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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울> 북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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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직원으로 일하며 틈틈이 쓴 소설 한 편이 조용히 입소문을 타면서 어느새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한 남자가 있다. 작년 한 해 영미권 출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화제의 소설 <울>의 작가 휴 하위.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화화 판권을 가져가면서 할리우드까지 사로잡은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패러디 소설 <실크>가 나올 정도로 이슈가 되었던 <울>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지난 9월 28일 SF판타지 도서관 전홍식 관장과 최원택 칼럼니스트(<미드의 성분: 미국드라마를 이해하는 15가지 코드> 저자), 파워블로거 '사자왕'이 모여 <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점 직원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다,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소설 <울> 한국판을 들고 있는 저자 휴 하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소설 <울> 한국판을 들고 있는 저자 휴 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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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택(이하 최): 우선 작가 휴 하위의 이력이 굉장히 독특했습니다. 배를 타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선원을 그만두고 서점 직원이 되어 점심시간 틈틈이 글을 써서 발표한 소설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게 바로 이 <울>이라는 소설이라죠. 이런 이력이 해외, 영미 쪽에서는 종종 보이는데, 사실 한국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힘들게 느껴집니다. 한다 하더라도 성공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고… 어쨌든 작가가 점심시간 틈틈이 이야기를 써서인지 호흡이 긴박하고 절묘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각 챕터마다 인물과 시점, 사건이 바뀌는데 그 지점 역시 굉장히 절묘하고요.

전홍식(이하 전): 각 부들이 독립적으로 쓰였다는 느낌이 강하죠. 아시겠지만 이 소설은 책의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그 자체로 완결된 단편이었는데, 그 단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열광적으로 이어지다 보니까 그 뒤에 새로운 이야기들이 붙기 시작한 거예요. 말하자면, 한 번에 쫙 설계도를 만들고 나눠 썼다기보다는, 먼저 단편으로 시작해서 이 세계에 대한 대략적 상상이 나오고 거기서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확장되어 나간 형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도 각 부의 이야기가 몰입이 더 잘되는 걸 보면 작가의 필력이 보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자왕(이하 사): 말씀하셨듯이 저도 장편 영화보다는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한 편이 끝나면 다음 이야기가 뭘까 궁금하게 만들더라고요. 왜 그런가 했더니 점심시간에 써서, 아마 밥은 못 먹었겠죠(웃음), 그런 절실함이 있던 것 같군요.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진행된 소설 <울> 대담회에 참여한 전홍식(SF 판타지 도서관 관장), 최원택(칼럼니스트), 사자왕(네이버 파워블로거)의 모습
▲ 소설 울 대담회 현장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진행된 소설 <울> 대담회에 참여한 전홍식(SF 판타지 도서관 관장), 최원택(칼럼니스트), 사자왕(네이버 파워블로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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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오히려 재미있게 읽은 게, 이 소설의 시점 전환들은 영상매체 특히 미드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형태거든요. 작가 스스로도 그 부분에 대한 야심이 있던 걸로 보여요. 물론 소설을 썼지만 소설이 잘되면 영상화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겠죠. 결국 바람대로 그렇게 됐고요.(웃음)

: 저도 개인적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한국 시장이 굉장히 작기도 하고, 또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분명 있겠지만, <울>의 성공 사례는 나름대로 참고해볼 만한 예가 아닐까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요즘 독자들에게는 <울>과 작가의 스타일이 도리어 어울릴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 이 이야기는 조금 더 깊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가 전자책으로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전자책 시장에 대해서 장밋빛 전망을 갖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전자책 자비 출판 서비스로 이미 반향을 얻은 후에 대형 출판사에서 종이책으로 출간한 걸로 알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예전에 이영도씨가 하이텔에서 <드래곤 라자>를 연재할 때 조회수가 높아지니 황금가지에서 접촉해 출간한 사례가 있었죠. 

