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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동명왕릉(왼쪽)과 그의 초상.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가 고구려보다 20년가량 먼저 건국되었다고 했다.
 평양 동명왕릉(왼쪽)과 그의 초상.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가 고구려보다 20년가량 먼저 건국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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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박혁거세 21년(기원전 57년)에 고구려 시조 동명이 왕위에 올랐다'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같은 책에는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기원전 37년)에 박혁거세가 왕위에 올랐다'는 대목도 있다. 신라가 고구려보다 20년 가량 먼저 건국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믿을 수 없는 기술이다.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때는 372년(소수림왕 2)이지만 신라는 그보다 한참 늦은 눌지왕(417∼458) 시절이었다. 고구려는 2∼3세기에 이미 우경(牛耕)이 실시되었지만 신라는 502년(지증왕 3)에 가서야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 국가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을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에 설립하지만 신라는 682년(신문왕 2)에야 국학(國學)을 세운다. 아무리 봐도 신라가 고구려보다 앞선 시기에 개국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고구려보다 300년 늦게 '대학' 세우고 '우경' 실시한 신라

김부식은 신라 왕족의 후예였다. 고려는 나라의 이름만 고구려를 계승한 듯 내세웠지만 지배세력은 신라 출신들이었다. 당연히, 김부식은 신라 중심의 역사관을 가졌다. 그래서 신라의 건국 시기를 고구려보다 앞당기는 학문적 오류를 저질렀던 것이다.

 김알지가 출현한 곳으로 전해지는 계림의 낮과 밤(아래). 첨성대와 경주향교 사이, 반월성 아래 내물왕릉 옆에 있다.
 김알지가 출현한 곳으로 전해지는 계림의 낮과 밤(아래). 첨성대와 경주향교 사이, 반월성 아래 내물왕릉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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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있다. 김알지 탄생 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삼국사기>의 '탈해왕 9년 봄 3월' 기사다. 탈해왕은 황금 궤짝에 든 채 하늘에서 내려온 '총명하고 지략 많은' 아이의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씨로 정했다. 또 (황금 꿰짝이 발견된 반월성 아래 숲의 본래 이름)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바꾸었으며, (계림을) 그대로 나라 이름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김(金)씨 성(姓)은 김알지 탄생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진흥왕 때 생겼다. 왕은 중국에 국서(國書)를 보내면서 성씨가 없는 것을 한탄, 왕의 성씨를 '귀한 것'의 상징인 金(금)으로 정했다.

김알지 탄생이 나라 이름 바꾸고 '김씨' 성 생긴 계기?

김부식은 김알지의 출생을 계기로 나라 이름이 계림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최초의 김씨 임금 미추왕이 즉위한 때(262년)는 김알지 출생(65년)보다 거의 200년이나 되는 엄청난 세월이 흐른 후였다. 김알지의 출생은 나라 이름을 바꿀 사건이 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스스로 '신라의 박씨, 석씨는 모두 알에서 나왔고, 김씨는 황금 궤 속에 들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며, 혹은 황금 수레를 타고 왔다고 하니 이는 괴이한 일로 믿을 수 없으나 민간에서는 사실로 믿는다'고 '논평'한 김부식이 계림에 대해서는 앞뒤가 맞지 아니하는 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인 미추왕의 릉은 오릉, 무열왕릉, 신문왕릉과 더불어 외삼문, 담장 등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왕릉이다. 김씨 왕의 시조이므로 그렇게 '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신라 최초의 김씨 임금인 미추왕의 릉은 오릉, 무열왕릉, 신문왕릉과 더불어 외삼문, 담장 등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왕릉이다. 김씨 왕의 시조이므로 그렇게 '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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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김부식은 선덕여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은 것이 하늘의 이치다. 어찌 늙은 할미가 안방에서 나와 국가의 정사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신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았으니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할 것이다. <서경>에도 "암탉이 울어 때를 알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보여주는 김부식

김부식의 인식은 중국 황제의 힐난에 맞장구를 치는 꼴이었다. 당 태종은 신라 사신에게 '너희 나라는 여자를 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웃 나라의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 이는 임금을 잃고 도적을 맞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친척 한 사람을 보내어 너희 나라의 임금으로 삼아 (중략) 너희 나라가 평안해지면 그때 그대들에게 맡겨 스스로 지키게 해주겠다'고 했다. 김부식은 이에 대한 비판은 일언반구도 개진하는 법 없이 오히려 중국 황제를 떠받들고 신라 사신을 헐뜯었다. '사신이 "예" 소리만 할 뿐 대답을 못하자 황제는 그가 용렬하다며 탄식했다.'

