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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 전'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 전'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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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에서 6월 14일부터 국내 최초로 폴 고갱(Paul Gauguin·1848~1903)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이 회고전은 9월 28일까지다. 회고전에 가면 고갱을 대표하는 작품 <설교 후 환상> <황색 그리스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등도 볼 수 있다. 그가 추구하던 낙원을 다각적으로 관찰해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파리 태생인 고갱은 군 전역 후, 잘나가던 주식 중개인이었다. 그가 어떻게 서른 중반에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는지 궁금하다. 한때 컬렉터였던 화가 고갱은 화상 테오를 통해 고흐를 알게 되고 함께 작업까지 하려다 성격 차로 결별(1888)했다. 두 작가는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랬는지 다른 작가들보다 더 독창적인 작가가 된 듯하다.

세계에 흩어진 소장품 수집의 어려움

 <설교 후 환상>(캔버스에 유화, 72.2cm×91cm, 1888,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국립미술관 소장)은 성당 가는 브르타뉴 여인과 설교 주제인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이야기를 한 장면에 담은 작품이다. 극적이다. 사진 속 인물은 이번 고갱 전 커미셔너를 맡은 서순주씨다. ⓒ Scottish National Gallery, Edinburgh
 <설교 후 환상>(캔버스에 유화, 72.2cm×91cm, 1888,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국립미술관 소장)은 성당 가는 브르타뉴 여인과 설교 주제인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이야기를 한 장면에 담은 작품이다. 극적이다. 사진 속 인물은 이번 고갱 전 커미셔너를 맡은 서순주씨다. ⓒ Scottish National Gallery, Edinbur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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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커미셔너(전시회 기획·총괄 책임자)는 역시 그동안 고흐·샤갈·로댕·르누아르 등 대형 전시를 도맡아왔던 서순주씨가 맡았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고갱이 오랜 방랑과 타국 생활로 고갱의 작품은 세계 도처에 여러 개인 혹은 공공미술관에 흩어져 있어 그만큼 그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은 어느 전시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단다.

이번 전시를 위해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미술관, 파리 오르세미술관, 모스크바 푸시킨국립미술관 등 60여 유명 미술관에서 작품을 빌려 왔다고 한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수는 60여 점, 관객 입장에서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의 총 보험평가액은 1조5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2007년 반 고흐 전시에서 기록한 총 보험평가액 1조 원을 훨씬 웃돈다. 고갱의 명성과 서양미술사적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 번 가늠하게 한다.

고갱, 개성·주관성 중시한 최초의 근대 화가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캔버스에 유화, 38×46cm, 1890~1891,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은 성속(聖俗)이 하나로 합쳐진 종합주의 화풍의 작품 중 하나다. ⓒ Musee d'Orsay, Paris, France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캔버스에 유화, 38×46cm, 1890~1891,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은 성속(聖俗)이 하나로 합쳐진 종합주의 화풍의 작품 중 하나다. ⓒ Musee d'Orsay,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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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파리증권거래소가 파탄 나면서 고갱은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접어든다. 이후 예술가적 기질 때문에 그의 생애는 평탄치 않았다. 결혼생활도 풍파를 겪었고, 주변 사람과의 충돌도 잦았다. 개성과 주관성을 중시한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 고갱. 원초적 생명 세계에 대한 동경은 그를 창작에 몰두하게 했다.

고갱의 미술사적 위상이라면 인상파를 마감하는 '종합(상징)주의'와 원초적 생명력과 순수한 본능을 추구하는 '원시주의'를 통해 최초의 근대 화가가 됐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보나르의 나비파, 마티스의 야수파, 피카소의 입체파, 뭉크의 화풍, 독일의 표현주의가 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갱은 1888년 동료화가 슈페네커에게 "이 세상에서 우리를 달래주는 건 자신에 대한 신념과 내 능력에 대한 믿음뿐"이라고 털어놨다. 이 맥락을 보면 그는 예술가를 신과 대등한 창조자로 봤다. 그만큼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하지만 비평가나 대중은 그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갱은 이를 안타까워했다.

