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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기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대화국면의 미래는 아직 밝지만 않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코리아연구원과 함께 위기극복과 대화국면 조성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러시아, 중국, 북한, 미국, 일본의 대한반도정책을 전망해보고 정책결정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과 조직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번 기획에는 윤성학(러시아·고려대학교 러시아CIS 연구소 연구교수), 주장환 (중국·한신대교수), 장용훈(북한·연합뉴스 기자), 양기호 (일본·성공회대교수), 김준형 (미국·한동대교수) 등 국가별 전문가들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2년 4개월만의 남북 당국회담(실무회담)을 앞두고 남북 양측이 수석대표의 급(격)을 놓고 대립하다가 결국 무산됐다. 이에 따라 북한의 대남정책결정기구 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대남정책기구는 노동당 내에 자리하고 있다. 남북관계와 관련된 입장이 '노동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규약 서문은 "조선노동당은 전조선의 애국적 민주역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한다"며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고 밝혔다.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대남정책 주도

노동당 주도로 대남정책이 수행되고 있고 기구도 당내 조직으로 편제된 셈이다. 노동당에서 대남정책을 총괄적으로 담당하는 역할은 통일전선부에서 맡고 있다. '통전부'로 불리는 이 조직은 1978년 만들어져 해외동포 관리 등 통일전선과 관련된 공작과 남북대화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통전부 산하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조국통일연구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해외동포원호위원회(해동위) 등이 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조평통은 통전부의 산하 조직이지만 사실 통전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조평통은 남한의 4·19혁명 직후인 1961년, 남한 사회에서 분출되는 통일논의를 대남혁명전략에 활용하기 위해 '평화통일과 남북교류'를 표방하면서 북한 사회 각계 인사를 망라해 설립됐다.

조평통은 통일전선 구축이라는 목적 아래 대남선전공세,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 표명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조직을 보면 중앙위원회와 상무위원회, 참사실, 서기국 등이 있고 서기국 산하에는 조직부, 선전부, 회담부, 조사연구부, 자료종합실 등을 갖추고 있다.

북한 내에서 조평통의 위상은 김용순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 담당 비서가 위원장을 겸하고, 김기남 당비서나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거물급 인사들도 조평통의 부위원장직을 맡는데 그칠 정도로 높다.

거물급 인사들이 조평통 부위원장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 김기남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원동연 아태위원회 실장 등 3명이 23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 면담을 위해 숙소인 그랜드 힐트 호텔을 나서고 있다.
 지난 2009년 방문한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 김기남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도 등.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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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전선은 북한 노동당의 통일노선과 정책을 옹호하는 기구로 1949년 6월25일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서 결성됐다. 이 기구는 남한에서 발생하는 주요 사건에 대해 성명과 담화 등을 발표하는 대남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아태평화위는 아태지역의 미수교국과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 1994년 5월 통전부 산하에 구성됐다. 이 기구는 미국, 일본 등과 관계 개선을 위한 창구 역할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남북간의 각종 민간교류와 경제협력 업무의 집행기관 역할을 했는데 금강산 관광사업을 추진한 현대그룹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위원장은 통전부장이 겸한다.

민화협은 1998년 6월 8·15민족대축전 제의에 앞서 북한의 경제·사회·문화계 단체와 인사들로 구성한 단체다. 민간급 성격을 부각하면서 남측 민간단체와 교류 창구로 활동하고 있다.

조국통일연구원은 1959년 12월 남조선연구소로 출범했으며 1978년 통전부가 출범하면서 산하기구로 흡수됐고 1992년부터 현재의 명칭인 조국통일연구원이라는 명칭을 쓴다. 한반도 주변 정세를 분석하고 백서 발간 등을 통해 남한 정부를 비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처럼 다양한 대남기구가 있지만 역시 가장 수위에 있는 조직은 통전부라고 할 수 있으며 북한의 대남정책결정에서 통전부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남정책결정의 최고 실세는 김양건... 원동연도 베테랑

따라서 현재 북한 대남정책결정의 최고 실세는 김양건 통전부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 부장은 당 국제부에 오래 근무하며 외교의 일선에 섰던 중국통으로 국제부장을 지내며 국제적 감각을 키웠다. 그는 200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당시 통일부장관의 '6·17 면담'에 국방위원회 참사 자격으로 배석한 것을 시작으로 대남사업 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2007년 3월에 통전부장이 됐고 2010년 열린 당대표자회에서 대남 담당 비서에 올랐다.