 선덕여왕릉. 김부식은 '여자가 왕이기 때문에 신라가 그 모양'이라고 힐난한 당나라 황제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선덕여왕이 임금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 못마땅해 하였다.
 선덕여왕릉. 김부식은 '여자가 왕이기 때문에 신라가 그 모양'이라고 힐난한 당나라 황제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선덕여왕이 임금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 못마땅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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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의 사대주의적 인식은 선덕여왕 다음의 임금인 진덕여왕 시대의 기술에도 나타난다. 재위 4년인 650년, 진덕여왕은 비단에 자작 오언시 <태평송>을 수놓아 당 고종에게 바친다. 비단을 들고 중국까지 심부름 간 사람은 김춘추의 아들 법민(뒷날 문무왕)이었다. 극도의 아부문학인 <태평송> 전문을 <삼국사기>에 수록한 김부식은 '고종이 <태평송>을 칭찬하면서 법민을 대부경으로 삼아 귀국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해부터 (신라는) 비로소 중국 연호를 시행했다'고 적고 있다. 마치 뭔가가 잘 되었다는 듯한 인식이다.

오릉, 계림, 선덕여왕릉, 진덕여왕을 찾는 순서

김부식의 '잘못'을 말해주는 곳들을 다녀본다. 시대순으로 말하면, 오릉과 계림, 선덕여왕과 진덕여왕릉 들이다.  경주시 탑동 67번의 오릉은 사적 172호, 행정주소로는 교동 1번지이지만 그보다는 첨성대와 경주향교 사이에 있다고 하면 훨씬 찾기가 쉬운 계림은 사적 19호, 경주시 보문동 산 79-2번지의 선덕여왕릉은 사적 182호,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산48번지의 진덕여왕릉은 사적 24호로 지정되어 있다. 모두들 국가 지정 사적이니 굳이 김부식이 아니더라도 한번은 찾아보아야 할 필수 답사지라 하겠다.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내렸다면 제일 먼저 선덕여왕릉부터 찾아야 한다. 오릉을 먼저 답사하면 도로를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찻길이 복잡해진다. 선덕여왕릉을 보고 나서 경주박물관 옆으로 돌아와 계림을 보고, 이어서 오릉을 답사한다. 그 후 진덕여왕릉을 보러 먼 길을 떠난다. 다른 셋은 시내에 있지만 '현곡면 오류리 산48 번지'라는 주소만 보아도 진덕여왕릉이 시내와 동떨어진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이 된다.

 멀리 솔숲 사이로 보이는 진덕여왕릉(왼쪽 사진)과, 가까이 다가서서 본 여왕릉의 모습. 진덕여왕릉은 다가서는 솔숲길이 아름답고, 주차장도 넓으며, 주차장 옆에 강태공들이 찾는 맑은 호수도 있어 답사를 온 나그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멀리 솔숲 사이로 보이는 진덕여왕릉(왼쪽 사진)과, 가까이 다가서서 본 여왕릉의 모습. 진덕여왕릉은 다가서는 솔숲길이 아름답고, 주차장도 넓으며, 주차장 옆에 강태공들이 찾는 맑은 호수도 있어 답사를 온 나그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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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여왕의 무덤이 경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다행이다. <태평송> 같은 아부시를 직접 써서 당나라 황제에게 수 놓아 바친 임금의 무덤이 '천년 왕도'의 한복판에 남아 있어서야 되겠는가! 물론 무열왕 김춘추가 그런 판단으로 선왕(先王)의 묘소를 지금 자리에 쓴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덕여왕릉은 외진 곳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묘소로 들어가는 솔숲길이 아름답고, 넓은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으며, 주차장 옆에 맑은 호수까지 하나 있다. 멀리 찾아간 나그네는 그래서 '여왕도 저 세상에서 흐뭇하게 여기고 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조금 전 진덕여왕릉이 시내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한 것이 내심으로는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다.

 아주 가까이에서 본 진덕여왕릉
 아주 가까이에서 본 진덕여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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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33회에 걸쳐 쓴 졸고 '경주 여행' 연재에 이 기사를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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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소설 의열단><소설 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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