피사로의 영향 속 습작 그렸던 퐁투아즈 시절

 <퐁투아즈, 에르미타주 거리의 사과나무>(캔버스에 유화, 65×100cm, 1879. 스위스 아르가우어 시립미술관 소장)은 초기 인상화풍의 그림이다. ⓒ Aargauer Kunsthaus Aarau, Switzerland
 <퐁투아즈, 에르미타주 거리의 사과나무>(캔버스에 유화, 65×100cm, 1879. 스위스 아르가우어 시립미술관 소장)은 초기 인상화풍의 그림이다. ⓒ Aargauer Kunsthaus Aarau, Switz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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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1872년부터 루브르박물관을 다니면서 아마추어 화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873년 인상파의 대부인 피사로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된다. 실력이 조금씩 쌓이자 위 작품을 완성한 1879년부터는 '인상파전'에도 참가하게 된다.

위 작품은 그의 초기작으로 피사로 선생의 지도하에 스승이 거주하는 파리 근교 퐁투아즈에서 그린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의 독자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고갱은 그때도 주식투자로 돈을 꽤 벌어 르누아르·시슬레·세잔·피사로 작품을 컬렉션하기도 했다. 역량을 키우는 이런 고갱의 습작기는 1885년까지 계속 이어진다.

브르타뉴 시절에 그린 '황색 그리스도'

 <황색 그리스도>(캔버스에 유화, 92.1×73.3cm, 1889, 미국 올브라이트녹스 아트갤러리 소장)은 브르타뉴에 온 현장 예수를 형상화해 당시 통념을 깬 작품이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단면색채로 처리해 인상파 화풍과는 다르다. 어떤 형식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ew York
 <황색 그리스도>(캔버스에 유화, 92.1×73.3cm, 1889, 미국 올브라이트녹스 아트갤러리 소장)은 브르타뉴에 온 현장 예수를 형상화해 당시 통념을 깬 작품이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단면색채로 처리해 인상파 화풍과는 다르다. 어떤 형식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 Albright-Knox Art Gallery, Buffalo, New York
ⓒ 한국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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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은 1886년부터는 인상주의 화풍의 거품을 빼고 상징주의에 영향을 받아 종합주의(synthetism) 시대로 들어간다. 1887년에는 친구 라발과 함께 서인도제도를 5개월간 다녀온 뒤 아주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장식성이 강한, 신령한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킨다.

1888년부터 그는 일본판화의 영향인지 명암법이나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2차원 평면을 강조하면서 자신만의 개성과 독창성에 기반을 둔 형태와 색채를 발굴한다. 그는 '주객'과 '시공'을 초월해 현실과 상상을 결합한 종합주의 화풍을 발명한다. 이 시기 대표작은 위에서 본 <설교 후의 환상>과 <황색 그리스도> 연작 등이다.

특히 위 작품을 보면 <십자가 위 그리스도>라는 서양의 대표적 성화마저 세속화시키고 작가 나름의 독특한 관점을 도입한다. 그리고 노란색을 바탕으로 브르타뉴의 원시적 황토색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보다는 인성을 부각시킨다.

원시와 문명의 경계를 허문 타히티 시절

 <세 명의 타히티인>(캔버스에 유화, 73×94cm, 1899,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국립미술관 소장) ⓒ Scottish National Gallery, Edinburgh
 <세 명의 타히티인>(캔버스에 유화, 73×94cm, 1899,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국립미술관 소장) ⓒ Scottish National Gallery, Edinbur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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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고갱은 이를 원시주의로 발전시켜 근대 미술의 새 장을 연다. 원시주의는 1891년 그가 타히티 섬으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고갱은 예상 외로 그곳에서 힘들고 외로운 시기를 보낸다. 그는 생활고와 시력 악화 등으로 2년 만에 귀국한다. 그리고 1895년에 다시 타히티로 떠난다. 고갱은 이 시기 마침내 미술에서 문명과 원시의 경계를 허문다.

