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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은 진득하다. 무리지어 사람의 눈을 홀리지 않고, 각자 산과 들에 오롯이 피어있다. 무리지어 피는 코스모스조차도 각기 색을 달리하여 각자의 개성을 한껏 발산한다. 이와 달리 봄꽃은 무리지어 핀다. 그리곤 성미 급한 현대인처럼 하룻밤에 사라진다. 국화와 벚꽃이 가을꽃과 봄꽃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하다. 무서리에도 굳건하게 피어 있는 국화, 반면 온 천지를 꽃밭으로 만들어 놓았다가도 하룻밤 잠깐 내린 봄비에 모두 사라지는 벚꽃.

안면도 77번 국도에 핀 코스모스 안면도 77번 국도에 핀 코스모스
▲ 안면도 77번 국도에 핀 코스모스 안면도 77번 국도에 핀 코스모스
ⓒ 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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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자연이 피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다. 사람도 꽃처럼 봄엔 희망에 들떠있고, 가을엔 자신을 되돌아보며 진지해 진다. 가을이다. 치열한 삶 속에서 잠시 잊고 있던 자신을 찾기에 알맞은 계절이다. 한적한 곳, 가을의 기품을 느낄 수 있는 곳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이런 마음을 달래고자 10월 4일에 안면암에 다녀왔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안면암이 있다. 서서울 톨게이트에서 안면암까지 약 150km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홍성톨게이트로 빠져나와 20여 분 달리다 보면 시원하게 뚫린 도로가 나온다. 서산 AB지구방조제 위로 난 도로다. 어느 쪽이 바다이고 어느 쪽이 호수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드넓다. 그렇게 20여 분 달리다보면 안면도와 육지를 잇는 연육교가 있다.

안면도하면 꽃이 떠오를 것이다. 이는 2002년 국제 꽃박람회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꽃 관련 축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안면도 입구인 태안군 남면에 꽃 상설 전시장을 마련하여 사시사철 꽃 축제를 한다. 지금은 오색 다알리라 축제를 하고 있었다.

오색꽃축제 안면도 입구인 태안 남면에서 개최하는 꽃축제
▲ 오색꽃축제 안면도 입구인 태안 남면에서 개최하는 꽃축제
ⓒ 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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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끈하게 뻣은 안면도 소나무

연육교를 지나 10여 분 정도 지나면 좌측으로 안면암 이정표가 있다. 안면암 진입로 양 옆으로 소나무가 울창하다. 안면도 소나무는 조선시대부터 궁궐 짓는데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여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근심 없이 자란 소나무다. 뒤틀림 없이 미끈하다.

들을 푸르게 물들였던 벼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노르스름하게 고개를 숙였다. 선선한 바람에 산과 들이 겨울준비 하느라 색들이 변하고 있다. 진녹색의 소나무가 돋보인다. 이제부터 내가 숲을 지배하리라 하면서 거만하게 서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나의 마음이고 소나무는 사시사철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렇게 서 있었다. 변하는 것은 그들의 곁에 있던 나무와 풀 그리고 나의 마음뿐이다. 10여 분 정도 양 옆으로 호위하는 소나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안면암이 있다.

안면도 소나무 숲 안면암 입구의 소나무 숲
▲ 안면도 소나무 숲 안면암 입구의 소나무 숲
ⓒ 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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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암의 첫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웅장하다. 안면암은 암자이다. 암자는 큰 절에 딸린 작은 절로 예전에는 주로 스님들이 공부를 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웅장하게 느끼는 이유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맞이하는 거대한 7층 탑 때문이다. 암자와 어울리지 않는 탑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탑 형식이 아니었다. 이국적인 느낌이 확 풍겼다. 암자 입구에 금강역사와 8부신장 석상이 서 있었다. 이 또한 일반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배치다. 그 뿐만이 아니다. 건물들도 다른 절처럼 목재나 석재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신에 콘크리트로 화려하게 멋을 냈다. 신세대 암자다.

안면암 7층 탑 안면암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 안면암 7층 탑 안면암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 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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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암 대웅전은 2층에 있다. 대웅전이 있는 건물은 앞에서 보면 3층이고, 뒤에서 보면 4층이다. 가파른 언덕에 지었고, 언덕은 곧바로 바다와 이어졌다. 2층에 오르면 왜 대웅전을 이곳에 안치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맑은 가을날임에도 드넓은 바다의 끝이 가물거린다. 마음까지 확 트인다. 그리고 안면암의 명물인 부상교가 마치 바다의 용처럼 떠있다.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시선은 나의 내면을 향한다. 왜 그다지도 모질게 살아왔는가. 묻고 묻고 또 나에게 묻는다. 물론 답을 찾을 수 없지만.

안면암 대웅전에서 바라본 바다 안면암 대웅전에서 바라본 바다와 부상교
▲ 안면암 대웅전에서 바라본 바다 안면암 대웅전에서 바라본 바다와 부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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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내려갔다. 부상교를 걸으면 흔들린다. 몸이 흔들리면 마음까지 흔들린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찰랑거리는 바닷물이 보인다. 혼자 걷기에는 아까운 다리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걸으면 저절로 사랑이 깊어질 듯하다. 무서움에 두 손 꼭 잡고 걷기 때문이다.

