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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20분 후에 만날까요?"
"그래요."

심장이 쿵, 쿵 세게 뛰었다. 이런 식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손전화를 쥔 채 선배에게 갔다. 취재하던 소개팅 어플(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실제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어플은 1km, 5km, 무제한 등 거리를 조정해서 반경 몇 미터 안에 있는 사람 간 대화할 수 있다. 조심하라는 말에 "이 건물(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 1층 카페에서 만나는 건데 별 일 없겠죠, 뭐"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매우 떨렸다.

물론 떨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남자가 나올까? 어플로 대화를 하며 상대를 대략 알 수 있었다. 27살인 나보다 한 살 많고, 예전에 이곳에서 회사를 다녔으며 지금은 외근차 왔다가 시간이 남는다고 했다.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는데 갑자기 두려움이 차올랐다. 만약 카페 말고 다른 데서 얘기하자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럼 따라가야 하나?

이 포털 사이트에는 71개의 소개팅 어플이 등록돼있다. 등록돼지 않은 어플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 한 포털 사이트의' 소개팅 어플' 소개 화면 이 포털 사이트에는 71개의 소개팅 어플이 등록돼있다. 등록돼지 않은 어플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 곽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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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 300만 넘는 어플도... 소개팅 어플 위험할까

시작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소개팅 어플 때문이었다. 얼마 전부터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소개팅 어플 광고가 떴다. 처음 반응은 '이런 것도 다 있네'. 하지만 두 번, 세 번, 자주 접하자 호기심이 생겼다. 손전화에 설치해봤다. 어플을 소개하는 동영상이나 디자인, 캐릭터가 귀여웠다.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그만뒀다.

소개팅 어플이 처음 등장한 2010년에 비해 지금 어플의 수나 이용자 수는 크게 늘었다. 한 포털의 '모바일 앱' 범주에는 소개팅 어플 71개가 모여 있다. 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지만 기사나 웹문서에서만 소개된 것도 10개가 넘었다. 가입자가 200만 명이 넘는 어플도, 300만 명이 넘는 어플도 있다. 어플에서 만나 커플이 된 사연이나 결혼한 사이도 이제 주위에서 찾아보면 아예 없진 않는 상태다. 한 소개팅 어플 회사는 이들의 사례를 들어 자사의 서비스를 광고하기도 한다.

이런 어플에는 어떤 사람들이 가입해서 활동하는 걸까, 여기서 정말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밖에서 보는 것처럼 위험한 공간인걸까 궁금했다. 회원 수가 많고 인터넷에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린 곳 위주로 총 5개의 어플을 깔았다.

첫 인사는 칭찬으로 시작한다

프로필 개설 과정의 까다로움 여부에 따라 어플을 분류할 수 있었다. 3곳은 가입 즉시 사람을 소개받거나 채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관리자가 프로필 항목에 기입한 것을 확인하고 연결해주는 시스템이었다. 또한 프로필 개설시, 기입해야 할 정보들이 많았다.

어떤 곳은 의무적으로 사진 2장을 올려야 했다.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해당 대학의 졸업 증명서를 보내거나, 대학 계정의 이메일을 거쳐 확인받길 권유하는 어플도 있었다. 약 85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어플의 경우 하루 만에 프로필 확인이 끝났지만, 실제 만나려면 돈을 내야 했다. 소개팅 연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 이용권이 준비돼 있었다. 가격은 약 3천원에서 1만5천원 사이로 다양했다. 다른 곳은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가입 절차가 매우 간단한 나머지 두 곳은 회원 수도 많았다. 회원 수가 약 300만 명이 넘는 곳부터 시작했다. 개설을 끝낸 지 1분 만에 손전화 진동이 울렸다. 누군가 채팅으로 말을 건 것이다. 진동은 그날(13일) 저녁, 어플을 로그아웃 할 때까지 끊이지 않고 띄엄띄엄, 계속 울렸다. 대부분 안녕하냐는 인사와 동시에 외모를 칭찬하는 말로 시작했다.

말을 건 사람의 프로필을 보니, 아이디와 나이, 직업의 종류가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사진을 여러 장 올린 사람들도 많았는데 자신과 관계있는 것이 아닌 대부분 독사진이 많았다. 그 다음엔 여행 사진, 차 사진이 많았다. 자신을 소개하는 글과 직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이는 단 둘, 우연히도 모두 의사였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개인 정보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소개팅 어플 대화창 화면. 안녕하냐는 인사와 외모를 칭찬하며 말을 건다. 이 외에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도 첫 멘트로 많이 사용됐다.
▲ 소개팅 어플 화면 갈무리 소개팅 어플 대화창 화면. 안녕하냐는 인사와 외모를 칭찬하며 말을 건다. 이 외에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도 첫 멘트로 많이 사용됐다.
ⓒ 곽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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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동안 70개 정도의 대화 창이 열렸고 그 중 5명 정도와 대화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다양했다. 애인이 있는지를 묻거나 여기서 자연스럽게 연락하다가 만날 수도 있지 않냐는 사람, 퇴근은 잘 하고 있느냐는 질문, 사진이 힘들어 보인다며 힘 내라는 말, 여기 여자들은 남자들 사진만 보고 답변해준다는 말 등등 카톡으로 친구들과 수다 떠는 느낌과 비슷했다. 의외로 조건만남이나 성관계 요구를 암시하는 대화는 딱 한 건, "가능?" 이 한마디였다. 그 외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도 많았다.

