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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라서 늦게까지 자도 괜찮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들었나 보다. 일어나 보니 시계는 오전 8시를 지나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늘 석모도에 간다고 했는데,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10시 배를 탄다면서 늦어도 9시 50분까지는 선착장에 꼭 나오라고 친구는 당부를 했었다.

아침상을 차리면서도 마음은 저울질을 한다. 지금 나서도 늦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갈까 말까 속으로 궁리를 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전날 밤에 늦도록 뭘 하느라 잠을 얼마 못 잤기 때문에 집에서 그냥 쉬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석모도바람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물이 빠지면 붉은 해홍초들이 갯벌을 가득 채웁니다.
 물이 빠지면 붉은 해홍초들이 갯벌을 가득 채웁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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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4년 이상 '강화 나들길'을 걸었으니 어지간한 길은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어떤 길은 열손가락으로 꼽으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이 걸었다. 더구나 십여 년 전에 걸어서 강화일주를 두 번씩이나 했을 만큼 걷는 문화를 일찍 접했는데도 '석모도 바람길'은 연이 닿지 않았다. 가까이 있는 섬인데도 바람길은 늘 나를 피해갔다.

바람길은 나를 피해갔다

석모도의 길을 걷지 않았던 건 아니다. 일주를 하다시피 섬을 샅샅이 걸었지만 나들길 코스로 지정이 된 '바람길'을 걸어보지 않았던 것뿐이다. 정식 코스로 지정이 된 길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걸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나들길 전 코스를 다 완주한 것은 아니니 누구에게 내놓고 나들길을 다 아는 양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석모도 바람길 걷기에 따라나서기로 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은 조금 흐렸지만 이런 날이 오히려 걷기에는 더 좋다. 혹시 비가 온다고 하더라도 잠깐 지나가는 비 일 테니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래서 서둘러 차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석모도는 본섬인 강화도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바다가 길을 막고 있어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원래 강화도와 석모도는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고려 시대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오랜 세월을 두고 바다를 메워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강화도와 석모도를 연결해서 한 개의 섬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두 섬 사이를 흐르는 바닷물이 거세어서 메우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현대의 기술은 그 세찬 바닷물조차도 굴복을 시킨다. 조만간에 두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인다고 하니 머잖아 석모도는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될 것이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로 갑니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로 갑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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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에 도착하니 선착장 부근의 길 가에서 햇과일들과 젓갈류들을 늘어놓고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말린 새우와 생선도 무더기로 쌓아놓고 덜어서 판다. 챙이 넓은 모자로 얼굴을 가렸지만 햇빛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모두 얼굴이 검붉다. 이리저리 손님들을 향해 눈길을 보내며 하나라도 물건을 더 팔려고 애를 쓰는 그들에게서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강화도는 과거부터 근세까지 수도인 한양을 지키는 최전방 방위선으로 섬 전체가 요새(要塞)나 마찬가지였다. 강화읍을 이중 삼중으로 두르고 있는 성벽들하며 바닷가의 수많은 진(陣)과 보(堡) 또 돈대(墩臺)가 이곳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나타내어 준다.

단단하고 강인한 강화녀(江華女)

강화도의 장정들은 그 많은 구조물들을 쌓고 만드는 부역에 동원되어 허리가 휘도록 일을 했을 것이다. 한 차례 전쟁이 휘몰아칠 때마다 전장에서 죽어간 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전화(戰禍)가 휩쓸고 지나간 잿더미 위에서 목숨줄을 부지하기란 또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그래서 그런 걸까, 강화의 여인들은 강인하다. 각종 부역과 군역에 동원된 남자를 대신하여 가정을 돌보고 자식을 키운 건 여자들이었을 것이다. 전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가려면 그녀들은 강해져야 했다. 그 강인한 유전자는 대를 이어 내려왔고, 지금 시대에도 강화 여인들은 억척같이 일을 해서 살림을 일으킨다.

바닷가 둑길에는 들꽃들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바닷가 둑길에는 들꽃들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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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강화 인근 지역에서는 강화 출신 며느리를 얻으면 가문을 번성시킨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강화 여자들이 생활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한 푼 돈도 허투루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제 파악이 빨라서 지혜롭게 처신을 잘 했다. 또 주관이 뚜렷해서 남의 이목에 끌려다니지도 않았다. 이처럼 단단하고 굳건하니 과연 가문을 일으킬 만하지 않겠는가.

