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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고백하건대 난 아직도 '멘붕(멘탈 붕괴)' 수습 전이다.  대선일인 12월 19일 이후부터 차마 TV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길거리를 지나다니다가도 함박웃음을 짓는 이들과 마주치면 괜한 피해의식에 황급히 피하기 일쑤다. 게다가 50~60대 분들을 보면 왜 이유 없이 적개심이 끓어오르는지.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조선일보>를 보시는 아버지가 섭섭해 차마 자식들을 데리고 본가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자는 이런 나를 두고 한심하다 할 것이다. 먹고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대통령이 누가 된들 무슨 상관있냐며, 감옥에서 갓 출소한 정봉주의 사자후처럼 '좌절은 개나 갖다 줘야'지 왜 아직까지도 끙끙 앓고 있냐며, 우리들은 박정희, 전두환 시대도 살아냈는데 겨우 이명박, 박근혜 시대 가지고 죽는 소리 하느냐고 잔소리 할 수도 있다. 물론 약속을 꼭 지키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제 중산층이 70% 될 것인데 왜 사서 걱정하느냐는 핀잔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난 한동안 그리 쉽게 좌절을 툴툴 털어버릴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는 희망과 기대가 너무 컸고,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이 너무도 암울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난 이리도 좌절하고 있는 것일까?


5년짜리 악몽의 연장


지난해 12월 28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악수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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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내가 이번 대선 결과에 절망하는 것은 앞선 5년간의 기억 때문이다. MB와 함께 시작된 나의 30대,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나 결혼을 하고 셋째까지 출산할 수 있는 시간.

사실 5년 전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멘붕 상태는 아니었다.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 뻔했던 만큼 박근혜 후보든, 이명박 후보든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10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누가 되든 사회는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 있었다. 비록 경제적 민주화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제도적 민주화는 이루었으니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MB 정부 초기에는 10년 동안 축적된 상식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이 촛불집회 등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는 시간이 갈수록 힘든 일이 되었다. 미네르바 구속, 불법 민간인 사찰, MBC 'PD수첩'팀 검찰 수사 등 MB 정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만행들을 저질렀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그만큼 퇴행하기 시작했다.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람들은 벌금이 무서워 입도 뻥긋 못하는 사회로 어느 순간 흘러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MB의 임기가 5년이란 사실이었다. 그래도 5년이 지나면 대통령이 바뀌고 MB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어쨌든 2010년 지방선거의 결과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은 그와 같은 희망을 눈앞의 현실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결국 <나는 꼼수다>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희망이 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일이다.

그리고 맞이한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시대. 문제는 MB시대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쳐있다는 사실이다. MB 정부 때야 이전 10년을 바탕으로 5년만 참으면 된다며 서로 위로하고 저항하고 조소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 5년 간 우리는 말도 되지 않는 행태를 너무 많이 보아왔고, 너무 많이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대선 이후 5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죽은 이 초유의 사태는 그런 절망이 너무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간 시간이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다가올 시간의 전주곡 같이 느껴지는 이 불길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짐작할 수 없는 박근혜 당선자의 모습  


내가 멘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박근혜 당선인 본인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보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짐작할 수 없는 박근혜 정부의 성격.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난 박근혜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른다.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과 아버지, 어머니가 비명횡사하여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정치를 시작하면서 그 상징성으로 모든 것을 이미 획득했다는 게 전부이다. 그의 말마따나 15년이나 정치를 했건만 박근혜는 그동안 자신을 온전히 대중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언론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준 이미지가 전부일 뿐이다. 그러니 그의 의중을 짐작함에 있어서 현재 그의 언사보다는 살아온 과거,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력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면은 대선 TV토론이었다. 그것은 15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정치인을, 그리고 전혀 준비하지 않은 질의문답 등을 통해 유일하게 박근혜의 '생얼'을 볼 수 있었던 기회였기 때문이다. 과연 박근혜는 어떤 인물일까? <나는꼼수다> 등에서 씹어대듯이 그리 명석하지 않은 사람일까? 아니면 우리네 부모님의 믿음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리 없는 사람일까?

사실 1, 2차 TV토론 중 박근혜 당선인이 이정희 후보의 공격을 받으며 버벅거렸을 때는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도 바로 면전에서 그렇게 신랄한 비난을 받는데 어떤 누가 매끄럽게 넘어갈 수 있겠는가.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마도 박근혜 후보는 그와 같은 상황 자체가 생소했던 만큼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와의 양자 토론으로 진행된 3차 TV토론은 달랐다. 문재인 후보는 이정희 후보와 달리 가급적이면 인신공격을 피했고 정책적인 문제만을 따졌는데, 그 와중에 박근혜 당선인의 '생얼'이 튀어나왔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마주쳤을 때 보이는 박근혜 당선인의 태도가 드러난 것이다. 한 팔을 의자에 걸치고 뒤로 몸을 약간 젖힌 채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려는 것'이라던 그. 그것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상사의 모습이었으며, 자신이 모르거나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을 접했을 때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나이 60을 살아오면서 '갈등조절'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박근혜 당선인의 민낯 그대로였다.

