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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귀농귀촌 인구가 매년 최고치를 기록중입니다.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인구는 8706가구 1만7745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왜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것일까요? 귀농귀촌인 절반 이상은 4050세대이지만 2030 세대의 귀농귀촌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생태적 삶'을 살고자 귀농을 결심하는 이들도 많지만, 상당수는 자영업에 실패하거나 명퇴를 당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귀농귀촌의 리얼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개인의 선택 차원을 떠나 뚜렷한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귀농귀촌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적 뒷받침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 어느집 마당에서는 눈깔사탕만한 대추가 맛난 빛깔로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 어느집 마당에서는 눈깔사탕만한 대추가 맛난 빛깔로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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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대학', 요즘도 입시철만 되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시쳇말입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런 경향이 전무한 상태는 아니겠지만, 과거 한 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상경(上京)'이란 말은 출세를 위한 세상나들이이자 질이 향상된 삶이 시작되는 출발점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관대작이나 대부분의 갑부들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역사적이거나 현실적인  배경을 배제하더라도 사실이 그랬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야 사시사철 거무튀튀하고 거친 피부였지만 서울로 올라간 사람들은 피부조차 희뿌연하게 변하는 게 눈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인지 뻥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서울 사람들의 생활은 시골 사람들과의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하고, 넉넉하고, 풍족해 보이기 일쑤였기에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귀촌'과 '귀농'이란 말이 중년들이 그리는 선망의 대상, 노후의 삶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귀촌이라는 말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할 만큼 부담스러웠던 경쟁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해방구 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맑은 물, 신선한 공기, 넉넉한 인심, 풋풋한 흙내음,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한숨 잘 수 있는 시계 없는 시간, 심장에 잡힌 주름조차 쫙 펴질 것 같은 여유로운 마음, 가족모두가 도란도란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먹는 식사, 텃밭에서 자라는 야채들, 햇볕을 잔뜩 머금고 정원에서 익어가고 있는 과일들.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그릴 수 있는 목가적인 풍경 속 주인공이 되는 게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이 갖는 귀촌에 대한 기대이자 로망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 인구가 8706가구 1만 7745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2011년도에는 1만 503가구 2만 3415명으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귀농·귀촌 인구가 가장 많은 곳 가운데 하나가 충북 괴산군입니다.

괴산군에 따르면 올해만 6월기준으로 148가구 245명이 이주했습니다. 2009년 42가구 73명,  2010년 52가구 118명, 2011년 93가구 172명으로 괴산군 귀농·귀촌인구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귀농·귀촌인구가 많이 늘어난 곳은 칠성면입니다. 2011년부터 2012년 6월까지 54가구(106명)가 증가했습니다.

집단귀촌으로 지도까지 바뀐 사은리

집단귀촌으로 지도가 바뀌었습니다. (위) 2008년도 사진 (아래) 최근사진 -<다음> 지도에서 추출.
 집단귀촌으로 지도가 바뀌었습니다. (위) 2008년도 사진 (아래) 최근사진 -<다음> 지도에서 추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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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일까요.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는 몇년 사이에 지도가 달라졌습니다. 비탈진 밭이 있고, 다랑이 논이 있던 구배원에 '미루마을'이 들어서면서 지도가 바뀐 것입니다. 사은리는 전체 가구 수가 50여 호 남짓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입니다. 이런 마을에 몇 년 사이에 57가구나 되는 미루마을이 들어선 것입니다.

