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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불어 닥친 정치적 한파는 많은 사람들에게 '멘붕'을 안겼다. 하지만 우리 곳곳에는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다. 이들의 삶은 우리를 놀랍게, 때로는 훈훈하게 만든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작은 위안을 얻고자 한다. 필자는 새해를 맞아 지역 곳곳에 살아가는 주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한다. - 기자말

전창곤 시의원은 시정질의를 통해 여수시가 31년간 민간업체에 위탁운영 되던 청소대행업체를 여수도시공사로 전환 연간 26억원의 비용절감이 예상된다.
 전창곤 시의원은 시정질의를 통해 여수시가 31년간 민간업체에 위탁운영 되던 청소대행업체를 여수도시공사로 전환 연간 26억원의 비용절감이 예상된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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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 두 번째 주인공은 여수시의회 전창곤 의원이다. 지난 23일 오전 그를 만나러 갔다. 며칠 전 전 의원을 시의회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은 터라 급히 택시를 탔다.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바뀌었단다. '낮말은 택시기사가 듣고 밤말은 술집 종업원이 듣는다'라고. 한마디로 택시와 술집에 가보면 그 지역 민심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택시기사님께 물었다.

"기사님 혹시 전창곤 의원을 아세요?"

이 물음에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유경동(58)씨의 말이다.

"그분은 내가 사는 동의 지역구 의원은 아닌데 제가 오래 택시를 하다 보니 알죠. 시의원에 몇 번 낙선해 세 번 만에 당선된 것으로 압니다. 당시 맨발로 시민들에게 열심히 하겠다고 선거운동을 한 특이한 사람이었어요. 허름한 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해 소문이 났지요. 시의원 하면 뭔가 있어 보이고 시민들의 우상 같은 거잖아요? 근데 그 사람은 아주 서민적이면서 낮은 자세로 운동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 자세로 하면 의회에서도 열심히 할 걸로 압니다. 내 지역구는 아니지만 내가 그 지역에 살았다면 한 표 찍어 주고 싶었습니다."

시민들의 입이라 할 수 있는 택시기사의 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약속 시각에 늦지 않게 시의회에 도착했다. 전창곤(환경복지위원, 시전·만덕·둔덕·미평) 시의원의 별명은 '맨발의 청춘'이다. 그는 현재 진보정의당 소속이다. 현재는 미평동 15평 아파트에 월세로 거주하고 있다. 시의원 월급 277만 원, 연봉 3324만 원으로 생활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미평에서 바둑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맨발로 '맨땅에 헤딩'... 정치에 뛰어들다

맨발로 통하는 그의 기록은 3전 1승 2패. 그가 처음 정치에 뛰어든 것은 2002년이었다. 가진 것도, 빽도, 정당도 없는 그는 그야말로 맨발로 '맨땅에 헤딩'을 한 격이었다. 당시 그는 정치 혐오·무관심이 가득한 시민들에게 오래 기억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했단다. 결국 궁리 끝에 그는 맨발로 선거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제대로 된 정치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첫 번째 선거인 2002년은 보름 동안 맨발로 다녔다. 결과는 낙선. 7명 출마자 중 6등을 차지했다.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2006년은 무려 한 달 동안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맨발로 뛰었다. 일명 새벽 별보기 운동.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새벽에 나와 자정을 넘긴 시각에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다고. 맨발로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 그나마 낮에는 괜찮았지만, 밤이 문제였다. 밤에는 유권자들이 술집에 많기 때문에 후보자는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갔다. 어느 날은 호프집 바닥에 깨진 병 조각이 발에 박히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또다시 낙선. 그는 7명중 5등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 당시 지역에서 민주당과 열린 우리당의 벽은 맨발로는 오를 수 없는 절벽이었던 셈이다.

이후 세 번째 선거인 2010년. 사업도 무너지고 채무가 많던 터라 그의 마음은 이미 출마 자체를 접었다. 그런데 강용주 전 의원의 구애가 들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그 정신을 이어받자며 국민참여당 창당을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국민참여당으로 시장 선거에 출마하니 함께 시의원에 출마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전 의원은 "내 코가 석자이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몇 번을 고사했다, 그런데 강 의원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며 "솔직히 마음에 없었던 것도 아니고..."라고 털어놨다. 그는 결국 민주당의 텃밭에서 국민참여당 이름을 걸고 다시 도전했다. 그는 맨발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었다. 또다시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민들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주민들은 전창곤 이름 석 자는 모르더라도 그가 뜨면 '맨발'을 기억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맨발이다. 또 맨발이 온다. 참 짠하네 쯧쯧... 흐미 짠한 것. 어이, 제발 신발 좀 신고 다니소."