그는 산업화로 우쭐한 서구 문명에 대해 "문명은 인간을 메스껍게 만든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고갱은 유럽인이 서구 문명에 도취하고 있을 때 시인 랭보처럼 서구 문명을 저주하며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이후 그는 인간의 순수한 본능을 찾는 데만 관심을 둔다.

20세기 근대 회화를 연 기념비적 작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캔버스에 유화, 374.6cm×139.13cm, 1897~1898.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 Museum of Fine Arts, Boston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캔버스에 유화, 374.6cm×139.13cm, 1897~1898. 미국 보스턴미술관 소장) ⓒ Museum of Fine Arts, Boston
ⓒ 한국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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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아이헤이헤(아름다움을 위하여_타히티목가)>(캔버스에 유화, 169.5cm×54cm, 1898,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 소장)은 위 작품의 연작으로 대상을 보고 그린 게 아니라 상상해 그린 것이다. 장식적인 요소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파아이헤이헤(아름다움을 위하여_타히티목가)>(캔버스에 유화, 169.5cm×54cm, 1898, 영국 테이트모던미술관 소장)은 위 작품의 연작으로 대상을 보고 그린 게 아니라 상상해 그린 것이다. 장식적인 요소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 한국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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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인상파를 벗어난 종합주의와 서구 문명을 벗어난 원시주의를 통해 20세기 근대미술을 연 그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발표한다. 그게 바로 위 두 작품이다. 고갱은 작품을 통해 인간 욕망의 시원과 인류가 꿈꾸는 진정한 낙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이 작업을 할 때 고갱의 개인적 상황은 최악이었다. 사랑하는 딸 알린도 폐렴으로 죽었고 자신도 안질·습진·매독 등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까지 도달한 고갱은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원시신앙과 여러 토속신화를 차용해 인간이 염원하는 지상 낙원과 쾌락 세계를 우의(寓意)적으로 형상화했다.

헌신의 노력과 천재적 열정을 다 쏟아낸 작품이라 그런지 이 작품을 완성한 뒤 그에게는 큰 후유증이 남았다. 고갱은 자살을 시도하다 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된다. 사력을 다해 작가의 의지를 불태운 걸작이라 그런지 이 작품 앞에 서면 거기서 흐르는 장엄한 분위기가 함께 뿜어 나오는 전율과 감동으로 탄성이 절로 터진다.

고갱은 말년, 타히티를 뒤로하고 마르키즈로 떠난다. 이 시기도 평탄치는 않았다. 그는 그곳 식민지 총독과 갈등으로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쾌락의 집을 짓고 살았지만 심장병 등 지병이 악화돼 기력이 날로 쇠한다. 끝내 그는 문명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 채 54세의 안타까운 나이로 타계한다.

고갱의 현대적 재해석

 마르코 브람빌라(Marco Brambilla)의 <진화>(비디오콜라주 3D, 2013) ⓒ Tate, London
 마르코 브람빌라(Marco Brambilla)의 <진화>(비디오콜라주 3D, 2013) ⓒ Tate, London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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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갱전은 한국일보가 주최했지만, 서울시립미술관이 작업에 동참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김유연 큐레이터를 초청해 '이상적 융합'이라는 제목으로 고갱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내외 작가(라샤드 뉴섬·브람빌라·레스 레빈·양후동·임영선·노재운 등)의 작품도 전시장 중간 중간에 소개한다.

위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 브람빌라의 것으로 고갱이 100여 년 전에 던진 삶과 죽음,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물음을 600편의 영화가 들어가는 3D아트로 구현한 것이다. 21세기 소비사회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과 죽음과 욕망에 대한 태도를 다루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전시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공식 누리집(www.gauguin.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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