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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 사람에게 익숙해져 있는 걸까요? 아니면 오가는 이들이 잘 대접해서 사람과 너무 친해진 걸까요? 작고 연약한 동물이지만 사람이 해치지 않으리란 믿음은 분명히 있습니다.
▲ 믿음 이 녀석 사람에게 익숙해져 있는 걸까요? 아니면 오가는 이들이 잘 대접해서 사람과 너무 친해진 걸까요? 작고 연약한 동물이지만 사람이 해치지 않으리란 믿음은 분명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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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 "아빠, 다람쥐에요."
나 : "그래, 다람쥐구나."
둘째 : "아빠, 땅콩 줬더니 쫓아와요."
나 : "너무 가깝다. 조심해!"

가파른 경사가 장관인 설악산 금강굴에서 내려오는 길이었죠. 어디선가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둘째가 먹고 있던 땅콩 한 알을 던져줬습니다. 땅콩을 냉큼 집어든 다람쥐가 바위에 올라 맛있게 먹더군요. 다 먹은 후, 더 달라는 듯 둘째에게 다가왔습니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쫓아오더군요.

너무 적극적이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인심 좋은 둘째가 땅콩 한 알을 또 던져줬더니 녀석은 땅콩을 잽싸게 입에 넣고 잘근잘근 잘 씹어 삼키더군요.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도통 움직일 기미를 안 보입니다. 귀는 쫑긋 세우고 눈은 크게 뜬 채 의심 풀지 않고 경계하는데 두려움은 없더군요.

다람쥐는 애들에게 접근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잠자리도 매한가지였고요. 코 앞까지 다가가도 날아갈 생각을 않더군요. 이 동네 짐승들, 사람과 친한 건가요? 아니면 세상 물정 모르는 간 큰 짐승들인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고간 사람들 마음 씀씀이 때문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설악산 입구에서 아침을 맞습니다. 눈뜨기 참 편합니다. 머리는 맑고 코는 뻥 뚫렸습니다.
▲ 설악산 설악산 입구에서 아침을 맞습니다. 눈뜨기 참 편합니다. 머리는 맑고 코는 뻥 뚫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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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편은 굵은 바위와 푸른 숲이 잘 버무려져 있고 우편에는 녹색의 물결이 굽이쳐 흐르고 있습니다.
▲ 녹수청산 좌편은 굵은 바위와 푸른 숲이 잘 버무려져 있고 우편에는 녹색의 물결이 굽이쳐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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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바위와 푸른 숲이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 바위산 굵은 바위와 푸른 숲이 잘 버무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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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설악산 입구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눈뜨기가 참 편하더군요. 전날 강원도 화천에서 미시령 넘어 속초에 닿느라 오래도록 차를 몰았는데도 피곤함이 없었습니다. 머리는 맑고, 코가 뻥 뚫렸습니다. 지난밤에 푹 잔 덕분일까요? 아니면 공기가 너무 좋아서 일까요? 이유가 뭐든 상관없었습니다.

시원한 숲의 향기를 빨리 맡고 싶더군요. 아이들을 재촉해 일찍 산으로 향했습니다. 설악산은 바위가 참 많았습니다. 계곡물도 바위를 타고 흐르더군요. 덩치 큰 돌들이 산으로 향하는 길 옆에 늘어서 있었죠. 신기한 동물과 식물도 많았고요. 그 때문일까요. 이 산은 1965년 11월 5일 일찌감치 천연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됐더군요.

