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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길을 떠나고자 했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었다. 어렵사리 장만한 디지털 카메라로 먼지 낀 도시의 인공적 조형물들을 촬영하는 건 렌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길 떠날 궁리만 하다가 문득 생각 난 곳이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는 섬, 거금도였다.

그곳은 바로 장모님의 고향이자 아내의 외할머니 댁이 있는 곳. 하지만 차로 가도 거의 반나절이 걸리는 그곳까지 출사를 나간다는 것은 명분으로써는 매우 빈약했다. 더구나 '사진 몇 장 찍으러 그 멀리까지? 당신 사진 찍는 동안 나는 애 둘 보고 있으라고?' 정도의 격앙된 반응은 결혼 3년차 이상이면 돌멩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수준. 이러한 반응을 사전에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는 지략이 필요했다.

뭐가 좋을까? 그래, 장모님의 고향 방문. 이 보다 더 확실하고 결정적인 신의 한 수는 없다. 작년에 장모님의 어머니, 즉 아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장모님께서 고향에 내려가실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고(서울에서 차로 여섯 시간 걸림), 이번 기회에 사위로서 기특한 일 한 번 하자는 명분이면 아내도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거기에 두 아이들은 장모님과 아내가 한 녀석씩만 맡아준다면 난 그저 무탈하게 사진 촬영에만 전념할 수 있다! 기가 막힌 묘책을 삼일에 걸쳐 다듬었다. 와룡선생도 울고 갈 책략이 거부 될 리는 당연히 없었다.

소록도 아래쪽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 거금도

가을 들판에 파랗게 자라나는 비름 나물
 가을 들판에 파랗게 자라나는 비름 나물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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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직전까지는 나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스케줄 조정이며, 사진 촬영 연습 등등. 장모님께서 트렁크 가득히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어머님?"
"예전에 엄마한테 갈 때 싸가던 것이 습관이 돼서 빈 손으로 가기가 좀 거시기 허네, 가서 생전에 친하게 지내시던 이웃들도 좀 나눠 주고…."

엄마라… 그랬구나, 우리 장모님에게도 엄마가 있었구나, 엄마 없는 고향집에 가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었구나. 곁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아내는 진즉에 눈치 못 챘냐는 표정으로 살짝 눈을 흘겼다. 그 순간, 나는 이 여행의 취지가 180도 바뀔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건 사진 촬영을 위한 단순한 길 떠나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아내의 엄마가, 그 엄마의 엄마가 작년까지 살고 계시던 고향집에, 시집보낸 지 5년이 넘은 자신의 딸과 함께 찾아가는 일종의 성지순례 비슷한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이 여행의 본질이 될 터였다.

상황을 비교적 빨리 파악하고 나자,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언젠가 나도 엄마가 안 계신 고향집을 찾아갈텐데, 엄마처럼 반겨주는 이 없이 빈 집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래서 장모님과 아내의 여정을 조심스럽게 뒤쫓아가보기로 했다. 따라서 이 여행기는 단조로운 시선의 이동과 감정의 미세한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지 그 흔한 맛집 소개나 관광지 소개 등은 전혀 없다. 그저 어느 모녀의 외출을 뒤따라간 소소한 기록이라고나 할까?

일찌감치 장모님께서 챙겨주신 아침상 받아먹고 차에 오른다. 내비게이션 상의 거리만으로도 5시간 남짓 걸리는 전남 고흥 반도의 섬 아닌 섬, 거금도. 거금도라는 명칭은 예전에 커다란 금맥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록도 하면 금세 알아차리지만 거금도 하면 어디 붙어있는 섬인가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데, 바로 소록도 아래쪽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큰 섬이 거금도이다. 2011년에 거금대교가 완공됨으로써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되어 버렸지만 아직까지 개발이라는 어둠의 손길이 많이 뻗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섬으로 남아있다.

거금도에서 바라본 거금대교와 소록도
 거금도에서 바라본 거금대교와 소록도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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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부터 집에서 멀어져 간 막내딸이다 보니 떨어져 산 지가, 15년이 다 되어 간다. 명절 때나 가족행사 때 말고는 얼굴보기 힘든 막둥이다. 어릴 적부터 차만 타면 잠이 드는 체질이었는데, 사내 아이 둘 낳고 난 뒤로는 녀석들 등쌀에 눈도 못 붙인다고 이래저래 안타까워 하신다. 손주도 좋긴 하지만 막내딸만큼은 아닌가보다.

20여년간 온몸의 관절이 골병이 들도록 분식집 하셔서 어렵게 박사까지 만들었는데, 사위 녀석이 휙 채가서 얼굴 보기도 힘들게 경상도 땅으로 가버린 것에 대한 원망 아닌 원망도 섞여 있을 것이다. 뒷통수의 뜨끔거림을 약간 의식하긴 했지만, 어쩌랴, 사위 사랑은 장모고, 한편으로 사위는 백년손님처럼 어려운 존재인 것을. 그저 묵묵히 기사 역할에 충실할 뿐.

