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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8일 진주에 내린 눈. 잴 때는 10cm 정도였지만 이날 내린 눈은 14cm가 넘었다.
 지난해 12월 28일 진주에 내린 눈. 잴 때는 10cm 정도였지만 이날 내린 눈은 14cm가 넘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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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8일 제가 사는 경남 진주에 눈이 엄청나게 내렸습니다. 큰아이가 학교를 가다 "엄마, 도로에 아예 차가 없어요"라는 전화까지 했습니다. 큰아이 말을 듣고 바깥을 나가보니 정말 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썼습니다(<"엄마, 도로에 아예 차가 없어요">).

그날은 아이들 학교에서 방학식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큰아이는 학교에 갔는데 휴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걸어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둘째 역시 학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눈에 할머니 집에 어떻게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경남 진주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동네입니다. 그러므로 10년 이상 무사고 운전자도 눈길 운전은 '초보딱지'를 떼지 못했습니다. 2009년 12월에 아침에 눈이 조금 내렸는데 도로가 얼어붙어 시내 도로가 마비된 적이 있습니다. 눈이 내리면 아예 운전대를 잡지 않는 것이 진주 사람 '상식'입니다.

저 역시 눈이 내리면 아예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는 무모한 도전을 했습니다. 방학 첫 날이라 아이들을 할머니 집에 데려다 주기로 한 것입니다. 방학만 하면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갑니다. 아무리 그래도 눈이 다 녹으면 가야 했지만 저의 무모함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보, 눈이 와도 정말 많이 내리니까 다음 주에 보내요. 오늘은 정말 안 돼요."
"아빠 우리도 할머니 댁에 가고 싶지만 오늘은 무서워요."
"아냐, 아빠는 갈 수 있어. 조심 조심 하면 돼."
"정말 못 말리는 당신이예요. 이 눈길에 시내도 어려운데, 어떻게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산길을 갈 수 있어요."
"갈 수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올해 열여덟살 된 1995년 7월 산 '프라이드'. 지난해 12월 28일 14cm 눈길을 달렸다가 거의 저세상 갈 뻔했습니다.
 올해 열여덟살 된 1995년 7월 산 '프라이드'. 지난해 12월 28일 14cm 눈길을 달렸다가 거의 저세상 갈 뻔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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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럼, 체인이라도"... 어라? 체인이 끊어졌네

남편의 무모한 도전 앞에 아내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아이들도 할머니 집은 가고 싶지만, 18살 된 프라이드를 타고 눈이 14cm 이상 쌓인 길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눈치입니다. 하지만 아빠가 간다는데 어떻게 도리가 없습니다. 그때 큰 아이가 정말 가고 싶으면 체인이라고 채우고 가자고 했습니다.

"아빠, 그럼 체인 채워요."
"체인? 좋아 체인이라도 채우자."

"아빠 체인은 고장 안 났어요?"
"잘 모르겠다. 눈길 운전을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인이 온전한지 고장 났는지 모르겠다."
"아빠!"
"어라? 체인이 떨어졌네. 채울 수 없겠다."
"아빠, 그럼 다음에 가요."
"아냐. 이왕 나선 것, 할머니 집에 가자."

14cm 이상 내린 눈 때문에 시내 도로도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겁없는 나는 열여덟살 된 프라이드를 끌고 어머니 댁으로 나섰다
 14cm 이상 내린 눈 때문에 시내 도로도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지만 겁없는 나는 열여덟살 된 프라이드를 끌고 어머니 댁으로 나섰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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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한번 마음 먹으면 포기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차에 올랐습니다. 집에서 고속도로 진입까지는 생각보다 쉬웠습니다. 아이들 얼굴도 출발할 때보다는 조금 밝아졌습니다.

"생각보다 괜찮지?"
"네."

"고속도로도 제설 작업을 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어."
"아빠 그래도 할머니 집은 산을 두세 개는 넘어가야 하잖아요."
"…."

"아빠 차가 자꾸 흔들거리고, 미끄려져요"

고속도로를 무사히 지나고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접어들었는데 곳곳이 빙판길입니다. 속도계를 보니 20km를 넘지 못했습니다. 완전 거북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바퀴가 헛돌더니 차가 휘청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오로지 앞만 내다보고 달렸습니다. 아니 걸어가는 속도로 차를 몰았습니다.

"아빠 무서워요. 차가 자꾸 흔들려요."
"조심할게."
"…."

14cm 이상 내린 눈 때문에 큰 도로에도 차가 거의 없다
 14cm 이상 내린 눈 때문에 큰 도로에도 차가 거의 없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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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는 눈을 치운 곳도 있었지만, 산길은 눈을 치울 리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휘청할 때마다 무섭다고 했던 아이들은 더 이상 말조차 꺼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차를 돌릴 수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였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고향 앞동네에는 150m 이상 이어지는 가파른 산등성이가 있습니다. 앞을 보니 차 바퀴 자국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결정을 할 때가 됐습니다. 아무리 무모한 도전이지만 저 언덕길을 올라가는 것은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빠는 더 이상 못 가겠다."
"그럼 어떻게 해요?"
"아빠는 여기서 돌아갈 거니까 너희들은 할머니 집까지 걸어가라."
"뭐라구요? 여기서 할머니집까지 걸어가라구요?"
"응."
"어떻게 여기서 걸어가요. 눈이 우리 무릎까지 쌓였는데."
"아니 갈 수 있어. 천천히 걸어가면 돼. 아마 3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될 거다."
"아빠!"
"아빠는 초등학교 다닐 때 만날 걸어다녔어. 그때도 눈이 많이 왔다."
"아빠 옷가방도 무거워요."
"갈 수 있으니까. 한번 가봐라."
"알았어요."

저 같은 무모한 운전기사가 다시는 없기를...

아이들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눈길을 걸어갔습니다. 아빠의 무모함에 아이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걱정이었지만,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문제였습니다. 차를 돌렸지만 눈 때문에 후진도 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동네 어르신들이 삽을 가지고 있어 눈을 치워주셨습니다. 어르신들도 "이 눈에 왜 차를 끌고 나왔노"라며 꾸중하셨습니다.

겨우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아까보다 제설작업이 더 많이 돼 있습니다. 집에서 어머니 집까지 넉넉 잡아 차로 30분입니다. 하지만 그날 어머니 집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왕복 3시간이 걸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전화를 했더니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합니다.

"여보 나 어머니 집에 잘 다녀왔어요."
"잘 다녀왔다구요?"

"응."
"그것은 잘 다녀온 게 아니라. 무모한 일이예요. 세상에 체인도 없이 14cm 눈길을 운전하는 정신줄 놓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살아서 돌아온 것,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다시는 무모한 짓 안 할게요."
"혹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지 마세요. 대단하다는 칭찬보다는 무모한 일 했다고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예요.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운전 못 했을 거예요. 아직도 가슴이 떨려요. 떨려."
"미안해요.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석 달이 넘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립니다. 저 같은 무모한 운전사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응모 글입니다



태그:#나의 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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