또, 5년 후인 1970년 3월 24일에는 국립공원으로도 지정됐고요. 1982년에는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설정됐고 2005년에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이 카테고리Ⅱ(국립공원)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명창들(?) 노랫소리와 멋진 풍경, 딱 맞아 떨어져

그늘 내려 더위 잘 가려진 조용한 숲길에서 세 아들 졸라 노래 한가락 들었습니다.
▲ 명창들(?) 그늘 내려 더위 잘 가려진 조용한 숲길에서 세 아들 졸라 노래 한가락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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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소나무는 어떻게 바위에 붙었을까요? 질긴 생명력을 봅니다.
▲ 소나무 저 소나무는 어떻게 바위에 붙었을까요? 질긴 생명력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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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비선대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길 되짚어 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내쳐 금강굴 보고 돌아올지 고민이 생깁니다.
▲ 탐방로 아름다운 비선대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길 되짚어 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내쳐 금강굴 보고 돌아올지 고민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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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수려하고 웅장한 설악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데 산은 시원했습니다. 숲길은 조용했습니다. 호젓한 길을 걷자니 아이들 노래가 생각납니다. 세 아들을 졸라 분위기에 맞는(?) 판소리 한 대목 들었죠. 노래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별주부가 축문 읽고 한곳을 바라보니, 건넌 산 바위틈에 묘한 짐승이 앉았다. 두 귀는 쫑긋 두 눈 도리도리 허리는 늘씬 꽁지는 잘록 좌편 청산이요 우편은 녹수라. 녹수청산에 해묵은 장송 휘늘어진 양유속" - 판소리 수궁가 중 '자라와 토끼가 만나는 대목 일부'를 명창(?)들 발음대로 옮겼습니다 

판소리와 설악산 풍경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나요? 왼편은 굵은 바위와 푸른 숲이 잘 버무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녹색의 물결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늘어지고 휘어진 소나무가 곳곳에 서 있었고요. 명창들(?) 노랫소리와 멋진 풍경을 정신없이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비선대에 닿더군요.

아름다운 비선대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길을 되짚어 내려가야 할 지 아니면 금강굴을 보고 돌아올 지 고민이 생기더군요. 산에서 내려오는 이들은 금강굴 안 보면 후회한다며 계속 걸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막내가 걱정이었죠. 경사가 급한 산길에서 잘 걷다가 갑자기 업어 달라고 졸라대면 난감하니까요.

이 악물고 올라간 금강굴, 크게 소리 한번 내지르려고 했는데...

산에서는 숫자만 믿고 걸으면 안됩니다. 기껏 600미터? 금강굴 오르는 길 경사가 장난 아니더군요. 깎아지른 암벽에 못 박고 연결한 쇠다리는 오금을 저리게 만들고요.
▲ 숫자 산에서는 숫자만 믿고 걸으면 안됩니다. 기껏 600미터? 금강굴 오르는 길 경사가 장난 아니더군요. 깎아지른 암벽에 못 박고 연결한 쇠다리는 오금을 저리게 만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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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듯 목표가 눈앞에 나타나면 가장 힘듭니다. 금강굴 훤히 보이는 곳까지 오니 경사가 더 심해집니다. 이 악물고 올랐습니다.
▲ 계단 항상 그렇듯 목표가 눈앞에 나타나면 가장 힘듭니다. 금강굴 훤히 보이는 곳까지 오니 경사가 더 심해집니다. 이 악물고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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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굴 올라 설악산 향해 소리 한번 크게 내지르려 했는데 이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 정숙 금강굴 올라 설악산 향해 소리 한번 크게 내지르려 했는데 이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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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아내와 상의를 했죠. 결론은 금강굴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쉽게 결정을 내리더군요.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산을 내려오면 그만이랍니다. 참 빠르고 쉽게 정리하네요. 또 하나의 조건은 금강굴까지의 거리였죠.

기껏 600미터라고 하더군요. 이쯤이야 동네 뒷산 가는 일처럼 쉽지 않을까요?  하지만 단순한 이 생각이 너무 위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금강굴 오르는 길,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요. 깎아지른 암벽에 못 박고 연결한 쇠다리는 오금을 저리게 했습니다.

