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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월 초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공부방에 찾아온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학년별로 과제를 주고, 한 학년씩 차례로 수행한 과제를 확인해주고 나서 간단한 시험문제를 내서 풀이하여 채점해주면 그날 밤 공부는 끝이 난다.

이 무렵에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에게 과외를 받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대문을 걸어 잠그고 못 들어오게 하였지만, 담을 넘어 들어와서 대문을 열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초등 1학년부터 중 2학년까지 있으니 작은 섬마을의 한 학교 정도 되는 32명 정도의 인원이 한 집안에서 북적였다. 그야말로 일에 지친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아이들과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자꾸만 배가 아프고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밀려왔다가는 사라지고 다시 밀려왔다. 아이들을 조금 일찍 보내고, 저녁을 먹은 것이 체했는가라는 생각으로 집에서 담가 놓은 약술을 한 잔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밤새 내내 약간의 통증은 오락가락하기만 하였다.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통증... 약술 한 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어

이튿날 출근하여 60명 아이의 이름을 중간쯤 부르는데 점점 혀가 굳어가면서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출석을 부를 수가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첫 시간의 자습 문제를 주고, 학교 숙직실로 갔다. 요즘처럼 학교에 보건실이 따로 있고 보건 선생님이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아프면 숙직실에 가서 누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누워서 견뎌 보려니 영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통증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반장을 불러서 돈을 쥐여 주면서 진통제를 두 알만 사다 달라고 하였다. 10분도 안 되어서 약을 사 가지고 달려온 아이의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고마운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도 할 겨를이 없이 약을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시간도 부탁했다.

"둘째 시간은 산수 시간이니까, 네가 문제를 좀 풀게 해줘라. 조용히 하게 하고?"
"네, 알았습니다. 선생님 어서 나으셔야죠."

아이가 교실로 가고 나는 숙직실 바닥에 따뜻하게 배를 깔고 누워서 있으니 조금 통증이 가시는 것 같았다. 약 효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따스한 연탄 방에 배를 깔고 누우니 기분이 좋아졌다. 좀 나은 것 같아서 바로 누워서 배를 여기저기 눌러 보았다.

'도무지 어디가 아픈 거야? 왜 이렇게 아프지?' 혼자 구시렁거리면서 배를 눌러보던 나는 깜짝 놀라게 아픈 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곳은 바로 맹장 자리였다. 아직 맹장 수술을 안 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또다시 여기저기를 눌러 보았지만, 틀림없이 맹장 자리만 아팠다.

'아니, 그럼 맹장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수술을 해야 할 텐데...?'

나는 조금 통증이 사라진 틈을 이용하여서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고 수술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교무실에 가서 교감 선생님께 병원엘 다녀오겠다고 했다.

"교감 선생님 제가 배가 아파서 수업을 못하고 있다가 약을 먹고 만져보니 맹장 자리에서 통증이 오는 것이 맹장염이 아닌가 싶습니다. 병원에 가서 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뭐? 맹장이라고? 자네가 어찌 알고 그런 소릴 해?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봐야지."

형님처럼 사랑해 주시는 모교의 선배이신 교감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어서 가 보라고 했다. 학교에서 쓰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읍내에 있는 3개의 의원 중에서 먼저 가장 나이가 많으신 원장님이 계신 '민중의원'을 찾았다. 원장은 진찰기를 대어보고 여기저기를 눌러보고 무릎을 폈다 접었다 해보더니 당장 수술하기를 권하였다.

"맹장염이 맞는데, 오늘 당장 수술을 해야겠어요."

