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페루 평가전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 선수들이 고개를 숙인채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홍명보호는 이날까지 4전 3무 1패를 기록했다.

14일 오후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페루 평가전에서 0대0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 선수들이 고개를 숙인채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페루 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에 온 마르카리안 감독은 가장 나이 많은 골잡이 클라우디오 피사로(바이에른 뮌헨)를 교체 없이 끝까지 뛰게 했다. 전반전에는 우리 수비수에게 묶여서 눈에 별로 띄지 않았지만 후반전에 그는 과연 달랐다. 페루도 골을 넣지 못했지만 그 최고의 골잡이로부터 배워야 할 움직임은 분명히 몇 차례 눈에 띄었다. 극심한 골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홍명보호가 참고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14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빅 버드)에서 벌어진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페루와의 안방 경기에서 여전히 골문 바로 앞 결정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며 득점 없이 비겼다.

방향만 맞았다고 '골'이 아니다

우리 선수들은 국가대표 축구팀에 대한 득점력 빈곤 문제를 의식한 듯 경기 초반부터 놀라운 활동력을 자랑하며 페루 선수들을 압박했다. 그 중심에 이명주와 하대성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페루가 자랑하는 볼 키핑 능력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었다. 페루가 기록한 실질적인 첫 슛 기록이 44분에서야 겨우 하나 만들어졌다는 것은 전반전의 경기 양상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만큼 우리 선수들의 공격 작업이 상대적으로 매끄러웠다. 페루 골문 근처까지 미드필더들이 패스를 연결하는 부분은 수준급이었다. 2:1 패스를 응용하여 측면을 따라 전개하는 '3자 패스'가 여러 차례 돋보였다. 왼쪽에서는 주로 윤일록과 이근호가 번쩍였고 오른쪽에서는 조찬호가 K리거의 자존심을 한껏 자랑했다.

경기 시작 1분 17초만에 조찬호의 오른발 유효 슛으로 본격적인 공격을 선언한 우리 선수들은 약 3분 뒤에 골잡이 김동섭도 힘과 세기가 약간 모자랐지만 유효 슛 기록을 보탰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윤일록의 왼쪽 띄워주기를 받은 이근호가 중심을 낮게 만들며 오른발 발리 슛으로 골을 노렸다. 이 공은 각도를 잘 잡은 페루 문지기 라울 페르난데스가 잘 쳐냈다.

현 대표팀에 속한 미드필더와 공격수 중에서 가장 큰 경기 경험이 많은 이근호는 그야말로 이날이 길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로 그에게 누구보다도 많은 기회가 찾아왔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끝내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마도 상주 상무 내무반 그의 자리는 이튿날까지 불면의 침상이 될 듯하다.

9분과 14분에 윤일록으로부터 넘겨받은 기회 두 개를 모두 살리지 못한 이근호는 마음을 비우고 전반전 중반에 좋은 패스로 동료를 빛나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윤일록은 결정적인 오른발 유효 슛(26분)을 기록했고 바로 다음 역습 기회에서도 이근호의 도움으로 윤일록이 오른발 감아차기로 페루 골문 앞을 아슬아슬하게 만들었다.

이근호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지켜본 수많은 팬들이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은 61분에 나왔다. 오른쪽 옆줄 가까이 비교적 멀리서 후반전 교체 선수 조동건이 감각적인 크로스를 보냈을 때 이근호는 재치있게 페루 수비수들의 오프 사이드 함정을 뚫고 빠져들어가며 빈 골문이나 다름없는 기회를 만들어 왼발 슛을 날렸다. 하지만 그의 왼발 안쪽에 맞은 공은 각도가 크게 꺾이지 않고 문지기 라울 페르난데스의 왼손에 걸리고 말았다. 의도한 선방이라기보다 우연히 내뻗은 손끝에 걸린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축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 중 하나인 골 순간을 살펴보면 그냥 막 차도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골 장면에서 골잡이의 기술적 우위를 발견하게 된다. 일부러 상대 수비수가 다리를 뻗어 막을 때 두 다리 사이를 노려서 슛하는 기술이나 각도를 듬직하게 잡고 달려드는 문지기를 피해 휘어 차는 능력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들이다.

