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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서도. 녹산등대 가는 길
 거문도 서도. 녹산등대 가는 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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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 반짝이는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 흔들리는 배, 그리고 멀미. 거문도로 가는 길이다. 여수를 떠난 여객선은 나로도, 손죽도, 초도를 지나 망망대해에 떠있는 거문도로 향한다. 바다는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배는 심하게 흔들린다. 기우뚱하기도 하고 놀이기구를 타듯 오르내리기도 한다.

거문도는 고도(古島), 동도(東島), 서도(西島)를 합친 3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예전에는 삼도(三島)라고 불렀다. 그 중 가장 큰 섬이 서도다. 서도는 서쪽에 있는 섬으로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모양이 애벌레를 닮았다. 지도상 길이가 9㎞ 정도다.

거문도를 오랜만에 다시 찾은 건 서도의 북단인 녹산에서부터 거문도등대가 있는 수월봉까지 걸어가 보고 싶어서다. 보통 거문도 종주라고 하는데, 서도 북단인 녹산등대에서 남단인 거문도등대까지 걸어간다. 걷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빠른 걸음으로 6시간 정도다. 잘 걸으면 첫배로 들어가서 오후에 나오는 배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초원으로 이어진 녹산등대 가는 길

여객선은 서도선착장에 들른다. 배에서 내리니 장촌마을이다. 바다가로 줄지어 서있는 집들이 마치 팔을 벌리며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다. 마을이 길어서 장촌(長村)마을이라고 했나보다. 배 멀미에 시달렸는지 땅에 발을 디뎌도 머리는 어지럽다.

거문도 서도 북단인 녹산등대 가는 길
 거문도 서도 북단인 녹산등대 가는 길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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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의 최북단인 녹산에는 녹산등대가 있다. 녹산은 사슴을 닮은 산이란다. 거문도를 종주하기 위해서는 녹산등대로 가야한다. 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마을 위로 보이는 학교를 지난다. 섬에 있는 작은 분교지만 보통 학교가 아니다. 1905년에 개교한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다. 외딴 섬에 100년이 훨씬 넘는 학교가 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거문도(巨文島)라는 이름이 그냥 붙여진 게 아닌가 보다.

학교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학생들은 바다를 보면서 공부를 할 수 있어 좋겠다. 학교 옆 오솔길을 따라 올라간다. 동도와 서도를 연결하려는 다리공사가 한창이다. 교각이 바다에 우뚝 서 있다. 거문도로 들어오는 입구에 관문처럼 다리를 놓는다. 물빛이 검푸르다. 동도와 서도가 마주보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큰 나무가 없는 초원이다. 그 사이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산책로는 난간이 있고 박석이 깔렸다.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난다. 섬 능선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는 바람을 맞는다. 바다 향을 가득 담은 바람이 온 몸을 감싼다. 풀들이 바람을 맞으며 눕는다. 보랏빛 쑥부쟁이와 노란 고들빼기가 풀빛이 가득한 섬을 알록달록 예쁘게 꾸며놓았다.

쑥부쟁이가 핀 초원. 녹산등대 가는 길에서 바라본 바다.
 쑥부쟁이가 핀 초원. 녹산등대 가는 길에서 바라본 바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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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인어라는 '신지끼'. 녹산등대 가는 길에 있다.
 거문도 인어라는 '신지끼'. 녹산등대 가는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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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인어라는 '신지끼'가 초승달을 걸쳐 앉은 모습으로 반긴다. 태풍이나 거센 바람이 불어오면 돌멩이를 던져 위험을 알렸다고 전해온다. 인어공주를 닮은 모습이 짝퉁 같은 느낌을 준다. 조금 아쉬움.

산책로 끝에는 등대가 섰다.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거문도 북단이다. 등대 옆 긴 의자에 앉아 잠시 쉰다. 이생진 시인은 이곳에서 서서 "고독은 일종의 알레르기성 질환인가"라고 읊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등대와 마주하면 외로움을 느낀다.

산길은 갈 수 없단다, 해안길을 따라서

녹산등대에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서도가 길게 늘어섰다. 거문도 종주는 녹산등대에서 다시 시작한다. 등대를 터벅터벅 내려선다. 바람을 맞으며 초원을 걷는다. 산책로는 시멘트 포장길과 만나고 장촌마을 골목으로 이어진다.

골목을 빠져 나오면 배에서 내렸던 선착장이다. 예전에 이곳에 막걸리로 유명한 '할매집'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다 마을 분에게 물었다.

"막걸리 파는 집 없어요?"
"할매집?"
"예."
"할머니가 아파서 이제 장사 안 해."

무척 서운하다. 잠시 막걸리 한잔 하면서 쉬어가려고 했는데…. 섬마을은 나이가 많은 분들이 자리를 비우면 채워줄 사람이 없다. 아쉬운 마음에 슈퍼에서 막걸리 한 병을 샀다.

녹산등대에서 바라본 거문도 풍경. 잘록한 곳이 장촌마을이다.
 녹산등대에서 바라본 거문도 풍경. 잘록한 곳이 장촌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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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 해안길을 걸으면서 보는 풍경.
 서도 해안길을 걸으면서 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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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서도를 걸어보려고 할 때는 산길로만 가고 싶었다. 그러나 등산로 정보를 찾다보니 산길은 오랜 동안 정비를 하지 않아 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변촌마을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산길로 올라서기로 했다.

