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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돈은 더러운 곳에서 더 더러운 곳으로 향한다."(소설 <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본문 중에서)

<88만 원 세대>라는 역작으로 한국사회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던 경제학자 우석훈이 난데없이 소설 한 편을 내놨다. 이름 하여 <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아래 <모피아>)이다. 그가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와 SNS를 통해 줄기차게 제기했던 '모피아와 금융 민주화'라는 화두를 소설이라는 틀 속에서 장쾌하게 펼치고 있다.

사전을 찾아봤다. 모피아란 재정경제부의 전신인 재무부의 영문 약자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로, 금융계에서 막강한 파워와 연대감을 과시하는 재무부 출신들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란다.

소설 <모피아> 속에서 그들은 박정희 정권 이래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해 이 나라의 경제권력을 쥐고 흔들어온 세력으로 그려진다. 한마디로 '악의 축'이다. 이번 대선에서 시민 세력이 승리한다고 해도 그들의 영역은 '신성불가침'이란 게 우석훈의 통찰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때도 그랬던 것처럼.
  
경제쿠데타를 진압하라

<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겉표지
 <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겉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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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시민의 정부'가 들어선 다음 해인 2014년 하반기서부터 시작된다. 새로운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민주화 노력에 위협을 느낀 모피아 세력의 대부 이현도는 은밀히 매집한 공기업 채권을 시장에 투매해 국가 부도를 야기하겠다며 대통령을 협박한다.

한국은행 팀장 오지환이 청와대 경제특보로 들어가 거대한 세력에 맞서보지만, 결국 대통령은 제2의 IMF만은 막아야 한다는 고심 끝에 경제권력을 내주고 만다. 반격을 꿈꾸는 대통령과 오지환의 분투에 자극받은 이현도는 대통령직마저 내려놓으라고 압박하고, 마침내 최후의 일전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돈과 마음의 전쟁'이다.

<모피아>는 단순히 소설 형식을 차용한 경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관료집단과 금융에 관한 전문지식을 배경으로 써내려간 본격적인 장르소설이라고 부르는 게 정당한 평가일 것이다. <모피아>는 경제학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 구현된 인물들과 이야기가 도달한 문학적 수준은 결코 아마추어의 솜씨가 아니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엄청난 스케일, 이 나라의 경제 권력에 대한 신선한 통찰, 그리고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클라이맥스의 감동은 왜 우석훈이 작가의 길을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잠재워준다. 기대하지 않았던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사회과학의 삭막한 세계에 계속 머물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우석훈은 세상에 없던 소설 한 편을 만들어냈다.

지난 28일, <모피아> 집필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우석훈 박사를 그가 자문으로 일하고 있는 영화사 타이거픽쳐스 사무실(돈암동 소재)에서 만났다.

우리가 잘 모르는 모피아

우석훈 박사
 우석훈 박사
ⓒ 이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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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를 집필한 동기는?
"토건 마피아와 교육 마피아, 모피아를 다루는 '공무원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 <모피아>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뒤 그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은 관료집단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이나 시민단체들은 그 집단에 대해 잘 모른다. 이런 점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미 두 번의 민주 정부가 있었음에도 왜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을까'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 경제학자가 소설이라니 의외다.
"소설 형식으로 쓰게 된 건 모피아를 둘러싼 그 모든 걸 취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주장의 증거를 다 댈 수 없다는 말이다. 학자가 아니라 검사처럼 조사해야 얻어낼 수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모가 이뤄지는 밀실에 녹음기나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가상의 세계를 하나 만들어놓고 그게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제시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렸다.

