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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평 아파트에서 등교했다가 월세방으로 하교해봤어요? 인생이 자이로드롭입니다."
"너 엄청 잘 살았구나? 난 모태 빈곤이야."
- 만화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작) 에서

나의 부모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서울의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우리 집은 추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마당이 있던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전세 아파트에서 연립빌라로. 결국 다세대의 반지하월세방과 고시원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자취는커녕 기숙사 생활 한번 해보지 않았던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월세를 지불하며 살게 되었다. 그래도 십 수 년 넘게 살던 동네니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다만 월세가 좀 아깝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뭘 모르는 소리'였다. 세입자가 되면서 나는 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최소한의 짐만을 남길 때의 허전함

이사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많은 물건을 버려야만 했다. 이불이나 옷가지는 물론이고, 책과 음반 등 문화적인 수집품들이 많이 버려졌다. 작은 방으로 가느라 수납 공간이 적어서 이기도 했지만, 급매로 집을 내놓고 두 칸 짜리 반지하에서 세 식구가 살아야할 상황이 되자 모든 것이 짐스럽고 사치스럽게 느껴진 이유도 컸다.  

앨범에 가득하던 사진은 스캔을 해 파일만 남긴 채 버려졌고,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책과 음반은 사과박스에 나눠 담긴 채 중고시장으로 팔려나갔다. 추억과 꿈이 담긴 물건들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마음 한 구석도 함께 텅 빈 듯 했다. 그제서야 나는 원룸에서 자취하는 친구가 다 읽은 책을 넘겨줄 때마다 보이던, 울 듯 말듯한 그 묘한 표정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고정적인 월세 지출이 생겨나면서, 내 자신을 위한 투자에도 인색해졌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하고 책은 사서 봐야한다는 욕심이나 가격보다 맛이나 기호를 따지던 식습관까지, 모든 것이 '일단 정지'를 외쳤다. "젊을 때 여행도 가고 인생도 즐기자!"라고 친구들에게 권하던 과거의 내가 점차 낯설어졌다. 

어둡고, 습하고, 답답한 지하

지하로 이사하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면 어두컴컴하고 눅눅한 방에 짓눌리는 느낌으로 가슴이 갑갑했다. 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고 돌아다녀야 비로소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또 해가 쨍쨍한 날인지 비가 오는지, 더운지 추운지도 집밖으로 일단 나가야만 측정할 수 있었다. 집안이 늘 어두우니 잠은 쏟아졌고, TV시청이나 웹 서핑 이외의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무기력증에 빠진 기분이었다.

습한 곳을 좋아하는 벌레 곱등이의 존재도 알게 되었고,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에 반 나절만 집을 비워도 환기부터 해야 했다. 환기가 어려워 생선이나 고기를 구워먹기도 쉽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다용도실의 창문이나 현관의 틈새로 물이 스며들었다. 장마철에는 누군가 꼼짝없이 방을 지켜야 했고, 바깥에 있는 식구들도 하루종일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자기만의 방은 없다

목욕탕이나 찜질방 문화를 낯설어했던 내가, 이사하고 나서는 공중목욕탕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사온 집에는 세면대가 없었다. 욕조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샤워기에 고마워할 판이었다. 그래서 공중목욕탕에 가서야 개운하게 목욕을 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예전의 나는 문 앞이나 공용주차장 등 집 밖에 빨래를 너는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볕도 바람도 잘 들지 않는 지금의 집 안에서는 빨래가 제대로 마르지 않았다. 결국 우리 역시 빨래 건조대를 주차장에 놓고 빨래를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만의 방이 없어지면서,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어려워졌다. 같은 방을 쓰는 식구를 배려하자면 함께 불을 끄고 잠을 청해야 했다.

세입자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월세를 내고 방을 빌려쓰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때 대기업의 계약직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선 정규직 사원들과는 달리 비정규직 직원들은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암묵적인 합의였다. 각자의 처지가 스스로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가 많고,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것이고 이곳은 잠시 머무는 곳이니 정 붙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할까.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얼굴만 알던 동료들이 빠져나갈 때 허전함을 느끼면서 점차 주어진 일만 하면서 새로오는 이들에게 인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사온 건물의 규칙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입자들 사이에는 서로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언제 이사와서 언제까지 살 것인지, 나 자신의 미래조차 불투명하므로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 역시 내 마음 같을 것이라 추측한다.

세입자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월세를 내고 방을 빌려쓰는 문제가 아니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기간이 길어지며 점차 움츠러들었듯이, 내게 허락된 공간과 처한 처지만큼 내 몸과 마음이 함께 재정비되는 일이었다. 초보 세입자인 나는 이렇게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



태그:#나는세입자다, #월세, #전세, #반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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