미루마을은 사은리 북쪽, 고개라 할 것도 없고 산이라 할 만큼 높지도 않은 야트막한 안산 너머, 구배원이라는 곳에 흡사 신도시가 건립되듯 들어선 집단 귀촌마을입니다. 미루마을이라는 이름은 그곳에 커다른 미루나무 3그루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미루마을은 수도권의 한 대학의 동문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으며,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23억4000만원을 들여 커뮤니티센터, 도로, 상수, 오수, 하수처리시설 등 기반시설과 공공시설을 조성했습니다. 이 마을에는 단독주택 57채가 건립됐고 35가구 100여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22가구가 귀농·귀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루마을 사람들이 사은리로 귀촌한 첫 번째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귀촌이나 귀농을 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몇 집 됩니다. 그들은 가구 단위로 들어왔고, 자연스레 마을사람으로 동화돼 지금은 집안의 대소사까지를 함께 꾸리는 동네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루마을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57세대라는 단위도 그렇지만 그들에겐 어느 대학 동문이라는 구심점이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세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도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두발로 걸으며 느낀 귀촌마을

집단귀촌으로 형성된 미루마을 전경은 획일전인 건축물로 조금은 단조로워 보입니다..
 집단귀촌으로 형성된 미루마을 전경은 획일전인 건축물로 조금은 단조로워 보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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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미루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입구 공터에 차를 세우고 타박타박 걸어서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집단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귀촌이다 보니 공사면적도 넓고, 파헤치거나 벌여놓은 일이 많으니 모든 게 마무리 되려면 아직도 적지 않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합니다.

즐비하게 늘어선 집들의 겉모습은 획일적이라 할 만큼 같은 모양에 같은 색깔입니다. 길을 걸으며 들여다보는 집들 중 일부에서는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그릴 법한 풍경들도 눈에 띕니다. 햇볕이 가득한 양지바른 마당, 잘 다듬어진 잔디밭, 마당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가을배추와 화초들, 주렁주렁 매달려 당도를 더해가고 있는 곶감, 가을바람에 살짝살짝 몸짓을 하고 있는 그네, 배경으로 에두르고 있는 가을 산, 누룽지 맛처럼 구수하게 익어가고 있는 단풍들…. 정말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오매불망 그릴 법한 목가적인 풍경입니다. 

숲속 작은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숲속 작은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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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작은 도서관'이란 팻말이 달린 집에는 꽤나 많은 아이들이 북적대고 있습니다. 무대 아닌 무대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드럼을 두드리고 있고 어떤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습합니다. 어떤 행사가 진행될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북적거리는 그 집을 지나니 적막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두 모녀가 짜랑짜랑한 햇살을 받으며 뭔가를 다듬고 있는 게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주워온 알밤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일상입니다. 노랗게 영글어 쪼글쪼글할 정도로 말라있는 밤에서 단맛과 고소함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미루마을에서의 삶이 귀촌을 계획하며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지, 아니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우문현답입니다. 커다랗게 기대하지도 않았고, 꿈을 꾸듯이 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 별로 실망스러운 것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리를 뜨지 않고 이것저것을 자꾸 물으니 집에서 만든 것이라며 머그잔으로 가득하게 식혜를 가져다줍니다. 

그 집을 나와 조금 더 올라가니 백발의 할머니가 테라스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동생네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집주인 할머니는 인천에서 30년을 사시다 자식들이 이 집을 마련해 미루마을로 내려와 있는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라 당연히 시골생활을 좋아하시겠지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불편하다고 하셨습니다. 아직은 아는 사람도 없고, 필요한 게 있어도 마음대로 살 수도 없어서 불편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주말에 드나들며 지었다는 콩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집에서는 주말에 드나들며 지었다는 콩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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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시계방향으로 돌아 내려오다 보니 모자(母子)로 보이는 두 사람이 콩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잔디마당에 대형비닐을 깔고, 베어 말린 콩대들을 그 위에 깔아놓고 도리깨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리깨질을 너무 능수능란하게 하기에 농사를 지은 적이 있는지를 물으니 왕년에 농사를 지었던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모자는 경기도 안양에 살면서 주말이 되면 내려와 쉬기도 하고 이렇듯 농사를 지어 거두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언론, 현실 제대로 보도해야"

