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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중순, 드디어 이사를 했다. 1970년대에 지어진 낡은 아파트이긴 하지만, 창으로 햇볕이 들어온다는 것만으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역시나 발품과 좋은 집은 비례한다. 내가 사는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타주의 파고(Fargo)라는 도시의 겨울은 매우 길다. 특히 6개월이 넘는 겨울 동안 햇볕 한 폄 볼 수 없었던 지난 번 그 북향집은 나를 매우 우울하게 했고, 그래서 이번 이사는 무조건 '남향'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사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챘다. 바로 이.동.수.단!

전에 살던 집은 남편 직장과 가까워 하루 두 번 이상 사무실에 가는 신랑은 아침은 물론 저녁 먹고 또 가끔 점심때도 집에 들러 식사를 하고는 휘리릭 '걸어서' 출근했다.

차고에 박힌 애장품을 다시 꺼낸 이유

다시 타게 된 접이식자전거
 다시 타게 된 접이식자전거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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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난 우리 집 유일한 자동차인 2008년 산 흰색 기아 옵티마로 학교도 가고 장도 보고 친구들을 만나러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이사 후 상황은 달라졌다. 탐탁하지 않아 하는 남편을 무시하고 이사를 밀어붙인 나는 조용히 자동차를 남편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의 왕국 미국에서 차 없이 다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새학기가 되면 약 5키로 정도 떨어진 학교도 가야하고 차로도 15분 이상 가야 하는 마트에서 무겁게 장을 보는 것도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고 차를 한 대 더 사는 건 우리 형편상 무리다.

남편은 학교 정도는 매일 데려다 줄 수 있다 했지만 방향이 전혀 반대인지라 좋은 생각 같아 보이지 않았고 이사 후 며칠되지 않아 차 없는 답답함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난 무슨 수를 내야 했다.

아, 맞다. 자.전.거!  

그 때, 차고에 박혀있던 자전거가 떠올랐다. 7년 전 술값을 모아 산 나의 애장품이지만 기아도 체인도 없는 접이식이라 오래 멀리 가는 건 불가능한 작은 바퀴의 스트라이다 자전거다.

하지만 난 이 놈을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 출근을 했고 자정이 넘은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 퇴근하곤 했다. 나름 경륜의 자전거이다. 난 구석에서 조용히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녀석을 꺼냈다.

에구. 못 본 사이 많이 상했구나. 타이어 바람도 헐렁하고 여기저기 삐걱거린다. 마른 걸레로 먼지를 닦아 준 후 기름 몇 방울을 떨궈주니 괴상한 소리는 훨씬 줄었다.

가까운 자전거포를 찾아 손을 보기로 했다. 자동차 수리점은 많이 아는데 과연 이 소도시에 자전거포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 파고엔 세 군데의 자전거 포가 있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그레이트 노던 바이시클'로 자전거를 끌고 갔다.

이 곳은 옛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특이한 형태의 자전거포로 나무로 된 실내엔 각양각색의 자전거와 부속들, 옷, 헬멧 등이 가지런히 전시돼 있었다. 뒷 타이어 안쪽 고무가 상해 갈고 이곳 저곳을 손봐줬는데, 11불 정도가 나왔다. 이 동네에선 처음 본 미니벨로라 꽤 낑낑거리며 고쳐준 품치고는 많지 않은 돈이라 난 지갑을 꺼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 뱉었다.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자전거포.
 기차역을 개조해 만든 자전거포.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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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이고 실력 있는 자전거포를 가까이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전거 생활이 매우 윤택해지기 때문이다. 소박하고 친절한 직원들이 손님들을 꾸준히 맞는 걸 보면 자전거 이용 인구도 어느 정도 될 듯 싶다.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난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 뱉는다.

