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비와 영복이 부르는 영화 <원스>의 OST 'Falling Slowly(폴링 슬로울리)'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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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밤 8시, 지하철 3호선 교대역 역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옷차림도 유난히 두터웠다. 봄의 문턱에서 기승을 부리는 꽃샘추위가 행인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게 만든 듯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 시각, 지하철 역에서는 낯선 외국인 음악가들이 기타 하나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공연 준비에 바쁜 그들에게 다가가 이름을 물어보니, 보비(Bobi,1990년생)와 영복(Youngbok,1992년생) 이라고 답했다.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긴 머리가 인상적인 보비와 청바지가 멋스러운 영복, 하지만 두 사람의 길거리 공연 준비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통기타와 스피커 장치, 그리고 목을 축이려고 사둔 음료수 1.5리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저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나 끌 수 있을까. 외국인 거리 음악가들이 우리나라의 관객 수준을 너무 높게 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나라 지하철 역사는 전문 음악가의 무대도 외면당하기 십상인 곳이다. 오래전 자신의 신분을 가린 채 연주했던 유명 음악가도 된서리를 맞은 유명 일화가 있지 않은가. 속으로 살짝 걱정이 됐다. 열악한 준비로 과연 제대로 된 무대가 나올지 의문이었다. 혹여 우스꽝스러운 무대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보비와 영복의 노래가 시작된 후, 의심은 감탄으로 변했다. 수준급이었다. 멋진 기타 편곡으로 일궈낸 열창은 지하철에 가득 울려퍼졌다. 덕분에 삭막했던 지하철 역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됐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던 몇몇 사람들이 멈춰서 노래에 귀를 기울였고, 어떤 이들은 뜨거운 박수와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필자도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흐르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낯익은 선율, <원스>였다. 그들이 부른 <원스>의 OST 'Falling Slowly(폴링 슬로울리)'는 영화 속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함께 부른 하모니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영화 <원스> 포스터

영화 <원스> 포스터 ⓒ 영화사 전진


노래하는 청춘들, 거리에서 만난 'Falling Slowly'

자연스레 영화 <원스>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친다. 2007년, 아일랜드 감독 존 카니에 의해 제작된 <원스>는 독립영화 한계에도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약 6년 전, 내게 있어 <원스>의 이야기는 특별했다. 갓 군대를 제대하고 미래를 향해 발 빠르게 뛰어서인지 거리 음악가 글렌 한사드의 모습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미완의 그가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응원을 받으며 사랑과 음악의 꿈을 키워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나의 노래를 완성시켜준다. 우리가 함께 하는 선율 속에서 나는, 나의 노래는 점점 그녀의 것이 되어간다." (영화 <원스>중에서)

당시 <원스>는 작품성은 물론,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뒀다. 독립영화의 최고 축제 격인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미국, 한국 등지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원스>는 단 2개 관으로 개봉을 시작해 이후 126개 관까지 확대된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관객 수 역시 10만 명을 넘었다. 당시 다른 외국 독립영화들이 국내에서 별 힘을 받지 못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결과였다.

독립영화에 일어난 '작은 기적'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부족한 여건이라 해도 노력이 있다면 좋은 작품과 성공적 결과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한 <원스>의 성공은 예술과 유행은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서울 거리에서 만난 외국인 거리 음악가들, 그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하모니

서울 거리에서 만난 외국인 거리 음악가들, 그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하모니 ⓒ 곽진성


당시 <원스>가 전한 감동은 6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특히 영화 속에서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함께 부른 'Falling Slowly'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부르는 명곡으로 남아있다.

'아직 시간이 있어요. 희망의 목소릴 높여요. 당신은 할 수 있잖아요. 이제 하는 거에요.' <원스> 'Falling Slowly' 중

보비와 영복이 함께 부른 'Falling Slowly'는 영화의 감동을 되살려줬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꿈을 놓지 않는 거리 음악가들, 그들이 부르는 진정성 있는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다. 사람들은 뜨겁게 박수를 쳤고, 길거리 음악가들은 이에 힘을 얻은 듯 활짝 웃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온갖 잘 만들어지고, 전문적인 음악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아날로그적인 거리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흔들 수 있다니 말이다. 오랫동안 가만히 서서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들이 무대를 마친 후, 괜히 고마운 마음에 지폐 한 장을 꺼내 거리 음악가들의 모금함인 기타 케이스 앞으로 갔다.

그 안엔 썰렁하지 않을 만큼 지폐들이 쌓여있었다. 거리 음악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비단 나 한 명 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날, 거리공연을 지켜본 소진우씨와 박현주씨(19세, 서울대)의 소감은 그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학교 때문에 자주 교대역을 이용하는데, 지하철역에서 외국인 음악가들이 연주를 하는 광경은 처음이라 신기했습니다. 기타를 배우고 있는데, 기타 치시는 분이 정말 편곡을 잘하신 것 같아서 인상 깊게 들었어요.(웃음)"

▲ 거리 공연 ⓒ 곽진성


대한민국 거리, 진짜 음악인들을 찾아 나서 볼까?

길에는 훌륭한 가수의 재능을 갖춘 실력자들이 넘쳐난다. 그러고보니 <슈퍼스타K4> 준우승을 차지한 후 '벚꽃엔딩' '첫사랑'등의 곡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버스커 버스커도 길거리 음악가 출신이 아니던가. 어쩌면 보비와 영복도 미래에 훌륭한 뮤지션으로 성장할지 모를 일이다.

이날 보비와 영복은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아임 유어스)' 등 유명 팝 2~3곡을 더 열창했다. 이 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영상을 올려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괜찮다'고 한다.

그들의 음악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행복했다. 어쩌면 제2의 버스커 버스커가 될 수도 있는 음악가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말이다. 날은 추웠지만, 마음은 봄이 온것 마냥 따뜻해졌다. 열정 가득한 길거리 가수들의 음악이 여전히 귀에 생생하다. 괜히 흥얼거리게 된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는 거리의 음악일지라도 좋은 음악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감동으로 물들인다. 그래서일까. 올 봄에 작은 목표 하나를 세워본다. 대한민국 거리에서 홀로 빛나는 음악인들을 찾아다니는 꿈 말이다. 길거리의 '음악 보석'들 찾아 세상에 전달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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