어르신들은 이제야 마음을 열며 그의 등을 다독여줬다. 치열한 선거운동 기간이 끝났다. 당시에는 4개 동이 통폐합돼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단다. 하지만 네 명을 뽑는 선거에서 그는 당당히 2등으로 시의회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칙·특권을 깨다... 269명 청소노동자 정규직으로 전환

맨발의 청춘 진보정의당 전창곤 의원이 23일 여수시의회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맨발의 청춘 진보정의당 전창곤 의원이 23일 여수시의회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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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입성한 그의 의정활동은 어땠을까. 그가 이룬 가장 큰 의정 활동의 결과는 소외되고 힘없는 약자들에게 돌아갔다. 여수시에서 31년간 위탁운영 되던 청소대행업체를 여수시 직영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올해 1월 269명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업체와 1년마다 재계약을 하던 이들은 여수시가 운영하는 여수도시공사 소속 정규직 노동자가 됐다. 이들 네 개 청소업체는 짧게는 14년에서 길게는 31년 동안 여수시의 청소를 독점적으로 운영됐다. 여수시는 매년 청소비용을 이들 업체에 줬다. 지난해 여수시가 청소업체에 지불한 금액은 186억 원. 청소 노동자들은 그동안 처우도 처우지만 사람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심지어 청소는 물론 일부 업체 측 관계자의 벌초 작업까지 해야 했다고 전 의원은 전했다.

전 의원이 이 같은 문제점을 파고든 것은 재작년이었다. 그는 2011년 4월 제131회(임시회) 제3차 시정 질의를 통해 김충석 여수시장에게 여수시의 청소용역업체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여수시의 청소비용이 2000년 90억 원에서 지난해는 186억 원으로 두 배로 늘었다"며 "청소업체 용역을 의뢰한 결과, 한 해 평균 26억 원이 절감된다"고 직영운영 실시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는 업체 측의 이윤 산정이 '비용 x 이윤율'이다 보니 비용이 크면 이윤이 많기에 업체 측에서는 비용 부풀리기를 해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 청소 업체의 장기적인 독점 ▲ 매년 수의 계약상의 문제 ▲ 환경미화원들의 쉼터인 휴게소의 낙후된 문제 등을 지적한 자료를 제시하며 시정 질의를 통해 여수시장의 입장을 요구했다.

이후 김충석 시장의 답변이 이어졌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전 의원은 김 시장으로부터 사과와 함께 엑스포 이후 총체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김 시장은 "이것 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충격적인 것은 제가 몰랐고 워낙 발등에 떨어진 불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 소홀히 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평소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만들기, 힘 없고 빽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노력했던 게 결실을 맺은 것.

동료 이대길 시의원은 "전창곤 의원은 속도 깊고 원칙을 중시해 26명 위원 중 최고의 의정활동을 하는 친구"라고 추켜세웠다. 이 의원은 전 의원의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여수도시공사 건'과 '용기공원 건'을 꼽았다. 이 의원은 "본인의 소신이 강한 의원이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의원"이라며 "다만, 경제적 기반이 취약해 조직 관리를 잘 못해서 그렇지 묵묵히 일하는 친구"라고 평했다. 다음은 전창곤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여수 떠나는 사람 늘고 있다... 시정 차원의 대책 나와야"

여수시의회 전창곤 의원 홈피 갈무리
 여수시의회 전창곤 의원 홈피 갈무리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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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로 선거 운동을 해서 의회에 입성했다.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보나.
"2002년, 정치에 처음으로 발음 담갔다. 가진 것도, 빽도, 정당도 없었다. 선거운동 시절 명함을 받자마자 바로 던져버리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의 기억에 남기 위해 나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궁리 끝에 맨발로 선거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제대로 된 정치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그 정신을 어어 받아 제가 청렴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이것을 통해 시민들 삶이 나아지고, 정치인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는 게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칙과 특권이 있는 곳에 당당히 맞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본다."

- 지난해, 여수시가 비리 문제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다.
"지난해 시의회·집행부 공무원·경찰할 것 없이 비리 당사자뿐 아니라 동료 의원들도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시의회에서 관련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관행적으로 해온 것이 있어 억울해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어디까지 부정인가에 대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건 잘못한 행위였다는 것.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 내가 시의회에 입성한 뒤 그런 일이 불거져 배지를 달고 다니기가 죄송했다. 비리 당사자는 아니지만 같은 의원으로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비리 도시로 낙인찍힌 여수의 명예회복과 시민들의 자존심 회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 정신 차리고 새로운 의지로 활동하겠다."