절벽을 오르는데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고 마음 속에서는 별의 별 욕이 다 떠오르더군요. 이쯤 되니 오기가 생겼습니다. 막내를 안고 절벽 가운데 뚫린 커다란 구멍을 힐끗 바라봤죠. 그 후, 망설임 없이 납덩이처럼 무거운 다리를 열심히 옮겼습니다.

항상 그렇듯 목표가 눈앞에 나타나면 가장 힘들잖아요. 금강굴 훤히 보이는 곳까지 오니 경사가 더 심해지더군요. 이를 악물고 올랐습니다. 그렇게 금강굴에 도착했습니다. 굴 속에서 설악산을 향해 힘차게 소리 한번 지르려 했는데 근엄한 글씨가 눈에 확 띄더군요. 굴 입구에 '정숙'이라 써 붙여 놓았습니다.

굴로 들어오는 절벽 길은 속세와 인연을 끊게 만듭니다. 주변 경치는 공부하기 참 좋습니다. 원효대사도 이곳에서 공부했답니다.
▲ 깨달음 굴로 들어오는 절벽 길은 속세와 인연을 끊게 만듭니다. 주변 경치는 공부하기 참 좋습니다. 원효대사도 이곳에서 공부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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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큼 접근하다 달아나리라 생각했는데 걷는 발길 앞뒤로 오가며 쉬 떠나질 않습니다.
▲ 접근 웬만큼 접근하다 달아나리라 생각했는데 걷는 발길 앞뒤로 오가며 쉬 떠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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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기싸움한 녀석입니다. 아무리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도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 기싸움 저와 기싸움한 녀석입니다. 아무리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도 날아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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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경치만 구경했습니다. 하지만 힘든 산행의 대가는 참 달콤하더군요. 굴속에서 본 설악산, 한 폭의 그림이었죠. 하염없이 산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더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반질반질한 목탁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곳에서 공부하면 쉽게 도를 얻을까요?

알길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더군요. 굴로 들어오는 절벽 길과 주변 경치를 보면 공부하기 참 좋은 장소가 틀림없었죠. 그러기에 이 굴에서 원효대사도 공부했답니다. 그나저나 당시엔 쇠다리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굴로 들어왔을까요? 궁금증은 이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더군요.

머릿속에 한 아름 궁금증만 안고 산을 내려왔죠. 계단을 수없이 세며 다리품을 팔고 있는데 검은색 줄무늬가 선명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헌데 이 녀석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지 가까이 다가오잖아요. 웬만큼 접근하다 달아나리라 생각했는데 걷는 발길 앞뒤로 오가며 쉬 떠나질 않더군요. 호기심이 동한 둘째가 땅콩 하나를 던져줬죠.

반질반질한 목탁... 도 닦기 최적의 장소

깊은 산중, 위험천만한 절벽길 올라 세상 인연 끊고 공부 했던 사람들, 아름다운 땅 만들어 보려고 굴로 들어왔습니다.
▲ 득도 깊은 산중, 위험천만한 절벽길 올라 세상 인연 끊고 공부 했던 사람들, 아름다운 땅 만들어 보려고 굴로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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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길 없었지만, 분명한 건 산 속 짐승들이 사람을 너무 편하게 대하고 있었습니다. 작고 연약한 동물이지만, 사람이 해치지 않으리란 믿음 때문에 낯선 이에게 쉽게 다가왔겠죠. 그 모습을 보니 사람과 동물 사이에 많은 신뢰가 쌓인 듯해서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도 이런 관계가 넓게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깊은 산중, 위험천만한 금강굴에 들어가 세상 인연을 끊고 공부했던 사람들도 신의(信義) 넘치는 아름다운 땅을 만들어 보려고 그곳에 들어갔을 겁니다.    

두려워서 지키는 약속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마땅히 약속 지키는 사람들 많은 아름다운 세상이 그립습니다.
▲ 설악산 두려워서 지키는 약속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마땅히 약속 지키는 사람들 많은 아름다운 세상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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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설악산, #금강굴, #강원도, #속초시,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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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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