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입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시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연재 '전통시장 고군분투기'는 기자를 지망하는 청년들이 시장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점들을 다룰 것입니다. 장소는 서울의 전통시장 30곳입니다. 취재 원칙은 하나입니다. '시장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 기자 말

지난 22일 화요일, 시장을 다녀왔다. 발이 퉁퉁 부었다. 부은 발을 찬물에 담근다. 저릿하다. 오랜만에 부은 발을 보고 있자니 옛 생각이 물끄러미 떠오른다. 큰 병 앓이 한 번 없이 건강하게 자라왔던 내가 저린 발로 고생했던 적이 세 번 있다. 권투에 빠져 몸을 혹사하던 시절이 처음이요, 국토대장정으로 하루를 걸어서 마감하던 무렵이 두 번째, 이십 대의 끝을 안은 오늘이 바로 세 번째다. 오늘은 부은 발을 보고 있자니 살짝 콧등이 시큰해진다.

늘 그곳에 있었지만 몰랐던 사람, 커피 아주머니와의 하루를 공개한다.

평화시장의 비밀 공간

아침 8시의 알싸한 공기를 가르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지나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건물 내로 들어선다. 투명한 유리문을 경계로 가을빛 기온을 뒤로 한 채 시장의 아침은 분주히 움직인다. 밤샘 장사로 고단한 낯빛의 상인들과 달리 밤새 단잠으로 피로를 풀고 온 상인들은 밝은 표정으로 하루 장사의 개시를 알린다. 직사각형 구조의 건물, 평화시장 1층 '라'동을 길따라 한참 걷다 보니 작은 체구의 아주머니 한 명이 갓 문을 연 가게 앞을 서성이고 있다.

 상가 옆 틈 사이로 고모커피 상호와 종이컵이 보인다.
 상가 옆 틈 사이로 고모커피 상호와 종이컵이 보인다.
ⓒ 안형준

관련사진보기


허리에 벨트형 지갑만 하나 두른 채 가게 앞을 지키던 아주머니는 이내 다른 매장으로 향한다. 몇 차례 가게들을 오가던 그는 복도 중간에 우뚝 멈춰 선다. 마땅한 매장도 없는 그곳에서 벽을 향해 무언가를 달그락 거리던 그는 홍차를 내민다. 크고 작은 의류매장 사이로 세 뼘 남짓의 공간, 그곳에 붙박이장처럼 복도 좌우로 약간의 틈이 있다. 작은 수납장 위에 마련된 커피와 차, 종이컵 등이 그의 매장임을 보여준다.

만인의 '고모'

"고모~"

아침 9시, 비교적 한산한 복도를 타고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족보'도 필요 없다. 18년간 평화시장에서 커피를 팔아온 강춘옥(62)씨는 평화시장 상가의 '고모'로 통한다. 아침 일찍 다른 상인의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대신해 줄 정도로 시장 상인들과 사이가 가까운 그다. 좁은 공간 옆으로 붙은 낡은 스티커의 '고모커피'가 그의 호칭을 대변한다.

소리가 나는 쪽을 한 번 쳐다본 그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커피를 탄다. 커피 한 스푼 반, 설탕 반 스푼에 뜨거운 물을 붓고 '휘휘' 젓더니 배달에 나서기까지 채 십오 초가 걸리지 않는다. "고모, 여기~"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김없이 시선 한 번 주고는 커피를 탄다. 일 초, 이 초, 삼 초… 흐르는 시간이 무색하게 커피를 완성시킨 그는 다시 또 복도를 가른다. 떠오른 해만큼 늘어난 손님이 복도 곳곳을 지나다녀도 그는 종종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십 년 가까이 걸었던 '커피길'이 그에게 익숙하기만 하다.

 고모가 주문 받은 커피 한 잔을 들고 배달에 나서고 있다.
 고모가 주문 받은 커피 한 잔을 들고 배달에 나서고 있다.
ⓒ 안형준

관련사진보기


"커피 장사만 18년 했어. 꽤 오래됐지. 주변 상인들도 다 알아. (커피 장사를 하려면) 관계도 좋아야 하거든. 지금은 취향을 다 알지. 누가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목소리만 듣고 타 주잖아."

그의 연륜은 커피 타는 속도에 있는 게 아니었다. 벽 안쪽 깊숙이 붙어 있는 '쓸모없는' 메뉴판이 증거다. 시장 내 누구도 고모에게 따로 메뉴를 주문하지 않는다. 부르기만 하면 취향에 맞게 커피를 만든다. 목소리가 닿지 않는 거리의 상인들은 전화로 주문을 한다. 이들이 이내 전화를 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의 통화는 오래가는 법이 없다.

