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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표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표지
ⓒ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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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는 "20세기의 가장 급진적 사상가"(타임스)로서 "인간에 뿌리를 두고 현대 사회에 근원적 도전을 던전 인간적 래디컬리즘"(에리히 프롬)을 표방한 이반 일리치의 연설문을 모은 책이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행해진 이반 일리치의 여러 연설은 그의 사상이 어떤 면모를 지녔는지 알기에 충분하다.

보수와 진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반 일리치의 사자후를 듣는 것은 한여름 뜨거워진 머리에 얼음장 같이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는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가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애석하게도 병원도 학교도 한 나라의 건강이나 지성의 지표가 되지 못합니다. 사실 병원 수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얼마나 나쁜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마찬가지로, 삶에서 편의설비가 많으면 사람살이에서 표현되는 창의력이 최소한으로 줄어듭니다." (본문 21쪽)

이반 일리치에 따르면 인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외부의 시설에 의탁한 이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의존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배우고 깨우칠 수 있는 것들을 꼭 학교에 가야만 배울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의료의 이름으로 자연치유나 인내심의 가치를 내동댕이쳐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반 일리치는 말년에 한쪽 뺨에 혹이 생겨서 고통받았지만 현대적인 의학의 진단과 치료를 거부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사상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경제학의 전제를 의심한다

주류 경제학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대안 경제학에 대해서도 이반 일리치는 우려를 금치 못했다. 그는 경제학의 전제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제학은 주류든지 대안이이든지 오로지 '부족, 필요, 가치, 자원' 따위로 인간의 삶을 표준화한다.

이반 일리치는 축복과 은총처럼 경제학이 측정할 수 없는 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모두 결핍된 존재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저개발 국가의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른바 경제 선진국의 시선은 그 사람들의 결핍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하나의 잣대로, 하나의 시선으로 많은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전쟁과 평화를 가르는 가치관을 형성한다.

1980년 요코하마에서 행해진 '평화 연설'에서 이반 일리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곳 극동에서는 그 근본이 되어야 마땅한 이치에 바탕을 두고 평화를 연구하는 게 서양에서보다 쉬울 것입니다. 그 이치란 전쟁은 여러 문화를 비슷하게 만들고, 평화는 각각의 문화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나름의 방식으로 꽃피우는 조건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평화는 다른 곳으로 이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식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타락합니다. 평화의 의도적 이식은 전쟁을 의미합니다."(본문 48쪽)

우리는 20세기 내내 수많은 전쟁을 지켜봤으며 그 전쟁이 결국 문화의 획일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목도한 바 있다. 이반 일리치는 획일화야말로 본래적인 인류의 창의성을 좀먹는 위험 요소로 보았다. 그런데 전쟁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은 획일화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개발이라는 절대 이념을 해체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경제는 무조건 성장해야 하며 삶의 질은 어떤 하나의 기준으로 계속 나아져야한다고 믿는다. 좌파든 우파든 모두 선거에 나오면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데, 그것은 보통 더 크고 쾌적한 집에서 산다든가, 더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든가, 더 임금이 높은 직장을 얻는다든가, 더 좋은 대접을 받는 학교를 다닌다든가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욕망은 인간의 필요에 따른 개발이라는 논리에 순응하게 만든다.

"근본적으로 개발이라는 개념은 사람의 대처 능력과 만족스러운 자급 활동을 상품 소비로 대치하고, 임금 노동이 다른 모든 종류의 노동 위에서 독점하며, 전문가가 설계한 대로 대량생산되는 상품 및 서비스 차원에서 필요를 다시 정의합니다. 마침내는 환경을 재편하여 공간과 시간, 재료, 설계가 모두 생산과 소비에는 유리하고 필요를 직접 충족시키는 사용 가치의 지향의 활동은 퇴화 또는 마비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똑같이 일어나는 이런 모든 변화와 과정은 불가피하고 선하다고 규정하며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본문 118쪽)

이반 일리치는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현대적 삶이 과연 인간의 존엄에 합당한 삶의 형식을 갖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묻는다. 옛날의 인간은 자신이 사는 집을 스스로 짓고, 웬만한 생활도구를 스스로 만들었다. 아이를 집에서 낳았고, 죽음을 집에서 맞이했다. 누군가에게 돈을 받지 않고도 공동체를 위해 즐겁게 노동을 했으며 축복과 은총이 필요와 가치보다 삶에서 중요했다.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생각해보자

학교 말고도 배울 수 있는 삶의 현장이 많았다. 고통과 죽음을 의료시설에 의탁하기 전에는 고통을 의연히 받아들였고 죽음에 담담했다. 모든 것을 사서 써야 하는 소비자가 되기 전에 인간은 자신이 쓸 물건을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풍요롭지 않던 시절에도 나누어 씀으로써 가난하다고 생각지 않는 삶을 살았다.

필자는 현대적 삶의 모든 부분이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반 일리치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잊더라도 이반 일리치의 역사적 방법론은 기억해야겠다. 지금의 삶의 방식이 과연 어떤 때 결정된 것이었는지, 과거에 비추어 이 삶의 방식이 더 나은지, 그리고 미래에도 이런 방식으로 살 수 있는지 묻는 태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이반 일리치 씀, 권루시안 옮김, 느린걸음 펴냄, 2013년 5월, 399쪽, 2만8000원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 현대의 상식과 진보에 대한 급진적 도전

이반 일리치 지음, 권루시안 옮김, 느린걸음(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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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강사입니다. 공저로 <문학으로서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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