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인효 녀석과 함께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는 제주 강정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인효 녀석과 함께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는 제주 강정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풀무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큰 아이 송인효 녀석이 겨울방학과 함께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던 다음날 녀석과 함께 제주 강정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이라서 때마침 마을잔치가 벌어졌는데 녀석은 거기서 자신이 작사 작곡 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름 강정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였습니다.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음에도 신명나는 새해맞이 놀이판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 사람들과 평화 지킴이들 틈에서 노래를 했습니다. 노래하기 전에 녀석은 자신이 처음 서보는 큰 무대라며 긴장감을 풀기 위해 막걸리까지 마셨습니다.

노래하는 녀석의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았지만 아버지로서 마음 한 편이 무거웠습니다.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것을 꿈꾸고 있는 녀석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평화를 지키는 시위 현장에서도 노래하겠다고 합니다. 노래하는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눈물 많고 마음이 여린 녀석이기에 평화지킴이 시위 현장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어야 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을 원천봉쇄한 MB산성처럼 높다랗게 쌓아올린 펜스를 지나 강정 해변에 도착했을 때 녀석은 행사장 저만치 해변으로 줄지어 들어서는 3대의 대형 경찰 버스를 목격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이는 공권력에 맞선 강정마을의 힘든 싸움을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 간접 목격했던 녀석이었기에 다소 긴장된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저거 경찰차 아녀? 오늘 우리도 싸워야 되나…"

어려서부터 수많은 촛불집회 현장을(물리적인 충돌이 없었던) 경험한 녀석이었지만 막상 행사장을 뒤덮고도 남을 만한 경찰병력을 보자 내심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만약 경찰과의 충돌이 있게 되면 아버지로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녀석에게 '지랄탄' 난무하는 시가지에서 백골단과 맞장을 떴다고 무용담을 늘어놓았던 과거의 혈기왕성한 나를 앞세워 녀석을 데리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경찰들과 맞설 수 있을까? 아니면 50대 중년의 힘없는 아버지가 되어 녀석과 함께 저만치 뒤에서 강 건너 싸움 구경을 하게 될 것인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녀석만큼은 저만치 뒤로 물러서 있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 날 강정마을에서는 경찰과 아무런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해군기지 건설 현장을 코앞에 두고 밤새 노래하고 춤추고 신명나는 잔치판을 벌여 나갔습니다. 마을 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노래자랑이 있었고, 녀석은 그 노래자랑에 나가 나름 강정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제주 강정마을 찾아 '평화 기원 노래' 부른 아들

노래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는 송인효. 생명평화 제주 강정마을 해돋이 행사 중에 하나인 노래자랑에 동참해 노래하고 있다.
 노래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수 있다고 믿고 있는 송인효. 생명평화 제주 강정마을 해돋이 행사 중에 하나인 노래자랑에 동참해 노래하고 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녀석과 강정 해변에 모인 사람들의 노래는 그 자체로 평화였습니다. 노래는 평화를 지키는 또 다른 힘이었습니다. 평소 노래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강정마을 잔치에서 그 사실을 어설프게나마 느꼈던 모양입니다.

"노래해가며 이렇게 잘 노실 줄은 몰랐네."
"여기 계신 분들이 힘들게 싸움만 하는 줄 알았지?"
"그런 줄 알았는데 신나게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노래가 큰 힘이 되는 거 같어."

그날 나는 녀석과 장작불 앞에서 추위를 녹여가며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녀석이었지만 열아홉,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제주도에 다녀오고 나서 녀석은 동생 인상이와 내내 기타를 옆에 끼고 생활합니다. 동네에서 드럼깨나 치는 열이 녀석도 한 몫을 하고, 녀석들 덕분에 요즘 우리 집 작은 도서관은 노래 연습실로 탈바꿈했습니다. 거기다가 녀석들에게 기타며 작곡 기술을 전수해 준 블루스 작곡가 김유신씨가 소리꾼 백금렬 선생. 김정림 선생과 함께 음반 준비 작업을 위해 며칠을 묵어가는 동안 작은 도서관은 매일 밤마다 신명나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김유신 사부'의 아들 휘연이까지 뒤늦게 합세해 급조된 '촌놈 밴드'를 탄생시켰습니다. 인상이는 베이스 기타, 인효는 보컬을, 올해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휘연이는 드럼을 맡았습니다. 나름 폼을 잡고 노래하는 인효 녀석과는 달리 두 녀석은 무표정 연주를 하고 있지만, 녀석들은 어려서부터 친형제처럼 지내온 사이였기에 죽이 아주 잘 맞습니다.

