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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면전차' 또는 지상철 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트램은 동유럽의 주요한 교통수단이다. 사진은 불가리아 소피아의 트램.
 '노면전차' 또는 지상철 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트램은 동유럽의 주요한 교통수단이다. 사진은 불가리아 소피아의 트램.
ⓒ 류태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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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반면교사 해야 할 역사를 기억하며 아돌프 히틀러, 폴 포트와 함께 아래 세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그들은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나 있을까?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라도반 카라지치.
라트코 믈라디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새벽 거리는 괴괴하리만큼 조용했다. 크로아티아의 해변도시 스플리트에서 밤늦게 출발하는 국제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달려 도착한 도시.

198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며, 폐병을 앓던 청년 가브릴로 프린시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라틴 다리(橋)'가 있는 도시. 거기에 크지 않은 공간에 세르비아정교회 성당과 이슬람 성당인 모스크, 가톨릭 성당까지가 각기 다른 신을 향해 첨탑을 올린 풍경.

여행객이 거의 없는 국제버스터미널에서 나를 시내로 데려다줄 트램(노면전차) 승차장을 찾아 걸었다. 트램은 동유럽 나라마다 주요 교통수단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생소한 공간이니만치 길 찾기가 쉽지 않았고, 그 덕에 제법 걷고 나서야 트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전이 끝난 지 15년이 훌쩍 넘었는데, 도심 건물들이 흉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사라예보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까지도 그랬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건물들이 쥐 파먹은 모양으로 흉측스러웠던 건 총탄 자국 때문이었다.

보스니아 사람들의 가슴에 상흔(傷痕)이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탄흔(彈痕) 역시 여전했다. 한두 건물이 아니라, 그 도시 대부분 건물이 그랬다. 맞다. 때론 세월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영혼에 입은 상처는 시간만으론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다.

아직도 엄연한 무슬림 구역

보스니아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맥주 '사라예보스코'. 쓴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돼 풍미가 좋다. 그러나, 수도 사라예보의 무슬림 구역에선 맛보기가 어렵다.
 보스니아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맥주 '사라예보스코'. 쓴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돼 풍미가 좋다. 그러나, 수도 사라예보의 무슬림 구역에선 맛보기가 어렵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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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한복판으로 짐작되는 곳에 내려 숙소를 찾았다. 이른 아침인지라 구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아 아무 곳에나 들었다. 양고기 꼬지에 노란 향신료가 들어간 볶음밥. 메뉴에 돼지고기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무슬림 식당이다.

알다시피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슬람국가를 여행하다 보니 풍월이 늘었다. '신성 무슬림 국가'를 지향하는 이란의 이스파한을 여행할 때 만난 그곳 청년들은 내가 "한국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좋아하고 곧잘 먹는다"고 하자,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표정을 만들어내며 몸서리를 쳤다. 이란 사람들이 그런 표정을 짓는 걸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보지 못했다. 도그마는 무섭다. 어쨌건.

식사 후. 다행히 저렴한 가격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수 있었다. 밤새 버스에서 시달린 여독을 풀고 편하게 한숨 자려고, 수면유도(?)를 위한 맥주 한 병을 청했다. 동유럽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맥주와 간단한 음료 정도는 판매한다. 그런데 없단다. "가톨릭 구역으로 가야 살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사라예보에는 지금도 무슬림 구역과 가톨릭 구역이 엄존한다. 무슬림 구역의 식당과 숙소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심지어 슈퍼마켓에서도 그렇다. 술이 없는 슈퍼마켓이라니. 우리 상식에선 이해가 어려운 풍경이다.

반면, 몇 블록을 건너가면 곳곳이 노천 맥줏집이고, 길가에 앉아 붉은색 캔이 예쁜 '사라예보스코' 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는 청년들이 흔전만전이다. 슈퍼마켓엔 맥주는 물론, 보드카와 위스키, 그리스 전통주인 우조까지 없는 술이 없다. 가톨릭 구역 이야기다. 사라예보, 참 묘한 도시다.

라틴 다리, 아무것도 아니구나  

사라예보는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지형이다. 그 산마다 온통 하얀 색 비석이다.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다.
 사라예보는 낮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지형이다. 그 산마다 온통 하얀 색 비석이다. 숫자를 헤아리기도 힘들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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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에서 대충 듣기는 했다. 1990년대 초반과 중반에 걸쳐 보스니아 전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대량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그러나 실감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전쟁과 혁명을 겪어보지 못한 한국의 1970년대 생.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지 않은가. 책이나 영화로 대리체험 했을 뿐, 총살과 고문, 일방적인 구타와 저항할 수 없는 모욕이 사람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었다. '행복'이란 유치한 단어까지 사용하며 이런 결론에 가 닿은 이유는 잠시 후 설명하기로 하자.