없어도 괜찮아

오전 11시 '모닝커피'를 찾는 상인들을 제외하면 잠시 틈이 생긴다. 매장에 여유 공간이 없는 고모는 건물 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상점에 가서 오랜 시간 함께 한 상인들과 담소를 나눈다. 한동안 자리를 비운 고모가 돌아와 손을 내민다. 그의 손에는 노릇한 고구마가 들려 있다. 상인들과 나누는 것이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가끔 간식도 나눠 먹는다는 그의 뒤로 불쑥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칼국수 좀 먹고 올게."

'Eve Queen(이브 퀸, 원미 상가)' 사장이다. 점심시간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에 밥을 먹으러 간다. 딱히 상대를 정하지도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메뉴를 알려온 그는 바쁜 걸음을 하고 복도 너머로 사라진다. 자영업을 하는 상인들이다 보니 행동반경이 자유롭다. 점심시간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게 늘 그렇다. 월급 날 직전에 돈 쓸 일이 생기고 자리를 비우면 손님이 찾는다. 고모커피와 두 블록 정도 떨어진 원미상가에 손님이 찾아온다. 그가 자주 찾는 담소 장소 중 한 곳인 원미상가는 이내 고모의 가게가 된다. 가격을 묻는 손님을 익숙하게 응대하며 장사에 나선다. 맞은편에 위치한 에임(AIM)의 사장도 '남의 집' 장사를 거든다.

"가격이야 대충 다 알지. 다 가족같이 지내니까 자리를 비우면 대신 물건도 팔아주고 그래. 아침에 동생들 가게 봐준 것도 그렇고."

 '고모'가 옆 가게의 정용성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모'가 옆 가게의 정용성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안형준

관련사진보기


훌쩍 떠나버린 상인의 발걸음은 서로의 믿음에서 비롯됐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밀도 높은 상점들은 서로의 사이를 끌어모으는 데 한몫했다. 비슷한 품목을 취급하지만 경쟁자가 아닌 동업자로 혹은 친구로 혹은 가족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시간도 큰 역할을 했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을 때도 불황의 한파가 피해 갔다던 이곳이 경기를 타기 시작하며 손님이 많이 줄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장사를 접고 평화시장을 떠나는 상인이 나타났고 그 과정에서 함께 한 서로가 애틋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주 고객이 상인들이니까) 여기 상인들보다 경기의 영향을 적게 받지. 그래도 분위기라는 게 있어. 경기가 좋아서 손님이 많으면 상인들 장사도 잘 되고, 그러면 나도 팔기가 수월하고 그래. 마음도 좋고."

점심시간이 지나면

평화시장 안에서는 취사행위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상인들은 주로 배달을 시키거나 도시락을 싸온다. 오후 12시 반 고모의 점심시간이다. 고모는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낸다. 주변 상인들과 상가 한 쪽에 모여앉아 식사를 하는 그들은 영락없는 '동네친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친 그들을 위해 고모가 커피를 타기 시작한다. 주로 식사를 함께 한다는 한 상인은 커피를 받아들고 웃으며 말한다.

"이것도 사 먹는 거예요. 이게 고모 일인데요."

상인들도 식후 커피 한 잔을 찾는 분위기가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고모커피에도 '성수기'가 찾아온다. 상점마다 고객이나 붐비는 시간이 달라 식사시간도 다르다. 하지만 주로 오후 1시가 지나면 고모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1시가 안 되어 식사를 마친 고모는 아침 나절 비었던 빈 물통 두 통을 들고 건물 내 정수기로 향한다. 막간을 이용해 물을 채워두는 것이다. 고모커피네 수납장 아래로 생수가 담긴 통이 즐비하지만 고모는 간간이 물을 뜨러 간다.

평화시장 내 모자 가게들은 24시간을 하는 곳이 많고, 고모네 바로 옆에서 스카프 가게를 하는 정용성(54)씨도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퇴근길에 나선다. 갑자기 바빠질 수도 있고 고모가 퇴근한 오후 6시 이후 야간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고모네'를 이용한다. 이런 상인들이 고모네의 주된 야간 고객이다.

"여긴 다 아니까, 밤에 없을 때는 (상인들이) 와서 꺼내 먹고 아침에 계산하고 그래. 라면도 있고 그러니까."

 여러 잔을 주문 받은 고모가 복도에서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여러 잔을 주문 받은 고모가 복도에서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 안형준

관련사진보기


물통을 나르는 길 짧은 대화가 오가고 이내 고모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식후 커피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영화 <타짜>의 대사를 경력 18년차 '고모'는 어렵지 않게 선보인다.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처럼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옆 동(평화시장 '마'동)까지 커피를 배달하는 고모에게 배달 시간 동안 커피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돌아와서 이내 커피나 차를 만들어야 하는 고모다. 한정된 공간을 배달구역으로 하지만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고모에게 기자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다 보니 주변에서 농담이 쏟아졌다.