도로 사정이 많이 좋아져서 4시간 반 만에 녹동항에 도착하고 보니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다. 거금대교가 놓아지기 전에는 이곳 녹동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를 거쳐서 거금도로 들어가야 했다. 자칫 배 시간을 놓치면 코앞에 고향집 놔두고 녹동에서 하루 자고 들어가야 했다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장모님의 손길에 이끌려 허름한 백반집으로 들어간다.

사위가 그 정도 능력은 된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회나 한 접시 하자고 사정해도, 만날 먹는 밥 한 끼, 배만 부르면 된다며 끌고 들어가신 항구 근처 작은 식당. 내가 유달리 남도 특히 전남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먹거리 때문이다. 그렇게 끌려간 허름한 식당이 여타 지역의 한정식 집보다 푸짐한 상차림이라는 것. 맛 집 소개할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식당 앞 김칫거리 다듬어 놓은 사진 한 장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쌀로 밀가루 풀을 대신한 남도 특유의 열무김치거리.

다듬어진 열무김치거리
 다듬어진 열무김치거리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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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목적지인 거금도를 찾아 나선다. 소록대교와 거금대교를 지나 거금도로 향하는 길은 하늘과 바다가 일란성 쌍둥이처럼 서로의 쪽빛을 시샘하며 경쟁적으로 푸르러 가는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 바닷가 특유의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코스모스에 몸을 실어서는, 버선발로 뛰어 나오시던 외할머니를 대신하여 우리를 반가이 맞이한다. 곧장 외할머니가 계시던 생가로 가자고 하신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자물쇠 하나가 빈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근처에선 보기 드문 돌담집에, 거의가 쓰러져가는 움막 형태였지만, 외할머니 살아 계실 적에 증 손주들까지 와서 며칠씩 쉬어가도 끄떡없던 집이다. 굳게 닫힌 방문이 주는 적막함과는 달리, 앞 뒷마당에 심어 놓은 감나무와 귤나무, 대추나무는 계절의 햇살과 바람을 듬뿍 머금은 열매를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고는 마실 나간 주인을 여태껏 기다리고 있다.

외할머니 살아 계실 적에 증 손주들까지 와서 며칠씩 쉬어가도 끄떡없던 집

돌담 앞에 포즈 취한 큰 아들
 돌담 앞에 포즈 취한 큰 아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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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네가 양파 밭에 햇볕 안 든다고 이짝에 있는 나무들을 죄다 벼 버렸단다."

나무를 베어 버린 외할머니에 대한 불만인지, 이러한 푸념조차 들을 수 없는 어미에 대한 그리움인지, 알 듯 모를 듯한 말 몇 마디가 마당가를 둘러 보며 내뱉으신 유일한 말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시더니 섬 한 바퀴를 돌자고 하신다. 묵묵히 운전대를 잡으며, 장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해안도로에서 바라 본 거금도 앞 바다
 해안도로에서 바라 본 거금도 앞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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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집이란 어떤 느낌이었을까? 옹알이 하던 아기 때부터 눈 감는 그날까지 엄마라는 존재는 그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가슴 뭉클한 존재인 것을, 그 빈자리를 쓸어 담는 자식의 마음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룸미러에 비치는 창밖을 향한 장모님의 눈빛 속에는 만가지 감정이 교차되는 듯하다. 그리움, 원망, 후회, 다시 그리움. 만 가지의 감정이 추스러진 그 자리엔 평온함이 깃들 것이다. 마음 속으로 '엄마, 저 왔어요, 똑같네요, 여긴'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전해지는 것 같아서, 애써 시선을 거둔다.

거금도에는 해안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서 차로 섬 전체를 돌아보기가 수월하다. 3년 전 여름, 처가 식구들과 외할머니 모시고 갔던 익금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10월에 접어든 지 3일째라서 해수욕장에는 인적이 끊겼고 손톱만한 게들만 분주하다. 백사장 위를 막내딸과 손주들과 거니는 장모님의 모습에서 꽃처럼 아리따웠던 섬 소녀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드문드문 보이는 주인 없는 섬들이 아니었다면 하늘과 바다의 구분은 신조차 망설였을 법하고, 바다가 씻어간 흰 백사장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엄마와 그 엄마의 엄마로 가득 채워졌다.

익금 해수욕장에서 장모님, 아내, 아이들
 익금 해수욕장에서 장모님, 아내, 아이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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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얼대는 아이들을 재울 겸, 외할머니 살아 생전 돌봐주셨던 장모님의 먼 친척 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 저녁 신세질 요량이다.

"빈 방 많은 디 머시가 펜션이다냐, 에로버하지말고 내집 맨키로 푹쉬엇다 가그라."