- 요즘 어떤 활동을 하나?
"내가 조례를 만들어 지난해 연구단체 시정발전연구회에서 6명이 1년 동안 연구를 해왔다."

- 지난 여수엑스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여수엑스포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엄청 컸다. 많은 사람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빚을 져 투자도 많이 했지만, 그 성과는 돌아오지 않았다. 엑스포 행사장만 둘러보고 간 외지인이 대부분이었다. 시내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돌산 야시장·웅천 엑스포 터미널 등지에 빚내서 투자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허탈감을 이기지 못해 한 분이 여수시 마스코트인 여니·수니를 불태우기도 했다. 엑스포 이후 인구가 줄었단다. 희망을 찾을 수 없으니 고향을 등지고 객지로 떠난 것이라 생각된다. 집행부와 시의회에서 해결점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럼 여수엑스포 사후 활용에 대한 의견은?
"정부가 부지를 민간업체에 파는 것으로 돼 있다. 중요한 것은 국가기관이 선도적으로 입주해 일부를 활용하고, 대기업 및 민간업체의 유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제대로 된 당근과 화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국가가 손해를 보더라도 부지를 싼 가격에 분양해야 한다. 여수시의 역할도 중요하다. 여수시에 건의를 했지만 시가 50m 규격의 수영장 건립 계획을 세워놨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엑스포장내에 수영장을 지어줄 것을 건의했다. 깨끗한 바닷물을 이용할 수 있고, 민물과 바닷물을 겸용할 수 있는 수영장을 지으면 전국적인 명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곳을 전지훈련장으로 쓰면 원도심 활성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본다."

"사회적 약자 대변하는 의정 활동 계획"

- 청소용역업체를 직영으로 전환했다.
"내 스스로도 그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에 반영된 것이 뿌듯하다. 많은 비용이 지불되고 있는 청소 및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업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시비로 시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도 많았따. 시쳇말로 방귀깨나 뀌는 분들이 수년 동안 장기적으로 독점하면서 환경미화원이 쉬는 차고지 내 쉼터는 엉망이 됐다. 현장을 방문하며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 어떤 문제점이 있었나?
"여수시 전체 청소는 4개 업체에 위탁 운영되고 있었다. 그 기간은 짧게는 13년부터 길게는 31년인 경우도 있었다. 수의계약으로 독점돼 있었던 것이다. 감사원·국민권익위원회는 독점하지 말고 경쟁 입찰해 구조를 바꾸라고 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청소업체에 사무실 인건비는 물론 장갑·차량·기름값·차량수리비 등 하나에서 열까지 여수시에서 지원해줬다.

다른 지자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제공하며 6~10%의 이윤까지 줬다. 이윤산정은 비용에 이윤율을 곱해서 계산되는데 여기에 문제점이 많았다. 비용이 커야 이윤도 많이 남는 법. 그래서 업체 측은 비용을 키우려 차도 자주 고치고, 기름도 많이 썼다. 또 거리상 먼 업체가 청소를 담당했다. 그것도 수십 년 동안 말이다. 이후 여수시는 지난해 9월 공청회를 통해 여수도시공사를 설립하는 것을 추진했다. 그로 인해 환경미화원들이 정규직이 됐다. 업체 측에는 협조를 얻기 위해 올해 6월까지 영업을 보장해줬다. 하지만, 1개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가 반발해 차량도 주지 않고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 앞으로 중점적으로 하고자 하는 의정활동이 있다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주민 행사에 참가해 주민들과 어울려야 하지만, 정책을 갖고 대안을 제시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비율로 활동을 해야 적당한지 고민하고 있다."

- 다른 의원과 다르게 해외 출장을 반납했던데.
"지난해 하반기 여수시장과 실크로드 시장단 회의 포럼을 유치하러 가면서 집행부가 의회에 2명을 요청했다. 그때 시의회 의장이 노순기 의원과 나를 추천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80억 원 공무원 횡령사건이 터졌다. 외국 방문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허탈해 하는데 외국으로 출장을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노순기 의원과 함께 해외출장을 반납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그동안 시민들은 웃을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정치인과 공직자는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하지만 여수는 시민들이 정치인·공직자·경찰 등이 또다시 비리를 저지르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또, 자꾸 여수시 인구가 줄어드는데 걱정이다. 올해는 의정활동을 통해 살기 좋은 여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여수시민들께 힘내시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로 이사람, #전창곤, #여수엑스포, #여수도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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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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