2007년 10월 열린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간 회담 성사의 주역이기도 한 김 부장은 정상회담 개최 직전인 9월말 서울을 극비 방문해 정상회담 의제를 합의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했다. 또 정상회담 직후인 11월에도 정상선언 이행 방안 논의를 위해 방한, 노 대통령과 주요 당국자들을 면담하고 산업시설도 둘러봤다.

그는 201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때 북한의 조의특사단으로 김기남 당 비서와 함께 서울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다. 또 지난 4월에는 통행제한 조치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개성공단을 직접 방문했으며 이어 본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북한 근로자의 전원 철수조치를 밝히기도 했다.

김 부장과 더불어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도 20여년간 남북간 주요 고위급 회담과 접촉에 빠짐 없이 관여해온, 대남분야 베테랑 실세로 분류된다.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 때 막후에서 합의문안을 조율할 정도로 이론가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때 수행원으로 1차부터 7차 회담에 참가했고 1992년 고위급회담 때는 군사분과위원회 위원으로 나섰으며, 1995년 7월 베이징 2차 쌀회담 때는 북측 대표를, 9월 3차 쌀회담에서는 대변인을 맡았었다. 그는 또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남쪽을 방문했을 때 시찰단의 실무 현안을 책임지는 현장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으며 조평통 서기국 부장 등 여러 직책을 갖고 있다.

주변국과 대화 나선 북한... 장성택 역할 절대적인 듯

밝은 분위기속 남-북 실무회담 시작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9일 오전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가운데,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정책실장(오른쪽)이 북측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지난 9일 오전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는 가운데,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정책실장(오른쪽)이 북측 김혜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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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은 2012년 9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수행하고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분향소가 마련된 평양 세계평화센터를 직접 찾아 조문한 뒤 김 제1위원장의 조의를 전달했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두 인물은 김정은 체제의 후견인인 장성택 부위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지고 있어 대남정책을 조율하는 핵심 중의 핵심은 장 부위원장으로 볼 수 있다.

장 부위원장은 이미 김정일 시대부터 남북관계 개선에 깊숙이 개입해온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남한의 주요산업시설을 돌아보기도 했다. 특히 그는 남북관계 뿐 아니라 북한의 주변국과 관계를 풀어 나가는데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북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데도 적극적이다.

장 부위원장은 지난해 8월 직접 경제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지원과 협력을 이끌어냈고 새로운 경제조치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운영하는 등 체제의 안정을 위한 경제난 해소에 주력했다. 앞서 2002년에는 네덜란드 화교 출신 양빈(楊斌)을 행정장관으로 영입해 신의주 특구개발사업을 주도했다.

시장적 요소를 담은 7·1경제관리개선 조치를 추진하는 과정에 군부와 노동당 내 강경파에 의해 밀려났던 박봉주가 작년 4월 당 경공업부장에 이어 올해 4월 총리에 복귀하는 과정에도 장 부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최근 주변국과 대화를 나서는 과정에서도 장 부위원장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장 부위원장의 공개 활동은 지난 달 13일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부부와 조선인민내무군 협주단 공연 관람 이후 이달 9일 김 제1위원장의 체육촌 시찰 때까지 실종됐다. 김 제1위원장은 강원도를 방문해 현지 군부대와 각급 산업시설을 시찰하고 6월 초에는 소년단 제7차 대회에 참석하는 등 전국 규모 행사에 모습을 자주 드러냈지만 장 부위원장은 불참했다.

최근 정세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은...

따라서 장 부위원장이 최근 북한의 대외 유화 행보를 이끌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달 14일부터 17일까지 일본의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가 사실상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특사로 방북해 북일회담 재개와 납치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달 22일부터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김 제1위원장이 특사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나 6자회담을 비롯한 주변국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 6일에는 조평통의 남북당국간 회담 제의가 나왔고 7일에는 남측의 장관급회담 수정 제의가 있었던 만큼 장 부위원장이 김 부장과 원 부부장 등을 이끌고 남북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 함께 게재됩니다.
장용훈 기자는 <연합뉴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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