: 입지전적 인물이네요. 전자책 자비 출간으로 이렇게까지 성공한 건. 아직 국내 전자책 시장에는 그런 서비스가 없지요.

: 사실 저는 '자비' 출판보다는 '전자책' 출판에 더 초점을 두고 싶어요. 전자책 형태로 출간하는 거라 돈이 크게 들지는 않았을 거거든요. 돈을 들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예전엔 통신, 지금은 인터넷 등이 있을 텐데, 이제는 여기에 아예 돈을 내고 책을 살 수 있는 전자책이라는 시장이 등장한 게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얼마 전에 친구가 소설을 전자책으로 만들었길래 놀러 가서 거기서 다 봐버렸어요. 이젠 스마트폰을 통해 단편들은 간편히 읽을 수 있고, <울> 역시 그런 외부적 상황을 영리하게 잘 적용한 사례인 듯해요.

: 저도 전자책을 즐겨보는데, 전자책 독서를 즐기는 이유가 장소 구애 받지 않고, 사람과 부딪힐 걱정 없는 한적한 골목에서는 걸어가면서도 읽을 수 있거든요. 얼마 전에 김영하 작가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산책하면서 읽었는데 다 읽었을 때 햇볕 내리쬐는 길 한복판에 서 있어서 기분이 묘했어요. 전자책 독서는 책의 성격이나 형식에 따라서는 굉장히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울>은 만약 전자책으로 읽는다면 지하철 안이나 현대기술이 집약된 삭막한 공간이면 분위기가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소설 <울> 대담회에 참가한 전홍식님
▲ 전홍식 소설 <울> 대담회에 참가한 전홍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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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그래도 저는 나이가 있어서인지 아직은 종이책이 편해요.(웃음) 전자책 단말기들이 혁신적으로 좋아진다고는 해도 페이지 넘길 때 번쩍거림 같은 것 때문에 눈이 아프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책 냄새나 인쇄 냄새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 이 작품의 경우엔 전자책 형태에 엄청 잘 맞춘 사례죠. 첫 번째 편은 완전하게 독립적인 작품으로, 드라마로 치자면 파일럿이에요. 이런 구조는 전자책이 아니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백 페이지도 안 되는 단편을 책 한 권으로 낼 순 없으니까요. 이게 가능했던 경우로는 예전의 동인지를 들 수 있어요. 동인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 이후 이야기들이 가능했는데, 예전에 동인지는 온라인이 아니라 무조건 오프라인이었죠.

이제는 온라인에서도 진행될 수 있다는 것. 저는 이런 동인 시장의 시각으로 전자책 분야를 바라보는 게 전자책 시장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울>과 같은 사례가 한국에서 성장할지 안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성공하려면 토양 자체가 제대로 갖춰져서 완성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훌륭한 소설은 현실을 은유한다, 스마트폰으로 통제되는 세상 떠올라

: 디스토피아는 SF장르에서는 유토피아와 더불어 고전적인 소재인데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고전도 있고, 최근엔 영화 <설국열차>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외부 환경 때문에 폐쇄계에 들어간 사람들의 정치 투쟁이라는 설정은 <울>과 비슷하기도 한데, 이런 설정은 디스토피아 소설에서는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접점보다는 오히려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나중에 더 이야기하겠지만, 우선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은 떼어내도 열차 운행에 아무 지장이 없지만, <울>에서 맨 아래층에 사는 기계부 사람들은 사일로의 운행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고, 그만큼 자부심이 있잖아요. 그러다 사일로의 IT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핵심 정보만 독점해서 전횡을 저지른다는 걸 자각한 주인공 줄리엣이 문제제기를 하고 계속 도전하고... 어떤 특정한 기술 집단이 정보를 통제해서 전체를 기만하고 이익을 독점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1984>의 기술 지배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제된 세계에서 정보의 왜곡이라고 할까요, 저는 1부의 마지막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고작해야 스마트폰 트위터나 페이스북 화면으로 세상을 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아니란 거거든요. 이 화면 속 정보가 어디까지 왜곡이 되었는지 사실은 알 수 없어요. 미국이 전 세계 정보를 다 감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울>은 여기에 대한 어떤 비판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일부러 가로 8인치(20.32cm), 세로 2인치(5.08cm)라는 작은 화면을 설정했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현재 IT라는 체제 자체가 사람들의 인식을 왜곡하는 걸 빗댄 게 아닌가 싶었어요.

