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 답변서.
 미국 답변서.
ⓒ 구영식

관련사진보기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주한미군 캐럴 기지에 다량의 고엽제가 매립되었다는 주장이 나와 큰 논란이 일었던 지난 2011년 5월, 중요한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미국 보훈부가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2년 1개월이나 늘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미국 보훈부는 같은 해 1월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기존의 '1968년 4월 1일부터 1969년 7월까지'에서 '1968년 4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로 늘렸다. 이는 비무장지대(DMZ)에서 '1970년 7월 31일까지' 근무한 사람만 고엽제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는 한국보다 1년 1개월이나 긴 기간이다. 이로 인해 똑같이 1970년 8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 사이에 DMZ에서 근무했다가 고엽제 피해를 입은 주한미군은 피해보상 받을 수 있지만, 한국군은 보상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렇게 미국 보훈부가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늘린 사실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 지원 등과 관한 법률'(고엽제 지원법)을 개정해 주한미군과 동일하게 인정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5년 한시법인 고엽제 지원법이 연장되었지만 개정안에는 인정기간 연장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의회는 '1967년 9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 인정

이런 가운데 국방부가 지난해 미국 보훈부에 자료협조를 요청했다. 국방부가 미국 보훈부에 요청한 것은 ▲ 피해보상기간 연장 사유와 관련 자료 ▲ 고엽제 살포 시기와 장소의 변동 여부 ▲ 독성잔류시간 판단 기준과 근거 등 세 가지였다.

국방부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핵심내용은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한국은 고엽제 마지막 살포시기를 1969년 7월 31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러한 살포시기에 변동이 있는지'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은 고엽제 독성잔류기간을 12개월로 판단해 피해자 인정기간을 1967년 10월 9일부터 1970년 7월 31일까지로 정했는데 미국 보훈부는 독성잔류기간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다.

이에 대해 지난해 5월 미국 보훈부는 국방부로 답변서를 보냈다. <오마이뉴스>가 최근 단독으로 입수한 이 답변서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2003년 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 보상법을 통과시킬 때 '잠재적 고엽제 노출 대상 기간'을 '1967년 9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로 규정했다. 다만 보훈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협의해 '실제기간'을 결정하도록 했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미국 보훈부는 'DMZ 고엽제 노출기간'을 '1968년 4월 1일부터 1969년 7월 31일까지'로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미국 보훈부는 지난 2011년 1월 'DMZ 고엽제 노출기간'을 '1968년 4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로 늘렸다. 이러한 기간 연장과 관련, 미국 보훈부는 "연방법 1821에 수록된 의회의 의도와 맥락을 같이 해 보훈부 규정을 조정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의회에서 '잠재적 고엽제 노출 대상 기간'을 '1967년 9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로 규정한 것을 존중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늘렸다는 설명이다.

미국 보훈부 답변서에 따르면, 지난 2003년 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 보상법을 통과시킬 당시 미 하원은 DMZ 근무자의 '고엽제 노출 인정기간'을 '1967년 10월 1일부터 1975년 5월 5일까지'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베트남 참전 재향군인들에게 적용된 고엽제 노출 인정기간과 같은 종료일자를 적용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는 미 하원의 반대에 부딪혔다. 미 하원은 '1967년 1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만 인정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의회의 최종 타협안'은 '1967년 9월 1일부터 1971년 8월 31일까지'였다. 미국 보훈부가 지난 2011년 1월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늘린 것은 이러한 최종 타협안을 뒤늦게 반영한 조치였다.

물론 미국 보훈부는 "문건들은 고엽제가 1968년과 1969년에도 비무장지대에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기존의 양국 발표 내용을 재확인했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정부는 지난 1968년 4월 15일부터 10월 31일까지, 1969년 5월 19일부터 7월 31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고엽제가 DMZ에 살포됐다고 발표했다.

미국, 고엽제 독성잔류기간 고려 안했다가 뒤늦게 반영

그런데 미국 보훈부의 답변서에는 '중요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답변서에는 지난 2003년 DMZ 근무 고엽제 피해자 보상법을 통과시킬 당시 해당 상임위원회의 '권고의견'이 인용되어 있다. 

'한국비무장지대내 또는 인근지역에서 제초제(고엽제)의 사용이 1969년에 종료되었을지라도 위원회는 잔류독성을 고려하여 1969년 이상으로 인정기간을 확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믿음.'