머리가 허옇게 센 할아버지께서 뱉어 내시는 걸쭉한 사투리가 낯선 곳에 대한 경계심을 일순간에 녹여버린다. 아이들이 잠들기 바쁘게 동네 마실 떠나는 두 모녀와 그 모습을 담기 위해 그 뒤를 쫓는 나와 카메라. 마을 구석구석까지 시멘트 길이 깔리고, 현대식 슬레이트 지붕이 기와를 대체해도, 호박 넝쿨에 수세미가 매달린 돌담은 군데 군데 살아남아, '여기가 바로 자네의 고향이라네, 인자 쪼까 알아보겄는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시골길 걷는 모녀
 시골길 걷는 모녀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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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장모님과 아내의 대화를 엿듣지는 못했기에 친정엄마와 막내 딸 사이에 오고간 살가운 대화 내용은 알 수 없다. 당연히 몇 걸음 뒤로 빠져 있어야 하는 일이고, 그저 그녀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의 내 몫이라 생각되었기에. 예전에 살던 동네 터부터 은퇴한 어느 회사 중역의 정원이 꾸며지는 집을 거쳐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계신 마을 어귀까지. 한 시간에 걸친 마을 길 걷기는 아내와 장모님의 떨어져 있던 15년이라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흩어버렸으리라.

고향 시골길 걷는 모녀
 고향 시골길 걷는 모녀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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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베느라 낮 시간 동안 땀 뻘뻘 흘리셨을 삼촌 할머니는, 어느새 그렇게 한 상 가득 준비하셨는지 모르게 남도 한정식 수준의 밥상을 준비하셨고, 밥 맛 느껴본 오래된 이몽룡이 씌인 것마냥 밥그릇을 비워나갔다. 거금도의 밤하늘은 품안 가득히 별을 안고 잠이 들었고, 가끔씩 칭얼대는 아이들과 어우러져 고향집의 가을 밤은 깊어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상을 물리고 두 모녀는 어제부터 계획했던 일인양 커다란 비닐 봉지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는 마치 은행이라도 털 기세로 대추를 털러 간다. 뒤늦게 아이들을 데리고 따라 나서 보니 이건 뭐, 당장 지붕 위라도 오를 분위기다. 어제의 훈훈하던 고향 길 대화가 설마 대추 털기 위한 사전 모의는 아니었던가? 사진에 담고 보니 아이들과 더불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친정엄마와 막내딸의 모습이다.

거금도 나들이에서 장모님과 아내가 대추 터는 장면.
 거금도 나들이에서 장모님과 아내가 대추 터는 장면.
ⓒ 이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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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대기로 대추 가지를 끌어 당기고, 당겨진 가지에서 한 톨 남김 없이 대추를 따내는 호흡도 척척이다. 이 정도면 아내의 똑순이 기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지나가던 이도 단박에 알아차리겠다. 봉지 가득 대추가 쌓여가고, 두 모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가고, 그렇게 고향 산천 배경으로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가는 두 모녀의 모습. 이렇다 할 대화가 없어도 손발이 딱 맞아 떨어지는 두 모녀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 것 자체만으로 이번 여행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었다.

엄마의 엄마가 살던 고향집... 비록 그 엄마는 흙으로 돌아가셨지만

다음날 아내의 일정 때문에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거금도를 떠나야 했다. 올 때의 짐보다 두 배는 많은 보따리를 실어주시며, "조만간 또 놀러 오니라, 먹잘 건 읎어도 쌀은 많다" 라고 웃음 지어주시며 친 손자 대하듯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순수하기 그지없다. 순박한 고향의 인심이 쉬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더불어 처음 보는 방아깨비를 조심스레 쥐고는 신기해하던 도시 촌놈들의 자연에 대한 기억들, 인스턴트와 외식에 길들여진 입맛에 무한한 감동으로 다가온 시골 집 밥의 절묘한 맛, 거금도의 시간은 도시에서만 자란 나에게 동경과도 같던 시골 할아버지와 시골집을 현실로 만들어 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엄마의 엄마가 살던 고향집. 비록 그 엄마는 이제 흙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엄마의 딸과 그 딸의 딸들은, 냉장고 가득히 쟁여놨다가 한 번씩 내려올 때 마다 보따리 그득하게 챙겨주던 엄마의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고, 그 마음은 장소가 바뀌고 시간이 흐른다 해도 쉽게 변할 성질의 것은 아닌 것이다. 적어도 이 땅위에 친정엄마와 딸의 관계가 지속되는 한, 엄마는 내 마음 깊은 곳 추억의 고향 속에 늘 살아계시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엄마가 계시던 아니던 간에 그녀를 떠올릴 수 있는 고향집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배우고 돌아왔다.

"느그 언니랑 나이 차가 많아 가지고, 낳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어찌혀서 낳았는디, 니가 잘 커서 부모 기 살려주고, 요렇게 고향 구경까지 시켜주니께 참말로 좋다, 참말로 좋아…."

돌아 오는 길, 모두 잠든 틈을 타서 혼잣말처럼 내뱉으시던 장모님의 마지막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내 고향집 뒷 뜰의 해바라기 울타리에 기대어 자고담 너머 논둑길로 황소마차 덜컹거리며 지나가고무너진 장독대 틈 사이난장이 채송화 피우려푸석한 스레트 지붕위로 햇살이 비쳐 오겠지에헤 에헤야, 아침이 올게야에헤 에헤야, 내 고향 집 가세 - 정태춘, 박은옥 "고향 집 가세"


태그:#거금도, #익금해수욕장, #고향길, #거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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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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