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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소원을 가진 소년이 있었다. 첫째 시인이 되는 것, 둘째 좋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 셋째 시골에서 사는 것. 오늘에 이르러 그 소년은 세 가지 소원을 모두 이루었다고 말한다. 대신 소년은 살면서 포기한 게 많다. 자동차, 배불리 먹는 것, 넓은 집, 큰 키를 포기(?) 했다고 한다.

그 소년이 바로 나태주 시인이다. 시인은 지금까지 한 번도 대도시에서 살아본 일 없다. 늘 시골을 맴돌며 살았다. 40년째 살고 있는 공주가 시인이 산 도시 가운데 가장 큰 시골도시다.

연이틀 계속 시인을 만났다. 충청, 금강을 대표하는 나태주 시인과 섬진강을 대표하는 김용택 시인. 두 분은 평생을 초등학교 교단에 있으면서, 자연의 언어를 보듬는 시인이기도 하다. 전원 속의 시인이자 교사로서 닮은 꼴처럼 살아온 셈이다.

풀꽃 같은 시인, 나태주

나태주 시인 ‘시 풀꽃’ 글판  2012.3 전국 교보생명에 걸렸다
▲ 나태주 시인 ‘시 풀꽃’ 글판 2012.3 전국 교보생명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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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은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끼고 부대끼며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를 남긴 충남 부여출신 고 신동엽 시인 이후 '금강시인'을 대표하는 중견이다. 김용택 시인의 호적 나이가 실제보다 3년 늦게 되어 있다니 나이도 엇비슷하고, 오롯한 삶의 향기조차 닮은 분들이다.

지난 2일, 장마의 한 복판에서 시인을 만나러 공주에 갔다. 시인이 계신 공주문화원과 마주한 공원 이름은 '시간이 정지된 음악공원'이다. 시인과 어울리는 소담한 모습이다. 바로 옆 국고개 문화거리 언덕 위에 아름다운 건축물은 오래된 공주 중동성당이다.

공주문화원 현관 앞에는 시인이 평소에 타고 다니는 건강 지킴이 자전거가 있다. 마치 제주에서 집 울타리의 대문이 놓일 자리에 가로놓는 나무 기둥인 정낭처럼 지키고 있다. 공주는 조용하고 아담한 소도시다. 자전거 타기 딱 알맞은 곳이다.

"날이 개면 시장에 가리라 /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 힘들여 페달을 비비며 "(시 <희망> 중)

병마를 떨친 시인에게 자전거는, 이동수단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자전거만 타면 / 나는 자동차 없는 것이 /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된다."(시 <나의 자전거에게> 중)

어린아이처럼 자유롭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

공주문화원장 원장실 나태주시인이 손수 자필 시를 적어주는 모습
▲ 공주문화원장 원장실 나태주시인이 손수 자필 시를 적어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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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삼베적삼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방문객을 맞았다. 인정 많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푸근함이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참 순해진다는 것이다.

세상의 풍파를 거치다보면 삶의 모습이 노정된다. 살아온 세월만큼 시인에게 삶은 늘 시의 모태가 된다. 세상의 언어들이 나태주 시인에게로 가면 동심을 익혀 오순도순 친화력을 가지게 된다. 마음에 동심을 들여놓고 평생을 살아온 맑은 마음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시 <풀꽃>)은 시업 35년의 결정(結晶)이자 단순함의 미학이 담긴 작품이다. 무엇이든 관심을 두고 깊이 들여다보면 소중한 존재가 되고,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뜻이리라.

나태주 시인은 평생을 아이들과 보냈다. 시가 인생을 닮는다고 이야기 했듯이 그의 시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담고 있다. <풀꽃>도 그러한 배경에서 태어났나고 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그의 인생을 그대로 닮았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좀처럼 눈여겨 보지 않는 주변의 사물에 세심한 눈길을 주고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데는 초등학교 교사의 경험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는 가끔 문화원 강당에서 아주 재미있는 강연도 하고 문학기행을 이끌기도 한다. 그때마다 "적자생존이 무엇인지 아시죠?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제 얘기를 얼른얼른 받아 적으세요"라고 깨알같은 유머도 곧잘 던진다.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는 시인의 문학 신념이기도 하다. 시인은 자신의 이름 나태주를 "나 태워주세요"라고 풀이했다. 차가 없어 늘 다른 사람의 신세를 졌기 때문이다.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

나태주시인과 한숭동 시민기자 문화원장실 초상화앞에서 기념촬영(2012.7.2)
▲ 나태주시인과 한숭동 시민기자 문화원장실 초상화앞에서 기념촬영(20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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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은 평생 동안 잘했다고 여겨지는 일로 네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 첫째가 초등학교 선생님을 한 일이고, 둘째가 쉬지 않고 시를 쓴 일이고, 셋째가 한 번도 시골을 떠나지 않고 산 일이고, 넷째가 아직도 자동차를 갖지 않고 사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 같은 데는 올라와 살 생각 말 것 / 이것은 신춘문예 당선 인사 차 / 원효로 좁은 골목길 돌아서갔을 때 / 박목월 선생이 들려준 잔소리" <시인들 나라·3>

시골은 교직과 시를 병행하면서 살아가기에 그럴 수 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마당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자가용차 없이 사는 게 자연과 보다 친할 수 있는 많은 계기들을 제공해준다고 믿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교직은 그의 삶을 탱글탱글하게 만들어주는 터전이었고, 시는 그가 살아가는 의미를 제공해준 정신적 샘물이었다.

