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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서 그런 걸까. 종일 허리가 불편했다. 앉아도 편하지 않았고, 서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누워 있으면 좀 괜찮아지지만 그렇다고 마냥 누워 있을 수만은 없다. 방 안을 서성대다가 밖으로 나섰다. 허리가 아플 때는 걷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봄부터 허리가 신호를 보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가 말겠거니 여기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전에도 허리가 안 좋았던 적이 더러 있었지만, 며칠 지나다보면 괜찮아지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려니 생각했던 것이었다.

나는 병원에 가는 게 싫었다. 병원에 가면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게 일이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고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인 것처럼 기가 꺾인다. 그렇게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리다가 겨우 내 이름이 불려져 의사 앞에 앉게 되면... 나는 처분만 기다리는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

허리 때문에 간 병원, 무력감이 들었다

그보다 더 병원에 가기를 꺼려하게 됐던 것은 병원 안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그 병원은 늘 환자들로 붐볐다. 읍내 장날이라도 되는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했다. 시골이라서 그런지 젊은 사람보다는 노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보행이 불편해 보이는 그분들을 보면 마치 나도 늙은 사람이 된 것처럼 여겨져 병원에 가는 게 영 마뜩찮았다.

길촌 동네의 샘
 길촌 동네의 샘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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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내 몸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급기야 아침에 일어나면 아파서 울고 싶을 정도까지 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채고 척추 전문병원으로 달려가 정밀진단을 받았다. 병원은 허리 디스크라며 수술을 권하지 뭔가.

다른 곳도 아니고 허리인데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허리는 수술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라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이 없나 물어보니 비수술요법이 있다고 했다. 척추에 가느다란 관을 삽입하고 약물을 넣어 통증을 완화하는 시술이라고 했다. 이것저것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그 정도로 통증이 심했기 때문에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말만 들어도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시술을 받았던 게 벌써 1개월하고도 보름 전의 일이다.

시술을 받자마자 아팠던 허리가 감쪽같이 좋아졌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했다. 우거지상으로 늘 찡그리고 있던 내가 방실방실 웃자 남편도 덩달아서 기뻐했다. 아플 때는 마치 나 혼자만 고통을 겪는 것 같아서 외로웠는데, 나는 나 혼자의 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길 걷는 게 허리에는 보약

통증이 사라졌으니 아팠던 허리가 다 나은 것 같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아니다. 통증을 완화시켰을 뿐 허리는 여전히 좋지 않다. 어찌 보면 휴화산(休火山)이나 마찬가지인데, 언제 또 나빠질 지 알 수 없어 속으로는 늘 불안한 게 사실이다. 꾸준히 허리 강화 운동을 하고 또 생활 속의 나쁜 습관과 자세를 고쳐야 한다. 다시 또 통증에 얽매여서 허우적대기가 싫어서 여기저기 기웃대며 몸에 좋다는 것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먹던 동안은 별 불편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약이 다 떨어지니 다시 허리가 아팠다. 전보다는 괜찮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로 약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나는 허리 통증에 끌려다니며 살 수밖에 없는 신세가 돼버렸다. 그것은 내 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나를 지배했다.

1972년 4월에 샘 주변을 단장했습니다.
 1972년 4월에 샘 주변을 단장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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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프다고 주변에 말을 했더니 온갖 좋다는 것들을 추천해줬다. 그러나 대부분 본인이 겪은 게 아니라 들은 것을 옮기는 것이어서 그런지 별로 와닿지는 않았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니 처방 또한 다를 수밖에. 내게 맞는 것은 내가 더 잘 알지도 모르고,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길을 걷는다.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안 그래도 짧은 겨울 해가 벌써 저만큼 가 있었다. 오후는 오전과 달리 온기가 점점 사라진다. 산 그늘이 지기도 전에 햇살이 먼저 알고 꽁무니를 빼는 모양인지 오후 서너 시만 돼도 오전과는 달리 추워진다. 며칠 봄날처럼 날이 풀리는가 싶더니 다시 동장군이 찾아왔다. 온통 다 얼어붙어 있는데, 이 추위에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걸어야 한다. 그래서 어디를 걸을까 궁리를 하다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따뜻하고 밝아 보이는 동네가 있길래 차를 세우고 길을 나섰다.