소개팅 어플은 종종 언론을 통해 성범죄의 진원지, 가벼운 만남을 원하는 남자들로 우글대는 공간으로 소개된다. 여러 포털에서 '소개팅 어플'을 검색하자 사기, 부작용, 실태 등의 연간 검색어가 보였다. '어플 작업멘트'나 '심심할 때 채팅함서 여자 꼬실 수 있는 어플'등의 웹문서 제목,  남자친구가 소개팅 어플을 설치했는데 어쩌면 좋냐는 여자들의 글도 눈에 띄었다.

인터넷을 통해 연애 상담을 해주는 전문가들도 소개팅 어플을 가볍게 이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연애컨설턴트 여성욱씨는 "남성들이 소개팅 어플을 두고 하는 말은 '이 어플에 예쁜 여자들이 많다'가 아닌, '이 어플 가면 원나잇 할 수 있다, 멘트(말)를 어떻게 해야 여자들이 잘 나온다'이다"고 말했다. 많은 남자들이 연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번의 성관계를 위해 어플을 찾는다는 것이다. 어플 관리자가 프로필을 꼼꼼하게 검사한다고 해도 그런 목적을 가진 이들을 걸러낼 수 없다고 했다.

연애컨설턴트 송창민씨는 실제 상담 사례 중 "소개팅 어플로 만나 성관계를 가진 후 연락이 없거나, 물건을 빌려간 후 연락이 두절된 경우가 있다"며, "프로필에 나온 여러 사진과 자신을 칭찬하는 말만 믿고 푹 빠져 사귀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사진을 올린 이용자가 실제 의사인지 아닌지는 당사자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소개팅 어플로 만난 그, 명함을 건네다

내가 만난 그 사람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상도 좋아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명함을 건네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밝혔다. 뭔가를 속이거나 나쁜 의도로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가 기자라고 밝히며 인터뷰를 요청하자,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얘기를 해주었다.

그는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채 회사 근처에 살고 있으며 어플을 이용한 지는 한 달 정도 됐다고 했다. 집 근처에 친구가 없으니 심심한 나머지 어플을 통해 동네에서 여자와 한 번 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여자하고는 만남 이후 가끔씩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한다고 했다. 오늘은 외근 후 시간이 뜨는 바람에 어플을 켰다고 했다.

어플 이야기뿐 아니라 회사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나눠보니 신기하게도 접점이 있었고, 서로 아는 사람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해보려는 나쁜 의도로 접근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점점 사라졌다.

이 어플의 다른 여자 이용자는 소개팅 어플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어플을 사용한 지 2년째라는 박아무개(21)씨는 "어플 안에서 모임이 만들어지고 친분이 쌓이자 다들 예의 있게 행동하게 된다"면서 "관리자들도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이용자를 따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연애를 위한 들이대기가 자연스러운 공간이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일종의 마지노선이 생긴다는 것이다. 박씨는 "혼자 다니면서 불순한 목적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민경배 교수(경희사이버대 NGO학과) 역시 소개팅 어플의 영향력이나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을 과도하게 평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2000년대 초) 채팅 사이트가 많아지면서 채팅이 가정 불화를 조성하고 성폭력·성범죄 등 여러 일탈의 온상이라며 채팅 때문에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난리가 났었으나 지금 어떤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소개팅 어플의 (성)범죄 가능성은 다른 공간에서의 위험 정도와 비슷하며, 이 공간을 대단한 우범지대로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나의 첫 소개팅 어플 만남은 한 시간 정도 대화 이후 끝났다. 가끔 이곳으로 외근을 온다는 그와 시간이 맞으면 또 볼 수 있기를 기약했다. 나는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데, 내가 만난 그 사람은 꽤 괜찮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연애컨설턴트 송창민씨는 한 번의 경험으로 소개팅 어플을 정의해선 안 된다고 말해줬다. 그는 "기자임을 밝히지 않고, 낮 시간이 아닌 밤 시간대에 소개팅 어플을 이용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 맞을까.


태그:#소개팅 어플, #소셜 데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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