마을을 거반 돌다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 부부를 만났습니다.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두 부부에게도 같은 질문, '미루마을에서의 삶이 귀촌을 계획하며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지, 아니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물었습니다. 허락을 받아 두 아이를 나란히 앉혀 놓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아내 되는 이의 반응은 아주 격정적이었습니다. 혹시 귀촌생활이 어쩌니저쩌니 하며 잔뜩 미화시켜 놓을 거면 두 아이의 사진을 절대 써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헛꿈을 꾸지 않도록 사실대로 전해야 하는데 언론을 통해서 보이는 미루마을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화일색이라며 언론에 대한 거부감까지 보였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리는 전원주택이 이런 모습일 겁니다.
▲ 텃밭이 있고 잔디마당이 있고 대개의 사람들이 그리는 전원주택이 이런 모습일 겁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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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미루마을은 지난 5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까지 다녀갔을 정도로 성공적인 귀촌 현장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뭔가를 경계하고, 어떤 사연을 감추기라도 하듯 머뭇거리거나 대답을 회피해 호불호를 판단 할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반응들과는 달리 부인 되는 이가 들려주는 귀촌에 대한 현실은 분명하고 단호했습니다. 갈 길을 채비하던 남편도 "내가 오자고 해서 온 거라 아내에게 참 미안하다"고 독백을 하듯이 한마디 합니다.

'가을 음악회'가 열리는 숲속 작은 도서관 마당에서도 몇몇 분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버섯농사를 짓고 있다는 분은 당신의 귀촌을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하며 점진적 발전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경쟁력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나름으로 선택한 귀촌에 어느 정도는 만족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선행자로서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물으니 "귀농학교쯤은 꼭 다니며 정신무장을 제대로 하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숲속 도서관 주인에게 귀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이민'쯤으로 생각하면 될 거라고 합니다. 물설고 낯선 타향, 문화와 가치는 물론 익숙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하나를 시작해야 하는 이민생활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루마을 집을 세컨드하우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 세대는 미루마을 밖에도 집이 있고 삶의 터전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미루마을에 대한 절실함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미루마을 이장인 곽노관씨는 "2011년 9월에 내려왔는데, 사회생활을 하며 꿈꿨던 귀촌이 실현돼 좋다"면서 "각자 기대와 입장에 따라서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한 마을 속 두 동네, 그들만의 음악회

미루마을 초등학생들이 벌이는 가을음악회에 참석한 미루마을 사람들. 가을음악회는 안타깝게도 그들만의 음악회로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미루마을 초등학생들이 벌이는 가을음악회에 참석한 미루마을 사람들. 가을음악회는 안타깝게도 그들만의 음악회로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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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가 열리는 숲속 작은 도서관 마당에는 한기를 달래주고 고구마를 익혀 줄 모닥불도 피워졌습니다.
 음악회가 열리는 숲속 작은 도서관 마당에는 한기를 달래주고 고구마를 익혀 줄 모닥불도 피워졌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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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마을의 가을은 해가 짧았습니다. 산그늘이 길어지고,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니 숲속 작은 도서관 마당으로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들, 이미 와 있던 몇몇 어른들에 하나 둘 찾아드는 어른들까지 더해지니 마을잔치가 벌어집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음악회라고 했습니다. 재롱잔치라고도 했습니다. 미루마을에는 의외로 초중고 학생이 많았습니다. 유치원생이 2명, 초등학생이 12명, 중학생이 2명, 고등학생이 5명으로 총 21명이라고 합니다.

이날 열리는 음악회는 초등학생들이 학교 등에서 배운 각자의 실력을 때로는 홀로 뽐내고, 때로는 합주로 드러내는 아름다운 자리였습니다. 누룽지 빛깔로 익어가는 가을, 솜사탕처럼 감미로운 선율, 특별메뉴처럼 이따금 들려오던 어머니의 하모니카 소리, 직접 농사지은 표고버섯으로 조리한 표고버섯탕수육,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익어가는 군고구마 냄새는 미루마을로 귀촌한 사람이 아니면 차려질 수도 없고 차려지지도 않을 특권, 그들만이 누리는 미루마을표 행복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루마을 사람들이 특권처럼 누리는 행복은 어쩌면 거기까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들만 있을 뿐 그들이 꿈꾸던 귀촌이나 귀농에 토양이 되고 용매가 되어 줄 이웃, 다른 사은리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해 딱 한분이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귀촌을 해 사오랑이(지역이름) 사람보다 더 사오랑이 사람이 되어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초대를 받고 참석해 있었습니다.

