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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여성문화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던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 국정과제 실천방안 토론회'에서 "양육수당을 현금으로 주지 않고 조만간 대체 지급수단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름 전 인사청문회에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언급했던 양육수당 현금의 바우처 변경이 현실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뒤 3월부터 양육수당 지급이 확정될 때만 하더라도 긴가민가 했었다. 비록 대통령은 약속 지키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복지와 관련된 공약에 관해서는 그 예산 때문이라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자신의 공약을 지키고 나서다니. 많은 주부들이 육아정책을 보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진짜로 그 믿음이 실현되는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인수위원회부터 변죽을 울리는가 싶더니, 아직 한 번도 지급되지 않은 양육수당을 벌써부터 현금에서 바우처로 변경하겠다고 정부가 말을 바꾸고 나선 것이다.

양육수당과 바우처는 엄연히 다르다

보육료·양육수당 지원 사전신청 첫날인 2월 4일 대전 유성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은 할아버지와 어엄마가 수당 신청에 앞서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 "엄마는 양육수당 신청 중" 보육료·양육수당 지원 사전신청 첫날인 2월 4일 대전 유성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은 할아버지와 어엄마가 수당 신청에 앞서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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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혹자는 양육수당을 현금으로 주나 바우처로 주나 무슨 차이가 있냐며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바우처는 보통 신용카드 형태로 지원되기 마련인데, 어차피 무언가를 구매하고 지불하는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현금과 신용카드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우처의 경우 현금과 달리 그 사용처가 매우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임신확인서만 있으면 지급되는 고운맘카드가 대부분 산부인과에서만 사용될 수 있듯, 양육수당이 바우처로 지급된다면 양육수당 역시 정부가 지정한 특정 항목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정부가 양육과 관련된 항목을 일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미인데, 문제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철학과 이와 관련된 소비패턴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정부가 획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운맘카드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부인과를 주기적으로 가고, 초음파 검사를 하는 등 일괄적인 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산부인과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큰 불편이 없었겠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같이 기형아 검사 등을 하지 않고 조산원을 이용한 가정은 그 제한적인 고운맘 카드 사용처 때문에 꽤 고생을 해야 했었다), 양육수당의 경우는 그 양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마트에서 산다고 가정하자. 정부는 이 장바구니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부모도 먹고 아이들도 먹는 음식인데 이를 양육과 관련 없다고 할 것인가? 또한 몇 푼 되지 않는 마일리지나 할인 혜택이라도 받아야겠다며 신용카드를 계산해서 활용하는 사람은 기저귀, 분유 등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로 계산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되는가?

당장 우리 가정의 경우는 3월부터 나오는 양육수당을 특정 계좌에 입금시켜 모으고자 했다. 세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한 달에 45만원 정도가 지급되는데 이를 차곡차곡 모아 훗날 아이들을 위해 쓰고자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것 마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부모가 그 돈을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쓸까봐 걱정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정부는 아직까지 양육수당과 관련된 바우처를 어떤 형식으로 운영할 것인지 뚜렷한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많은 전문가들이 최적의 안을 연구하겠지만, 정부는 이것만은 명심해야 한다. 바우처 형식으로 가면 결국 근본적으로 소비처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는 생각보다 많은 부모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처구니 없는 정부의 변경 사유

양육수당의 바우처 변경과 관련하여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언급했던 변경 사유 때문이었다. 정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올곧이 아이들을 위해 쓰여야 하는 양육수당이 수혜 가정의 생계비나 사교육비 등으로 전용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수혜 가정에 유럽의 선진국처럼 아이 한 명 당 양육수당을 100만원 씩 준다고 하면 이는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아이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자금은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정부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이 그 비용의 평균 이상이 된다면 세금을 집행하는 정부로서는 그 사용처에 대한 확인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어린이집.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어린이집.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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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 현실을 보자. 현재 막 걸음마를 뗀 우리 사회의 양육수당은 만0세 20만원, 만1세 15만원, 만2세 이상 취학 전까지 10만원을 지불하고 있다. 과연 이 비용을 가지고 어떤 부모가 양육 이외의 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을까?

당장 육아에 필수라고 하는 기저귀값과 분유값을 보자. 보통 6개월 미만의 신생아 경우 개당 250원 정도 하는 기저귀를 하루에 10장 이상 갈며, 한 통에 1만 2000원 정도(중급 이하 기준)하는 분유를 한 달에 5~6통 먹는다. 그 이상의 나이가 되면 기저귀값이 덜 들지만 이유식을 시작하면 먹는 비용은 그 이상이 된다. 따라서 정부가 지급하는 양육수당은 먹고 싸는 비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부모가 자식들을 키우면서 단순히 먹이고 배변시키는데 만족하겠는가. 옷도 사야 하고 책도 사야 하고 아프면 병원도 가야하는 아이들.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기준으로 '전용'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지 답답할 뿐이다. 혹 정부가 신용카드 회사 로비에 넘어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한 사교육비의 경우, 문제는 그런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문제이지 자신의 먹을 거 줄이면서 육아수당을 사교육에 투입하는 부모가 문제겠는가. 물론 지원의 규모상 전용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출산율은 그 공동체의 미래와 직결된다. 부디 정부는 그 사실을 절감하고 정책들을 세우기 바란다. 대통령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어서 그렇다는 소리는 듣지 않기를 바란다.


태그:#양육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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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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