집에서 농사지은 푸성귀를 벌여 놓고 손님을 부르는 할머니들에게서 강화의 힘을 보는 것 같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내 힘으로 벌어먹고 산다는 마음가짐으로 당당하게 사는 할머니들의 굽은 허리에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난전(亂廛)을 지나니 강화나들길의 안내 표지목이 보이고 바람이 왈칵 우리를 반겨준다. 바닷가 둑길을 따라 걷는 길이니 천지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과연 '바람길'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하다. 그러나 가을 햇살 아래라서 그런 걸까, 바람은 우리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지나간다. 마치 장난이라도 치는 양 왔다가 가고 또 찾아오기를 반복한다.

오전 내내 바닷가 둑길을 걸었다. 왼쪽으로는 갯벌이 넓게 가슴을 열고 있다. 썰물이 들어 저만큼 물러나 있지만 밀물이 들 때를 바다는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길 오른쪽으로는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다를 메운 땅이니 들이 얼마나 넓을 것인가. 그 논들은 바야흐로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는데 바닷가 둑과 맞닿아 있는 논들은 어인 일인지 잡초만 무성하다. 한 뼘 땅도 허투루 놀리지 않는 농부들이 어찌해서 저 논들은 묵혀 두는 것일까.

왼편으로는 바다, 오른편으로는 물이 가득 찬 수로가 있습니다. 수로 너머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들녘이 펼쳐집니다.
 왼편으로는 바다, 오른편으로는 물이 가득 찬 수로가 있습니다. 수로 너머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들녘이 펼쳐집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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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그 논들은 염전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석모도에서도 소금이 나왔는데 그 소금은 질이 좋아서 인근에서 부러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소금을 만들지 않고 그냥 맥없이 땅을 놀리고 있다. 쌀도 소금도 다 논에서 난다. 벼는 민물을 먹고 자라지만 소금은 바닷물을 내뱉어야 만들어진다. 하나는 물을 먹어 살을 찌우고 또 다른 하나는 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서 몸을 키운다. 그 둘은 쌍생아처럼 닮았다. 태양의 은총을 받아야 자랄 수 있는 점도 닮았고 하얀색으로 빛나는 점도 똑같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이 있는 귀한 작물이란 점도 또한 같다. 쌀이 없으면 사람들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것처럼 소금 역시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하다. 그렇게 중요한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이 어쩐 연유로 이리 무가치하게 놀고 있을까.

중생을 부처로 만드는 눈부처님

석모도의 염전은 골프장으로 개발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소문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놀고 있는 염전을 보니 그 말이 빈 말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골프장과 염전을 경제적 가치로 매긴다면 어느 게 더 중할까. 비중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골프장보다는 염전 쪽에 더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은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을 개발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연도 그 가치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당장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염전을 따라 길을 걸었다.

석모도의 낙가산 아래에는 보문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눈썹바위 부처님도 계십니다.
 석모도의 낙가산 아래에는 보문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눈썹바위 부처님도 계십니다.
ⓒ 박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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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는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눈썹바위 부처님이 계신 낙가산(落袈山)에 한참을 머물고 있다. 강화의 시인인 '함민복'은 눈썹바위라고 불리는 곳에 조성되어 있는 부처님을 보고 한 생각을 깨쳤다. 눈썹 밑은 눈동자이니 눈동자 바위에 새겨져 있는 부처님은 눈부처님이다. 상대방 눈동자에 상이 맺힌 내 모습이란 뜻의 눈부처. 내가 바라다보는 눈동자 바위에 내가 아니고 부처님이 보이다니, 그렇다면 내가 바로 부처가 아닌가. 눈부처님은 바라보는 일체 중생들을 다 부처로 만들어주신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도 바람에 나부끼는 잎새들도 다 부처님이다. 일체 중생이 다 부처임을 눈썹바위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가을 햇살 아래 바람과 함께 한 하루였다. 종일을 바람과 놀았으니 나도 바람처럼 좀 가벼워졌을까. 좋고 나쁘고의 구분을 짓고 경계를 만들어서 편을 갈랐다. 내 편이 아니면 눈 아래로 봤다. 쓸데없이 궁리하고 또 쓸모없는 것들까지 다 끌어안고 사느라 내 삶은 여백이 별로 없었다.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는데 내 속에는 탐욕이 가득 차있었다.

옹색한 내 마음자리를 바람이 좀 넓혀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좋고 나쁘고를 구분 짓지 않고 경계를 만들지 않는 너른 사람으로 살고 싶다. 너른 마음은 또 비운 마음이기도 할 터이니, 바람이 비워준 그 자리에 또 욕심이 가득 찰 지라도 그래도 지금은 좀 비워진 듯하다. 바람길에서 바람과 함께 걸은 덕분이다.


태그:#강화도, #강화나들길, #석모도,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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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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