베이스 송인상. 드럼 김휘연. 보컬 송인효 이름하여 '촌놈 밴드'. 요즘 작은 도서관이 '촌놈 밴드'의 연습실이 됐습니다.
 베이스 송인상. 드럼 김휘연. 보컬 송인효 이름하여 '촌놈 밴드'. 요즘 작은 도서관이 '촌놈 밴드'의 연습실이 됐습니다.
ⓒ 송성영

관련사진보기


촌놈 밴드는 주로 인효 녀석의 자작곡을 연주하고 노래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며 작사 작곡 노래를 불러왔던 인효 녀석의 노래에는 시골 '촌놈' 정서가 묻어있습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엄마의 부침개 굽는 소리 같다는 '부침개'를 비롯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면서 저 하늘 구름 사이로 날아가고 싶다는 '자전거를 타고'. 늦은 밤 귀가길 별과 달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용이 담긴 '밤길'. 돌담 틈 사이로 핀 작은 민들레를 보면서 이별할 수밖에 없는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슬프다는 '아름다운 것들'. 어린시절 아빠가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나오는 푸른 굴뚝 연기가 그립다는 '아궁이' 따위의 노래에는 세 살 무렵부터 산골 생활을 했던 녀석의 정서가 물씬 묻어 있습니다.

아들 노래 한 곡 덕분에 아내와 다시 나눈 대화

촌놈 밴드 녀석들은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김유신 사부'와 함께 즉흥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즉흥 연주에 맞춰 노래하던 인효 녀석이 느닷없이 엄마 아빠의 불편한 관계를 노래에 실었습니다. 즉흥적인 노래 가사였기에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 하는 아빠, 편리한 콘크리트를 좋아하는 엄마, 서로가 생각이 달라 싸우는데 이제 그만 좀 싸워!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면서…"

노래 가사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콘크리트를 싫어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 엄마도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서로 싸우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노래로 들려왔습니다.

▲ 송인효 작곡 작사 노래 <부침개> '부침개'는 전남 고흥으로 이사와 송인효가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든 노래.
ⓒ 송성영

관련영상보기


요즘 우리 부부는 사이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한동안 대화가 단절되기도 했습니다. 새 집을 짓고 생활하면서 언제부턴가 서로 보고 느끼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예전처럼 가진 것 없어도 소박한 삶을 살자 하지만, 아내는 그런 생활이 이제는 지긋지긋한 모양입니다.

아내는 비가 오면 질퍽거린다며 내가 싫어하는 콘크리트 벽돌로 집 주변에 길을 냈고, 목수를 불러들여 내가 만든 조악한 현관 비막이를 뜯어내고 새로 올렸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반드시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고, 나는 학력이나 학연 따위를 위한 대학은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티격태격 하면서 험한 말이 오고갔습니다. 결국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하고 아예 입을 닫았습니다. 눈치 빠른 인효 녀석이 이 사실을 모를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녀석이 노래할 때만큼은 같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녀석의 노래를 즐깁니다. 같은 시선으로 박수 치고 때로는 환호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어제는 김유신씨가 녀석의 노래를 듣고 있던 우리 부부를 마이크 앞으로 불러냈습니다. 즉흥연주에 맞춰 나는 싸우기 싫다고 노래했고 미안하다고 노래했습니다. 오늘처럼 녀석의 노래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살겠다고 노래했습니다. 아내는 그동안 쌓여있던 불만을 속 시원하게 퍼부어 댔습니다. 서로 조근조근 대화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녀석의 노래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전달했던 것입니다.

노래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있는 송인효. 녀석의 노래가 우리 부부의 입을 열게 해줬습니다. 녀석의 노래가 우리 부부 사이에 막혀있던 벽을 허물고 작은 소통의 공간을 열어줬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점심 무렵에 아내가 다락방 컴퓨터 앞에서 꼼지락 거리고있던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밥 먹으라는 말 한마디 없던 아내였습니다.

"인효 아빠, 애들 먹을 때 같이 먹자!"
"알았어! 내려갈게."

나는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녀석의 노래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세상을 바꿔 놓고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동영상으로 올린 '부침개'는 비록 지붕에서 빗물이 새는 충남 공주 생활이었지만 비오는 날 가족이 마루에 오손도손 앉아 부침개를 부쳐 먹곤 했던 '소박한 행복'을 그리워 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호남고속철도 건설과 함께 전남 고흥으로 이사오는 바람에 마루에 앉아 부침개를 부쳐먹던 그 충남 공주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태그:#제주 강정마을, #송인효, #촌놈 밴드, #평화만들기 노래, #송인효 자작곡 부침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