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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5월,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부산경남입니다. [편집자말]
포장된 어묵이 진열돼 있다.
 포장된 어묵이 진열돼 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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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무심코 집어든 어묵 한 봉지, 단연 눈에 띄는 건 '부산어묵'이다. 당연히 부산에서 만들어진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바구니에 집어 담았다. 그런데 제품 뒷면을 살펴보니 생산지는 경기도다.  그럼 '경기도 어묵' 이라 해야지 왜 굳이 '부산어묵'을 쓰는 걸까?

마트에서 파는 어묵 다 부산어묵 맞나?

"부산어묵이라 해야 사먹는데 뭐, 그래 안 하면은 안 팔리니까 우짜든 부산어묵 붙이고 나오는 거지 서울어묵 뭐 이런 거 없다 아입니까."

지난 5월말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에 위치한 한 어묵공장에서 부산어묵과 관련된 궁금증을 풀어봤다. 기자가 찾은 어묵 공장을 최근 장림동으로 자리를 옮겨 60년째 생산을 계속해 오고 있다. 원래 장림동은 피혁단지로 유명했지만 대형 어묵 단지로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장림동에는 24개의 어묵업체가 밀집해 있다. 기자가 만난 S기업 박종수 대표는 "여러 어묵공장이 밀집해 있어 폐수처리, 원재료 공급 등에서 얻게 될 집적이득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최대한 방해 없이'라는 조건 하에 생산공정을 살펴봤다. 공장 내부로 들어가기 전까지 청결상태를 계속 검사 받았다. 방진복과 모자, 장화는 기본이고 여러 번 손을 씻고 바람으로 다시 몸을 털어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갓 튀겨낸 어묵의 고소한 냄새에 순간 군침이 넘어갔다. 혼합, 성형, 유탕의 과정을 거쳐 자동화 시설에서 어묵이 쏟아져 나왔다. 뜨거운 기름에서 튀겨낸 노릇노릇한 어묵들이 하나둘 나오는데 당장 한 입 베어물고 싶을 정도였다.

수제어묵이 완성된 모습.
 수제어묵이 완성된 모습.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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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장인'이 만들어낸 수제어묵은 이 공장의 자랑거리다. 산처럼 쌓인 어육옆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칼을 몇 번 '탁탁' 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쓱 말아 훌륭한 수제어묵 하나가 완성됐다. 수제어묵을 만드는 장인의 경우 하루 3000개 정도의 어묵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손 맛'이 더해진 수제어묵에 떡, 게살, 소시지 등이 추가돼 다양한 맛으로 소비자에게 배달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한 주문이 가능하며 사각어묵(6장, 300g)은 2천원이며 수제어묵은 3천원-4천원 사이다.  

"가장 중요한게 우선 청결입니다. 그리고 일단 맛있게 만들려면 재료가 좋아야 하고 기름이 깨끗해야지요. 저는 '어묵 참 잘 만들었다' 이 말이 제일 좋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나오는 물건에 항상 자부심을 갖고 있고요. 60년 기술이 다 여기 있는 거니까. 우선 맛보면 다들 알아요 "

장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자랑이라 그런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소비자들이 '부산어묵'을 찾는 이유는 단연 맛과 품질 때문이다. 어묵은 밀가루와 어육(연육과 생육을 합친 것)의 배합비율에 따라 맛이 결정되고 품질의 차이가 난다. 어육함유량이 높을 수록 맛있는 어묵이라는 이야기다. 이곳에서는 수입산 연육과 국산 생육을 혼합해 사용하고 있다. 오랜 시간 이어온 장인정신도 맛의 격차를 더한다. 현재 S식품의 경우 모든 제품의 어육량을 80%이상으로 맞춘다고 설명했다. 이 곳에서 생산한 고급어묵의 경우 밀가루 함량을 5%이하로 낮추어 어묵의 본고장인 일본어묵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단다. 

부산어묵이 맛있으니까 사람들은 '부산어묵'을 대표 상호로 떠올린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곧 소비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 중 진짜 부산어묵은 얼마나 될까? 박종수 대표는 "'부산어묵'이라고 유통되는 상품 중 60%는 타 지역에서 생산된 대기업 제품으로, '부산어묵' 이름만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어묵 시장진출이 활발해지면서 CJ, 동원F&B, 대림수산 등 대기업 3사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74%를 웃돌고 있다.(2012년 12월31일 닐슨SS데이터 기준) 반면 부산 군소업체에서 생산된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25%대로 점차 하락하는 추세다. 대기업의 경우 유통, 마케팅, 자금공급 등에서 판매 우위를 점하고 있어 매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결국 소비자가 원조 부산어묵을 접할 기회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박 대표가 설명하는 대기업에서 생산된 어묵과 원조 부산어묵의 가장 큰 차이는 어육함량이다. 대기업 제품의 경우 원조 부산어묵에 비해 어육함유량이 10~20%정도 낮다. 사용하는 원료가 다르기 때문에 식감도 다를 뿐더러 어육의 수입산과 국산 비율도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대기업의 어묵시장 진출이 2006년부터 본격화 되었기 때문에 그 전부터 이어져온 부산의 군소업체들의 '기술력'과도 확실한 차이가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대기업의 경우,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홍보와 마트 중심의 체계적인 유통망을 이용하는데 반해 부산 군소업체의 경우 입소문에 의한 직접 마케팅과 재래시장을 통한 보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부산어묵'을 지키기 위한 조건

그렇다면 부산에서 만든 어묵에만 '부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는 없을까? 박종수 대표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산어묵조합에서 20년 전부터 '지리적 표시제'를 추진하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부산에서만 재료를 공수하는 게 아니라 수입산 재료도 함께 쓰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들 '부산어묵'을 쓰게 된거죠." 

'지리적 표시제'란 해당지역 안에서 생산된 제품이 대해 해당지역의 명칭이 포함된 상호를 이용하도록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순창고추장, 하동녹차 등이 지역의 이름을 붙여 특산품을 지켜나가고 있다. 부산과 전혀 연고가 없는 어묵이 '부산어묵'으로 출고가 가능한 이유는 어떠한 기준이나 제약조건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어묵생산 현장
 어묵생산 현장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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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맛없는 어묵을 사 묵으면 당분간은 어묵을 안 묵겠지요. 그러니까 맛있게 만들어야지. 맛있게 만든 어묵 한 번 먹고 나면 소비자는 또 어묵을 찾게 될 겁니다. 그게 시장이 커지는 방법이죠. 어묵이 자꾸 발전해서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해야겠지요. 저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종수 대표는 가격경쟁으로 매출을 높이는 것이 아닌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저가 어묵시장은 경쟁이 매우 치열해 군소업체의 경우 대기업과 가격 경쟁력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현재 어묵업체들이 원조 '부산어묵'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부산시와 부산테크노파크 지원으로 공동브랜드를 추진 중이다. 현재 이 작업이 특허청에 계류중이며, 허가가 날 경우 부산어묵협회는 HACPP(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를 받은 업체 36개와 함께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에 본격적으로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공동브랜드 '부산어묵'이 현실화되면 재료 함량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S식품 공장을 돌아보면서 얻은 결론은 원조 부산어묵의 정체성은 오직 맛으로만 결정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만들어질 부산어묵 공동브랜드가 소비자들에의 까다로운 입맛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태그:#부산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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