정오를 넘겨 숙소를 나왔고 '라틴 다리'부터 찾았다. 민족과 민중이란 단어를 들으면 혈관 속 피가 1도쯤 뜨거워졌던 기억이 나라고 왜 없었겠나. 20대 시절, 가브릴로 프린시프와 프랑스의 무정부주의자 에밀 앙리를 흠모했다.

고백하자면, 그들을 좋아했던 건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기질 때문이 아닌 내 안에 자리한 자기파괴 본능 탓이었다. 청년은 '민족과 민중을 위하여'란 문장에 매혹되기 쉬운 나이다. 나와 내 부모, 이웃을 괴롭히는 자들을 죽여 버리고, 나도 죽고 싶다는 모종의 열망. 가브릴로 프린시프와 에밀 앙리는 그 열망 안에서 남을 죽이고, 스스로도 죽었다. 이야기가 길을 벗어났다. 제자리로 돌아간다.

라틴 다리는 생각보다 너무, 정말이지 너무너무 작았다. 한국 시골 마을 도랑에 만들어진 교량 수준 크기. 거기로 거대 제국의 황태자가 탄 차량과 뒤를 따른 보좌 행렬이 지나갈 수나 있었을까 싶은 정도였다. 그 다리에서 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점화됐다는 사실은 입구에 있는 낡은 표지판만이 증언하고 있을 뿐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떼죽음과 만나다

사라예보의 묘지. 다가가 살펴보면 같은 날 사망한 이들이 적지 않다. 내전 당시의 학살 탓이다.
 사라예보의 묘지. 다가가 살펴보면 같은 날 사망한 이들이 적지 않다. 내전 당시의 학살 탓이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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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도 박물관이나 유적 등에 흥미가 적은 나는 실망스런 마음으로 근처 노천카페에 앉았다. 한국에선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단지 '가격이 가장 싼 음료'라는 이유만으로 주문하고, 터무니없이 높푸른 여름 하늘을 올려다봤다. 헌데, 하늘 아래 새하얗게 들어찬 저것들은 뭐지?

사라예보는 야트막한 산으로 빙 둘러쳐진 지형이다. 그 산마다 하얀 기둥 혹은, 막대기 같은 게 지천이다. 뭘까? 궁금증은 즉각 해소해야 한다. 게다가, 게으른 여행자에게 남는 것은 시간뿐.

등산화 따위는 당연히 없으니 슬리퍼를 끌며 천천히 산에 올랐다. 비구상 같던 풍경은 금세 실체가 돼 눈앞에 펼쳐졌다. 비석이었다. 하얀색 비석. 한두 개도 아니고, 일이십 개도 아니고, 일이백 개도 아니다. 수 천 수 만개였다.

비석, 무덤, 떼죽음, 제노사이드, 비극, 인종, 종교….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단어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으로 휙휙 지나갔다. 8월 한여름임에도 한기가 몸을 엄습해왔다. 어디서 온 것인지 탁한 침을 흘리는 개 몇 마리가 내 주위를 맴돈다. 실핏줄이 터져 눈알이 시뻘겋게 충혈돼 있다. 짖지도 않는다. 그게 더 위협적이었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비석. 내가 떠올리는 사라예보의 첫 이미지다. 보스니아는 죽은 자들의 영역이 산 자들의 공간보다 넓다.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비석. 내가 떠올리는 사라예보의 첫 이미지다. 보스니아는 죽은 자들의 영역이 산 자들의 공간보다 넓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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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전후 맥락도 없이 나는 왜 고은 시인의 '문의 마을에 가서'라는 시를 떠올렸을까.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 문득 팔짱 끼어서 /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모든 것은 낮아서 /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갑작스러운 두통이 왔다. 아시아의 참혹한 학살 현장인 캄보디아 '킬링 필드'에서 겪었던 것과 유사한 마음 상태. 혼자 그 시의 마지막 구절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를 반복해 읊조리며 망연자실 서 있는 내 앞에 보스니아 아이들이 다가와 개를 쫓아준다.

ⓒ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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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스니아, #대량학살, #사라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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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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