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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3주년 되는 해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지만, 십여 년 전 2002 한일 월드컵조차 겨우 기억하는 요즘 고등학생들에게 6·25 전쟁이란 그저 반세기도 더 지난 '역사'일 뿐이다. 학교도 사회도 가르치려 하지 않을 뿐더러 아이들도 딱히 궁금해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청소년의 69%가 6·25 전쟁이 '북침'이라고 답했다는 한 일간지의 기사가 화제가 됐다. '북침'이라는 용어를 잘못 이해한 탓일 뿐, 대부분은 북한의 남침으로 알고 있다는 각종 통계가 연이어 나와 오해는 이내 불식되었다. 교육 현장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겠다며 성급하게 발끈한 대통령만 되레 멋쩍게 됐다.

한 일간지의 헛짚은 기사와 대통령의 성급한 '오해'로 촉발된 6·25 전쟁에 대해, 요즘 고등학생들은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6·25 전쟁 63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곧 수험생이 되는 고2 학생 한 명 그리고 올해 입학한 고1 학생 한 명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얘기를 나눴다.

고2인 형식(가명)이는 딱히 한국사 과목을 좋아하진 않지만 학교에서 이따금 열리는 각종 인문학 강좌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는 문과 학생이고, 고1인 광진(가명)이는 암기 과목인 한국사는 딱 질색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과 지망 학생이다. 공부는 잘 하느냐는 지나가는 질문에, 둘 다 성적을 기준으로 '중산층'은 된다며 웃어보였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6·25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른다는 등의 기사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발발한 해가 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느냐며 젠체했지만, 나머지 내용은 그들 역시 해당 기사의 통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3주년 되는 날이라고 했더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달력을 확인했다. 기실 달력에서 고등학생들이 기억하는 건 시험 날짜 'D-Day'뿐이다.

먼저 6·25 전쟁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물었다. 둘 다 한 목소리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답하며, "찌찌뽕(같은 시간, 같은 말을 했을 때 서로 외치는 장난 섞인 말)"을 외쳤다. 그런데, 1학년 광진이는 '동족상잔'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엄청난' 또는 '충격적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외운 탓이다.

형식이는 이어 전쟁으로 인해 영구 분단이 돼버렸다며 1000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모든 국민이 나눠야 한다며 제법 어른스럽게 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둘 다 북한이 '선제공격'을 했고, 그것도 새벽 4시 30분에 기습적으로 쳐들어왔다면서 남침 시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발발 원인은 제대로 알고 있을까.

1학년 광진이에게는 너무 '쉬운'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질문을 자르듯 답변했다. 당최 막힘이 없었다. 외는 게 싫어 한국사 과목이 질색이라더니, 그는 마치 주관식 답안 쓰듯 '김일성과 공산당의 남침 야욕 때문 아니냐'며 반문했다. 놀랍게도 그는, 또래 아이들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반공 소년 이승복'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대답했다.

두 해 선배인 형식이의 시야는 조금 넓었다. 전쟁터가 한반도였고,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 전쟁이었지만, 그렇게 부추긴 이들은 미국과 소련 아니냐며 '외세의 책임'을 거론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라며, 남침을 감행한 북한에게만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광진이는 북한, 그것도 콕 꼬집어 김일성의 책임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 사람의 야욕과 그릇된 판단이 우리나라를 영구 분단의 길로 내몰았다며, 김일성은 씻을 수 없는 '민족의 죄인'이라고 말했다.

형식이는 거듭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 탓으로 돌렸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 대립에 휩쓸려 '부화뇌동'하다가 자멸한 싸움으로 규정했다. 미소 냉전이라는 국제 정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무능 때문인데 누굴 탓하겠느냐며, 남과 북이 서로 손가락질 하는 건 어리석다고 말했다.

적어도, 스스로 '보통' 학생임을 자처하는 그들은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대통령이 우려하는 만큼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구체적인 날짜까지는 아니어도,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 수복, 중공군의 참전과 1·4 후퇴 등 전쟁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었고, 마치 컴퓨터 전쟁 게임 소개하듯 '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꼭 거기까지였다.

