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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아홉 번째로 신의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신안군은 전국 천일염의 약 70%를 생산하고 있고, 신의도는 전국 생산의 약 24%를 생산하고 있다. '청정 소금의 바탕골'을 자처하는 신의도엔 염전이 논처럼 넓다.
 신안군은 전국 천일염의 약 70%를 생산하고 있고, 신의도는 전국 생산의 약 24%를 생산하고 있다. '청정 소금의 바탕골'을 자처하는 신의도엔 염전이 논처럼 넓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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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를 떠난 철부선은 20여 분 만에 신의도 당두 선착장에 닿았다. 정부 보조로 운영되는 철부선은 신의도와 하의도를 하루 두 차례 오간다. 선착장엔 신의도에서 생산한 갯벌천일염을 실어갈 소금배가 정박해 있었다. 주민들은 "소금배가 요즘은 평균 하루 한 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신안군은 한국 천일염의 약 70%가 생산되는 지역이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햇볕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얻는 소금이다. 이온교환막을 이용해 나트륨과 염소를 결정시켜 만든 정제염 등에 비해 천연 미네랄이 풍부한 신안군 갯벌천일염은 찾는 사람이 많아 가격이 세다.

사람들을 섬으로 불러들이는 소금, 대체 무엇이길래

신의도는 스스로를 '청정 소금의 바탕골'이라 자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의도는 면 단위에선 전국 최대 규모의 천일염 생산지로 전국 생산량의 약 24%를 차지하고 있다. 해마다 신의도 염전 면적 537ha에서 연 5만1000톤의 갯벌천일염이 생산되어 약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갯벌천일염으로 주민소득이 높다 보니 섬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속속 다시 돌아오고 있다. 현재 주민 2000여 명인 신의도에서 염전에 종사하고 젊은이들은 부부 등을 포함해 약 300명에 달한다.

대체 소금이 무엇이기에 떠나는 섬을 돌아오는 섬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소금은 우리 옛말 '소곰'이 변화한 것이다. 한자로는 소금 염(鹽)자가 있지만 한자문화권에 살다보니 중의적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소금을 '小金' 또는 '素金'으로 쓰고, '작은 금' 또는 '하얀 금'으로 풀이를 다는 것처럼 말이다.

소금을 하얗고 작은 알갱이 정도로 치부하지 않고 작고 하얀 금으로 풀이할 만큼 소금을 귀하게 여긴 까닭이 있다.

소금은 체내에서 음식물을 분해하고 노폐물을 배설 처리하는 일을 돕는다. 또 적혈구의 생성을 돕고 혈관 청소를 하며, 죽어가는 세포나 손상된 세포를 회복시켜 주는 엄청난 일을 한다. 그래서 음식과 어울려 맛을 내는 조미료의 하나로 얘기하는 것은 소금을 모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평선엔 또다른 섬, 수심 낮은 바다엔 독살, 해안가 밭엔 새우 양식장이 있다. 해풍에 고개를 젖힌 나무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수평선엔 또다른 섬, 수심 낮은 바다엔 독살, 해안가 밭엔 새우 양식장이 있다. 해풍에 고개를 젖힌 나무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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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프랑스에선 소금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인류사에서 봉건시대를 끌어내리고 공화정 시대를 연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 대혁명이 일어난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가 소금이다.

어느 시대, 어느 대륙을 막론하고 소금은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요소다. 바로 이 점을 노려 프랑스의 봉건 위정자들은 1268년 '가벨'이라는 소금세 제도를 만들었다. 가벨은 왕이 정한 가격대로 8세 이상 모든 사람이 일 주일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소금을 사야 하는 제도였다. 왕은 자기 마음대로 가벨의 세율과 할당량을 올렸다.

특히 지역에 따른 차별 과세가 이뤄지면서 심한 경우 소금 원가의 20배가 넘는 세액이 책정되기도 했다. 이 악랄한 소금세를 내지 못한 하층민들이 매년 3만 명 이상 투옥되었고 500여 명이 처형되었다. 