물론 그 기술 자체가 이집트에는 자유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우리들은 이것에 왜곡되거든요. 사실 사일로 시스템을 통제하는 IT부가 매스미디어인데 TV도 그렇죠. 많은 사람들이 TV에서 정보를 얻잖아요. 그들이 보는 바깥세상은 TV에서 본 세상이에요. 주인공 줄리엣이 그 틀을 깨고 직접 바깥세상으로 나가니까, 전부라고 알던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던 거죠. 

소설 <울> 대담회에 참가한 사자왕님
▲ 사자왕 소설 <울> 대담회에 참가한 사자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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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보면 SF라는 장르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테크놀로지와 상상력으로 포장을 하면 압박을 안 당하잖아요. 힘 있는 사람들이 "이거 왜 우리 이야기를 하냐"라고 해도 "아니다. 이건 3500년대 이야기다" 이러면 빠져나갈 수 있고. (웃음)

최: 인터뷰를 보면 작가가 한창 작품을 쓸 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나,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는 아랍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들을 보면서 작품과의 접점을 찾았다고도 하던데, 월스트리트 점령은 나중엔 흐지부지되긴 했으나 미국 사회에서 보자면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울>에서도 '폭동'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폭동을 일으킨 주체는 이 행동이 정당한 행동임을 천명하고, 거기에 설득력을 얻어 결국 주저하던 공급부 사람들도 동참을 시키잖아요.

: 아랍의 봄 같은 경우 특별한 것 없이 사람들이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서 힘을 얻었죠. 어, 세상이 이렇네? 결국에는 스스로 주체적으로 찾아나가야 하는데요. 작품에서도 IT부서가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오지만 또 그 문제를 파고드는 사람은 결국 IT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걸 볼 때 꼭 IT 부서를 완전히 비토한다기보다는 양면성을 드러냈다고 생각해요. 

: 그러니까 IT 기술 자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IT는 어떻게든 쓰일 수 있다는 본질 자체를 보여주는 거죠. 어떤 사람이 손에 넣고 어떤 의도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IT가 이 사회를 자기 마음대로 편집해내서, 가령 포털들이 검색어 조작을 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다른 데로 돌린다거나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여러 검색 엔진을 교차 검증하거나 스스로 정보를 찾아내서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으려 하기도 하고요. 

: 그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사람들 역시 그만큼 IT를 잘 아는 사람들인 것이죠.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결국에는 스스로 알고자 하는 욕구… 이 책 띠지에 잘 적혀 있는데요,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 믿는가?"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스스로 더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죠. 처음에… 이건 스포일러니까 이야기하면 안되겠구나(웃음), 보려고 했기에 진실을 알게 된 거고 진실을 알게 된 순간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는 거죠. 진실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무조건 좋다, 행복하다 할 순 없겠지만, 진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 그렇죠. 메타포적으로 사용되는 건데, <울>에서는 사람들에게 디셉션(Deception)을 심어놓는 거예요. 가짜죠. 그런데 그걸 만들어나가는 것은 또 우리란 말이에요. 그러다 움직임이 점점 커지면 통제가 들어가고 폭동으로 만들어서 억압을 하고 인구조절을 하고...

<울>에는 있고 <설국열차>에는 없는 것

: 이런 부분은 <설국열차>랑 상당히 비슷한데요. 