"고모, 오늘 한 명 달고 다닌다고 고생하네."(웃음)
"밥이라도 사 먹여야겠어."(웃음)

고모도 그런 성화가 신경 쓰였는지 나지막이 한 마디 던진다.

"아유~ 다리 아프게… 좀 앉아있어."

커피 장사, 그것은

오후 4시, 한참을 돌아다닌 고모는 짬이 나자 잠시 다른 상가를 찾아 의자에 몸을 얹는다. 고단하다. 덩달아 나도 의자를 찾아 복도 구석에서 다리를 쉬게 한다. 하루 종일 손님들 틈새로 돌아다닌 두 발이 운동화 속에서 뜨거운 비명을 지른다. 괜스레 운동화가 작아진 느낌이다. 아침만 해도 건강하다고 했던 고모는 팔다리가 아프다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서른을 앞둔 젊은이가 예순이 지난 피로를 단번에 이해하긴 힘들다. 그러나 붓기 오른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그의 다리로 한 번씩 눈이 가는 것은 '매미'처럼 붙어 다닌 하루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잠시 의자에 앉은 고모가 활짝 웃음 짓고 있다.
 잠시 의자에 앉은 고모가 활짝 웃음 짓고 있다.
ⓒ 임경호

관련사진보기

"칠십까지는 해야지. 아프지만 않으면 그때그때 벌어야지. 근데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 건강하기만 하면 계속하는 거야 뭐…"

그가 멋쩍게 웃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너머 고모를 찾는 소리가 빼꼼히 내민 상인의 입을 통해 복도로 울려 퍼진다. 고모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활동량만 보면 평화시장 A동 1층의 상인들은 모두 고모만 찾는 것 같다. 그러나 1층에는 사실 한 명의 커피 상인이 더 있다. 한강의 성수대교가 개통되던 1979년부터 평화시장을 지켜온 최석란(63)씨가 바로 그다. 평화시장의 흥망을 봐왔다는 그는 지켜온 시간만큼 모르는 게 없다.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바로 아래 자리 잡은 탓에 오가는 손님의 질문에 모조리 답해준다. 이어지는 상인들과의 '험상궂은(?)' 농담들은 그와 상인들의 격 없는 사이를 말해준다. 그가 고모를 언급한다.

"그쪽은 뭐하고 있어? 동갑이라고 지가 그래? 지O하네. 내가 한 살 더 많구만. 그래, 그쪽은 얼마나 됐데? 18년? 그만큼이나 있었데?"(웃음)

십수 년을 넘게 일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 다른 구역을 담당하다 보니 함께 한 시간에 둔감하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더없이 살갑다. 표현이 거친 것은 그들 특유의 애정 분출법이다. 입으로는 옥신각신 거친 언어를 내뱉으면서도 정작 고모에 대한 이야기에 웃음을 담는다.

"(말은 이렇게 해도) 다 알지. 가족 같이. 여기 물건 떨어지면 고모한테 전화해서 갖다 달라고 하고 우리도 고모야한테 갖다 주고 그래.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서로 가져다줘. 계산은 나중에 하면 되니까. 그런 사이야."

오후 다섯 시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고모가 정산을 마치고 '수금길'에 나서며 한 마디 한다.

"아이구, 지가 나이 한 살 더 많다고 그래? 내가 생일이 더 빠르지. 지O하네.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언어마저 비슷한 두 사람은 평화시장 A동 1층의 커피 상인이다. 때론 행인에게, 때론 상인에게 때론 우리 같은 방문객에게 투박한 손으로 종이컵을 건네는 그들은 내일도 평화시장의 아침을 깨울 것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 갈수록 찾기 어려워지는 그들의 '작은 땅'이지만 그들은 입 맞춘 적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계속해야지~"

오후 6시 집으로 돌아가는 상인들은 가게 불을 끄고 가림막을 친다. 하루 종일 손님들의 길이었던 복도에 문을 닫은 상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고모도 뒷정리에 나선다. 꺼내놨던 자재를 수납장에 넣어두고 온수기에 물을 확인한다. 수납장 위도 깨끗이 닦는다. 퇴근 준비 완료다. 자주색 외투를 걸친 고모가 손을 흔든다. 이내 어둑한 밤공기 사이로 사라진다. 병문안을 간다고 했던 고모, 안녕이다.

그리고 평화시장 안녕.

덧붙이는 글 | 이 연재는 김진석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인 안형준(29), 임경호(29), 박기석(27) 3명이 취재를 진행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