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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7월 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 해명하던 중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소문에 대해 언급하며 "아무리 네거티브라 하더라도, 만약에 아이가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누가 그 애를 데리고 와도 좋다. 제가 유전자(DNA) 검사도 다 해주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어 박 대통령은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멀쩡하게 사는 애를 어디에 있다고 해서 만약에 그 애를 지목해서 누구 자손이니 어쩌니 하면 그 아이와 부모한테는 얼마나 날벼락 같은 얘기인가. 그것이야말로 천륜을 끊는 일"이라며 "정말 한탄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맞는 얘기다. 인권의 문제다.

"성폭행범이나 사용할 수법" 박 후보의 분노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강창희 국회의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 및 원내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해외순방 귀국보고 후 국회 사랑재에서 여야 대표와 3자회담을 갖는다.
▲ 강창희 국회의장 영접받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강창희 국회의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 및 원내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해외순방 귀국보고 후 국회 사랑재에서 여야 대표와 3자회담을 갖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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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토론 때의 일이다. 박근혜 당시 후보자는 국정원 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 "20대 여성의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경찰의 비상식적인 중간 수사 발표 후에는 "불쌍한 여직원은 결국 무죄"라며 "민주통합당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인권 유린에는 말이 없다"고 비판하였다.

선거 전 긴급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국정원 직원의 주소를 알아낸 것에 대해서는 "성폭행범이나 사용할 수법을 동원해 여직원의 주소를 알아냈다"고 했다. 비록 국정원 직원의 댓글 활동이 사실로 드러났고, 전 국정원장이 그 일로 기소된 상황이지만, 인권에 대한 박근혜 당시 후보자의 감수성은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논란을 잠재우는 최선의 방책으로 <조선일보>는 유전자 검사를 받으라고 진작부터 요구했고, <중앙일보> 이철호 논설위원도 유전자 검사부터 받으라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사실 관계를 밝히려면 유전자 검사는 혼외 자식으로 보도된 11살 아이를 누군가 데려다 해야 한다. 안 그래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살고 있을 어린아이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되어 온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1살 어린아이의 인권은 도대체 어디로 내팽개쳐 버린 것인가. 정치적 이득을 도모하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발가벗을 것을 요구하는 이런 사회는 너무하지 않은가. 천륜을 끊는다고 한탄하던 박근혜 전 후보의 장탄식은 어디로 갔나.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청와대는 혼외 아들 의혹 대상자의 혈액형을 확인했다고 한다. 11살 어린아이의 생체정보를 국가 권력 기관이 파악해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것은 아닌가? 불법 댓글을 달던 국정원 직원의 주소를 내부 정보자로 부터 알아낸 것을 "성폭행범이나 사용할 수법"이라고 비난하던 박근혜 전 후보의 분노는 어디로 갔나?

공직자 윤리 문제 '이중잣대'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법무부의 채동욱 총장 감찰 결정에 대해 "이 문제는 검찰의 독립성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 윤리의 문제"라고 하였다. 프랑스식으로 공직과 성생활을 구분 짓자는 의견도 있지만,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도덕성의 잣대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성, 가족과 관련된 공직자 윤리의 문제에 대해 엄격하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만 된다면 이런 문화가 좋다고도 할 수 있다.

공직자 윤리 문제를 제기한 청와대 홍보수석의 기사를 보고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떠올랐다. 지난 3월 <미디어스>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김학의 전 차관을 검찰총장에 임명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총장 후보 3배수에 들지 않아 검찰총장 임명이 불가능해지자, 그를 법무차관에 임명했다. 김학의 전 차관이 황교안 법무장관보다 고교 1년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차관이 장관의 고교 선배가 되는 법조계에서는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다. 황교안 장관은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바로 그 법무장관이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무리수를 두며 김학의를 법무차관에 임명한 이유는 박근혜 정부에서 김학의를 차기 총장 자리에 앉히고 싶어서였다. 채동욱 현 총장이 물러난 뒤 공석이 될 그 자리 말이다.

그런데 임명 당시에 청와대가 김학의 전차관의 성접대 의혹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정에 의해 엄격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있다.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집단난교 성접대 의혹을 받던 사람을 검찰총장에 앉히려고 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그런 정부에서 공직자 성윤리의 문제가 우선이라며 현직 검찰총장을 밀어내는 모습도 이해하기 어렵다.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민주주의 없는 선거

13일 오후 전격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자 검찰 관계자들이 나와 배웅하고 있다. 채 총장의 사의표명은 갑작스럽고 전례가 없는 법무부의 감찰 발표 직후 나온 것으로, 검찰총장이 더 이상 적절한 업무수행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채동욱 총장 배웅나온 검찰 간부들 13일 오후 전격 사의를 표명한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를 나서자 검찰 관계자들이 나와 배웅하고 있다. 채 총장의 사의표명은 갑작스럽고 전례가 없는 법무부의 감찰 발표 직후 나온 것으로, 검찰총장이 더 이상 적절한 업무수행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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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스>에 따르면 채동욱 총장 논란은 공직자의 성윤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감수성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국정원 댓글 수사를 둘러싼 정권과의 불편한 관계가 주원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채동욱 총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영장 청구라는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였지만, 황교안 법무장관은 선거법 적용과 구속 수사가 무리라며 반대했다. 결국 원세훈 전 원장은 불구속 기소되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국기 문란 사건이다. 나라마다 인권 감수성도 다르고, 나라마다 도덕성에 대한 잣대로 다르지만, 어떤 민주주의 국가도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을 용인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일을 생각하기 어렵고, 더욱이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이 드러났는데 이의 처벌을 방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중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이행을 이룩한 유일한 후발주자로 인식된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가 세계에 자랑하는 한국의 큰 두 가지 성과다. 하지만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이를 처벌하려는 정상적인 절차를 방해하는 일련의 과정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남들에게 자랑할 만큼 공고한지 의심하게 만든다.

선거를 통한 권력의 창출과 교체가 민주주의의 요체지만, 민주주의 없는 선거도 있다. 선거는 실시하지만 자유롭고, 공정하고, 경쟁이 보장된 선거는 아닌 체제. 지난주에 이윤경 교수가 소개한 혼합체제 (hybrid regime)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관련 기사 : 다른 생각이 처벌되는 사회... 광기를 끝내자).

이명박 정부 하에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하는 혼합 체제로 후퇴하고, 박근혜 정부 하에서 대한민국은 국정원 선거 개입을 처벌하려는 시도를 어린아이의 생체정보도 캐가며 무력화시키는 혼합체제로 공고화 되는 건가? 채동욱 논란을 바라보는 한 국외자의 시각은 걱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창환 교수는 미국 캔사스대학교 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채동욱, #혼합체제, #민주주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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