나태주 시인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007년 교장 퇴임을 앞두고 췌장염으로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며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시인은 "결핍은 궁핍과 달리 절대 빈곤이 아니다"며 "달라이라마 행복론의 핵심은 탐욕의 반대가 비우는 무욕(無慾)이 아니라 만족" 임을 일러준다.

"저녁 때 /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 힘들 때 /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 외로울 때 /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시 <행복> 전문)

외연(外延) 보다는 내포(內包)가 깊은 시인은 오늘도 '일상성의 소중함'을 무자위처럼 토로한다. 낮은 곳의 물을 위로 올리는 농기구같이 말이다.

임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김용택 시인'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지난 3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시인은 청바지 차림에 해맑은 웃음과 장난기 어린 눈망울을 간직한 둥글둥글한 얼굴이다. 머리는 희끗희끗했지만 여전히 소년티가 남아 있다.

시인은 첫마디를 유머로 열었다. "순창에서 가장 유명한 게 뭐죠" 고추장이라는 대답에 "그러면 임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치즈가 아니라 바로 저 김용택입니다." 일순간 모두가 큰 웃음을 터트렸다.

시인은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덕치초등학교에서만 30여 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제자의 자녀를 다시 가르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또한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딱 엄마 아빠만큼만 공부했다는 것은 그중 하나다. 시인의 어머니는 한글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을 이어갔다.

"농사짓는 사람은 평생을 일하며 공부하죠. 경험에서 비롯된 학습이기 때문에 이렇게 배운 지식은 틀림없어요. '참나무 잎이 뒤집히면 3일 뒤에 비가 내린다' '꾀꼬리가 울 때 참깨를 갈고 보리타작을 할 때 토란을 심는다'는 말이 있는데, 관찰해보면 정말 그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죠. 그들은 과학자이며 철학자 그리고 예술인이었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2008년 2월, '엄마야 강변살자 - 섬진강 아이들 1년간의 기록'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아이들보다 더 천진한 시인의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조용히 흐르는 섬진강의 사계가 아이들의 글과 그림 속에 펼쳐졌다.

시,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기

김용택 시인특강  2013.7.3 대전도안초등학교
▲ 김용택 시인특강 2013.7.3 대전도안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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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눈이 안 온다 여름이니까"(시 <여름>)

김용택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은, 자연의 말에 귀 기울여 정성스레 받아적는 것이란다.

"시 써라 / 뭘써요 / 시 쓰라고 / 뭘 쓰라고요 / 시 써 내라고 / 네 / 제목은 뭘써요? / 니 맘대로 해야지 / 뭘 쓰라고요 / 한 번만 더하면 죽는다"(시 <뭘써요, 뭘 쓰라고요?> 중)

이 두 편의 시는 김용택 시인이 가르쳤던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시다. 어쩌면 장난처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글을 '지어내지' 않는다. 그냥 쓰고 그냥 그린다. 아이들의 언어 속에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날것 그대로의 자연이 스며있다.

나태주 시인이 아이들과 평생을 보낸 것처럼, 김용택 시인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이 제일 좋다는 김용택 시인이다. 시가 인생을 닮듯이, 그의 시도 아이의 마음을 담고 있다. 상당수의 시가 시라고 하기엔 동심의 무게가 너무 깊기 때문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는 눈앞에 실경으로 보여지고 있는 것들을 수묵담채화처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아주 물처럼 맑고 풀처럼 순하게 시어가 편하게 다가온다. 수십 년간 걸어서 몇 시간씩 등하교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관찰한 것이 자양분이란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미줄 하나, 들풀 하나도 반갑게 마주한다. 때로는 시골 농가의 풍경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저녁의 한가로운 섬진강변이 동양화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김용택 시인이 생각하는 시란 무엇일까.

"사람의 삶을 가꾸어 주는 것이죠. 인간성을 지켜주는 한 예술 장르가 아닐까요. 자유, 행복의 역할과 기능을 하며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조화를 노래하는 거죠. 시를 이해하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삶 자체가 글이 되는 시인의 시는 꾸밈없는 그의 삶 모습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임실군은 최근 김 시인이 걸었던 길을 '시인의 길'로 이름을 붙여 관광상품화했다.

김용택의 교단일기, 인생은 버릴 게 없어야 한다

 김용택 시인 초청강연 150명의 학부모앞에서 열강을 하고 있다
▲ 김용택 시인 초청강연 150명의 학부모앞에서 열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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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평생을 공부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 시인은 "거실에 있는 양주병부터 치워야 한다, 예술적 감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점을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설악산에도 가보지 못한 시인. 이제는 강에, 산에 가지 않아도 시인의 마음에는 자연이 자신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의 노래는 예술과 삶이 같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삶 자체가 글이 된 것이다.

시인은 변화와 혁신을 얘기하며 '인문학과 공학을 융합하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명언이라며 감탄했다. 이제서야 사람들이 '지성'을 자각하고 인문학에 대해 중시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김용택 시인은 <교단일기>를 "가르친다는 건 결국 자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사는 늘 자기를 수양하는 현장에 있는 셈이죠, 38년의 교사 생활 동안 저 역시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 이상으로 아이들한테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고 매듭짓는다.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지혜를 시인은 몸소 얻은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글로벌을 외치며 교실 속에 가두고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는 시험선수를 만들고 있는 교육현실에 겁을 내는 선생님. "나는 네게 줄 것이 없으니, 상으로 운동장에서 한번 업어주마"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선생님.

김용택 시인과 같은 스승을 만났던 아이들은 너무나 큰 축복이다. 시인과 짧은 만남은 큰 감동의 공명으로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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