해안을 따라가는 길은 맑은 바다를 본다. 거문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맑은 물빛이다. 모래가 물결에 따라 밀려가고 물 속 돌멩이들이 그대로 보인다. 작은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해안도로지만 오르막길도 있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감싼다. 오르막을 내려서면 변촌마을이다.

변촌마을에서 산길로 오르려고 마을로 들어섰다. 담장에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던 아저씨에게 등산로를 물었더니, "저 교회 뒤로 산길이 있는 디, 지금은 못가. 풀이 길어서"라며, 풀이 무성하다는 손짓을 하면서 웬만하면 가지 말라는 표정이다. 고민이다. 무리한 산행을 하고 싶지 않다. 가을이라 뱀도 많다는데….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었다. 배가 고프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도로변에서 먹을 수가 없다. 해안을 따라 길을 더 걸었다. 마침 쉼터가 있어 준비해운 점심을 펼쳤다. 바다를 보면서 먹는 점심이다. 장촌마을에서 산 막걸리도 한잔 한다. 바닷바람을 가득 담은 막걸리가 목 줄기를 타고 넘어간다.

불탄봉 오르는 길, 몰랑길이라고 알랑가 몰라

덕촌마을에는 해군부대가 있다. 해군부대 맞은편으로 등산로 표지판이 있다. 불탄봉까지 0.7㎞를 알려준다. 골목길을 지나 산길로 올라선다. 능선으로 올라서서 한참을 간다. 터널 같은 숲길을 지나면 산마루가 나온다. 불탄봉 정상을 알리는 팻말이 걸렸다. 거문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도 있다.

불탄봉에서 본 거문도 풍경
 불탄봉에서 본 거문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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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으로 들여다본다. 멀리 수평선 위로 일렬로 솟은 백도는 마치 사나운 맹수의 이빨처럼 보인다. 거문도를 올 때는 백도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유람선이 문제다. 배 멀미로 여객선에서 시달렸는데 다시 유람선을 타고 싶지는 않았다.

불탄봉에는 일제침략기에 만들어진 구조물이 있다. 벙커 같은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곳을 지나가는 배들을 관측하기 위한 관측소란다. 지금도 거문도 앞 바다는 부산과 목포를 연결하는 화물선들의 주요 교통로다. 관측소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박쥐 한 마리가 천정에 매달려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놀라서 날개를 파닥인다.

불탄봉에서 보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억새가 은빛으로 하늘거린다. 이제 막 피어나는 억새는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섬에게 만나는 억새길은 매력이 넘친다. 바다와 억새.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나름 잘 어울린다.

억새가 핀 산길. 불탄봉에서 보로봉으로 가는 길. 바다 위 초원을 걷는다.
 억새가 핀 산길. 불탄봉에서 보로봉으로 가는 길. 바다 위 초원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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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숲으로 터널을 이룬 길. 불탄봉에서 보로봉 가는 길
 동백나무 숲으로 터널을 이룬 길. 불탄봉에서 보로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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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몰랑이 있는 몰랑길. 바다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걷는다.
 기와집몰랑이 있는 몰랑길. 바다를 발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걷는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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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정비가 되어 있다. 박석을 깔아 놓기도 하고 오랫동안 다져진 산길은 걷기에 좋다. 동백나무 숲길은 시원하고, 숲길을 나오면 억새가 하늘거리는 따사로운 산길이 반복된다. '기와집몰랑'이 있는 능선길은 바다 위를 걸어가는 느낌이다. 발아래로 바다가 넘실거린다.

바다에서 봤을 때 마치 기와집처럼 보인대서 기와집몰랑이라고 했단다. '몰랑'이라는 어감이 참 좋다. 몰랑은 거문도 사람들이 산마루를 부르는 말이란다. 금오도에는 비렁길이 있는데, 거문도에는 몰랑길이라고 부르면 좋겠다.

산길은 이제 내리막이다. 신선바위가 커다랗게 서있고 들쭉날쭉한 해안선이 이어지더니 그 끝에 하얀 등대가 섰다. 신선바위는 올라갈 수 있다고 하지만 올라가지 않았다. 이곳이 거문도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 것 같다. 신선바위와 어울린 해안선, 그리고 하얀 등대.

거문도 등대가 있는 거문도 남단. 뾰족한 산이 수월봉이다.
 거문도 등대가 있는 거문도 남단. 뾰족한 산이 수월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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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지났다. 등대를 갔다 오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거문도 등대로 건너가는 '목넘어'에서 바다를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뱃시간을 맞추려면 더 이상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한 시간 이상이 남아 충분할 것도 같지만 다리가 많이 힘들다.

덧붙이는 글 | 거문도 운항 여객선은 여수 출발 07:40 13:40(동절기 13:00), 36,600원, 거문도 출발 10:30, 16:30(동절기 15:30), 36,100원
예약이나 자세한 운항계획은 선사에 문의(청해진해운 663-2824, 오션호프해운 662-0773)



태그:#거문도, #녹산등대, #불탄봉, #거문도등대, #거문도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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