정작 전쟁 전후의 국내 상황에 대한 이해 등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6·25 전쟁은 그야말로 '느닷없이' 터진 사건에 불과할 뿐이었다. 김일성 때문이든, 미소 냉전이라는 외부 환경 때문이든, 수백 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비극적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이해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6·25 전쟁에 대해 직접 배운 기억이 없다고 했다. 해마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에 이따금 틀어주는 안보 동영상을 본 건 생각이 나는데, 교과서를 통해 배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고등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열심히 진도를 나간다 해도 6·25 전쟁 단원까지 다루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잠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들여다보자. 총 아홉 개의 대단원 중에서 여덟 번째의 맨 마지막 단원이 6·25 전쟁 관련 내용이다. 쉬지 않고 달려도 대개는 7단원에서 마무리된다. 정규수업 외에 따로 보충수업을 하지 않으면 9단원은커녕 웬만해서는 8단원까지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 엄청난 학습량 때문이다.

이태 전 한국근현대사 과목이 폐지되면서, 기존의 국사와 한국근현대사의 내용이 그대로 묶인 채 한국사 과목 하나로 통합된 까닭이다. 참고로 기존의 국사는 고조선부터 개항 이전까지를 다루었고, 한국근현대사는 개항 이후부터 87년 6월 민주항쟁까지의 역사를 실었다. 수업시수는 그대로인데 내용은 두 배로 늘었으니, 교과서 맨 뒷부분을 다룰 수 없는 건 불문가지다. 중학교 교과서라고 크게 다를까.

그랬다. 둘은 모두 책이 아니라, '영상물'을 통해 6·25 전쟁을 배웠다. 광진이는 6·25 전쟁을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했고, 형식이는 해마다 이즈음 TV에서 방영되는 6·25 전쟁 관련 다큐멘터리를 즐겨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핵심'에서 살짝 비껴나 있을 수밖에 없다. 6·25 전쟁과 같은 민감한 현대사를 다룰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들은 1945년 광복에서 6·25 전쟁까지의 역사에 대해 완전히 '백지 상태'였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던 광복 후 5년이 머릿속에 아예 빈 칸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형식이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정도만 더 알고 있을 뿐, 둘은 미군이 광복 직후부터 3년 간 이 땅을 다스렸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몰랐다.

그 기간 동안 건국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는 것도, 모스크바 3상회의 때 신탁통치 결정이 났다는 것도, 제주와 여수 등지에서 수만 명의 양민 학살이 우리 군경에 의해 자행됐고, 그 즈음 여운형과 김구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암살됐다는 것조차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너무나 '생소한' 역사 지식이었던 셈이다.

자못 충격적이지지만, '분단이 없었다면 6·25 전쟁도 없었다'는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쟁으로 인해 분단된 것 아니냐'며 엉뚱한 반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들은 여태껏 6·25 전쟁 전까지 한반도엔 대한민국 한 나라뿐이었다고 알고 있었던 거다. 이럴진대 일제의 침략과 미소 냉전이 분단과 6·25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광진이는 숫제 친일부역자가 광복 후 공산주의자가 됐다는 '황당한' 주장도 했다. 친일파가 '빨갱이'라는 거다. 학교에서 책을 통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군사독재정권 시절 주입된 기성세대의 그릇된 '편견'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 꼴이다. 6·25 전쟁이 친일파들에게는 민족반역자에서 하루아침에 애국자로 둔갑시킨 사건이라는 말을 그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 해 전 담임교사 시절, 호국보훈의 달 기념 백일장 대회 때를 다시금 떠올렸다. 그때 참가한 한 학생이 낸 표어 구절은 그저 장난질로 치부하기에는 참으로 섬뜩했다. "6·25는 무효다. 다시 한 번 붙어보자!" 아이들은 변했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6·25 전쟁을 비롯한 현대사는 학교에서 늘 '찬밥'이라는 점이다. 수능에서 한국사 과목이 사실상 퇴출된 마당에, 현대사 교육 부실 운운하는 건 사치에 가깝다.

사족 하나. 6·25 전쟁 63주년 기념일인 25일, 전국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일제고사가 치러졌다. 대통령은 6·25 전쟁이 일어난 해조차 모른다며 학교의 부실한 역사 교육을 질타하고, 학교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부에서는 6·25 전쟁 기념일에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국영수 일제고사를 응시하도록 강제했다. 참 얄궂은 2013년 6월 25일이다.


태그:#6. 25 전쟁,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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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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