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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왕자의 귀환> 표지
 <어린왕자의 귀환> 표지
ⓒ 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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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귀환>은 '신자유주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만화다. 장르를 구분하자면 교양 만화라 할 수 있다. 김태권씨가 글과 그림을 맡았고,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가 해제를 맡았다.

김태권의 그림체는 약간 어색하지만, 그래도 그 어색함을 상쇄할 만큼 스토리와 아이디어가 좋다. 굉장히 재미있다. 우석훈 박사의 해제는 어떨까. 한마디로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온갖 폼을 잡아가면서 어려운 학술 용어를 쓰는 경제학자들이 많은데 우석훈은 우리 시대의 경제현상, 즉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의 삶이 왜 이렇게 고달픈지를 아주 쉬운 말로 간결하게 설명한다. 왜 이렇게 우리 삶이 고달퍼졌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게 좋겠다. 물론 이 책은 작금의 고통스런 현실에 어떤 확실한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저자는 우리 모두에게 같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보자고 권유한다.

어린왕자가 비정규직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 만화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은 사람에게 훨씬 더 재미있게 읽힐 것으로 보인다. 만화 전체가 하나의 패러디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린 왕자>의 세계는 사용 가치의 세계다. 어린 왕자가 키우는 장미는 시장에서 얼마의 가격으로 팔리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어린 왕자는 장미를 사랑하고 장미와 교감할 수 있기 때문에 장미를 키울 뿐이다. 그런데 현재 지구는 어떤가. 지구에서 어린 왕자의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경쟁사회에서 낙오돼 길거리의 노숙자가 되기 딱 좋기 때문이다. 아련한 서정적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어린 왕자 이미지'는 이렇게 신자유주의를 만나면서 눈물겨운 사회 드라마로 탈바꿈된다.

프롤로그에서 김태권은 우리 시대 최대의 과제 중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다. 남수와 주영(이 만화의 주인공, 남수는 어린 왕자, 주영은 어린 공주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왕자이고 비정규직 공주다)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허드렛일이나 하는 인턴직에 응시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인턴직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부당한 처우에 약간이라도 항의한다면 그는 그 순간 취업시장에서 소외되고 만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 신자유주의를 논하고 정의를 찾던 똑똑했던 학생들이 어김없이 인턴사원이 돼 지배 체제에 사뿐히 합류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느새 우리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있고 우리는 '실업의 공포'에 떠밀려 노동시장에서 설움을 참으면서 싼값에 팔려나간다.

휴식마저도 돈이 드는 자본주의 사회

<어린왕자의 귀환>의 한 대목 자본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대답
▲ <어린왕자의 귀환>의 한 대목 자본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대답
ⓒ 김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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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한 것보다 항상 적은 임금을 받는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그들의 몫은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그 돈은 회사에 남는다. 회사는 그 돈을 어떻게 쓰나? 그들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설비 투자한다. 그럼 점점 몸집을 불린 회사는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계속적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김태권은 이것을 '알약 만들기'에 비유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알 먹으면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알약이 있다. 이 알약을 먹으면 일주일에 53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절약한 시간은 어디다 쓰나? 한 알 먹으면 2주 동안 물을 먹지 않아도 되는 알약을 개발하는 데 쓰인다. 이쯤되면 이 이야기의 모순을 알 것이다.

더 많은 자유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게 노동자들의 자유 시간을 늘리지는 않는다는 것. 만화에 나오는대로 그냥 샘에 가서 물을 길어 먹는 게 그 따위 알약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삶을 살게 해준다. 그런데 자본주의 아래 '길들여진' 인간은 자신이 샘까지 가서 물을 길어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는 것으로 안다. 더구나 그러한 구매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일상의 모든 요소에 돈이 개입하고 심지어 휴식마저도 돈이 드는 삶의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그건 이 만화가 통찰력있게 제시한 방법, 즉 샘물을 떠 먹으러 가는 것이다. 샘물을 사 먹는 게 아니라 떠 먹으러 길을 걷는 것. 경쟁에 뒤떨어질까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유한한 삶을 인식해서 그것을 보람되게 보내는 것. 지금의 세태에 비춰 보면 상당히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냐는 질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삶도 인류 역사를 돌이켜볼 때 보편적인 삶의 방식은 아니다.

자유무역의 딜레마

자유무역. 한미FTA 때문에 귀가 닳도록 들은 '자유무역'은 흔히 비교우위의 법칙에 따라 모든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이론상' 설명된다. 하지만 자유무역이 모든 국가에 이득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는 선진국의 공산품을 사고 자국의 '경쟁력 있는' 농산품을 판다. 그런데 왜 선진국은 점점 부자가 되고 저개발국가는 점점 가난해지나? 이론적으로만 살핀다면 둘 다 비교우위의 법칙에 따라 경제적 풍요를 구가해야 하는데 말이다. 2장은 이런 자유무역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자유무역, 그중에서도 FTA 같은 국가간 협정은 말이 자유무역이지 더 큰 범위에서 살펴보면 '보호무역'에 가깝다. 왜냐하면 관세의 벽을 허무는 두 국가 사이의 수출입은 곧 제3국의 입장에서 보면 또 하나의 벽이 되기 때문이다.