미루마을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삶의 터전으로 삼아야 할 곳은 미루마을 자체가 아닐 겁니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고, 보는 관점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미루마을 사람들이 잔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도 사오랑이 사람들이고, 미루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이웃사촌이 되어줄 사람들도 사오랑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집단귀촌'은 반대"

미루마을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 바라본 군자산모습입니다. 산이 높으니 산그늘도 깊고 넓습니다. 미루마을의 현실이 커다란 산이고 산그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미루마을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 바라본 군자산모습입니다. 산이 높으니 산그늘도 깊고 넓습니다. 미루마을의 현실이 커다란 산이고 산그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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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마을의 가을밤을 더 없이 행복하게 감싸고도는 음악소리를 뒤로하며 사은리 이장(노형열, 53)을 만나러 갑니다. 소위 불알친구지만, 일손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를 놓을 수는 없기에 저녁 시간에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아래동네, 외사리에 사는 친구(김덕한, 53)도 함께 만났습니다.

세 친구가 한자리에 앉아 미루마을의 귀촌을 이야기 합니다. 가구 단위로 귀촌하는 사람들도 지켜봤고, 집단으로 귀촌한 사람들도 지켜본 50년 지기 친구들, 장승박이처럼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두 친구가 내린 결론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은 귀촌은 반대"였습니다. 이런저런 형태로 집단적 세를 형성하려던 예를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갑론을박 할 것도 없이 단박에 모아지는 의견이고 결론입니다. 

어떤 손해가 있고, 어떤 문제가 있어서 반대가 아니라 미루마을을 보면서 느끼는 현실적인 결론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이 동네 저 동네로 나뉘는 것도 꼴 보기 싫고, 존재하지도 않는 알력이나 세 싸움을 미리 짐작하는 것도 싫다고 하였습니다.

평생 이곳에서 토박이로 살아온 A씨 의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들어온 마을이야 어쩔 수 없지만 또 들어온다면 반대한다"면서 "토박이들이야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자기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를 하는데 그 사람들은 권리 주장이 더 강한 것 같더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오고가는 것 티 나지 않게 녹아들 사람은 녹아들고, 맹물에 더해지는 설탕처럼 단맛을 더해줄 사람은 단맛 더해주며 어울리다 보면 더불어 하나 되는 그런 귀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몽환적으로만 보였던 귀촌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현실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미루마을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에게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갈등이나 고통은 각자가 그려왔던 귀촌, 개개인이 기대하거나 설계 하였던 삶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겁니다. 그들 모두가 겪는 아픔이나 상처 또한 그들이 꿈꾸던 귀촌으로 가는 여정이기에 더 큰 착오와 고통을 미연에 막아주려는 예방주사로 딱지 맺혔으면 좋겠습니다.

괴산군 귀농귀촌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괴산에는 미루마을 이외에도 집단적으로 귀촌이나 귀촌을 한 곳이 몇군데 있다"면서 "실질적으로 생계를 전제로 생활하고 있는 한살림이나 흙살림, 솔뫼마을 등은 자리를 잡았지만 귀촌지역의 경우 정착과정에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귀촌이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라면 귀촌을 해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거나 극복해야 할 모든 갈등, 아픔, 상처, 고뇌, 고통 역시 스스로의 몫임에 틀림없습니다. 적극적인 자세에 '세월'이라고 하는 유화제(乳化劑)가 더해지면 얼마의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꿈꾸듯 그리던 귀촌이 어느 날엔가는 실현 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미루마을 사람 모두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내 고향 사람, 사오랑이 사람들로 느껴지는 날이 성큼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태그:#귀촌, #미루마을, #사은리, #노형열, #김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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