송사리까지 어루만지는 샘

동네 길을 걸으면 참 재미있다. 별 것 아닌 것들도 다 별 것이 되는 게 동네 길 걷기의 맛이다. 눈길을 끄는 집이 있으면 대문 안을 기웃거려 보기도 한다. 때마침 주인장이 마당에라도 있어 인사를 청하면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반겨주는 경우도 있다. 집이 예쁘다는데 싫다고 할 집주인이 있겠는가. 마당을 잘 꾸며놓은 집도 있고 장독대가 멋진 집도 있었다. 돌담이 아름다워서 기웃댄 집도 있었다. 시골의 오래된 집들은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이라서 그런지 다 애틋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동네길 걷기는 때로는 사람들의 인정(人情)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기도 했다.

날이 추워서 그런 걸까. 길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개들이 나를 보자 경계하며 컹컹 짖어댔다. 끈에 메여있지 않은 개들은 제법 눈에 힘을 주며 내 뒤를 따라왔다. 속으로는 조금 무서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그러면 개들도 머쓱한지 곧 돌아가버렸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하얀색의 교회가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교회 밑으로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교회가 동네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 앞은 더 넓은 들판이다. 큰 들을 앞에 끼고 있으니 이 동네는 의식이 풍족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이름도 길촌(吉村) 마을이다. 복 되고 운이 좋을 길(吉)자를 썼으니 어찌 복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집집마다 차를 세워두는 주차장이 있었고 농기계들을 세워두는 창고도 우뚝하니 컸다. 모내기를 하는 이앙기도 있을 테고 벼를 베고 또 탈곡을 하는 콤바인도 서 있을 것이다. 겨울이라 농기계도 사람도 다 쉬고 있지만 봄이 되면 다시 왕성히 움직일 테지. 하지만 겨울 한가운데의 동네는 조용하기만 했다.

송사리가 떼를 지어 놀고 있습니다.
 송사리가 떼를 지어 놀고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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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래로 파란색 지붕이 보였다. 둥근 쇠기둥을 사방에 박고 그 위에 쓰레트 지붕을 얹은 그 곳에서는 김이 술술 피어오르고 있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이 추위에 김이 피어오르다니... 동네 한가운데 있는 샘은 크고 깊었다. 장정(壯丁)이 양 팔을 활짝 벌리고도 남을 듯이 넓은 그 샘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솟는지 아래에 있는 빨래터에도 물이 찰찰 흘러넘치고 있었다. 빨래터에서도 김이 피어올랐다. 손을 넣어보았더니 물이 미지근했다. 추울수록 물이 미지근하니 겨울철에 빨래를 할 때면 얼마나 고마운 샘이었을까. 빨래를 하던 옛날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봄이 오는 샘터

오후의 햇살이 샘의 밑바닥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연두색 물풀이 자라고 있는 그곳은 마치 커다란 어항 같았다. 요리조리 헤엄을 치며 놀던 송사리들은 낯선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잽싸게 몸을 돌려 가운데로 뭉쳤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동정을 살피는 듯. 모습이 귀여워서 몰래 다시 걸어와 보면 어김없이 또 잽싸게 몸을 돌렸다. 오래 들여다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송사리와 연두색 물풀 그리고 오후의 햇살이 서로 서로 사이좋게 놀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흘러 넘쳤다. 밑바닥에서 솟아오른 물이 오래된 물을 밀어내는지 샘물은 그렇게 깨끗하고 맑았다. 마치 지금도 사람들이 물을 쓰고 있는 것처럼 맑고 깨끗해 보였다. 오래된 것이 새 것에게 자리를 내줬기 때문에 샘은 그 생명을 보존할 수가 있었나 보다.

속으로 내 허리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저 샘솟는 물처럼 날마다 새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샘터에서 서성댔다.

며칠 지난 뒤 그 샘터에 또 가봤다. 햇살이 한 줌 내려앉은 그 곳에는 물풀들과 송사리들이 여전히 희롱을 하며 놀고 있었다. 샘물은 변함없이 졸졸 흘러넘쳤다. 가물가물 봄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태그:#강화나들길, #샘, #나들길, #심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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