<울>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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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그렇죠. <설국열차>도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 그건데요. 원작에서는 꼬리칸을 떼어내고 어떻게든 살아나려고 한 대신 봉준호 감독이 포커스를 준 것은 다 계획된 것이다, 폭동마저도 계획된 것이다, 이런 비슷한 맥락으로 읽히더라고요.

: 봉 감독님께서 <울>을 읽으셨나...(웃음) 우연의 일치겠지요.  사실 저는 <설국열차>를 보면서 좀 답답했던 부분이 있는데, 그걸 <울>에서는 속 시원하게 풀었어요. 기계부의 지도자인 녹스가 꼭대기층에 있는 IT부를 점령하러 올라가면서 중간에 공급부를 설득하는 장면인데, 굉장히 기억에 남았던 게 녹스가 "우리는 말썽을 일으키러 온 게 아니라 질서를 되찾으러 왔다"면서 공급부 지도자를 설득해요. <설국열차>에서는 꼬리칸에서 봉기한 사람들이 머리칸으로 전진할 때 중간칸에서 일하는 사람과 소통을 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하는데, 저는 이렇게 다른 부서를 설득해서 함께 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어요.

: 사회 전체를 규합시켜가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어쨌건 밖은 암울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이지만 이 내부에서는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거. 이건 굉장히 희망적이네요. 세계 자체는 디스토피아가 확실하지만. (웃음)

: 미국 작가가 쓴 작품이라 차갑고 냉정할 줄 알았는데 소설이 굉장히 뜨겁더라고요. 전홍식 관장님께서 말씀하셨듯 기름 냄새가 나요. 줄리엣도 사고방식이 완전히 엔지니어거든요. 세계와 사회를 보는 시각도, 무슨 사건이 일어나고 잘못된 것을 기계 고장 난 것 감지하듯이 직관적으로 알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부분에서 엔지니어의 뜨거움, 신념 같은 게 느껴졌어요. 자신이 파악한 구조를 사건에 대입하면 해결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런 자신감이 주인공에게 보여져서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화, <에일리언>의 리플리를 잇는 여전사 탄생

전: 전 주인공들이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같은 영웅 스타일이 아니라 마음에 들었어요. <글래디에이터>는 주인공 혼자 다 뒤집는 거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형태니까. 물론 줄리엣이 주인공에 가장 가깝지만 다른 인물들도 각 편마다 잘 녹아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드라마적인 느낌이 굉장히 강하고, 영화로는 어떻게 만들어질지 모르겠지만, 리들리 스콧이 이 작품을 왜 선택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요.

소설 <울> 대담회에 참가한 최원택님과 사자왕님
▲ 최원택님과 사자왕님 소설 <울> 대담회에 참가한 최원택님과 사자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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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제 화제가 자연스럽게 주인공 줄리엣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확실히 <에일리언>의 리플리 느낌이 강하죠.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작가가 주인공 줄리엣을 엄청나게 편애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문장에 드러나요.(웃음) 줄리엣을 묘사할 때 "압정처럼 반짝거린다"라거나 "얼굴은 군살 없이 단단했고, 눈은 총명했다. 멀리서도 가늠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였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남자 작가라 그런지 남성적인 표현이지만 극찬에 가까워서 굉장히 흡입력 있게 봤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매료되던데요. 강인하긴 하지만 리플리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죠.

사: 그렇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주도적인 입장이 되죠.

: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밀려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금이라도 발버둥을 치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고 매력적이에요.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나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 그 과정에서 로맨스적인 요소들(웃음) 그것도 괜찮고.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하지만 세계 자체의 디스토피아적 암울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좋아요. 마음에 듭니다. 페이지가 많은 것처럼 보여도 휙휙휙 넘어가고요. 

: 미국에서도 SF 장르로 소개가 됐지만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수월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책장이 잘 넘어가요. 전문적인 이론이나 하드SF의 개념들은 전혀 안 나오거든요. 어렵다고 생각되는 단어가 픽셀 정도인데 사실 요즘 픽셀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잖아요.(웃음) 디카를 사도 픽셀을 따지니까요. 그리고 소설 속 기술 수준이나 개념, 용어가 우리 살고 있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흔히 말하는 'SF 진입 장벽'은 낮은 것 같아요. 

