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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9년 초. 그때만 해도 난 대한민국 중산층이 되지 못했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이(어떤 '분'이 정했는지는 몰라도) 30평대 아파트에, 2000cc급 승용차를 타는 것이었는데, 그때 난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었지만(물론 전세고, 서울이 아니라 일산이었지만), 차가 2000cc급이 아니었다. 당시 난 1997년식 엑센트를 타고 다녔다. 거의 주저앉기 일보 직전인….

그런데 어느 날 차가 너무 덜덜거리고, 엔진오일 간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엔진오일이 없다고 해서 교환하러 갔더니 엔진이 오래돼서 그렇다고 보링을 해 주면 된다고 했다.

"보링? 그거 하는데 얼만데요?"
"80만 원요."
카센트 아저씨는 껌 값처럼 이야기 했다.
'차 팔면 고철 값 30만 원 나올 것 같은데, 이거 배보다 배꼽이 크구나.'

그때 난 폐차를 하기로 결심했다. 차값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오는 차를 계속 탈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알아보라고 했더니 온갖 중고차 시장을 돌아다녔다(물론 인터넷으로). 그러더니 뭔가 보물을 발견한 듯 환한 미소를 띠면서 호들갑을 떨더니 달려와 외쳤다.

"여보, 우리 이 차 사자…."

그 차는 생산한 지 까마득한 프린스라는 차였다. 그 전설의 프린스. 누가 자기 차 판다고 직거래 사이트에 올려놨는데, 같은 일산이었다. 값은 60만 원. 구미가 당겼다. 그래도 200∼300만원 대 중고차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순간 돈 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그 차가 참 마음에 드는 것 같았고, 난 순전히 중산층에 진입하고 싶은 욕심에 그 차를 사기로 했다.

30만 원 주고 2000cc급 차를 사다

사기로 결정하고 차 주인을 만나러 갔더니 수더분한 아저씨가 나왔다. 같이 자동차 등록소로 가서 이것저것 조회해 보고 인수인계를 했다. 불법 주차 딱지가 5만 붙어 있어 그거 제하고 그 자리에서 현금 55만 원을 주고 차를 받아왔다. 2004년에 200만 원 주고 사서 타고 다니던 액센트는 자동차 등록소 마당으로 불러들인 견인차에 연결해 폐차장으로 보냈다. 며칠 뒤 폐차장에서 폐차비라며 25만 원을 보내줬다. 고로 나는 30만 원을 주고 2000cc급 프린스를 산 것이다.

다음날, 나는 3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2000cc급 승용차를 모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중산층이 되었다.

그런데, 나를 대한민국 중산층으로 진입시켜준 그 고마운 프린스는 바로 그 다음날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운전석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키를 꽂으면 부드럽게 돌아가야 하는데, 키를 꽂고 돌리면 둔탁한 느낌이 들면서 헛돌듯 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게 언젠가 말썽을 일으키겠는 걸'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 쯤 지났다. 이 전설의 프린스 밑에 들어간 각종 수리비를 포함한 가외 유지비는 이미 찻값의 두 배를 가볍게 넘겼지만, 난 순전히 중산층이고 싶은 욕심에 무리를 하면서도 타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프린스를 타고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 그리고 거래처 몇 군데를 돌며 일을 보았다. 그러다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로 가서 마지막 업무를 보았다. 아내와 함께 공식적인 업무를 보고 난 뒤, 나는 옛 동료들을 만나러 잠시 다른 층에 들렀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는 먼저 내려가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20여 분 뒤, 1층으로 내려갔더니 아내가 1층 로비에 서 있었다.
"어? 왜 여기 있어?"
"차 문이 안 열려…."
(드디어 그 놈이…)

북풍 한설이 몰아치던 날, 차 문은 안 열리고...

난 속으로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근데 하필 이렇게 추운 날씨에 올게 뭐람! 밖에는 북풍 한설이 몰아치고 있었다. 열쇠를 꽂았다. 꼼짝도 안 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힘을 꽉 주면 돌아갔는데 전혀 요동도 하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아내가 말했다.

"발로 차 봐!"
그 말에 키를 꽂은 상태로 주변 언저리를 뻥뻥 찼다. 그래도 꼼작을 안 했다. 힘을 세게 주면서 키를 돌리려 하니 부러질 것 같았다. 다행히 맞은편에 카센터가 있었다. 아내에게 다시 건물 로비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얼른 뛰어갔다. 카센터 사무실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인상 좋은 아저씨가  앉아 있다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 아저씨… 차가… 문이… 프린슨데… 키가 어쩌구 저쩌구…"
"그래요? 그럼 강제로 열어야지 뭐…"

카센터 사무실 안은 무척 따뜻하고 쾌적했다. 난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거기로 오라고 했다. 아내는 금방 뛰어왔다. 손님용 의자가 4개 있었는데, 맨 구석 의자가 자동 안마기 의자였다. 아내는 들어오자 마자 그 의자에 앉아서는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 보더니 안마를 받기 시작했다. 소리가 좀 컸는데, 그래도 무시하고 계속했다.

바로 그때, 갑자가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카센터 아저씨는 그 사람들과 상담하느라 바빴다. 옆에서 들어보니 제법 견적이 나올 것 같은 내용들이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그 아저씨는 나를 잊어버린 듯했다. 하긴 차 문 따주고 기껏해야 만 원 받을 텐데 내가 눈에 들어왔을까? 기다리다 지친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보험회사 긴급서비스로 전화를 했다. 그때까지 아내는 계속 안마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행복한 표정을 하고는….

차 문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

곧바로 인근 카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5분내 출동이라고 했다. 위치를 설명해 주기 위해 얼른 길을 건너 차 근처로 갔다. 차 근처에 서서 이리저리 위치를 설명하는데….

'어라! 내 차 번호판이 언제 흰색이었지?(참고로 프린스 번호판은 초록색이었다) 잉! 어머나! 오마이 갓!'

그러니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우리 프린스 옆에 옆에, 거의 외관이 비슷한 고물 프린스가 서 있었는데 아내는 그 프린스가 우리의 프린슨 줄 알고 문을 열려고 했던 것이다. 뒤 늦게 나온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아내가 열려고 하는 엉뚱한 남의 차에 키를 꽂아 돌리고 흔들고 뻥뻥 차고 난리를 떨었던 것이다. 얼마나 비슷하게 고물이고 지저분했으면….

난 갑자기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방금 문이 열렸어요. 그냥 서비스 받은 걸로 할 테니 오지 마세요."
전화를 끊고, 옆에 옆에 있는 진짜 나의 프린스로 가서 키를 꽂고 돌렸더니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쉽게 문이 열렸다. 차에 타자마자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얼른 거기서 빠져나와."
"왜? 이 안마 의자 엄청 좋은데."

졸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아내에게 얼른 오라고 한 뒤 우리는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갔다. 손잡이 부분을 몇 번 찼는데 흡집은 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를 중산층 대열에 들게 했던 그 프린스는 2년 쯤 타다가 폐차했다. 신호 대기 한다고 건널목 앞에 멈춰 서면 시동이 자주 꺼지는 바람에….

이런 인연 때문일까? 요즘도 길가다가 프린스를 보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갈때면 꼭 한마디씩 한다.

"와, 프린스닷!"

덧붙이는 글 |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 응모글



태그:#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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