한 마디로 방향만 맞게 찬다고 해서 다 골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지기는 어떨 때 문어처럼 손과 다리가 두 세 배로 늘어나기도 한다. 유능한 문지기를 향해 '거미손'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이기도 하다.

61분, 이근호가 왼발로 받아찬 슛도 그랬고 그로부터 3분 전에 조동건의 찔러주기를 받은 조찬호가 상대 수비수까지 완벽하게 따돌리고 혼자서 문지기를 상대했을 때 찬 왼발 슛도 그랬다. 라울 페르난데스는 골키퍼 글러브를 여러 개 더 가지고 나온 듯보였다. 결정적인 순간 골을 성공시키는 선수는 분명히 기술적인 우위를 보인다.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축구 기술의 차이가 아무나 넘볼 수 없는 클래스라는 것을 입증하는 곳이 축구장이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새내기들은 얼마나?

이 경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새내기 국가대표들(GK김승규, MF백성동, MF임상협)의 활약 여부였다. 이들 말고도 조찬호, 조동건, 김민우, 이용은 겨우 두 번째 경기였으니 실질적인 데뷔전이나 다름없는 경기였다.

백성동의 경우는 나중에 들어와 뛴 약 25분의 시간 동안 보여준 것은 거의 없었다. 여성 축구팬들의 마음을 흔드는 꽃미남 미드필더 임상협은 긴장했던 탓인지 무리한 발길질로 노란 딱지을 받은 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왼쪽 측면 수비수로 나온 김민우는 측면 공격에 일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느껴질 정도로 오버 페이스가 눈에 띄었다. 특히, 후반전에 페루의 오른쪽 측면을 맡은 우르타도와의 맞대결에서 빈틈을 너무 많이 드러내는 바람에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다. 마르카리안 감독이 왜 후반전에 김민우가 막고 있는 한국의 왼쪽을 집중 공략했는가를 살펴보면 그 이유가 아주 잘 드러난다.

조동건과 조찬호는 일천한 국가대표 경험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몸놀림으로 수준급의 공격 기량을 자랑했다. 조동건은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동료를 더 빛나게 하는 패스 수준을 자랑하며 득점에 가까운 결정적인 장면을 두 차례(58분-조찬호 유효 슛, 61분-이근호 유효 슛)나 만들어주었다.

이들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단연 김승규였다. 정성룡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새내기 문지기 김승규의 진가는 44분 요시마르 요툰의 왼발 로빙 슛 순간부터 드러났다. 슛 궤적이 예사롭지 않게 떨어졌지만 김승규의 순발력은 놀라웠다. 왼쪽으로 몸을 훌쩍 띄워 가볍게 쳐낸 것이다.

경기 종료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압박 수비에 치중하느라 지친 우리 선수들의 중원 장악 능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페루의 결정타가 예상되는 순간이었다. 84분, 페루 축구를 상징하는 최고의 골잡이 피사로가 골문 바로 앞에서 회심의 왼발 슛을 날렸다. 이것은 61분에 이근호가 왼발로 찬 것보다 더 강력했고 결승골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승규는 왼손으로 놀랍게 반응했다. '슈퍼 세이브'라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붙인 이름이었다.

쓸 만한 K리그 골잡이는?

수비 제치고 골문 앞으로 달려가는 이동국 한국 축구대표팀의 이동국이 11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데니소프의 수비를 제치고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이동국이 지난 6월 11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데니소프의 수비를 제치고 공을 드리블하고 있다. ⓒ 유성호


사실 이 경기는 양국을 대표하는 골잡이의 묘한 인연으로 많은 이야기가 생길 뻔했다. 홍명보 감독의 마음이 그리 크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라이언 킹 이동국(전북)이 다시 대표팀에 뽑혔다면 12년 전에 있었던 인연이 더 크게 화제가 될 뻔했다.