막상 해보니 소설이 오래된 양식임에도 다른 매체에 비해 장점이 많더라. 먼저 소설 속의 얘기가 100% 맞는 사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화에 비하면 제작비가 싸다는 점도 있었다.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시점을 근미래로 옮겨놓으니 이야기를 풀기가 무척 자유로웠다. 그렇다고 내가 예측 소설을 쓰려고 한 건 아니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보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 모피아 집단에 대한 큰 그림을 보여주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

-앞으로도 계속 작가의 길을 걷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몇 개 있다. 다음 작품으로는 동화책을 써보려고 한다. 마침 아이도 태어나서 그 아이도 같이 볼 수 있는 책을 생각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문적인 영역의 이야기들도 좀 더 만들어보려는 생각이다. 교육 얘기나 4대강 얘기 같은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사안에 대해 실상을 알고는 있어도 모든 증거를 대지 못하면 말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표현의 자유가 사실상 없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떠밀려서 소설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소송 속에서 목숨 걸고 써야 하는데, 정봉주 전 의원이 감옥 가는 것을 보면서 아니다 싶었다. '그게 감옥 갈 일인가' 싶어도 정말 가지 않았나. 이런 일로 감옥 가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소설을 쓰는 거다."

"다음 정권에서는 '금융 민주화'가 의제 될 것"

-<모피아>에서는 '경제 민주화'라는 주제를 환율로 풀고 있는데.
"경제 민주화를 실물경제 차원에서 보면 재벌 문제지만, 그것의 그림자나 거울 같은 또 다른 이면은 금융 문제다. 아마 다음 정권에서는 '금융 민주화'가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금융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경제 민주화를 둘러싼 말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금융 메커니즘을 어떻게 바꾸고 무엇을 정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진행되는 게 없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금융의 핵심은 원화 정책이고, 원화 정책의 두 기둥은 이자율과 환율이다. 그런데 한국의 환율 정책이란 것이 수출 대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그만큼 개인들은 희생을 본 거다. 그렇다면 다음 정권에선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 작금의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한 논의 자체가 생략돼 있다.

일반인들이 이 문제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4대강은 눈에 보이는데 환율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전문가 주의에 빠지게 되고, 결국 밀실에서 몇 사람이 결정하는 구조다. 이걸 어떻게 열어서 일반인들도 이 논의에 참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사실 이런 걸 소설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뭐라도 좋은데 니들끼리 결정하지 마라. 그건 우리가 가야 할 미래가 아니다!'"

-예상 밖으로 사랑 이야기가 소설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데.
"소설의 출발은 경제 이야기였는데, 써놓고 보니 내가 보기에도 재미가 없더라. 다시 작업하면서 굉장히 강하고 똑똑하고 이상적인 여성을 만들고 싶었다. 사실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캐릭터가 여자 주인공인 김수진이다. 해보니까 재미있더라. 어쨌든 내가 재미있어야 남들도 재미있게 읽을 테니까.

베드신도 세 번쯤 나오는데, 수위 조절이 쉽지 않았다. 여튼 남자들이 보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진짜로 살아 있는 여성의 얘기를 늘 해보고 싶었다. 아내가 모델은 아니고, 제1회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비스트를 원형으로 놓고 내가 아는 모든 멋있는 걸 다 갖다 붙인 거다."

- <모피아>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대통령 바꾼다고 세상이 좋아지는 게 아니란 걸 우리가 알고 있지 않나. '통치란 게 복잡한 일이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바꿔봐야 똑같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가 아닌 해법들을 모색하고 싶었다. 투표도 안 하고 다 싫다고 하는 건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다. 어려운 건 알겠는데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게 있지 않나. 금융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어렵기 때문에 아무도 안 보는데, 그러면 진짜 큰일 난다. 어렵고 귀찮아도 보려고 하는 수밖에 없는데, 내가 봐도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쉽게 풀어본 게 이 소설이다. 연애 이야기를 많이 넣은 것도 그래서다. 경제 이야기를 경제로 푸는 건 경제학 책에서 하면 되는 것이다. '소설을 쓰면서는 40대의 사랑 이야기로 풀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이 연애 이야기를 재미있게 따라가면서 이 땅의 문제 하나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제 이야기를 더 많이 쓰라는 주문도 있었지만 가급적이면 덜어냈다. 그래서 소설의 반이 연애 이야기가 된 것이다. 나부터도 이야기란 건 재밌어야 보는 것. 극단적인 오락주의로 보일 수 있을 정도로 소설의 오락 기능을 염두에 두고 소설 <모피아>를 썼다."


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김영사(2012)


태그:#우석훈, #모피아, #김영사, #돈과 마음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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