경영 합리화가 만드는 그늘

우리는 주주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주주는 누군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전국민펀드시대'가 열렸다. 주주는 이제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다. 시장에서 호떡을 굽는 아줌마가 주주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문제를 일으키는가?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몫에 대해 최대한의 이익을 차지하려고 한다. 따라서 모든 기업들은 투자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단기 이익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대상은 노동자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기업 내 구성원들의 이익이 아니라 주주의 이익을 보장하는 쪽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이른바 사용자라고 하는 쪽, 그중 가장 위에 있는 CEO도 주주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못하면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기업 내 구성원 중에서 주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경영합리화란 주주 이익의 최대 실현이다. 그것을 위해서 기업은 제 살을 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이러한 '경영합리화'는 실업자 증가, 소비 시장 침체 등 '불안한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공기업 민영화와 시장의 실패

공기업을 민영화한다는 얘기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 가장 자주 들었던 소리 중 하나다. 이미 대부분의 공기업이 민영화됐거나 민영화 단계에 들어섰다. 민영화 예찬론자들은 공기업이 부도덕하다는 이미지를 대중에 유포한다. 예를 들자면 적자를 봤는데도 직원들 보너스는 더 늘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경영을 관리·감독해서 시정하면 될 일이지 아예 공기업을 시장에 내다 팔아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김태권은 공기업 민영화의 사례를 몇 가지 들고 그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편 서비스를 민영화할 경우, 도서 지역에 보내지는 우편물에는 지금보다 훨씬 비싼 비용이 지불돼야 할 것이다. 그러다 수익이 맞지 않는다면 민간 기업은 도서지역 우편 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다. 한전이나 도시가스공사가 민영화된다면 어떨까. 미국에서 전력 회사들이 민영화된 이후 정전 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은 타산지석이 될만하다.

일상의 모든 부문을 민간 기업에 맡길 수는 없다. 삶의 모든 요소를 시장에 맡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모든 시스템을 조정할 것으로 봤다지만 실제로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주먹'이 돼 시장의 실패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을 줄이겠다는 협박

앞서도 말했지만 모든 노동자는 자신이 일한 '만큼' 임금을 받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기업에서는 발생된 이윤을 다시 투자해서 더 큰 이윤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적게 일하며서 더 많이 받는 바람직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으니 아직 한국의 상황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최저임금제를 둘러싸고 경총과 양대 노총이 벌인 논쟁을 살펴보면 한국 사회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에 속한다. 반면 사회적 복지는 미미한 수준이다. 최저임금을 깎자는 논의를 경총 같은 단체가 방송에 나와서 버젓이 밝히는가 하면('안 그러면 고용을 더 못한다'는 협박까지도 나온다) 비정규직은 법의 보호 아래 양산되고 사회 안전망은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망가지고 있다.

한성전기회사를 아십니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장은 부분은 6장 <백년 전의 지구>다. 등장인물은 고종·알렌·콜브란·전차를 타는 시민들·시위대·일본인 사업가 등이다. 이 장은 역시 공공 부문이 민영화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고종 황제의 대한제국 시기 '한성전기회사'를 들어 살펴보고 있다. 우석훈은 해설을 통해 "민영화가 선진화는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경영의 합리화나 구조 조정 등의 구호로 대두되는 '민영화'가 결국에는 사적 이익의 극대화인 '사영화'의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7장 <상자에 갇힌 별>이다. 이른바 식민지 통치의 한 기술인 분할통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연대해야 할 대상을 미워하고 그들과 싸우고 반목한다.

사회적 연대는 기득권 세력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다. 힘이 없는 사람들도 서로 연대하면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득권 세력,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하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하다. 그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눠서 서로 반목하게 만든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의 노동에 대해 차별적인 대우를 함으로써 서로 연대하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학연·지연·혈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함으로써 계급적으로 단결하지 못하게끔 조치한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노동자의 수만큼 표를 획득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당면 과제는 이 모든 분할통제의 장치들을 인식하고 파괴해 연대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이 책의 이 대목은 슬프다.

우리 안의 물신을 찾아서

김태권은 '어린 왕자의 양 상자'를 '자본주의의 물신'으로 바꿔서 제시한다.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어린왕자는 마침내 이런 생각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래,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법이야. 모자에는 뱀과 코끼리가 숨어 있고, 저 상자 안에는 양이 숨어 있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고 말이야.'

그리고 이 자본주의의 우주에는 거대한 물신(物神)이 숨어 있는 거야. 자본이라는 무시무시한 물신이, 거대한 구렁이 괴물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켰어. 사람들의 사고와 의지마저도!"(본문 211쪽)

그렇다. 문제는 바깥에만 있지 않다. 우리 안의 물신을 찾아서 그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 보아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반대의 구호를 외칠 때에 우리는 우리 안의 물신에게도 'OUT'을 요구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어린왕자는 고달프다. 지금 같은 세상이 싫다면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를 뒤로 하고 연대해서 세상을 바꿔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어린왕자의 귀환>(김태권 글·그림 우석훈 해제 | 돌베게 | 2009. | 1만2000원)



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김태권 지음, 우석훈, 돌베개(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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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강사입니다. 공저로 <문학으로서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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