2001년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서 운명의 두 골잡이는 만난 적 있다. 페루 골잡이 피사로와 한국을 대표하는 골잡이 이동국이 바로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친근하게 어울리지 못했다. 피사로에게 밀린 이동국이 좀처럼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피사로에 비해 한 살 어린 이동국은 그 때문에 마음만 다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더 흘러서 둘은 다른 길을 걸으며 나름대로 베테랑 골잡이의 명성을 차근차근 쌓아올렸다. 이동국은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을 만나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 역할까지 소화하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비록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을 마무리짓는 경기력이 썩 좋지 못해 불편한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이동국의 골 감각을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다. 그는 여전히 K리그 클래식이 자랑하는 최고의 골잡이임에 틀림없다.

클라우디오 피사로도 지금은 한물 간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상대에게 매우 위협적인 공격수임은 틀림없다. 현 유럽 클럽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에서 지난 시즌에 11경기 선발+17경기 교체 출전의 기회를 얻어 13골이라는 준수한 득점력을 뽐냈다. 대기 선수로 더 많이 중용된 것을 감안하면 두 경기당 1골 정도씩 터뜨린 기록 자체만으로도 여전히 쓸 만하다는 뜻이다.

이들의 껄끄러운 만남을 궂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두 선수가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골잡이로서의 충분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은 어느 팀이든 경험 많고 검증된 골잡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미 홍명보호에 뽑힌 바 있는 키다리 골잡이 김신욱의 활용 가치는 또 다른 공격 전술을 쓸 수 있도록 하기에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침 이동국과 김신욱은 나란히 K리그 클래식 득점 순위에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고민하면 바보 소리를 듣게 된다. 경기당 득점력(김신욱 0.67골, 이동국 0.57골)도 피사로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이제 홍명보호의 남은 과제는 다음 달 평가전부터 활용한다고 하는 유럽파와 K리그 선수들과의 조화를 어떻게 찾아내느냐 하는 점이다. 특히, 득점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조합을 주문하게 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동원-손흥민-구자철-기성용'의 활용 가치를 따졌을 때 선택의 폭은 당연히 넓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에르 레버쿠젠이 내세우고 있는 4-3-3 포메이션에서 왼쪽 날개공격수로 뛴 손흥민의 움직임을 K리그 클래식 전북의 4-2-3-1 포메이션에서 맨 앞에 서는 이동국의 그것과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고민하는 식이다. 홍명보 감독이 추구하는 4-2-3-1 포메이션에 구자철과 지동원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부분은 이미 런던 올림픽에서 살펴본 바 있다.

여기에 포항 스틸야드의 용광로를 다시 끓어오르게 하고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황진성의 활용 가능성까지 보탤 수 있다면 더 고민이 필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마침 포항의 주 포메이션도 홍명보호와 닮은 4-2-3-1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미 조찬호와 이명주가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유럽파를 빼고 '이동국-김신욱-김동섭(이상 FW)'부터 시작하여 '조찬호-임상협-한상운-황진성(이상 MF)'에 이르기까지 현 K리그 클래식 득점 및 도움 순위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이들이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함께 갈 수 있는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사용 설명서는 K리그 클래식 경기장 속에 이미 그려져 있다. 이들이 소속팀을 어디까지 끌어올리는가를 판단하는 가을걷이를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다. 홍명보호가 갈망하는 골은 이 가을걷이 바구니 속에 모두 담겨있지 않을까?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덧붙이는 글 ※ 남자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14일 밤 8시, 수원 빅 버드)

★ 한국 0-0 페루

◎ 한국 선수들(4-2-3-1 포메이션)
FW : 김동섭(46분↔조동건)
AMF : 윤일록(56분↔임상협), 이근호(80분↔이승기), 조찬호(68분↔백성동)
DMF : 하대성(52분↔한국영), 이명주(86분↔장현수)
DF : 김민우, 황석호, 홍정호, 이용
GK : 김승규

이 기사는 SoulPlay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축구 홍명보 페루 이동국 피사로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