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2년 12월 19일 오후 6시, 18대 대선 방송3사 출구조사 발표가 나온 후 울산 남구 신정동 민주통합당 울산시당에서 결과를 지켜보던 송철호(오른쪽) 변호사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송철호 변호사는 선거 때마다 지역 보수층의 전라도 비하에 고통을 겪어 왔다
 2012년 12월 19일 오후 6시, 18대 대선 방송3사 출구조사 발표가 나온 후 울산 남구 신정동 민주통합당 울산시당에서 결과를 지켜보던 송철호(오른쪽) 변호사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송철호 변호사는 선거 때마다 지역 보수층의 전라도 비하에 고통을 겪어 왔다
ⓒ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8월의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앞두고 한 통의 메일이 날아 들었다.

울산지역에서 그래도 지도층 인사라고 지칭되는 그는, 나 뿐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시에 메일을 발송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으로 희한했다. 또한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보낸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제목부터가 고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씨를 대놓고 비하하는 것인데, 그 내용을 읽다보니 말문이 막혔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김대중=빨갱이, 이희호=불여우'다. 읽기 조차 거북한 메일의 내용은 각가지 논리를 갖다붙여 장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같은 불손한 내용들을 접하는 것이 지역에서는 그리 새삼그런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이같은 발언을 주로 일삼는 자들은 놀랍게도 지역에서 방뀌깨나 뀌는, 소위 보수성향의 지도층 인사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같은 언행들의 결론은 항상 전라도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전라도이기 때문에 안되고, 전라도이기 때문에 빨갱이라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이같은 망설은 점차 사실인양 오도되면서 각종 선거때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주로 보수층 지지자들에게로 확대 재생산됐다.

한데 놀랍게도, 말도 안될 것 같이 반복해 재생산되는 이런 논리가 지역의 각종 선거에서는 제대로 먹혀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계층도 이런 논리를 사실인양 인지한다는 것이다.

구제 받은 사회적 약자마저 지역갈등 조장에 휘말려

경험한 내용들을 말하자면 입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 약자계층에까지 그런 논리가 먹혀든다는 것이다.

2008년까지 내가 살던 울산 동구 화정동. 그곳에 있는 한 이발소에서 종종 경험한 일이다. 이곳은 정부로부터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지원을 받는 손님들이 주 고객이다. 나는 이곳에서 10여년을 살았는데, 주민들은 스스로가 "정부의 기초수급대상자 지원이 없었다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초생활보장제가 제정되기 전에 이 지역 사람들이 겪었던 고충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발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면서 듣는 말들은 고역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종종 나오는 말은 김대중=빨갱이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몸이 불편하거나 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운 주민들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해 주는 기초생활보장법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해인 2000년부터 시행됐고, 노무현 정부 때 더 강화됐다.

하지만 이 법이 아니었으면 굶어죽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말한 사람들 입에서, 그 법을 만들고 강화한 전직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이 나오는 것을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내가 그곳을 떠나게 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꼭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되는 논리를 부풀리고 심어주는 계층을 탓할 일이라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닫는다.

지난 2002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일이다. 송철호 변호사의 일이다. 그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전후해 노무현·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로 잘 알려졌고, 지역의 노동자나 서민들에게 신망이 높았다. 하지만 항상 그를 괴롭힌 건 지방색이었다.

그는 울산에서 총선 혹은 지방선거에 수 차례 나섰지만 연거푸 낙선했다. 지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으나 석패한 그는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역시 고배를 마셨다. 이어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를 항상 괴롭힌 것 바로 송철호=전라도라는 논리였다. 그로 인해 낙선했다는 것은, 지역에서 그동안 전라도를 얼마나 비하해왔는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그 예를 잘 보여주는 선거가 2002년 지방선거다.

송철호 변호사는 당시 사실상 야권 대표로 울산시장 선거에 나섰다. 선거를 앞두고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각종 언론 여론조사에서 그는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온, 무명이며 울산시 건설국장 출신인 박맹우 후보에게 월등히 앞섰다. 하지만 몇 개월 사이에 판세가 뒤집어졌다.

한 지역 일간지가 그에게 행했던 유치한 보도가 먹혀들었던 것이다. 선거일을 앞두고 연일 1면 머릿기사를 도배한 이 신문의 제목부터가 요상하다. "송철호 호남출신" "송철호 철새 정치인 확인" 식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막거나 단속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없었다. 결국 그는 선거에 패했다.

이후 노동계와 야당이 해당 신문사를 향해 질타를 날렸으나, 막상 해당 신문은 그 어떤 법의 제재도 받지 않았다. 다만, 이 신문사는 몇 년 후 울산교육감 선거에서도 특정 후보를 옹호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더 많은 신문을 찍은 후 기자들을 시켜 배포한 사실이 법을 통해 밝혀져 사장이 구속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지역의 보수층이 민주당에게 덧씌워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이 전라도 비하라면, 진보정당에게 날리는 펀치는 색깔론이었다. 선거 때면 보수층 지도층 인사들은 운집한 군중앞에서도 대놓고 색깔론을 날렸다. (관련기사: <김창현 "정몽준 '김일성 운운' 발언 허위사실... 검찰 고발">)

특이한 점이 있다면, 빨갱이로 매도되어 온 진보정당은 현재 울산의 6개 기초지자체장 중 2개를, 60개 지방의원 중 30% 가량을 배출한 반면, 전라도 비하로 매도된 민주당은 단 한 석의 의석이나 지자체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빨갱이보다 전라도가 더 무섭웠던 것일까?


태그:#울산 보수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