: 일단 1부를 보게 되면 다음 편이 궁금해서 당연히 보게 되고, 중간중간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만드니까 쭉 보게 되는 것 같아요. 

: 그렇죠. 그리고 그런 게 나중에 책을 덮었을 때 더 재미있죠.

: 미드도 그런 작품 있잖습니까. 각 에피소드가 나뉘어 있지만 다 보게 되면 하나의 큰 그림이 연결돼 완성되는 것. 저는 이 소설이 그런 느낌이 있어서 좋은 작품이라 생각을 해요. 

: 작가가 아주 교묘하게 썼어요. 영리하다고 하잖아요.

: 은둔 고수였던 거죠. 작가가 엔지니어라는 배경을 갖고 있어서인지 문장이 아기자기하거나 위트가 있는 느낌보다는 기계 같은 건조함이 있는데, 그런 문장들이 쌓이면서 힘이 나오는 것 같아요. <울>에서 언급되는 기술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서 만약 지금이라도 당장 종말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이런 곳을 짓고 대피할 거란 생각도 들어요. 꼭 SF독자가 아니라 영화, 미국드라마를 많이 본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친근하게 즐길 만한 요소가 많거든요. 저는 약간 <로스트> 생각도 났어요. 몇 시즌에서인가 지상과 격리된 인공의 지하세계가 나오잖아요. 

: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들면 분명 세트는 크게 만들 겁니다.

: 그분은 컴퓨터 그래픽을 많이 쓰는 분이 아니라서요.

: <프로메테우스>의 공간들도 그래픽이 아니라 직접 만들고, 물성을 보여주겠다고 작정하고 했다잖아요.

: <글래디에이터> 때는 아예 숲을… 그쪽 지역에서 다 벌목한다고 하니까 잘됐다고 가서 영화 찍고 다 불태워 버리고.(웃음) 그 지하세계, 사일로라는 세계를 도대체 어떻게 그릴까 기대가 됩니다.

: 그러고 보니 이 사일로에는 엘리베이터도 없어요. 144층을 관통하는 좁은 나선형 계단만 있는데, 이런 환경을 갖고 어떤 영상 연출을 해낼까 그것도 궁금해지네요. 

: 내용을 보면 혁명적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 중심으로 드라마처럼 펼쳐나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제작비가 많이 안 들 것도 같아요.(웃음)

: 대신 배우들 연기가 좋아야겠죠.  이야기 나온 김에 줄리엣에 어울릴 만한 배우를 얘기하면서 마무리를 해볼까요? 저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최근작 <프로메테우스>의 주인공이었던 누미 라파스도 떠오르긴 했지만, 좀 더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웃음)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의 주인공이었던 제니퍼 로렌스가 떠올랐어요

: 줄리엣 치고는 어리지 않을까요?

: 줄리엣 나이가 서른넷이죠? 하지만 제니퍼 로렌스가 또 노안? 성숙미가 있어서...(웃음)

: 줄리엣의 이미지만 보자면 <에일리언 1>의 시고니 위버가 딱 맞는데 나이가 많아서...(웃음)

: 저는 캐서린 제타 존스가 떠오르더라고요.

: 줄리엣 치고는 너무 섹시하지 않나요?(웃음) 작가는 자기 홈페이지에서 <로스트>에 나온 에반젤린 릴리를 언급하기도 했던데,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덧붙임] 책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 두 시간이 넘도록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어주신 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지면상의 한계로 그 열띤 시간을 그대로 전하지 못해 아쉽다. 

덧붙이는 글 | 이지희 기자는 <울>의 마케터입니다.



울 1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시공사(2013)


태그:#울, #휴 하위, #대담회, #소설, #W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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