순전히 의사의 진찰 결과에 따라서 판정... 믿어지지 않아

나는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음 의원으로 갔다. 이 길 의원은 좀 처진다고 소문이 난 의원이지만, 원장님이 노련하셔서 진단만은 정확하다는 소문이어서 들르기로 하였다. 여기서도 역시 '맹장염이며 당장 수술을 해야겠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나머지 재생병원이 남아있으니 거기까지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요즘처럼 환자가 오면 피 검사를 비롯하여 정확한 검진결과를 보고 그 결과에 의해서 판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무렵만 하여도 순전히 의사의 진찰 결과에 따라서 판정하기때문에 자꾸만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만져지는 것이 맹장이 상당히 부어 있는데 아마도 오늘 밤쯤이면 터지게 될 수도 있겠어요. 수술을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기다리거나 가볼 곳이 없었다. 일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이시니까 여기서 수술을 하자고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학교에 가서 병가를 내고, 집에 들어서는 입원할 준비를 해서 곧장 병원에 갔다. 벌써 저녁때가 되어 가면서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할 시간쯤이나 되어서 나는 수술을 위해서 수술대에 누었다.

수술이 시작된 지 30분 정도 되었을 때에 갑자기 정전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수술이 시작된 지 30분 정도 되었을 때에 갑자기 정전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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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병원이라서 혼자서 마취하고 수술하고 간호사가 곁에서 기구나 챙겨주는 정도밖에는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다. 마취하는데 보통 사람의 두 배를 해서야 겨우 마취되었다고 하였다. 코에 탈지면을 얹고 마취제를 주사기로 뿌려서 흡수하게 하는 마취 방법을 썼으니 폐나 기관지가 마취제에 자극을 받아서 몇 년씩이나 고생하게 하기도 하는 그런 방법밖에 없었다.

오후 8시에 수술을 시작한다고 들어가서 마취제를 마시면서 말을 계속해서 더 하다가 2인분을 흡수하고서야 조용해져서 수술을 시작하였단다. 그런데 수술이 시작된 지 30분 정도 되었을 때에 갑자기 정전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시골 의원에서 야단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촛불을 켜다가 놓고 수술을 하다가 거의 20여 분 후에야 전기가 들어 와서 마무리하였다고 한다.
 
내가 병실로 옮겨져서 눈을 떴을 때는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 5시경 늘 잠이 깨던 시간에 다시 잠을 깨어서 화장실에 갔다. 상당한 통증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붙들고 혼자서 화장실을 찾아갔다가 와야 하였다.

시설이 그런 상황이니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침에 링거를 놓아 주는데, 날씨가 추워서 방 안은 춥고 몸이 떨려 오는데, 더구나 링거가 내려오는 동안에 차갑게 식은 것이 혈관으로 직접 들어가니 얼마나 떨리는지 견딜 수가 없었다. 간호사를 불러서 뜨거운 물을 한 컵 달라고 하여서 링거의 관을 따뜻한 물에 담가서 좀 따뜻해지게 하였더니 몸이 떨리는 것이 좀 잡혔다.

내 몸에서 떼어낸 맹장을 알코올에 담가서 보여줘

아침을 먹고 의사선생님은 내 몸에서 떼어낸 맹장을 알코올에 담가 가지고 와서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이거 보세요. 선생님이 미리 알아차렸으니 망정이지, 어젯밤만 넘겼으면 뱃속에서 터져서 온 내장을 다 들어내는 대수술을 할 뻔 했어요. 참 운이 좋으십니다. 수술은 잘되었으니 걱정마세요. 정전되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그래도 운이 좋은 것이에요."

마치 해삼처럼 울퉁불퉁하게 곪아 터질듯한 맹장을 보니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입원실이라야 한식 온돌방인데, 외풍이 세서 밖에 내놓은 어깨가 시려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시설에서 만 이틀, 48시간 만에 퇴원하였다. 시골에서 여관방보다 못한 시설의 수술실과 입원실에서 보낸 나의 단 한 번뿐인 수술은 그래도 아주 성공적이었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수술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술, #맹장염, #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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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아동문학회 상임고문 한글학회 정회원 노년유니온 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한겨레<주주통신원>,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지킴이,꼼꼼한 서울씨 어르신커뮤니티 초대 대표, 전자출판디지털문학 대표, 파워블로거<맨발로 뒷걸음질 쳐온 인생>,문화유산해설사, 서울시인재뱅크 등록강사등으로 활발한 사화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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