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5년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당론으로 정하고 이에 관련된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때만 해도 대다수 국민은 그것을 절대 실현될 수 없는 일이라고, 원내에 갓 진입한 좌파 군소 정당이 국민의 관심을 끌어보기 위해 벌이는 일종의 '정치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지 않아 '보편적 복지' 패러다임은 우리 현실 정치에서 주요한 단층선으로 등장했다.

지난 대선은 '복지'가 제1 단층선으로 작용한 최초의 선거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서구 정치에서의 복지 확대과정과는 크게 달랐다. 복지 확대 논의를 좌파보다 우파가 주도하였다는 점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었고, 재정 부담에 있어서 국민의 큰 저항이 있다는 점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보수 진영이 패한 이후, 새누리당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파는 좌파와 민주당이 내건 '보편적 복지'에 대응하기 위해 '생애주기별 복지'를 내세웠다. 2010년 말, 당시 박근혜 의원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고 공청회를 통해 여론을 주도하면서 '재정 건전성과 복지지원의 적정성 두 가지를 잡은 합리적인' 생애주기별 복지 대 '퍼주기식' 보편 복지 프레임을 형성하였고, 이는 대선 승리로 귀결되었다.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은 복지정치의 주도권을 보수 세력에게 빼앗겼다.

복지마저 빼앗긴 위기의 진보진영... 담론도, 인물도 안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복지 담론을 내세우며 승리한 보수 진영은 향후 복지 개혁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이는 결국 대선 이후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 및 담론상실의 위기를 의미한다. 진보 세력이 '복지' 담론의 주도권을 보수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뼈아프다. 더욱이 진보정당은 자중지란을 겪으며 의회 안에서 세력이 축소되었으며, 대중적인 지지 또한 이반하였다.

진보정치의 핵심조직인 민주노총과 현실 정치의 연결고리도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진보 정당의 의제 설정과 조직 운영의 주춧돌과 같은 조직이었는데 지난 대선 정국에 민주노총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진보 정치 핵심조직으로써의 역량이 소진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진보진영이 그간 차용해 온 '보편적 복지' 담론마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이것이 대중들에게 '돈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며, 실현 불가능한' 계획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시민 등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엘리트들도 더 이상 대중적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진보진영은 'post 386'에 대해 담론도, 인물도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민주당은 다시 김한길, 진보정의당은 여전히 노회찬, 심상정, 담론 논의는 보편복지 틀에 갇혀 있게 된 것이다. 

안철수는 이수봉, 최장집과 화학적 결합이 가능할까

이러한 와중에 주목을 끌게 되는 네 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안철수와 최장집과 이수봉 그리고 손학규다. 이들은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물들로 향후 진보계열의 정치사상과 방향성을 제시할만한 입지를 갖춘다. 특히 현재 안철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이 인적 네트워크가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화학적 반응을 만들 수 있는 결합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안철수는 얼마 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하였고, 보건복지위로 상임위를 배정받았다. 그러면서 새정치의 정책팀을 총괄할 4급 보좌관에 이수봉(전 민주노동 연구원장, 기본소득 네트워크 운영위원)을 영입한 바 있다. 이수봉의 영입이 단순히 노동계와의 연계를 염두에 둔 포석인지 아니면 대안적 복지제도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수봉은 한국에서 기본소득운동을 주도해 온 인물이다. 특히, 2009년 강남훈, 곽노완과 공저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연령층별로 기본소득액을 달리하는 한국판 기본소득안 및 재정 계획 등을 포괄한 저술로, 국내 기본소득 운동에 있어서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저술이다.

