들기 원하는 시도들을 번번히 반대하는 일본 외교관들의 모습에서, 매켄지는 일본이 건설한 교통·통신은 결국 군사활동을 위한 전략기지의 속셈임을 지적하고 있으며, 영국 제국주의 확장에 대한 신념을 간직하고 있는 커즌조차 "일본이 한국을 이전보다 더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에 차라리 한국은 현상 유지하는 편이 낫다(287쪽)"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의 가제본판 제목이기도 했던 '과대평가 된 일본, 과소평가 된 한국'은 일본의 잔혹한 통치와 외교적 술수의 산물임과 동시에 우리 스스로를 억압하는 일종의 '이중 패배주의' 내지는 '순환론적 패배주의'의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제라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도들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현지시각 8월 20일 다하우 나치 수용소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책에서도 언급한 것 같이 독일은 철저한 과거반성을 통해 새로운 민족적 정체성을 성립해가고 있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즘을 규탄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애라는 보편타당한 가치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기 위한 소중한 노력들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기사는 미국 글렌데일시의 위안부 할머니 평화의 소녀상 건립과정을 다룬 기사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해외 소녀상 첫 건립을 추진하게 된 미국 글렌데일시의 디자인 심의를 위한 최종 표결에서 일본 측 연설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8월 미국의 "위안부는 매춘부와 같다"는 기록을 언급하며 소녀상 건립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어린소녀들의 성을 착취하고 인격을 말살한데 대한 사과를 권고하는 의견과 함께 4대 1의 결과로 소녀상 건립을 찬성했으며, 2013년 7월 30일 드디어 소녀상 제막식을 거행 할 수 있었다.

이런 독일의 반성과 일본의 몰역사적 시각을 비교하면서, "일본은 독일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우리 스스로도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면서, 일본에게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마다 자신들의 아픔을 끄집어내서 치유 받기를 원하는 할머니들의 준엄한 일제에 대한 외침에 자격을 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프다고, 불편하다고, 지나간 일이라고, 나와 관련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고 침묵한다면 의도적으로 한국을 과소평가했던 왜곡이 왜곡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는 작년에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으며, 참배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등지고 '나비티셔츠(위안부 할머니 평화의 소녀상 해외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제작된 티셔츠)'를 입고 외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잔혹함을 상징하는 야스쿠니가 외국인들에게는 단순한 일본의 유명한 관광지이자 일본인들에게는 자신 조상들의 희생을 기리는 자긍심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상처받은 우리의 명예는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었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라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물어본다고 한다. 선하면서도 강인했고, 과소평가 됐음에도 당당했던 우리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우리의 역사가 그렇게 부끄러웠던가?", 혹은 "그 역사가 온전히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부분은 없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은 앞으로 20년이 지난 후 오늘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고민할 수 있는 '새로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 예옥(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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