즉 미국 보훈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 협의해 최종 결정한 'DMZ 고엽제 노출기간'('1968년 4월 1일부터 1969년 7월 31일까지')보다 기간을 더 연장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다. 이는 DMZ 고엽제 노출기간에 '고엽제의 잔류독성기간'을 반영하지 않은 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국방부의 민원회신 공문(2012년 3월 26일자)에 따르면, 미국 보훈부의 관보에도 유사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전 규정이 고엽제 살포 이후 잔류물질에 대한 노출을 감안하지 못하였으며, 고엽제의 장기적 영향에 관한 과거 및 현재의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고엽제 살포 한참 후에도 지속적으로 유독하며 유해할 수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

이어 미국 보훈부는 이러한 '권고의견'을 "이 '잔류 노출' 접근은 베트남에서의 고엽제 사용이 1971년 종료되었음에도 1975년 5월 7일까지 확대해 베트남 참전 대상 고엽제 노출 추정기간을 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미국은 베트남 참전 군인에 한해서는 고엽제 잔류독성기간을 4년 정도로 판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고엽제 잔류독성기간을 1년으로 판단한 한국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1989년 발표된 Paustenbach. D. J. <The Risk assessment of Environmental Hazards and health hazards>을 근거로 고엽제 잔류독성기간을 판단했다. 이 연구논문에는 "지표면에 뿌려진 고엽제는 휘발성과 광분해 작용 때문에 18개월 이내에 사라진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고엽제 마지막 살포시점인 1969년 7월 31일로부터 1년이 지난 1970년 7월 31일까지를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는 근거로 삼은 연구결과에도 못미치는 기간이다. '18개월 이내'라는 연구논문 내용을 적극적으로 적용했더라면 최소한 '1971년 1월 31일까지' 고엽제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만 미국 보훈부는 답변서에서 "고엽제 노출 종료기간을 1971년 8월 31일로 확대한 것은 한국에서의 고엽제 사용과 연관된 어떠한 새로운 문건이 확보되었음을 의미하거나 고엽제 노출의 장기적인 영향에 관한 어떠한 새로운 과학적 근거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방부 "연장 어렵다"... 박종기씨 "문헌에 나온 6개월이라도 더 늘려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뒤늦게 고엽제 잔류독성기간을 반영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을 '1971년 8월 31일까지'로 늘린 점과 베트남전 고엽제 잔류독성기간을 '4년'으로 판단했다는 점 등을 헤아릴 때 한국도 최소한 전자의 변화에 준해서 인정기간을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방부는 "어렵다"는 태도다.  

지난 7월 박정윤(66, 예비역 중령)씨에게 보낸 답변서에서 국방부는 "1989년 외국문헌에 발표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되 살포량과 기후조건의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원입법과정상의 결정에 따라 1969년 7월 31일부터 12개월을 독성잔류기간으로 보고 피해보상기간을 1967년 10월 9일부터 1970년 7월 31일까지로 정하였다"며 "당시 의원입법과정에서 충분한 검토 후 결정된 사안으로 현 시점에서 국방부에서 그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제기하기 어렵고, 또 이를 근거로 국내 고엽제 피해보상 대상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밝혔다.

박종기 예비역 중령이 전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수색소대장으로 DMZ 안에서 수색과 매복을 되풀이했다.
 박종기 예비역 중령이 전방에서 근무하던 시절. 수색소대장으로 DMZ 안에서 수색과 매복을 되풀이했다.
ⓒ 박종기씨 제공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1970년 12월부터 전방에서 근무했다가 전형적인 고엽제 후유증 증세를 보이는 박종기(68, 예비역 중령)씨는 "일단 미국처럼 인정기간을 늘리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며 "하지만 그렇게 안된다면 문헌(연구논문)상에 나온 대로 6개월을 더 늘려서 최소한 1971년 1월 31일까지는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 [인터뷰] 고엽제 후유증 앓고도 인정 못받는 예비역 중령 박종기씨).

그런 가운데 다음주께 진행될 것으로 알려진 국가보훈처의 대통령 당선인 업무보고에 '국내 고엽제 피해자 인정기간 연장문제'가 포함될지 주목된다.


태그:#고엽제, #미 보훈부, #국방부, #박종기, #DMZ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