그는 이 저술에서 "정규직 양보론은 비정규직이 발생하는 원인은 정규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구조 그 자체에 있다는 점을 은폐한다. 끊임없는 이윤추구와 과잉생산구조는 필연적으로 이윤율을 저하시키고 이에 따라 과잉노동인구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성장도 아니고 분배도 아닌 탈성장 시대의 담론을 제시하는 것, 노동과 가치의 고리를 끊어 자본주의의 이념적 지배 자체를 해체시키기 위해 기본소득을 쟁취하는 것, 그리고 노동 안에서의 해방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사실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조건 없이 매월 일정액을 지원하자는 기본소득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공동체주의 등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연구자들이 기본소득의 취지에 동의하고 있다. 이수봉의 기본소득론은 앙드레 고르의 인식과 유사하지만, 여전히 노동계급만을 핵심 행위자로 보고 있다는 점과 환경 및 생태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안철수 새 정치의 또 다른 한 축은 진보진영의 원로 최장집 교수이다. 그는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를 뒷받침 할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맡았다. 진보진영의 사상적 기반을 주도한 원로학자로 평가되고 있는 그가 안철수와 손을 잡은 것은, 진보진영의 학자들이 새로운 진보 아이콘으로서의 안철수를 생성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최 교수는 최근 몇 년간 '노동의 위기' 담론을 강조해왔고,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도 최 교수는 '노동 중심성'과 '진보성'을 안철수 신당의 핵심 가치로 제시한 바 있다. 안 의원 또한 이에 대해 "노동 문제가 중요한 정치의제가 돼야 한다는 것은 같은 생각"이라는 견해를 표명하며 동조한 바 있다. 이는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인 스텐스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철수 진보성의 핵심은 좌우 구분을 뛰어 넘는 것

이 지점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안철수 신당이 '노동 중심성'을 추구할 경우 진보 지지층을 두고 기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과 경쟁해서 이길 수는 있겠지만, 중도층의 지지를 잃게 되어 보수정당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핵심의제로써의 '노동'은 인정하지만, 이를 포괄할 수 있는 메타 요인이 요청되는 상황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안철수 신당이 표방하는 진보성은 노동을 중심으로 하되, '왼쪽'의 진보성이 아니라 기존의 좌우 구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진보성이어야 한다. 이러한 진보성의 초안을 보여주었던 인물이 바로 손학규 전 의원이다. 2008년 대선 패배 후 손학규는 2년 동안 춘천의 농가에 칩거하며 닭을 키운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흡사 안 네스와 같은 근본생태주의자들의 삶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지난 여름,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와, 같은 제목의 책을 내놓은 바 있다. 많은 이들의 감성에 빠지게 했던 그 구호의 이면에는 생태적 성찰이 깃들어 있다. 저서에서 '저녁이 있는 삶'은 지난 60년의 대한민국 근대화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면서 내린 결론이라고 서술하면서 "우리는 정당하게 쉬어야 한다. 그게 정의로운 일이다.","'저녁이 있는 삶'이란 노동시간단축 그 이상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잠깐! 생태주의가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단순히 자연이, 환경이 중요하다는 논리가 아닙니다. 성장하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회와 경제 체제 그리고 물이나 대기 등 자연 환경과 자원을 포함하여 우리 삶을 구성하는 조건들이 지속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를 위해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자연에 대한 착취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가 당신 마음에 돌을 던졌다면 당신은 이미 생태주의적 감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물론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 또한 기술만능주의, 자유지상주의적 생태주의부터 생태 사회주의, 생태 맑시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생태주의에 대해 더 궁금한 분은 이상헌의 <생태주의>나 문순홍의 <생태학의 담론> 일독을 권한다.)

물론 그의 논의는 노동시간감축 및 공동체주의적 복지국가의 수립으로 귀결되었고, 환경이나 생태에 대한 고려는 부재했다. 하지만 그는 산업화-성장우선주의에 반하는 담론을 제시한 최초의 주류 정치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일 덜 해도, 성장 덜 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인기 없는 이야기를 대중에게 던져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즉,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도 생태주의 담론은 기존 좌우의 이데올로기적 구분을 넘어,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아직 우리는 안철수에 대해 모른다. 진보정치의 미래가 워낙 불투명하기에 우리가 원하는 바를 그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다하더라도, 대중 민주주의 하에서 현재의 진보진영에게 안철수는 유일한, 현실 가능한 대안이다. 그리고 진보진영과의 화학적 결합이 안철수 본인이 <생각>에서 밝힌, 더 멋진 국가를 현실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핵심지점 몇 가지를 다시 도출하며 글을 정리해보자.