도전, 바이커

타이어까지 손 봤으니 본격적인 시험 운전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하고 주변 탐방을 시작했는데, 역시나 명실상부한 자동차의 나라에서 자전거는 조심할게 매우 많았다. 집 주변 2차선 도로에선 길가에 들쑥날쑥 세워둔 차 때문에 인도를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시내 곳곳에 자전거길이 따로 그려져 있는 곳이 있지만 차와 거의 붙어 달려야 하고 끊어지는 데가 많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자전거 길에 자전거가 없으니 자연스레 차량 운전자의 배려도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인도에선 보행자들과 부딪치지 않게 정신 바짝 차리고 페달을 밟아야 한다. 도로 턱도 약 80% 정도 정리가 되어 있다. 자전거 운전은 가끔 등에 땀나는 순간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달리는 차량이 보행자나 자전거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운전자일 땐 미처 모른다.

시내 곳곳에 자전거길이 있기는 하지만, 이용자들은 거의 없다.
 시내 곳곳에 자전거길이 있기는 하지만, 이용자들은 거의 없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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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도서관과 은행들이 이용해 보니 약 15-20분 정도 걸린다. 그 사이 6-7개의 횡단보도를 지나는데 울퉁불퉁 관리가 안된 요철 길이 많아 자전거 운전을 꽤 피곤하게 했다. 하지만 STOP 사인을 비롯해 신호를 철저히 지키는 차량들이 보행자나 자전거를 보면 대부분 눈을 마주보며 서주는 분위기가 대안 교통 이용자의 주눅을 많이 덜어 주었다.

또한 예전 라디오를 들으며 한강 둔치를 달리던 감각도 아직 녹슬지 않아 낯선 땅에 첫 발을 디딘 바이커로서의 자신감에 한 몫을 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의 나라에서 자전거타기는 차 없으면 꼼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실험 같아 보였다.

자전거로 왔다는 말에 놀라 자빠지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고서는 볼 수 없었던 길가의 꽃밭이나 꼬마 아이들의 낙서, 그리고 조깅하는 사람들의 밝은 인사는 자전거 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이다 싶다. 자동차의 나라에서 자전거 타기, 나에게는 미국이란 사회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이다.

"파고의 자전거 이용률은 2-5%, 그래도 자전거의 미래는 밝다"
[인터뷰] 그레이트 노던 자전거 매니저 레리스카젠씨
'그레이트 노던' 자전거 매니저인 레리 스카젠씨
 '그레이트 노던' 자전거 매니저인 레리 스카젠씨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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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해보니 파고엔 자전거포가 3개나 되더라. 그만큼 수요가 많은가?
"월마트나 쉴즈처럼 자전거를 파는 곳은 꽤 되지만 우리처럼 자전거'만' 취급하는 곳은 없다. 요즘 같은 성수기 주말엔 약 100여명의 손님이 든다. 매일 교대하지만 직원도 16명이나 된다.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고 수요가 크다. 비싸고 튼튼한 산악자전거부터 레저용, 그리고 어린이용 자전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수요가 있다. 그래서 우린 언제나 바쁘다."

- 앞으로 자동차대신 자전거를 이용해 볼 계획이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역시 겨울의 강추위 그리고 아직 정착되지 않은 자전거 길이나 표지판,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이다. 요즘도 도심에 있는 자전거 길이 중간중간 끊어지는 바람에 낭패를 경험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알기론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은 이 도시에 2-5% 정도이다. 파고 인구를 10만으로 잡았을 때, 절대 많은 숫자가 아니지만, 지금보다 4배 정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하게 된다면 도시가 보다 자전거 친화적으로 될 것이라 본다.

자전거 친화라는 말은 보다 휴머니티한 도시가 된다는 말과 같다. 일례로 비슷한 날씨의 이웃 미네소타 주는 우리와 비교해 자전거 이용이 매우 편리한 도시다.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의지와 소비자들의 생각이 중요할 것 같다. "

- 17년이나 이 곳에서 일한 매니저로서 자전거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내 생각엔 파고는 미국 내 자전거 친화도시로 열 손 가락에 들지 않을까 싶다. (옆의 직원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자…) 아, 그럼 15개 도시 중에는 들어 갈거다.(웃음) 이 가게만 해도 26년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스키나 스노보드, 요트 같은 다른 스포츠용품없이 자전거 하나만으로 이렇게 오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전거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멋진 물건이다. 파고에서 보는 자전거의 미래, 난 충분히 밝다고 본다."




태그:#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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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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