박근혜 당선인은 MB와 달리 진짜로 국가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국가를 개인의 수익창출 모델로 삼았던 MB와 달리 박근혜 당선인은 국가가 아버지인 이상 국익에 대해 좀 더 고민할 것이며, 서민의 삶 역시 박근혜 당선자가 MB보다는 더 챙길 수도 있겠다. MB에게 서민이란 자신의 부를 늘리는데 있어서 도구의 대상이지만, 박근혜 당선인에게 서민이란 자신이 다스려야할 백성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근혜 당선인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를 마주치는 경우이다. 과연 박근혜 당선인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난 그 이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박근혜 당선인은 그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고, 그가 유일하게 보고 배웠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와 같은 경우 반대하는 자들을 모조리 힘으로 억압했기 때문이다.

윤창중 당선인 수석대변인이 1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1차 인선안을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부위원장으로 진영 정책위의장, 국민대통합위 위원장으로 한광옥 전 대표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윤창중 당선인 수석대변인이 1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1차 인선안을 발표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부위원장으로 진영 정책위의장, 국민대통합위 위원장으로 한광옥 전 대표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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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 개명된 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기야 하겠느냐고? 방심은 금물이다. 지난 5년 동안 민주주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힘없이 퇴보해왔고, 박근혜 당선자는 그런 역주행에 저항은커녕 찬성해왔다. 게다가 그녀 주위에는 민주주의라면 치를 떠는 3공, 5공의 돌아온 올드보이들이 득실득실하지 않은가. 박근혜 후보에게 등을 돌린 윤여준 전 장관이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을 하면서 문 후보의 민주주의적 리더십을 콕 집어 지목했던 건 그만큼 박근혜 당선인에겐 그 덕목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는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박근혜 당선인의 성향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야당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고 있는 윤창중 대변인의 임명 강행이나, 묵묵부답 아무런 이야기를 않고 있는 MBC 사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선 이후 KBS <개그콘서트 -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의 가벼운 한마디조차 시비를 거는 것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사개그마저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라면 앞으로 5년간의 표현의 자유는 빤하지 않겠는가.

혹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유사파시즘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데, 그것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입도 뻥긋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파시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한심한 야권의 대응

내가 '멘붕'을 수습하지 못하는 마지막 이유는 대선 패배 이후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야당 때문이다. 패배의 원인도 채 파악하지 못한 채 이정희, 친노, 문재인 등을 언급하며 마녀사냥을 통해 면피에 급급한 그들. 정확하게 말하자. 이번 문재인 후보가 득표한 48%가 어디 문재인 개인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였던가? 그것은 반(反)박근혜에 대한 의지일 뿐이며, 박근혜 정부에 대한 우려였다. 결코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하는 표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9대 민주통합당 제1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계륜, 김동철, 박기춘 원내대표 후보가 동료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9대 민주통합당 제1기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의원총회에서 신계륜, 김동철, 박기춘 원내대표 후보가 동료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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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가 다시금 확인해야 할 것은 소위 1987년 체제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근 30년간 지속된 군부독재를 종식하며 1987년 체제가 등장했지만, 그것은 결코 완벽한 형태의 변혁이 아니었다. 3당 합당과 함께 지역주의가 극심해지면서 시민들은 오히려 정치로부터 유리되었고, 양극화는 심각해졌으며, 나만 살고 보면 된다는 이기주의와 돈이 최고라는 물신주의는 심화되었다.

혹자들은 제도적 민주주의의 완성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탄생을 예로 들며 1987년 체제의 유효성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오판이다. 최고 지도자 개인의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소위 민주 정부 역시 이전 정부와 같은 궤를 그렸고, 덕분에 우리네 팍팍한 삶은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1987년 6월 항쟁으로 쫓겨났던 세력이 다시 돌아왔다. 신자유주의의 파고가 약해지자 복고의 시대가 온 것이다.

1987년 체제를 유지하는 이상, 비극적이지만 5년 뒤라고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함께 살기보다는 자기 한 몸 추스르기에 바쁠 것이며, 많은 이들이 평균보다 못한 이들은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올라가지 못할 사다리만을 바라보며 극한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향은 먹고 살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강화될 것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나보다 못한 이를 보살피는 배려는 궁곤함과 절대 공존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야당은 시급히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나 아예 새로운 모습으로 정치 구조를 기획해야 한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은 채 틀을 새로 짜야 한다. 그나마 48%의 지지를 확인한 이때가 적기다. 사회는 점점 보수화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금의 체제에서는 더 이상의 국민의 신뢰도 얻을 수 없을 뿐더러 기득권 세력을 상대로 한 다툼에서도 이길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안철수를 당 대표로 들이고 박원순을 얼굴마담으로 해도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최근 개봉된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보며 다시금 희망을 꿈꾼다고 한다. 당시에는 좌절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수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결국에는 공화정을 이루고 마는 그들의 역사를 보며 다시금 저항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내게 영화 관람은 아직까지 밀린 원고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고육지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문한다. 우리가 벌써 희망을 논할 수 있는가? 대책 없이 희망을 논하다가 또 너무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더 큰 좌절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처럼 극심한 좌절이 때론 배신을 낳지만 진정한 희망은 그 좌절을 극복할 때 다가오기 때문이다. 서로의 안위를 연대를 통해 살펴야 하는, 표현의 자유마저 불안한 앞으로의 5년.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시는 니묄러 신부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가 아닐까?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태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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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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