생애주기별 복지와 보편복지를 넘어 '성찰적 복지'의 시대로

우선 보수의 '생애주기별 복지'와 진보의 '보편복지'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 또한 중요하다. 이수봉의 기본소득론은 그 분석과 논의가 지나치게 맑시즘적 논점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이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그것은 노동운동가 출신인 그가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제도가 가진 문제들을 혁파해 낼 하나의 '도구'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 하에서 혹여 안철수신당이 기본소득 관련 정책을 표방할 경우, 중도파의 지지를 잃게 될 수 있다. 이 문제의 방법은 기본소득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근거의 지형을 확대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또는 사회적 지분급여는 맑시스트뿐 아니라 생태주의자, 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들과도 충분히 타협 가능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안철수신당은 생태주의적 인식에 기반한 "성찰적 복지"를 새로운 담론으로 주창할 필요가 있다. "성찰적 복지"란 자본주의 경제 체제 내에 존재하는 모순과 현존하는 생태 질서 안에 존재하는 모순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꿈꾸는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복지를 의미한다.

즉, 위 두 문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시민(그것이 노동자건, 중민이건 간에)에 의한, 그들에 의한 복지제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분배/성장','좌파/우파'의 구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진보성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이것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누구이며, 핵심 역량을 가진 집단이 어디인지에 달려 있다. 아이콘으로서의 안철수의 폭발력은 이미 확인되었다.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이미 생태주의에 기반한 '성찰적 복지'가 대중적 지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준 시금석이었다.  

'노동' 이외의 핵심역량집단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

최근 한상진 교수와 최장집 교수 간에 노동자냐 중민이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노동'은 조직화 되어있고 실천능력이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담론에 과격함이 있어서 중도파와 함께 하기 힘들다. '중민'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확보하기에는 유리하지만, 담론이 뜬 구름이기에 결의수준이 낮고 정치 조직화가 힘들다. '성찰적 복지' 담론은 이 지점에서 유리함이 있다. 현존하는 체제의 두 모순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개인은 조직화된 노동자와 '강남 좌파', 그리고 중산층 엘리트까지를 묶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안철수가 이수봉을 선택한 것은 노동계급과의 연대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에서 고프(Ian Gough)는 복지제도의 발달과 확대과정에 복지 수급 경험을 통해 복지 확대를 선호하는 '친복지 동맹'을 구축해 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 동맹의 핵심에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좌파정당이 위치해야만 이것이 공고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최장집 교수가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여기에 고려할 수 있는 핵심집단을 더해본다면, 바로 '진보적인' 종교인 집단이다. 우리나라 보수 기독교의 양대 교단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2009년 총회 선언문을 통해 "한국교회는 경제구조와 생태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고 밝히며, 2012년 '생명공동체운동'을 향후 10년간의 표어로 선언하였다.

이미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천주교, NCCK 계열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생태 담론을 하나의 실천신학적 축으로 받아들여 생태-환경주간, 협동조합, 생태교회모델 등을 연구해왔다. 강정마을 활동, 도롱뇽 소송 등에서 천주교와 불교 내에는 이미 근본생태주의의 패러다임을 체화한 그룹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이들 집단과도 정교분리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사회운동 차원의 결합을 고려할 수 있다. 

각종 OECD 사회 지표에서 늘 바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을 지켜봐 온 한국인들은 성장지상주의와 세계화 논리에 지쳐 있고, 초등학교 시절 성적 경쟁부터 늙어서 파지 줍는 일까지 경쟁해야 하는 삶에 대해 지쳐 있다. 2005년 민주노동당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선언할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비웃었다. 아무도 10년이 채 안된 미래에 저것들이 대선의 분수령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생태주의적 인식에 근거한 '성찰적 복지' 담론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10년쯤 후엔 한국인의 삶을 세계화된 자본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태그:#안철수, #성찰적복지, #보편복지, #생태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