가벨에 대한 하층민과 소시민의 불만과 분노는 극에 달했고, 결국 대봉기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이 최고조에 달하던 1790년 가벨은 잠시 폐지되었다. 나폴레옹에 의해 다시 실행된 가벨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야 프랑스에서 완전히 철폐되었다.

염전길을 따라 구만리 교회를 지나자 신의도 올레길이 시작된다. 임도가 난 산허리에 구정풀 나무군락을 따라 걷는 약 6km. 왼쪽으론 다도해 신비한 풍광이 가없이 이어진다. 운이 좋았다. 미리 가을을 품은 구름은 뭉실뭉실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놀고 있다. 그리고 수평선 언저리에 진도가 손에 잡힐 듯 어른거린다.

구름과 하늘과 바다와 섬이 몽환도처럼 어우러져 있는 신의도 올레길 풍광. 멀리 보이는 섬이 진도.
 구름과 하늘과 바다와 섬이 몽환도처럼 어우러져 있는 신의도 올레길 풍광. 멀리 보이는 섬이 진도.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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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도 주민들이 오석도라 부르는 섬 너머로 또다른 섬이 이어지고 있다.
 신의도 주민들이 오석도라 부르는 섬 너머로 또다른 섬이 이어지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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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바위에서 수행하던 스님은 어디로 갔을까

광대섬, 솔섬 등 다섯 개의 작은 섬이 모여 오석도(五石島)라지만 몽환(夢幻)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 오석도(五石圖)를 그린 것 같다. 털 빛깔은 검고 이마와 네발은 흰 '오명마((五明馬)'를 타고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아버지의 아들, 그 아들의 아들로 이어진 생을 살고 있다. 스승 없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있다면 생은 꿈 같다는 것일 게다. 실재하나 실재하지 않고, 무수히 이어졌으나 결국엔 섬처럼 홀로 산산히 흩어지는 것….

이토록 허망한 환각을 깨기 위해서 사람들은 노동을 한다. 인간의 노동으로 질박하게 등에 피는 소금꽃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까닭이다.

신의도 둘레길 4km 지점엔 '중 바위'가 있다. 실제로 한 스님이 중 바위에 난 토굴에 기거하며 수행을 하던 곳이다. 스님의 토굴 앞엔 노동하는 바다가 있다. 어부들은 돌을 쌓아 둑을 쌓는다. 이를 '독살'이라 한다. 밀물과 함께 들어온 물고기들은 썰물에 독살에 갇힌다. 그 낮은 돌담이 물고기들에겐 가장 치명적인 덫이 되는 것이다.

고향 신의도로 돌아온 지 33년 됐다는 장종철씨는 "중 바위에서 수행을 하던 스님이 어느 날 토굴 옆 우물을 돌로 막고 사라졌다"고 전한다. 그는 왜 떠난 것일까. 새로운 명상수행처를 찾아 떠난 것일까.

중 바위 앞 바다엔 어부들이 쌓은 독살이 있고, 독살 너머 섬이 무릉도원처럼 어른거린다.
 중 바위 앞 바다엔 어부들이 쌓은 독살이 있고, 독살 너머 섬이 무릉도원처럼 어른거린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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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도 둘레길 약 2km지점에 이르면 소나무 두 그루를 만나게 된다. 한 그루는 살아있고, 한 그루는 죽은 채 서있다.
 신의도 둘레길 약 2km지점에 이르면 소나무 두 그루를 만나게 된다. 한 그루는 살아있고, 한 그루는 죽은 채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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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일지암 법인 스님은 <한겨레>에 보낸 칼럼에서 "정직하고 당당하게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그저 고요함이 주는 평온에 매몰되는 것은 명상수행이 아니라 환각"이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또 법인 스님은 "명상수행의 또다른 위험은 모든 고통과 불안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는 일"이라며 다음처럼 물었다.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태그:#신안군 힐링섬길, #신의도, #염전, #천일염,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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