부상교에 적힌 글귀 "닭이 알을 낳고, 알이 닭이 되고, 다시 알 낳는 반복이 끝이 없듯이, 시간의 시종을 못 잡는다."
▲ 부상교에 적힌 글귀 "닭이 알을 낳고, 알이 닭이 되고, 다시 알 낳는 반복이 끝이 없듯이, 시간의 시종을 못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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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금만 주변을 유심히 보면, 부상교는 혼자 걷는 곳이라는 것을 금방 깨우친다. 안전 줄을 설치하기 위해 세운 수많은 나무마다 속세에 혼탁해진 마음을 확 깨우는 글귀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걷다보면 내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워지고, 살아갈 날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든 끝이 있는 것, 그렇게 다리를 걷다가 끝에서 아쉬움에 되돌아보면, 웅장한 안면암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면암의 부상교는 훌륭한 인생 스토리텔러에 의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물위에 뜬 불완전한 다리 위를 걷는 것. 그리고 그 두려움을 잊고 계속 걷게 하는 글귀들. 그렇게 걷고 걸어서 도착한 끝에서 되돌아본 웅장한 풍경을 보는 순간 '내 삶의 마지막도 이렇게 아름다웠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난다. 이보다 더 멋진 인생의 스토리텔링이 또 있을까. 안면암에 가면 부상교를 꼭 걸어라. 천~천~히.

안면암 전경 부상교 끝에서 돌아본 안면암
▲ 안면암 전경 부상교 끝에서 돌아본 안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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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암에 가면 반드시 보아야 할 장소가 있다. 대웅전 건물 뒤편으로 조그마한 동산이 있다. 바로 동자동산이다. 돌로 잘 다듬어진 동자들이 놀고 있는 동산이다. 그들 하나 하나 얼굴을 유심히 보면 모든 표정이 제각각이다. 웃는 동자, 화난 동자, 장난치는 동자, 고심하는 동자 등. 그리고 그 정상에는 삐딱하게 서 있는 볼품없는 탑이 하나 있다. 안면암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최고의 명당자리다. 탑을 쌓은 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내 평생 헤아려도 그 마음 읽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의 심신과 같이 볼품없이 불안하게 서 있는 탑이다. 이심이면 전심이라고 나의 마음을 탑에 전해준다. 올 여름 무사히 넘겼으니, 내년 여름에도 무사히.

동자동산 수십개의 동자석상이 있다.
▲ 동자동산 수십개의 동자석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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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산 정상의 삐딱이 탑 동자동산 정상의 삐딱이 탑
▲ 동자동산 정상의 삐딱이 탑 동자동산 정상의 삐딱이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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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산을 내려오다 보면 중턱에 거대한 석상이 있다. 약사여래불이다. 불교에서 중생의 모든 병을 고쳐주는 부처다. 얼굴이 다른 부처에 비해 갸름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현 시대의 염원을 담은 얼굴이다. 시대에 따라 부처의 얼굴도 변한다. 석상이니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먼 후일 그때 후손들이 이 석상을 보고 우리를 기억할 것이 분명하다.

약사여래불 안면암 약사여래상
▲ 약사여래불 안면암 약사여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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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유일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한 국가다. 발전 속도가 엄청나가 빨랐다는 것이다. 전쟁이후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주변을 챙길 틈이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민족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니 우리의 전통 문화를 찾고자 한다. 치열하게 살아온 마음도 달랠 겸.

온고지신(溫故知新)란 말이 있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터득한다는 뜻이다. 인류의 문명은 이러한 방법으로 끝없이 흘러간다. 현재가 역사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 문화는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것은 이어져 내려온 것을 말한다. 현재의 문화와 이어져 있지 않다면, 전통 문화라 할 수 없다. 이는 온고(溫故)만 있고 지신(知新)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러다가는 현재가 역사가 되는 먼 후일.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 깊은 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걱정은 안면암을 보고 말끔히 사라졌다. 물론 현재가 역사가 되는 시대가 되면 콘크리트로 지은 대웅전 건물과 부상교는 사라지더라도, 자유분방하게 노니는 동자상과 현시대 젊은이의 워너비인 갸름한 얼굴의 약사여래상, 그리고 특이하게 배치한 금강역사와 8부신장 석상은 남아 우리가 살아온 생활을 그들에게 알려 줄 것이다. 2013년 10월 4일에 살던 우리의 선조들은 소녀시대와 2PM을 좋아했었다고.

어미와 자식 어미개와 강아지가 즐겁게 놀고 있다. 이보다 더 평화스러운 풍경은 없으리라.
▲ 어미와 자식 어미개와 강아지가 즐겁게 놀고 있다. 이보다 더 평화스러운 풍경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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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명 스님과 안면도
석지명 스님 .
▲ 석지명 스님 .
ⓒ 석지명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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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로, 석지명 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이 1998년 안면도 해안가에 지은 절이다. 석지명 스님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대학교에서 종교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주사 주지와 조계종 중앙총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무로 바라보기"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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